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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집 Jul 26. 2022

구름 한 점 없이

그냥 엄마 #3

미자는 딸 네 집에 가는 길에 채소 가게에 들렀다. 동네에 새로 생긴 <막 퍼주는 집>에는 상처가 나거나 모양이 울퉁불퉁하고 못생긴 채소와 과일들을 싸게 판다. 가게에 들어서자 제철인 취나물 냄새가 진동한다. 취나물을 바구니에 가득 담고 커다란 배추도 한 통 산다. 흠집 난 가지와 애호박도 몇 개씩 주어 담는다.  


"엄마~ 이게 다 뭐야, 빈 손으로 오지 뭘 이렇게 바리바리 싸들고 와."


"자주 오는 것도 아닌데 온 김에 반찬 몇 가지 해주고 가려고 그러지, 금방이야. 뚝딱 만들고 점심 먹자."


"아니... 그래도 뭘 이렇게..."


딸아이가 놀란 눈으로 지켜보고 있는 곁을 재빠르게 지나쳐 미자는 부엌을 차지했다. 


"가만히 있지 말고 가서 신문지 깔 것 좀 가져와봐."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나물들을 쏟아 다듬고, 싱크대엔 배추와 채소들을 씻어 엎어 높을 커다란 대야가 올려졌다. 집에 있는 커다란 들통이면 한 번에 될 일인데 딸 네 집에는 죄다 손바닥만한 솥, 냄비 밖에 보이질 않아 하는 수 없이 두 번, 세 번에 걸쳐 나물들을 데쳤다. 

뚝딱, 두 시간 여가 지났다. 반찬 통에 소복이 취나물 무침, 겉절이, 가지볶음 같은 것들이 차례대로 채워져 갔다. 


"끝! 어때? 금방이지?"


미자는 허리를 쭉 펴며 일어나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며 웃었다. 


"엄마, 부엌도 엉망인데 우리 나가서 사 먹자. 내가 맛있는 거 사줄게."


딸아이가 쌍 엄지를 내 보이고는 반찬 통을 냉장고에 차곡차곡 넣으며 말했다. 미자는 열린 냉장고를 딸 어깨너머로 훑어 보며 '애호박도 남았으니 이걸로 된장찌개나 휘리릭 끓여 갓 만든 반찬들로 때우자' 했다. 딸은 실망한 눈치지만 미자는 이왕 온 김에 저 지저분한 냉장고 정리도 하고 찬장 정리도 해주고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둘은 마주 앉아 된장찌개와 나물반찬, 겉절이에 점심을 먹었다. 결혼하고 어느새 손주도 둘이나 낳아 기르는 딸은 집도 가까워 언제든 오고 싶을 때 올 수 있지만 생각만큼 되질 않는다. 너무 자주 들락거리려니 은근히 사위 눈치도 보이고, 딸도 아이들 키우느라 바빠 늘 허덕이는 것처럼 보인다. 그럴 때면 안쓰러운 마음이 들곤 한다. 애들도 척하니 맡아 봐주고, 살림도 도와주고 하고 싶은데... 뒤늦게 공부를 한다, 글을 쓴다며 뛰어다니느라 바쁜 미자다. 


"현정아, 너 지금 애들 키우느라 바쁘고 정신없는 거 같아도... 지나 놓고 보면 한창 때야. 너무 젊고 능력도 많고 엄마보다 훨씬 똑똑하잖아. 내가 니 나이면 뭐든 더 할 수 있을 것 같아."


미자는 밥 한 공기를 금세 비우고 믹스커피를 호록 호록 마시며 딸을 바라봤다. 이제 삼십 대 후반에 들어선 딸아이가 미자 눈에는 여전히 젊고 반짝반짝 빛나 보였다. 그 빛을 현정이 자신이 못 보는 것 같아 딸을 볼 때마다 조바심이 나고 안타까운 미자였다. 


"엄마가 니 나이 때는 애가 셋이었어. 그거뿐이니.... 결혼초에는 총각, 처녀인 시동생들이 어느새 하나씩 신혼집에 들어와 같이 사니 어른 다섯 밥 지어 먹이고, 넷이 다 출근하고 학교 가고 하면 오전부터 요리 책을 붙들고 부엌에서 씨름을 했어. 결혼 전까지 나도 직장 생활했는데 요리란 걸 해봤어야 말이지..."


