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우주를 내려놓은 이유
호주에서 만난 나의 베프, 엘리와의 술자리에서 서로의 결혼 생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중 그녀가 나에게 건넨 말이다. 우주라는 표현이 너무 거창해 보였지만 지난 시간을 돌이켜보니 마냥 부정할 수 없는 말인 것 같았다.
우리는 결혼 12년 만에 이혼을 했다. 흔하디 흔해진 게 이혼이라고 하지만 우리의 이혼은 조금 다르다. 여전히 하루에도 몇 번씩 연락을 주고받으며 일주일 한 번은 시부모님과도 통화를 한다. 주변에서 '브리즈번' 아니라 '할리우드' 냐는 농담을 하기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여전히 '여보'라는 호칭을 바꾸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어쩌다 한때나마 나의 우주였던 여보와 이혼을 하게 된 걸까?
우리가 처음 만난 건 2012년 6월이었다. 독일에서 한국으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우연한 자리에서 마주치게 되었는 데 작은 키를 커버할 정도로 선해 보이는 인상이 꽤나 호감 있게 느껴졌다. 행동파인 내가 먼저 전화를 걸었고 만난 지 일주일 되던 날, 연애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는 내가 만났던 남자들 중 가장 다정한 남자친구였다. 항상 내가 앉을자리를 손으로 털어주었고 여행을 갈 때면 내가 쓸 수건을 따로 챙겨 와 주었다. 예술과는 담을 쌓고 살았던 사람이 날 위해 전시회에 가주었고 정수리에서 흘러내리는 땀을 닦아가며 날 위해 매운 음식도 나누어 먹었다.
연애의 설렘이 익숙함으로 바뀌며 서로에 대해 많은 것들을 알게 되었을 즈음 그가 내게 건넨 말이다. 아들이 아니라서, 예쁘지 않아서 사랑받지 못했던 나를, 내가 여자라서 환하게 웃는 모습이 예뻐서 사랑한다고 말해주었다. 그가 전하는 사랑의 표현들이 익숙하지 않아 나는 늘 코웃음으로 답했다가도 문득 불안한 외로움이 느껴졌다. 그가 내게 보여주는 '사랑'이 내가 그동안 얼마나 불안했고 외로웠는 지를 자각하게 만든 것이다. 그렇게 그를 만나며 나 또한 남들처럼 사랑받고 우리 집이란 공간 안에서 안정적인 가정을 이루고 싶다는 마음이 피어올랐다. 콩깍지가 만들어낸 빈 말이라도 사랑받고 싶었다. 그렇게 이듬해 4월, 우리는 만난 지 300일 만에 모두의 축복을 받으며 결혼을 했다.
사실 결혼에 대한 조건만 두고 보자면 그와의 결혼이 내게 많이 기울어져 있다는 것쯤은 나도 잘 알고 있었다. 나는 미래가 보장되지 않은 '기간제 교사'였고 그는 안정적인 미래가 보장되어 있는 '사장님 아들'이었다. 마치 빛나는 금수저 옆에 보잘것없이 놓여있는 흙수저가 된 것 마냥 그의 화려한 배경이 나를 초라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게다가 남자가 집을 해오니 여자가 그에 맞는 혼수를 해야 된다는 것이 내게는 능력 밖의 일이었다. 이를 알고 있었던 그는 가진 돈을 내게 나누어 주었고 그 덕분에 나는 마음의 빚과 함께 무사히 결혼식을 마칠 수 있었다. 그래서였을 까? 시간이 흘를수록 내 마음에는 꺼내보이고 싶지 않은 자격지심이 점점 더 자라고 있었다. 언제나 자식이 먼저인 시부모님의 사랑에 선을 그었고 사소한 것 하나에도 차이를 앞세워 다투기 시작했다. 하지만 꼬일 대로 꼬여 모든 것들을 마음에 품고 있는 나와는 달리 그는 늘 대수롭지 않은 듯 모든 것들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그렇게 출발점이 다른 싸움은 결론마저 다른 곳에 이르러 기나긴 싸움을 끝낼 유일한 방법이 이혼인 것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치열한 우리의 결혼 생활을 지켜본 이들에게 내가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다. 