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아리 사직서

- 말로써 전하지 못한 진심

by 하연비

저는 알(卵)이었습니다.

누구의 알인지, 무엇의 알인지도 모르는 미지의 알이었습니다.


어떤 존재인지는 모르지만, 그것이 닭의 알이든 타조의 알이든 독수리의 알이든 혹은 상상 속 동물인 용의 알이든 누군가에 의해 타의적으로 깨지기는 싫었습니다.


내가 깨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깨어짐으로써 나라는 존재의 온전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타인의 입에 들어가는 식탁 위의 ‘후라이’라는 존재가 되는 것이 싫었습니다.


오롯이 저 혼자만의 힘으로 스스로 알을 깨고 나오고 싶었습니다. 비록 저의 존재가 자그마한 병아리라는 존재일지라도 말입니다.


알을 깨고 나오는 방법을 그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에 혼자서 고군분투해야만 했습니다.


“지식은 전해줄 수 있지만, 지혜는 전해줄 수 없어. 지혜란 사람들이 스스로 발견하는 거야. 사람들은 삶을 통해 지혜를 체득할 수 있고, 지혜로 인해 행실에 영향을 받기도 하고, 지혜와 더불어 기적 같은 일을 이룰 수 있어. 하지만 그걸 말하고 가르쳐줄 수는 없는 거야.”라는 ‘싯다르타‘ 책 속의 구절처럼 어느 누구도 알려주고 가르쳐 줄 수 없는 거겠죠.


그렇기 때문에 앞뒤로, 좌우로 흔들어보기도 하고 구르기도 해 보고 점프도 해보고 정적인 상태도 유지해 보면서 스스로의 방법을 찾아 헤맸습니다.


언제쯤 알을 깰 수 있을지, 알이 깨어지기는 하는 건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사건의 지평선을 걸어가는 느낌이었지만 끊임없이 여기저기 굴러다니며 노력했었습니다.


저는 혼자만의 힘으로 알을 깨부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야만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알이 부화하는 데까지 얼마큼의 시간이 필요할까?

얼마큼의 시간이 지나야 알을 깨고 나올 수 있을까?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레 깨고 나올 수 있을까?


나는 알을 깨고 나올 수 있을까?

나는 무엇일까?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수많은 물음표 중 어느 것 하나 느낌표로 바꿀 수 없었던 나날들이 지나고 어느 날 문득 알을 깨고 나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게 언제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알이었던 상태에서 느낄 수 없었던 무언가를 느꼈습니다.


닭의 벼슬?

타조의 다리?

독수리의 날개?


저 스스로도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알의 상태에서 느낄 수 없었던 그 무언가가 느껴졌습니다.


알을 깨고 나와보니 제 자신이 너무 오만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알을 혼자 힘으로 깨고 나왔다고 생각했었지만 알이란 본디 혼자의 힘으로 깨고 나올 수는 없는 것이었습니다.


따뜻한 온기의 보살핌 속에서 무르익었을 때 비로소 작은 생명체가 깨어날 수 있는 것이죠.


저를 따뜻하게 품어줬던 많은 분들이 생각났습니다.


“너 지금 잘하고 있어”

“지금처럼 잘 배우면 돼”

“조급해하지 마”


저에게 따뜻한 가르침을 주었던 분들은 하늘 높이 날아다니는 독수리였고, 광활한 대지를 누구보다도 빠르게 달리는 타조였습니다.


멋진 분들이 항상 주위에 있을 거라 생각했었지만 그것은 저의 착각이었습니다. 막상 제 주위엔 날지 못하는 새들로 가득 찼고, 하루하루 사료를 먹으며 비상할 생각이 없는 존재들로 가득했습니다.


장님이 코끼리 만지듯 제가 봤던 것들이 잘못된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알을 갓 깨고 나왔기 때문에 그만큼 식견이 좁은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들을 바라보며 후라이와 다름없는 존재라고 느껴졌습니다. ‘이러려고 알을 깨고 나온 게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알을 깨고 나왔지만 저라는 존재가 아직까지도 어떤지 궁금합니다. 그래서 다시 한번 새로운 세상으로 도전을 해보려고 합니다.


부족한 저를 따뜻하게 보듬어주시고 성장시켜 주셔서 감사합니다. 알을 깨고 나올 수 있게 도와셔서 감사합니다.

작가의 이전글아차차, 글을 잘못 쓰고 있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