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익숙한 곳의 새로움
이맘때 즈음 공항을 향하는 택시를 타면 강하게 풍기는 출장 내음에 이따금 생각에 잠기기 마련이다.
인천대교를 따라 쭉 뻗은 길과, 살짝씩 풍기는 새벽 냄새가 가득한 바람이 괜한 설레임과 긴장감을 주곤 한다.
오늘도 어김없이 부는 찬바람에 정신이 번쩍 든 채로 공항으로 향했고,
나는 익숙해진 혼자 떠나는 비행에 13키로도 안 되는 짐을 들고 탑승수속을 밟았다.
요령껏 대기 시간이 가장 짧은 수속 라인을 밟으며 새삼 많은 경험이 주는 힘에 감사했지만,
일찍 들어가 마주한 항공 지연 이슈는 언제 봐도 새로웠고,
그렇게 나는 3시간 남짓 남은 시간을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보낼지 머리를 굴리길 반복했다.
하지만 그런 고민도 잠시, 생각보다 챙겨야 할 일들은 무수했고 약간의 조급함을 가지려 노력했다.
누구나 그렇듯 혼자 여러 일들을 처리할 때면 여유를 챙기기 벅차다.
아마 식사에도 예외는 없었고, 모든 음식을 혼자 다 먹어야 한다는 의미 없는 다짐 같은 것들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나는 한국에서의 마지막 식사를 마칠 수 있었다.
먹을 일이 없을 매운 음식을 먹으며 입이 텁텁해져 부리나케 스타벅스로 향했다.
이름 모를 피지오 음료를 시켜 마시며 뜬금없이 피지오의 의미가 궁금해졌었고,
(‘fizz’ 탄산이 나는 소리에 생동감을 상징하는 어원인 ‘io’를 결합한 스타벅스만의 탄산음료 라고 한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을수록 잡생각을 많이 하게 됨을 돌연 깨닫곤 하는 하루였다.
탑승 게이트는 생각보다 거리가 있었고, 일찍 자리한 탑승 게이트 앞에서 나는 또다시 오랜 시간을 대기하길 반복했다.
지연 시간보다도 훨씬 늦게 비행기를 탑승했지만, 기내식 시간은 지연되지 않았는지 이륙을 하자마자 기내식이 제공되었고,
그렇게 나는, 들어가지도 않는 음식들을 욱여넣으며 새삼 비행이 시작되었음을 깨달았다.
나이가 찰수록 점점 겁만 많아지는 것 같다. 어쩌면 사소해 보이는 비행도 그랬다.
흔들리는 비행기에 괜스레 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고, 눈을 떴다 감았다를 속절없이 반복했다.
그러다 깊은 잠에 들었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즈음 기내 전등이 켜졌고,
떠지지도 않는 눈을 비비며 기내식을 다시 한번 욱여넣었다.
입국심사에 Hi How are you? 를 듣고 급하게 안부를 되물으며 새삼 외국에 왔음을 체감했다.
나에게만 유독 친절했던 누가 봐도 호주 본토 사람은 (나는 호주 사람을 구분하지 못하지만, 그분은 누가 봐도 호주 사람인 것처럼 보였다.) 내게 환한 웰컴 인사를 건네주셨다.
“지휸 웰컴!”
면세품으로 채운 20키로가 가까이 되는 캐리어를 끌고 트레인을 타러 향했다.
경험은 큰 자산임을 다시금 체감하며 수월히 트레인에 올랐고, 무사히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체크인 대기 시간을 해결하기 위해 지난번 시드니 여행 때 맛있게 먹었던 스테이크집으로 향했다.
일명 20달러 스테이크를 시켜 야무지게 흡입하고선,
음식은 그저 추억으로 남겨둘걸 하는 마음으로 체크인을 위한 숙소로 향했다.
간단한 샤워 후, 피곤한 몸을 이끌고 밖으로 향했다.
커피를 들고 근처 하이드파크에서 힐링을 하려 했지만, 모든 커피집이 4시에 문을 닫는 불상사가 발생해 급하게 물을 사들고 하이드파크로 향했다.
이전 호주 여행에도 갔던 공원이었지만, 오늘 맞이한 그곳은 새삼 다른 느낌이었다.
공사 중인 물가가 개방되어 느낌이 다른 것이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 기억은 그저 혼자 마주하는 경험의 새로움으로 내게 다가왔다.
이전에 자리 잡았던 잔디밭, 그 동일한 위치에 돗자리를 폈고,
나는 오늘을 위해 준비한 새로 산 책을 펼쳤다.
새로운 책 탓인지 싱그러운 공기와 선선한 바람이 오롯이 나를 위해 부는 것처럼 느껴졌고,
그 기억은 또다시 내게 선물 같은 기분 좋은 추억을 선사했다.
하지만, 한산한 시간을 보내고 있던 내게 두 명의 꼬마 아이들이 다가왔다.
(보기엔 초~중학생으로 보이는 아시아인이었다.)
그들은 내게 근처 랜드마크를 추천해 주는 인터뷰를 해줄 수 있냐고 물었다.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고 싶었던 탓에 거절을 할까 하다가 아이들의 미소와 적극적인 행동에 이따금 미소가 지어졌고, 영어를 잘 하진 못하지만 그래도 괜찮으면 해 주겠다고 했다.
