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A의 양대 산맥, 그 사이 김치 킴
올해 열두 살이 된 아옹이는 2년 전 온 브리즈번에서 초등학교 마지막 학년을 보내고 있다. 한국이었다면 한창 사춘기가 시작될 나이인데 아직도 친구들에 관한 이야기를 엄마와 나누고 싶어 하는 정 많은 딸이다. 이곳으로 오기 전에는 영어를 거의 하지 못했고 혹여 아는 단어가 있더라도 영어로 말을 한다는 것 자체를 쑥스러워했었다. 자기 할 말은 똑 부러지게 하는 아이인 데 괜히 말도 통하는 않은 곳에서 고생시키는 건 아닌 가 걱정이 됐었다. 하지만 아이가 가진 힘을 믿었기에 분명 잘 해낼 수 있으리라는 마음으로 유학을 강행했다.
이곳으로 와 처음 학교에 갔던 날, 수업이 끝나고 나오는 아이에게 설레는 마음으로 하루가 어땠는지 물었다. 궁금한 게 너무 많은 엄마인데 아이는 그저 '괜찮았어요'라고 답했다. 정말 딱 저렇게만 대답하는 아이가 답답해 요리조리 돌려서 물어봤지만 새롭게 나오는 대답은 없었다. 하루 종일 말도 통하지 않는 곳에서 힘들었을 텐데 잘 버티고 와준 게 대견하고 고마워 고생했다는 말로 아이를 격렬히 환대해 주었다. 그리고 매일 정성을 담아 먹는 재미라도 있길 바라며 심혈을 기울여 도시락을 준비했다. 열흘 정도 지났을 무렵 아이는 어떤 여자아이가 자기를 꽤나 잘 챙겨주는 데 도통 그 아이의 이름을 알아들을 수 없다고 말했다.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아 이름의 철자가 어떻게 되냐 물으니 그것도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의리의 한국인이기에 은혜를 입었으면 갚아줘야 하는 게 인지상정인데 은인을 앞에 두고도 이름을 모른다는 게 황당했지만 이내 그 아이가 '샬롯'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까맣고 긴 곱슬머리를 가진 샬롯은 아옹이가 옆자리에 앉는 순간부터 알아듣든지 말든지 끝없이 말을 걸었다고 했다. 그러다 행여 못 알아듣겠다는 기색이 보이면 천천히 설명해 주었고 그 덕에 아옹이는 조금씩 말문을 열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마 샬롯은 대답을 안 하고는 못 배길 만큼 말을 걸었을 게 분명하다. 이유야 어찌 됐든 샬롯은 아옹이를 데리고 다니며 학교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가르쳐주었고 만날 때와 헤어질 때 포옹으로 인사를 해야 한다는 것도 알려주었다. 쑥스러움이 많은 아옹이가 익숙하게 샬롯과 포옹하는 장면을 보고 있자니 엄마로서는 그저 날개 없는 천사들의 포옹과도 같아 보였다. 게다가 샬롯은 꽤나 엉뚱하면서도 장난기가 가득해 주변을 웃게 만드는 재주가 있는 데 예를 들어, 학교 주변을 돌아다니는 닭에게 직설적 이게도 '너겟'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고 머리 위에 솟아 오른 잔머리는 마치 또 다른 자아인 것 마냥 대화를 나누었다. 아직 어려서 그러는 건가 싶다가도 브루노 마르스의 "Die With A Smile"을 열정적으로 부르는 모습을 보니 그냥 평범하지 않은 애구나 싶어 웃음이 나왔다.
"엄마, 재도 우리 반인데 이름이 '에바'예요."