유순해 보이는 그와 달리 사나워 보이는 내게 포기든, 이해든, 무엇이 되었든 '내가' 하라는 말이었다. 나는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사람이 사람을 내려놓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내가 바랬던 것은 '존경'이었다. 나를 향한 존경이 아니라 그를 향한 존경이었다. 가장으로서 남편으로써 그가 나로부터 존경받길 원했다. 하지만 나는 비바람을 견디며 자립으로 생존해 온 '잡초'였고 그는 예쁜 화분에서 따뜻한 빛을 받고 자란 온 '화초'였다. 애초에 잡초가 기대하는 존경은 화초가 생각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잡초에게는 멀리서 다가오는 먹구름이 폭풍우처럼 보였지만 화초에게는 그저 지나갈 비구름 일 뿐이었다. 그렇게 모든 것들이 달랐기에 화초는 잡초에게 존경받기도, 이해받기도 어려웠던 것이다. 그러다 화초가 화분 밖을 나와 잡초가 사는 황무지에서 뿌리를 내려야 하는 일이 생겼다. 회사 사장님이셨던 아버님이 공장을 정리하시며 난생처음 직장을 구해야 했던 것이다. 나에게는 막막한 일이었지만 그에게는 그럴 수 있는 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조급증은 오로지 나의 몫인 것만 같았다.
누군가는 우물을 파야했다. 내 목이 마르지 않더라도 내게 주어진 '엄마'라는 책임을 위해 우물을 파야만 했다. 그렇게 우물을 파며 나는 그가 우리를 위한 우물의 주인이 되길 바랐다. 가장이니깐, 아이들의 아빠니깐. 마땅히 그래야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바람과는 달리 우물에 물이 가득 차오르도록 그는 익숙하지 않은 일이기에, 잘 모르는 일이기에 뒷걸음질 쳤다. 오래도록 기다렸지만 물러난 발걸음을 앞으로 향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러고도 그저 '모르겠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덕분에 나는 질리도록 '모르겠다'는 말이 싫어졌다. 내가 알지 못하는 일은 내가 모르는 일이 맞다.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내가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지는 나 밖에 모른다. 그건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나만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모른다니. 결국 그 말에 나는 또다시 나서서 우물을 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난번과는 달리 이번엔 그의 것이란 것을 못을 박아둔 채 우물을 파기 시작했다. 뭐라도 좋으니 무엇이든 해보라며 그를 세상 밖으로 떠밀어 보냈다. 그것이 그가 의존해 오던 모든 것들로부터 완전한 독립을 이룰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밝았던 내 바람과는 달리 그 우물 안은 끝없는 암흑만이 존재했고 그곳에서 그는 철저히 길을 잃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가진 빛 마저 잃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끝까지 가보겠노라 고집하는 그를 마냥 지켜볼 수 없었다. 이제 그만 실패를 인정하라며 다그쳤고 그럴수록 그는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렇게 우리는 닿을 수 없는 곳에서 멀어진 거리만큼의 침묵으로 서로에게 숨 막히는 존재가 되어 버렸다. 그리고 우리에게 남아있던 하나의 끈 마저 끊어져 버렸다. 그가 내 손을 놓아버린 것이다.
