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빛으로 기억될 마지막 밤, 호주의 날
어느새 흘러버린 나의 여행 마지막 날을 기다렸다는 듯 호주에선 1년에 한 번뿐인 기념일 호주의 날(1/26)이 시작되었다.
마지막날 한번 더 가고 싶었던 주변 식당은 대부분 문을 닫았고, 그 소식에 다소 다급해진 나는 급히 주변 카페와 식당들을 찾기 시작했지만, 그저 시티로 나가 그들과 함께 그 문화를 즐기자는 생각에 무작정 밖으로 향했다.
시티로 나가기 전, 주변 사람들의 기념품을 사서 숙소에 가져다 놓기 위해 무작정 Ugg와 Coles 그리고 Liquid shop에 들러 각종 기념품들을 골라 담았다.
원하는 것들이 없기도 했지만, 어느덧 익숙해진 직원 추천 상품들을 골라 담고는 양손 가득히 숙소로 향했다.
제법 익숙해진 청소를 위한 팻말을 문고리에 걸어두곤, 마지막 팽오쇼콜라를 먹기 위해 근처 문을 연 A.P bakery로 향했다.
문을 연 카페가 많이 없어서였는지, 공휴일이어서 그런지 사람들이 엘리베이터까지 줄을 서있었다.
나는 서둘러 줄을 서, 커피는 기다릴 자신이 없어 빵만 구매한 뒤 밖으로 향했다.
마지막날, 첫날의 행복했던 기억을 되짚고자 나는 근처 하이드 파크로 향했다.
여느 때와 같이 하이드 파크에 앉아 빵을 먹으며 음악 감상을 했지만, 조금은 흐린 날씨 탓에 첫날의 기억이 점점 희미해져만 갔다.
그렇게 사색에 잠겨있던 순간도 잠시, 노이즈캔슬링을 뚫고 들어오는 굉음에 나는 화들짝 놀라 주변을 둘러보았다.
둘러본 하이드 파크 밖 거리엔 눈에 익은 광화문 시위의 한 장면이 펼쳐져 있었다.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줄을 서서 하나같이 시위를 하며 거리를 횡단하고 있었다.
나는 놀라운 광경에 사진을 찍길 반복하고 있었는데, 옆에 있던 벤치에서 술을 꺼내 마시던 한 외국인 아저씨가 그들은 우리의 적인데, 나는 그들의 문화를 리스펙 한다며, 나보고 너무 멋지지 않냐고 물었다.
알고 보니 호주의 날은 원주민 침략의 날의 의미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 아저씨는 아마도 원주민 침략의 날을 국경일로 지정하면 안 된다는 의견을 가지고 있는 원주민들의 시위를 존경한다는 의미로 내게 (그 아저씨한테는 외국인) 그런 말들을 건넸던 것 같다.
처음엔 그저 무슨 말을 하는지 몰랐지만, 그들의 역사를 돌아보며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여행은 매번 내게 의미를 찾게 해주는 것 같다.
이번 시드니 여행은 그 많은 의미들 중, 그들의 문화와 역사의 의미를 내게 건네주었다.
나는 그 의미를 하나도 빠짐없이 이해하고, 함께 즐기고 싶었다. 마치 그들과 한 국가의 사람이 된 것처럼 말이다.
그 시끌벅적한 시위 현장을 뒤로하고 나는 그들이 즐기고 기념하는 호주의 날을 함께하고자 서둘러 시티 중심가로 향했다.
하지만, 내가 가는 방향에서 반대 방향으로 향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았고, 다 끝난 걸까 하는 몇 번의 의심을 하다 보니 어느새 오페라하우스가 보이는 서큘러키에 도착했다.
내 의심은 생각보다 정확했다.
늦게 도착한 나머지 오전 행사가 이미 끝난 줄 몰랐던 것이다.
호주의 날은 처음이고, 그만한 정보가 없었어서 아쉽게도 이른 아침부터 시작한 오전 행사를 함께 즐기지 못했다.
그런 나는 아쉬움을 뒤로한 채, 식사를 하러 떠났다.
하지만, 공휴일의 여파로 문을 연 음식점을 쉽게 찾을 수 없었고, 간신히 찾은 음식점에서 조금 늦은 점심을 먹을 수 있었다.
늦은 점심시간이었지만, 생각보다 사람이 많았다.
(아마도 많은 음식점들이 문을 닫아 비슷한 곳에 사람이 몰린 듯했다.)
나는 립이 유명하다던 허리케인그릴에서 half beef ribs를 시켰고, 사이드는 역시나 고구마튀김으로 주문했다.
그렇게 음식을 기다리고 있는데, 옆 큰 테이블에 중국인 가족이 안내받았다.
오만한 편견일 수도 있겠지만, 대체로 들어맞았던 그 편견이 이번에도 들어맞았고 너무 소란스러운 나머지 처음으로 음식점에서 노이즈캔슬링 이어폰을 꺼냈다.
나는 혼밥을 할 때 그 분위기와 음식을 오롯이 즐기는 편이다.
핸드폰을 응시하지 않을뿐더러, 이어폰은 그저 내게 그 분위기를 깨는 요소 중 하나였다.
그럼에도 꺼내 들었던 이어폰에 기분이 그리 좋지만은 않았다.
가뜩이나 구석자리로 안내받아 불편한 기분이 들었는데, 옆 테이블에 앉은 산만한 중국인들을 보며 구겨진 얼굴을 펴기 힘겨웠다.
빠르게 나온 음식을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해치웠고, 반정도 먹었을 때 즈음 빠르게 이곳을 떠나고 싶어 take away box에 남은 음식을 담아 밖으로 향했다.