아옹이는 5학년이고 아하는 1학년이었던 때, 함께 아하를 교실까지 데려다주곤 했는 데 어느 날 파란 눈에 금발 머리한 예쁘장한 여자 아이가 우리 옆을 지나갔다. 나도 모르게 '대박'이란 말을 내뱉었고 그걸 들은 아옹이가 누구인 지 알려주었다. 에바는 외모 만으로도 모두의 시선을 사로잡을 만큼 매력적인데 무표정을 하고 있어 꽤나 도도하고 차가워 보였다. 어느 날 아옹이는 샬롯이 학교에 오지 않아 심심했는 데 오히려 에바와 친해지게 됐다며 들뜬 표정으로 학교에서 돌아왔다. 에바도 아옹이와 마찬가지로 작고 귀여운 것들을 좋아하는 데 아이들은 본인들만의 책을 만들기 시작했는 데 아옹이가 그림을 그리면 에바가 글을 채워 넣는다고 했다. 손바닥만 한 종이를 가지고도 쫑알거리는 아이들의 모습이 마냥 예뻐 보였다. 아옹이가 처음 슬립 오버에 초대하고 싶어 했던 친구도 에바였다. 에바 엄마인 '바네사'와는 교실을 오가며 인사를 주고받게 되었는데 이런 이야기를 전하자 흔쾌히 우리의 초대에 응해 주었다. 첫 슬립 오버를 하던 날, 한국의 문화를 알려주면 좋을 것 같아 다 함께 깍두기를 만들고 김밥을 싸서 나눠먹었는데 깍두기 만들기 체험은 그날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역시 먹는 걸로 장난을 치면 안 된다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특히 '무'가 비싼 여기서는 더더욱..
학교에서 아이가 인종차별을 당하지 않냐는 질문을 가끔 듣게 되는 데 인종 차별이라기보다는 인종이 달라서 겪게 되는 몇 가지 에피소드들이 있었다. 한때 아이들 사이에서 이름의 성으로 별명 짓기를 했는 데 샬롯은 '산토스'라서 '멘토스', 클로이는 '스켈슨'이라 '스켈레톤', 아옹이는 '킴'이라 '김치'가 되었다고 했다. 한국인은 다 '김치'인 거냐고 콧웃음 쳤지만 생각해 보니 아이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던 것 같아 오히려 귀엽게 느껴졌다. 또 다른 일로는 해마다 학교에서는 사진 촬영을 하는 데 앨범 속 자신의 모습을 본 아옹이는 “I’m so black!”이라며 친구들에게 소리쳤다. 그런데 친구 중 한 명이 "No, you are yellow!"라고 말해 모두가 웃었다고 했다. 이야기를 들으며 "뭐야? 인종차별이잖아" 하며 발끈했는 데 곧 아이에게서 "엄마, 우리 반에 진짜 흑인 친구 있잖아요."라는 말을 듣는 순간 합죽이가 되었다. 그래. 그에 비하면 우리는 까맣지도 않고 하얗지도 않으니 노랗다는 말이 틀린 건 아니지. 사실 이런 일을 두고 인종 차별이라고 생각하는 건 괜한 자격지심 같다. 어디까지나 한국이란 나라가 가진 이미지와 다른 인종에 대한 인식 차이 정도로 여기면 일이다. 오히려 한 때 열풍이던 "K-pop demon hunters"의 덕을 본 일도 있었다. 아옹이가 에바의 러브콜을 받아 학교 장기자랑 함께 나가 노래를 부르기로 했다는 것이다. 앞에 나서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아이의 성향을 알기에 소식을 전해 들은 모든 가족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게다가 많은 참가팀들이 영화에 나왔던 노래들을 선곡했고 아옹이네 팀 역시 'Take down'을 부르기로 정했다는 것이다. 연습을 하며 아이들은 즐거워했고 한국어 부분은 아옹이가 열심히 아이들의 발음을 교정해 주었다. 아옹이가 팀에 있어 결선까지는 무사통과라 장담했지만 하필 마이크 음향 사고가 나는 바람에 결선의 문턱을 넘지는 못했다. 차세대 글로벌 걸그룹의 등장이었건만 아쉬운 결말이었다.
아이가 이렇게 학교와 영어에 빨리 친숙해질 수 있었던 것은 분명 샬롯과 에바 덕분이다. 그런데 문제는 예전에 꽤나 친했던 샬롯과 에바가 학년이 올라가면서부터 성향이 바뀌어 이제는 친하지도 그렇다고 싫어하지도 않는 사이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교실 내에서 '샬롯 파'와 '에바 파'로 여자 아이들이 나뉘어 있는 데 그 중심에 중립을 고수하는 '김치 킴'이 있다는 것이다. 국적과 나이를 불문하고 같은 여자로서 듣기만 해도 스트레스가 피어오르는 '여자 셋 관계'라니. 한 번은 샬롯과 에바를 동시에 슬립 오버 초대를 한 적이 있었는 데 둘 사이가 좋지 않다는 걸 미처 몰라 따로 노는 상황이 생겼고 그 상황을 보고 있자니 엄마로서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이런 경우에는 정말 '모' 아니면 '도'로 끝이 난다. 친구가 되거나, 적이 되거나.