나는 알고 있었다. 잡초에게 '눈치'는 살아가는 데 가장 필요한 생존 본능과도 같은 것이다. 그러니 아무리 숨기려 해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꺼내 보이고 싶지 않았다. 나만 모르는 척하면, 나만 입 밖으로 꺼내지 않으면 우리는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우리는 괜찮아지지 않았다. 사랑을 느끼게 해 주겠다던 그 말이 무의미 해져 버렸다는 것이 날 무너져 내리게 만들었다. 나는 그를 향해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냈고 그때마다 그는 마치 나를 조롱하듯 빈정거렸다. 서로가 가진 상처의 무게는 부정한 채 또다시 얻을 것 없는 싸움이 시작되었고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곁에 두고도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잠들지 못하는 날들이 늘어갔고 마음의 병은 어떤 약으로도 나아지지 않았다. 채찍질하듯 나를 몰아세우며 정신없이 시간을 흘려보냈지만 그럴수록 내게 사무치는 건 내 걱정뿐이었다. 어쩌다 또 이렇게 사랑받지 못한 존재가 되었는지 나 자신이 안쓰럽고 가엽게 느껴졌다. 그렇게 한동안 나에 대한 연민에 빠져 나를 망가트리고 있을 때쯤 문득 뒤를 돌아보게 되었다. 그곳에는 감당하기 힘든 상처에 짓눌려 위태로워진 아이들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의 부모가 내게 했듯 주체하지 못하는 감정을 휘둘러 아이들을 불안하고 외롭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를 사랑했고 그와 결혼을 한 것은 오로지 나의 선택이었다. 이 선택으로 인해 나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아이들의 엄마가 될 수 있었다. 그런데 어리석게도 이런 아이들을 두고도 나는 마치 한심한 엄마가 되기를 선택한 것만 같았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렇게 나는 무너진 나를 일으켜 그를 내려놓기로 결심했다.
며칠 간의 침묵을 깨고 전화를 걸었던 날, 그는 또 다른 싸움의 시작이라 여기는 듯했다. 하지만 나는 그에게 진심을 다해 이혼을 부탁했다. 더 이상 아이들에게 죄짓지 말고 이제라도 좋은 엄마, 좋은 아빠가 되어주자고. 그러니 이 싸움을 멈추자고 간곡히 부탁했다. 이 세상에서 나만큼 아이들을 사랑하는 또 다른 한 사람이란 것을 알기에 그에게서 아이들에게서 서로의 존재를 지켜주고 싶었다. 앞으로도 큰 아이가 얼마나 예쁜지, 작은 아이가 얼마나 귀여운 지, 엄마, 아빠로서 모든 것들을 함께 나누고 싶었다. 그제야 우리는 서로를 향한 미움을 내려둔 채 마음을 터놓을 수 있었다. 서로의 대한 기대가 실망으로 변했음을 알게 되었고 이제는 서로가 가려는 길이 다르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렇게 우리가 함께 내린 결론은 이별이 아닌 이혼이었다. 법적인 혼인 관계를 정리하는 것 일 뿐 여전히 아이들의 엄마, 아빠로서 최선을 다하겠다는 마음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렇게 나는 나의 우주였던 여보와 이혼을 하게 되었다.
얼마 전 나눈 영상통화에서 여전히 눈치가 탑재되어 있지 않은 아빠를 타박하며 아옹이가 '엄마는 왜 아빠랑 결혼했어요?'라고 묻는다. 그럼 나는 아빠 얼굴 하나 보고 결혼했던 거라며 천연덕스럽게 대답한다. 그리고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더라도 엄마는 아빠랑 결혼할 거라고 답해준다. 그래야 너도 만나고 아하도 만날 수 있으니 백 번을 물어도 엄마는 그럴 거라고 덧붙인다. 우습게도 결혼 생활 중 누군가 다시 태어나면 지금의 남편과 다시 결혼할 거냐 물었을 때 내 대답은 언제나 '차라리 다시 태어나지 않겠다'였다. 농담처럼 들렸겠지만 그때는 모든 것들이 버거워 또다시 겪어낼 자신이 없다는 진담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난 뒤 진정한 가치를 알 수 있는 것처럼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그 시절이라는 것을 알기에 이제는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코 끝이 찡해진다. 나는 더 이상 그를 미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가 좋은 남자친구였고, 좋은 남편이었으며, 좋은 아빠 임에 감사한다. 그를 만나서 많은 추억을 쌓을 수 있었고 그 덕분에 행복했고 많이 웃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남의 편이 아닌 진정한 내 편이 되어주고 있음에 감사한다. 고마웠어. 나의 우주였던 여보,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