그렇게 허무하게 끝나버린 오전 행사와 식사를 뒤로하고 나는 끝없는 인파를 피해 지난 기억이 좋았던 보타닉가든으로 향했다.
맥도날드의 콜라 슬러쉬와 함께 도착한 보타닉가든은 그 어느 때보다 붐볐다.
나는 그중에서도 가장 한적해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아 앉았고, 조금의 휴식을 취하고자 책을 펼쳤다.
공원에서 보는 책은 내게 특별한 기분을 준다.
마치 아무도 나를 모르는 세계에서 혼자만의 휴식을 갖는 듯한 느낌을 선물해 주곤 한다.
이번에도 비슷한 감정이 들었던 나는, 그 어느 때보다 혼자만의 시간을 깊이 그리고 길게 즐겼다.
그렇게 시간이 좀 흘러 선선한 바람이 뺨을 스치는 듯한 기분이 들 때 즈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지난번 오랫동안 즐기지 못했던 맥쿼리 포인트로 향했다.
공휴일이라 넘치는 사람들을 간신히 가로질러 뷰 포인트가 잘 보이는 언덕에 자리했다.
나는 잠시동안 그 뷰를 즐기며 앞에서 각기 다른 포즈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그러던 와중 계속 많은 인파 속 왔다 갔다 하는 한국인 커플과 자주 눈이 마주쳤었다.
그리고 나선 내가 그 자리를 떠나려던 순간 그 한국인 커플은 내게 와서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다.
(알고 보니 내게 사진을 부탁하고 싶어 계속 왔다 갔다 자리를 옮기셨던 것이었다.)
익숙한 폴라로이드를 건네받곤 가장 잘 나오는 스팟에서 사진을 찍어드리곤, 사진을 보며 좋아하시던 두 분의 미소에 이따금 기분이 좋아져 그곳을 떠나왔다.
하지만 그곳을 떠나기 위해 돌아왔던 길로 자리를 옮기려던 찰나, 내가 들어왔던 길이 막혀있음을 그제야 자각했다.
알고 보니 그 뷰 포인트 옆은 정기적으로(1-2월 내) 야외 시네마를 제공해 주는 스팟이였다.
하버브릿지와 오페라하우스를 하나의 뷰에 담으며 그 앞에서 상영되는 영화를 본다는 것, 정말 낭만 있는 경험이 되지 않겠나!
나는 시간적 여유만 있다면 하루 더 묵으며 영화를 상영하고 싶었지만, 되돌아가 또 다른 회사에서의 여정을 해야 하기에 아쉬운 마음만 가득한 채, 막힌 상영관을 돌아 보타닉 가든을 나왔다.
공원을 나와 나는 오후의 호주의 날 행사를 즐기기 위해 다시 한번 서큘러키로 향했다.
7시 반부터 시작한다는 오페라하우스 앞 공연을 보기 위해 근처로 향했지만, 너무 많은 인파에 도저히 그 근처에 머무를 수 없어 나는 반대편 뷰 포인트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맞은편 뷰 포인트로 향하기 전, 나는 더위를 달래고자 근처 yo-chi에 들렀다.
호주의 유명한 요아정 같은 곳이라 들어 꼭 한 번 가보고 싶었던 터라, 그날만 유독 길었던 그 끝없는 줄에 합류해 내가 먹고 싶은 아이스크림을 가득 담았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만 가득 채운 아이스크림과, 분홍과 파랑의 묘한 조화로움에 빠져 들었던 염색 머리를 한 동양인 캐셔의 브이와 ‘Thank you so much!’와 함께,
나는 또 다른 추억을 가슴속에 담아 큰 웃음과 함께 다시금 그 수많은 인파 속으로 향했다.
많은 사람들 손에 들린 가지각색의 아이스크림을 구경하며 거리를 걷다 보니 어느새 오페라하우스 건너편 뷰 포인트에 도착했다.
이미 시작된 오페라하우스에서의 공연을 커다란 스크린으로 상영하는 것을 구경하며 나는 약 1시간 남짓 남은 불꽃쇼를 하염없이 기다렸다.
해가 지고, 지는 노을과 함께 바뀌는 노래들, 변화하는 조명들, 그리고 오페라하우스를 밝히는 각기 다른 색의 조명들. 그 순간순간들은 내게 멋진 추억을 선사해 주기에 충분했다.
그러다 점점 다리가 저려오기 시작할 때 즈음, 익숙한 Nessun Dorma 가 흘러나와 나는 부리나케 핸드폰을 들었다.
그러자 음악 소리와 함께 터지는 다양한 폭죽들은 그 순간을 마치 영화 속의 한 장면처럼 만들어주었다.
나는 그 순간을 오롯이 즐기고 싶어 핸드폰을 금세 내려놓고 마치 눈앞에서 터지는 듯한 그 불꽃들의 온기를 두 눈으로 담으며 잠시동안 생각에 잠겼었다.
오페라하우스가 보이는 드넓은 바다와 그 위에 펼쳐지는 불꽃을 즐기다 보니 어느새 마지막 곡이 흘러나오기 시작했고, 오페라하우스가 호주 국기로 변하며 피날레 불꽃쇼가 진행됐다.
남은 모든 불꽃이 한꺼번에 터지는 광경을 보며 그 뜨거운 불꽃의 온기가 얼굴에 그대로 전달됐다.
그 온기에 잠시 넋을 놓고 나는 하늘을 하염없이 쳐다봤고, 그렇게 불꽃쇼는 막을 내렸다.
큰 여운이 남았던 마지막 불꽃쇼를 뒤로한 채, 나는 아쉬운 마음에 비록 늦었지만 그 호주의 기억을 남기고자 근처 마켓에서 캥거루가 그려진 호주 모자를 하나 사들고 마지막 밤을 즐기며 숙소를 향해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