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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집 Nov 29. 2023

#1. 아기 독수리의 탄생

<아득바득 기쁨을 찾아 살아보자>

지난 여름

이라는 단어로 시작되는 말에는 뭔가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사건이 숨겨져 있을 것만 같다. '지난 여름'의 나는 그 이전의 삶으로는 더 이상 돌아갈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 느낌이, 어떤 확신이 들기 때문이다. 

열 세 살 율이에게 '지난 여름'은 야구를 만난 운명의 시간이었다. 우연히 이모와 외할아버지를 따라 처음 가 본 잠실 야구장에서 그런 예감이 들었다. 


'나는 이 첫 순간을 내 인생에서 두고두고 기억하게 되겠구나.' 


그렇게 시작된 야구에 대한 마음은 여름철 습기를 머금고 무섭게 자라나는 잡초들처럼 율이를 뒤덮어 버렸다. 매일 야구 경기를 챙겨보고, 야구 유튜브를 구독하고, 집에서도 야구 글러브를 끼고 지내는 시간이 길어졌다. 그 중 제일 좋아하는 것은 야구 경기 직관이었다. 야구에 꽂힌 율이 덕에 우리는 여름 휴가와 공휴일 대부분의 시간을 야구 경기장에서 보내게 되었다. 율이가 응원하는 한화이글스의 홈구장인 대전 경기장에 가던 날은 기쁨과 환희를 넘어 성지를 순례하는 순례자의 경건한 마음가짐을 알 수 있었다. 다만 안타까웠던 것은 성지 순례의 날 뿐만 아니라 율이가 경기장을 찾았던 모든 날, 모든 경기에서 한화가 패배했다는 사실이었다. 뒤늦게 알게 된 사실에 의하면 한화는 지난 3년 연속 한국 프로야구 순위 꼴찌를 기록한 팀이었다. 그러나 팀의 패배는 야구의 매력을  털 끝 만치도 건드리지 못했다. 큰 점수 차이로 지던 날 한화 팬들은 경기장 밖을 행진하며 목이 터져라 응원가를 불렀다. 그것이 오기인지, 아쉬움인지 뭔지 잘 모르겠는 와중에도 감동은 쓰나미처럼 밀려들어왔다. 그렇게 율이는 평생을 한화이글스의 팬으로 살며 충성을 다하겠다고 결심하게 된다. 

대전 홈구장에서 경기에 지고 나오던 길 율이의 눈가가 조금 촉촉해졌고 나는 속으로 한화 놈들을 원망하며 작은 어깨를 다독여 주었다. 낯선 도시의 밤거리에 건물마다 불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율이가 말했다. 


"엄마, 나는 커서 대전에 살고 싶어. 대전에 있는 회사를 다니면서 저 아파트들 처럼 경기장이 바로 보이는 곳에 살고 싶어. 퇴근을 하면 먹고 싶은 음식들이랑 맥주를 들고 경기장에서 매일 야구를 볼거야."


처음 들어보는 율이의 구체적 행복 앞에 나는 잠시 멍해졌다. 그리고 열 세 살 인생이 그동안 열망해왔던 사랑의 순애보들이 차례차례 떠올랐다. 공룡, 장수풍뎅이, 이순신과 거북선, 전쟁, 역사.... 그리고 야구. 그러나 다른 점이 있었다. 자신이 그리는 미래에 대상을 함께 그려넣은 일은 처음이었다. 그만큼 야구는 율이의 현실 안에 실제하는 기쁨이자 만져지는 행복이 된 것이다. 그 순간을 바라보며 여러가지 감정이 뒤엉켜 들었는데 그게 뭔지 모르겠어서 잠시 멈춤이 되었다. 뭔지 모르겠는 상태로 팔딱거리는 감정의 그물 속에서 아무거나 하나를 집어 올리자.... '부러움'이라 쓰여 있었다. 그 순간 마흔 세 살의 나는 진심으로 율이가 부러웠다. 앞 뒤 가리지 않고 빠져들어 손에 쥘 수 있는 기쁨을 꽉 쥐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고, 오래전부터 그걸 꿈꿔 오지 않았냐고 신이 이마를 탁 치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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