나에게도 비슷한 상황이 있었다. 중학교 시절 우리 반에는 소위 잘 나가는 '깡년'들이 있었다. 참고로 서울에서는 '일진'이지만 부산에서는 '깡년'이라고 불렀다. 진정한 부산의 '깡'이 느껴지는 단어다. 그중 리더인 격 'A'가 유난히 키 작은 나를 잘 챙겨 주었는 데 그것이 'B'의 시샘을 사고 있다는 걸 미처 알지 못했다. 학년이 바뀌고 새 학기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B'가 깡년 무리들을 이끈 채 운동장에서 놀고 있는 나를 찾아와 수업이 끝나거든 교실에 남아 있으라고 했다. 천진난만한 나는 그대로 교실에 남아 있었고 곧장 화장실로 끌려갔다. 화장실 한 칸으로 나를 몰아넣더니 머리채가 잡아 흔들기 시작했고 주먹과 발길질이 더해졌다. 이유는 없어 보였다. 있다고 하더라도 아무도 나에게 알려주지 않았다. 그중에는 전혀 친분이 없는 아이들도 있었다. 나는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고 아프다는 소리 한 번 내지 않은 채 그대로 버티고 있었다. 어떻게 끝이 났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교문 밖을 나오다 마주친 담임 선생님의 표정을 보고 내 상태가 엉망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제야 치마에 난 발자국을 털었고 머리를 쓸어 넘겼다. 어떻게 된 일이냐 묻는 선생님께 넘어졌다고 둘러대고서는 곧장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퉁퉁 부어 오른 머리를 베개에 파묻은 채 소리도 내지 못하고 울었다. 다음 날 학교에 도착해 보니 나를 벌레 보듯 하는 아이들의 시선을 통해 내가 '전교 왕따'가 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의자에는 우유가 쏟아져 있었고 사물함의 책은 찢어져 있거나 빨간 볼펜으로 잔뜩 낙서가 돼있었다. 지옥 같은 점심시간에는 피할 곳이 없어 수군거리는 비아냥을 참아가며 꿋꿋이 자리에 앉아서 밥을 먹었고 조별 수업에서는 아무도 나와 짝이 되지 않으려 했다. 정말 가고 싶지 않은 수학여행이었지만 갈 수밖에 없었고 거기서도 괴롭힘은 계속되었다. 아이들은 방 가운데 나를 앉히더니 빙 둘러앉아 비난과 조롱, 욕을 하기 시작했다. 생각해 보면 그 시절에는 지금처럼 미디어가 흔하지도 않았건만 겨우 중학교 2학년들이 어디서 그런 걸 보고 배운 건지.. 이 정도면 '선성설' 보다는 '악성설'이 더 맞는 것 같다. 그렇게 꼬박 1년을 버텼고 학년이 끝날 무렵 어쩔 수 없이 나와 조별 과제를 같이 하던 아이가 물었다.
그러게. 나도 이유를 알았다면 좋았을 텐데. 그랬다면 조금은 덜 억울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 이유를 알게 되더라도 나는 그저 참았을 것이다. 그때 나에게는 아무런 힘도, 내 편이 되어줄 사람도 없었다. 매사에 화로 시작해서 화로 끝나는 폭군과도 같은 아빠, 말 끝에 가시가 달려 몸과 마음에 상처를 주는 엄마, 그리고 사춘기를 겪고 있던 가깝고도 먼 언니. 그 누구에게도 비밀을 털어놓을 수 없었다. 아이들의 괴롭힘 보다 뭐가 모자라 그런 일을 당하느냐는 엄마, 아빠의 호통이 더 두려웠다. 어차피 나만 조용히 하면 될 일이니 그저 버티는 게 최선이라 생각했다. 매일 밤 학교에 가지 않길 바랐고 아침이 되면 학교가 빨리 끝나기를 바랐다.