그러곤 내 돗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려던 순간, 나는 아이들의 수첩에 쓰인 한국어를 봤고,
내가 당황하려던 찰나 그들은 한국인이라며 본인들을 소개했다.
말을 자를 틈도 없이 자기소개는 끝났고, 곧바로 나는 나도 한국인이라고 이야기했다.
서로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고, 그렇게 인터뷰는 그저 웃픈 엔딩으로 끝이 났다.
그 후 몇 분 뒤, 두 명씩 짝을 지은 또 다른 아이들이 세 차례 내게 인터뷰를 해줄 수 있겠냐고 물었다.
(아마도 학교에서 시킨 숙제였다보다. ㅋㅋㅋ)
영어로 물은 질문에 나는 그들에게 한국어로 한국사람임을 인지시킬 수밖에 없었다.
이것도 인연이고 추억인데 아이들과 사진이라도 찍을 걸 그랬나 싶은 생각이 잠시 들었던 순간이었다.
첫날은 사실 계획이 딱히 없었다.
지난 시드니 여행에서 오페라 극장에서 공연을 보다 거의 잠만 자다가 나왔던 기억이 있어 도착한 첫날은 일부러 계획을 잡지 않았다.
그럼에도, 여행온 시간이 너무 아깝지 않은가. 나는 급하게 돗자리를 접고, 근처를 둘러보았다.
문득 보이는 세인트메리대성당에 곧장 그리로 향했다.
지난 호주 여행에 급하게 성당 앞에서 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있다.
근데 오늘 본 성당은 정말 다른 느낌이었다.
원래 성당 앞 분수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새로운 느낌이었고, 나는 같은 곳, 다른 느낌을 또다시 경험했다.
처음 들어간 성당 내부는 생각보다 훨씬 웅장했다.
압도당할 정도로 정교한 건축물에 이따금 놀랐고,
작게 나있는 창 하나에 드는 빛을 보며 순간 새로운 공간에 온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천주교는 아니지만,) 잠깐의 시간 동안 성당에 앉아 짧은 기도를 했다.
물로 대신한 커피의 카페인이 부족했던 탓에 급하게 수혈할 무언가가 필요했다.
곧장 나는 근처 몰로 향했고, 맥도날드에서 우리나라엔 없는 콜라 슬러쉬를 시켜마셨다.
우리나라에 있으면 정말 잘 팔리겠다는 생각과 동시에, 매장을 나오며 아이스크림을 먹을 걸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호주는 아이스크림이 0.5달러여서, 지난 호주 여행 때 1일 1 아이스크림을 했었다.)
저녁 먹을 생각을 하다 문득 오페라바가 생각났다.
시간적 여유도 많은데 걸어가서 오랜만의 하버브릿지와 오페라하우스를 보며 깔라마리를 먹겠노라고 다짐한 뒤 나는 곧장 오페라바로 향했다.
일몰 시간을 챙기기 위해 가는 길에 며칠 뒤에 가기로 했던 주립 도서관에 홀린 듯이 입장했다.
구글 사진과는 달리 굉장히 현대적인 느낌이 만연했고, 방학이라 그런지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다.
(시드니 대학 학생들이 많이 오는 도서관이라고 한다.)
잠깐의 시간 동안 아까 읽다만 책을 마저 읽었고,
개방된 2층의 갤러리도 잠시동안 구경하며 약간의 감성(?)을 챙겼다.
그리고 도착한 오페라바엔 평일 저녁임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미어터졌다.
자리를 쉽게 잡을 수 없어 주문을 먼저 하고 맥주 한 잔과 메뉴 번호를 들고 속절없이 걸어 다녔다.
처음에는 바테이블에 앉았다가 새삼 내가 음식을 먹으려면 테이블 좌석이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급히 테이블 자리로 옮겼다.
자리가 여의치 않아 하버브릿지 뷰는 볼 수 없었지만, 오른편에 보이는 오페라하우스를 보며 맥주 한 잔을 곁들였다.
그토록 먹고 싶었던 깔라마리를 시키며 왠지 먹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추억의 고구마튀김도 시켰는데, 아니나 다를까 혼자 먹기엔 너무 벅차서 take away box도 함께 주문했다. (take out을 직원이 정정해 줬다.)
식사 중에는 풍경을 보다 글을 쓰다를 반복했다.
피곤한 탓에 취기가 금방 올라 더 늦기 전에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가 지고, 야경을 보게 될 수 있을 때 즈음 남은 고구마튀김을 take away box에 포장해 급히 트레인으로 향했다.
지난 호주 여행엔 트레인을 탄 적이 없지만, 이번 여행엔 혼자 묵을 숙소를 번화한 곳으로 잡은 탓에 트레인을 타는 횟수가 빈번해지는 듯했다.
다행히 시드니엔 유동인구가 많아 치안 걱정은 덜 해도 되는 듯해 보였고,
나는 트레인에서 내려 조금 늦은 시간이었음에도 아침에 먹을 과일을 사기 위해 coles에 들렸다.
그 유명한 호주 납작 복숭아를 집어 들고 가격을 잘못 봤나? 싶을 정도로 비싼 맥주는 간신히 내려두고 아쉬운 대로 초바니 요플레를 들고 계산대로 갔다.
요플레 스푼이 없다는 직원의 이야길 듣고 입으로 흡입할 수 있을 농도일지 생각하며 나는 곧장 숙소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