미자는 결혼 후, 직장 대신 부엌에서 매일을 살다시피 했다. 남편과 시댁 식구까지 다섯 식구의 밥을 해대는 일이 미자의 일상이 되었다. 요리책을 펼쳐 놓고 부지런히 적혀 있는 대로 음식을 만들었지만 아무리 해도 친정 엄마가 해주는 맛이 나질 않았다. 시동생들은 툭하면 예고도 없이 친구들을 데리고 오밤중에 집에 몰려왔다. 그때는 '뚝딱'하고 한 상을 차려낼 만한 재간도 없거니와 남편이 가져다주는 생활비도 턱없이 적었던 지라 속수무책이었다. 부엌에서 동동거리며 보낸 시간들 뒤로 시가 식구들 사이에서는 새 며느리가 손이 느리다는 평이 숨김없이 돌아다녔다. 


"그런데 너희들까지 연년생으로 낳고 애들 줄줄이 챙기면서 살림을 하려니 더 느려졌지 뭐, 그때부터는 나를 대놓고 두둠바리라고 불렀어. 두둠바리가 뭔지 몰랐는데 뭐든 느리고 더디다는 거야, 뜻을 알고 어찌나 속상하고 화가 나던지 한참을 울었었어."


미자는 커피를 다 마시고 냉장고를 열어 자연스레 정리를 시작했다. 안에 있는 반찬들을 싹 꺼내고 작은 통에 옮겨 담으며 부피를 줄여나갔다.


"애 셋을 데리고 일 년에 열 번도 넘게 시골에 가야 했어. 제사는 어찌나 많은지, 명절에, 시댁 어른 생신에.... 갈 때마다 바리바리 애들 짐을 챙기고, 너희들 씻기고 입히고 빗기느라 혼자 벌벌대면 네 아빠가 밖에서 딩동댕동 벨을 계속 누르면서 혀를 차더라고.... 저 완행열차, 두둠바리 하면서."


미자는 그게 힘들어서 삼십 대의 젊은 나이에 덥석 제사를 모셔왔다. 아이 셋을 챙기고 차가 없어 어느 때는 시외 버스를 타고, 어느 때는 친척 차를 얻어 타고 눈칫밥을 먹었다. 그러고 도착하면 이미 녹초가 되어 있곤 했다. 적어도 내 집에서 제사를 지내면 그 수고는 덜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엄마, 그래도 그렇지 어쩌자고 그렇게 빨리 제사를 모셔왔어."


딸아이가 안타까운 듯 타박을 해왔다. 그러게.... 그땐 몰랐다. 처음 제사를 모셔온 어린 며느리에게 '고생이 많다'는 말보다 '제사상을 어떻게 차리는지 한 번 보자'하는 따가운 시선들이 더 많을지는.... 그래도 그때는 젊어서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열심히 살아왔다고 자부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그때의 내가 너무 애틋하고, 뭘 위해 열심이었나... 그런 생각이 들어. 너희 할머니를 보면서 노인네 답답하게 왜 저리 사나 했었거든... 그때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버커리, 버커리 하고 불렀어. '늙고 쭈그러진 여자'라는데 그걸 귀엽사리 부르는 거라나 뭐라나... 귀엽기는 뭐가 귀여워. 저런 소리를 듣고 아무 소리도 못하나 했는데 정신 차리고 보니 내가 두둠바리 소리를 들으며 살고 있더라고...."


이런 얘기를 늘 딸에게 하는 것이 미안하기도 했지만, 미자에겐 그렇게라도 얘기하고 풀 곳이 필요했다. 한 편으로는 그럴 수 있는 딸이 있는 게 좋았고 참 다행이었다. 


오늘 아침 미자는 침대에서 일어나질 못하고 누워있었다. 어젯밤 리포트를 쓰느라 아무래도 무리를 한 모양이었다. 미자는 늦깎이 대학생이다. 아이들을 키워 모두 내보내고 나니 한동안 마음이 허전했다. 오랜 시간 지켜온 '엄마'의 자리에서 벗어나면 후련할 줄로만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돌이켜보니 아이들이 미자의 손을 타고 필요로 하던 그때가 소중한 시간이었다. 


'이제 무얼 해야 하나....'