20년이 넘도록 절친했던 친구에게서 몇 달 전 마지막으로 받은 메시지에 들어있던 말이다. 그 친구가 인터넷 커뮤니티에 쓴 나에 대한 험담이 이렇게나 멀리 떨어져 있는 내게 돌고 돌아 전해졌다. 며칠을 고민하다 그 친구에게 왜 그랬냐고 물었다. 내가 기대했던 대답은 "어? 미안!" 정도였는데 그 친구는 자신의 민망함을 덮기 위해서인지 사과는커녕 비난과 조롱을 섞은 장문의 메시지를 보낸 뒤 연락을 끊어 버렸다. 그 친구의 말처럼 내게는 왕따가 될만한 이유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 사람을 상대로 집단이 가하는 폭력이 조롱거리가 되거나 정당화될 수 없다. 그건 중학교 2학년이었던 그때나 마흔이 넘은 지금에도 변하지 않아야 할 관념이다. 서로를 잘 안다고 생각해 그동안 내가 가진 모든 상처들을 털어놓았건만 그중 가장 아프고 아픈 것을 끄집어내 다시 상처가 되길 바라는 그 마음이 안타까웠다. 어쩌면 그 친구의 그 말이 그동안 나를 바라봐 온 진심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인연이 끝난 것이야 말로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한국을 떠나고 나서야 깨달았다. 내가 지켜야 할 인연과 떠나보내야 할 인연이 무엇 인지.
친구라는 것이 이렇게나 가깝고도 먼 사이 될 수 있다는 걸, 오늘의 친구가 내일의 적이 될 수 있다는 걸. 아직은 모르는 아이에게 여자들 간의 우정에서 중간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어떻게 가르쳐 줘야 할지 몰라 막막했다. 그래서 먼저 아이가 바라보는 친구들은 어떤 지를 물었다. 그랬더니 샬롯이 그러했듯, 에바가 그러했듯 아옹이는 친구들이 가진 좋은 점들을 먼저 바라보고 있었고 다름에 있어서는 친구이기에 받아들이고 있었다. 최근에서야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아이가 적응하기 힘들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엄마가 걱정을 할까 봐 말을 하지 못했다는 아이의 말에 가슴이 저려왔다. 이내 아이는 그래도 친구들이 있어 괜찮았다는 말로 나를 위로했다. 말도 통하지 않는 낯선 이방인에게 먼저 말을 걸고 음식을 나눠먹자 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텐데 샬롯과 에바가 선입견 없이 먼저 다가와 주었기에 아이는 친구로부터 '친구'를 배우고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엄마의 도시락 보다 친구들의 포옹이 아이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 준 것 같았다.
비록 중학교 2학년이었던 그때 나에게는 그런 친구가 없었지만 마흔을 넘긴 지금 나에게는 샬롯과 에바 같은 친구들이 있다. 내가 간다고 하면 언제나 반겨줄 친구들이, 지금도 이 글을 읽으며 나를 응원해 주는 고마운 친구들이 내게도 있다. 인생에서 진정한 친구가 세 명만 있어도 성공한 삶이라는 데 나에게 그보다 더 많은 친구들이 있으니 어쩌면 이미 꽤나 성공한 삶 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누구보다 나를 사랑해 주는 가족들이 있고 그날을 견뎌준 내게 내 잘못이 아니었다고 말해줄 지금의 내가 있다.
어느 날 아옹이가 물었다. "엄마, 다음 학교에서도 샬롯이나 에바 같은 친구들을 만날 수 있을까요?"
그 말을 들은 내가 답했다. "그러게. 그러면 좋겠는 데. 그만큼 좋은 친구들을 또 만날 수 있을까?"
사람의 인연은 알 수 없기에 멀리서도 만나게 되고 가까이서도 헤어지게 된다. 그리고 그 인연은 행운이 되기로 하고 불운되기도 한다. 앞으로의 날들에서 아이가 샬롯이나 에바 같은 친구를 또 만날 수 있다면 그건 아이에게 찾아온 또 다른 행운 일 것이다. 그리고 그 행운을 지켜내는 것은 온전히 아이의 몫이라는 것을 아이는 배우게 될 것이다. 내년이면 셋 다 다른 학교로 가게 된다는 사실이 벌써 아옹이를 눈물짓게 만들고 있다. 그래도 우리 집 앞 맥도날드에서 주기적으로 만날 계획을 미리 세웠다고 하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날 만큼은 이 엄마가 아이스크림을 쏠 테니 마음껏 먹으렴! 하나의 50센트인 건 안 비밀. 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