고민하다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공부'였다. 미자의 최종 학력은 중졸이다. 그러나 이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가족사항을 적어 오라고 보낸 서류엔 슬며시 고졸이라 적어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때마다 미자는 거짓말을 하는 자신이 부끄럽고 싫었다. 무엇보다 글을 쓰고 싶었다. 가슴속에 쓰고 싶은 말들이 아우성치는 기분을 수시로 느끼며 살았지만, 배우지 못했다는 생각에 자신 있게 쓸 수 없었다. 미자는 어느 날 혼자 지하철을 타고 청량리에 가서 검정고시 학원에 등록했다. 가족들에겐 따로 말하지 않았다. 검정고시로 고졸 학력을 따고, 그 해 겨울 수능시험을 봤다. 자연스레 알게 된 가족들에겐 그저 공부가 하고 싶었노라 말했다. 난관은 그다음이었다. 방송통신대학에 가고 싶었는데 이건 가족들의 도움과 배려가 필요했다. 등록금도 비쌌고 공부할 시간도 많이 필요했다. 마침 은퇴를 앞두고 있던 남편은 '이제 당신 차례'라며 열심히 해보라고 했다. 자식들도 엄마가 자랑스럽다며 곁에서 응원해 주었다. 그렇게 시작한 대학 공부는 미자의 예상보다 훨씬 어렵고 힘든 것이었다. '내가 이걸 해낼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이 틈만 나면 미자를 뒤덮고 무너뜨렸다. 공부도 어려웠지만 가장 절망스러웠던 건.... '몸'이었다. 오랫동안 의자에 앉아 있으면 어김없이 허리가 고장 났다. 밤을 새워 책을 들여다보고 컴퓨터를 쓴 날이면 허리가 너무 아파 이를 악물고 참아야 했다. 그럴 때면 남편은 그러길래 왜 하필 공부냐며 이젠 건강이 최고라며 미자를 나무랐다. 지금이라도 그만두고 건강이나 챙기며 살자고 말하면 미자는 속에서 천불이 올라와 불덩이 같은 말을 내뱉었다. 이 허리가 내가 공부를 해서 아픈 거 같냐고. 다 결혼하고 이 집에서 살림하고 애들 낳고 키우며 얻은 병인데 왜 하고 싶은 공부도 하지 말라는 거냐고. 


"그랬더니 너희 아빠가 그러더라고 공치사하는 거냐고... 지금 나한테 시집와서 이만큼 고생했다고 떵떵거리고 싶은 거냐는데, 그 말이 그렇게 가슴이 아파. 공치사라니... 내가 살아온 젊음이 말이야. 그 정도 말로 딱 판결 나는 느낌이더라고...."


미자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훌쩍이며 냉장고에 반찬통을 집어넣는데 딸이 답답한 듯 말했다.


"그러니까 엄마, 남의 말, 눈치 보지 말고 살라고... 착한 며느리? 착한 아내? 그런 거 아무 짝에도 쓸모없어. 나 예전에 이렇게 희생했다. 내가 이만큼 했다. 이런 말 누가 듣고 싶겠어? 인정이나 하겠어? 그냥 거기서 좀 나와. 맨날 구질구질하게 그때 생각에 빠져 있지 말고... 나한테도 이런 거 바리바리 싸와서 만들고, 청소해주고 이런 것도 하지 말았으면 좋겠어. 내 친구들은 친정 엄마랑 둘이 맛집도 가고, 예쁜 카페도 돌아다니면서 데이트도 하고 그래. 우리도 좀 그렇게 살자 응?"


그 말을 듣고 있는 미자의 온몸이 딱딱한 막대기가 된 것처럼 굳어버렸다. 정말 속이 텅 빈 막대기가 된 것 같았다. 미자는 표정없는 얼굴 위로 눈물을 닦고 일어섰다. 냉장고 문을 닫고 그대로 가방을 들고 현관으로 나갔다. 딸을 쳐다보지 않았다. 놀란 듯 현정이 "엄마, 내가 미안... 나는 엄마가 힘든 게 속상해서..."라며 미자의 팔을 잡았다. "엄마 갈게." 미자는 짧게 말하며 현정의 손을 떼어내고 밖으로 나왔다. 하늘을 바라보았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었다. 미자의 마음이 정갈하게 비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직접 살아온 시간들은 결국 아무도 경험할 수 없는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 시기를 곁에서 살 부딪끼며 함께 살아온 남편이든, 내 속으로 낳은 딸이든.... 누구든... 나의 삶은, 그 안에서 내가 느끼고 울고 웃으며 견뎌온 것들은 타인에게 구질구질한 신세한탄이나 공치사일 뿐이구나... 생각하자 허탈하면서도 묘하게 가벼워진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면 나는 여기서 나와야겠다.'


카톡 카톡. 휴대폰으로 딸아이가 보낸 메시지가 연신 알림을 울리고 있었다. 미자는 핸들을 꽉 잡고 백미러를 바라보았다. 어느새 육십 대에 들어선 미자의 얼굴이 보였다. 조금 전까지 딸의 미래에 조바심을 내던 자신이 우습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코가 석잔데.... 내 나이 벌써 육십인데...'


더 이상 누구의 눈치도, 뒷바라지도 하지 말자고 다짐 또 다짐해보았다. 오로지 나를 보는 일, 거기에 집중하자. 그것만이 내가 살아온 세상에서 졸업하는 일이라고 미자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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