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 목표는 터닝 포인트

오늘도 해내버리기 위한 나만의 목표 정하기

by 헤일릴리

일주일에 두 번 화요일과 목요일 아침에 달리기를 한다.


아이들과 함께 학교까지 걷고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간 다음 10분 달리기 / 2분 쉬기를 3번 반복한다. 오늘의 기록은 달리기 평균 페이스는 6분 42초, 거리는 5.28Km. 시작한 지 9개월 정도 되었는 데 이제는 5Km 달리기가 제법 익숙해진 듯하다.


요즘 호주는 자카란다 시즌


운동이라고는 태생부터 거리가 멀었다. 100m 달리기 기록은 기억조차 나지 않을 만큼 형편없었고 계주 주자 같은 건 당연히 한 번도 뽑혀본 적이 없다. 그래도 나름 노력은 했었다. 광란의 줌바는 여러 사람 앞에서 동작이 틀리는 게 신경 쓰여 친목만 다지다 그만뒀고, 볼링은 풀세트를 갖추고도 손발이 머리를 따라오지 못해 '당근'과 함께 결별을 맞이하였다. 이렇게나 운동에는 소질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음식에 대한 박애주의를 포기할 수 없기에 건강한 돼지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을 가지고 있다.


호주 생활이 안정기에 접어들며 내 뱃살들도 완벽하게 자리를 잡았다. 한국에서는 비싸 내 돈 주고선 못 사 먹었던 과일을 종류별로 사다 두고 저녁 찬거리가 없을 때면 집 앞 마트로 가 소고기 스테이크 한 덩이를 집어온다. 여기까지는 괜찮아 보이겠지만 문제는 '맥주'다. 만원에 4캔이 아니라서 쉽게 살 수 없기에 결단력 있게 한 방에 박스로 사다 둔다. 고로 맥주는 언제나 준비되어 있다. '육퇴 = 맥주'는 부모라면 누구나 공감할 'E=mc2'와 같은 원리라 생각한다. 굳이 풀이하자면 육퇴를 해야 맥주를 마실 수 있고, 맥주는 애가 없어야 맛있다는 말로 해석될 수 있다. 게다가 호주에서는 수거업체에 빈 깡통이나 종이팩, 유리병을 가져가면 '1캔 당 10센트'를 받을 수 있는 데 나는 이 돈을 아이들에게 똑같이 나눠준다. 덕분에 아이들은 빈 상자에 쌓여가는 맥주캔을 보며 흐뭇해한다.

앞으로 10년은 더 육아를 해야 하고 그 기간 동안 마셔야 할 맥주가 아직 많이 남아있기에 뭐라도 다시 해보자는 마음에 'Cardio Tennis'를 신청했다. 그냥 테니스도 아니고 '유산소 테니스'라니 운동이 안될래야 안될 수 없을 리라 생각했다. 게다가 첫 수업은 무료란다. 대한민국 아줌마에게 공짜는 선택이 아닌 필수불가결한 존재다. 그러니 가봐야지!


YES!! I CAN DO IT!!!


수업에 가보니 나만 신입이란다. 확신의 'ENTJ'이건만 이미 구성된 집단의 '뉴페이스'가 되면 'E'가 아닌 'i'가 된다. 그것도 대문자 'I'가 아닌 소문자 'i'. 눈치껏 코치가 시키는 대로 공을 쫓아가보지만 헐떡 거리는 숨과 조준력이 전혀 없는 공을 보며 '이 길도 내 길이 아닌가' 싶었다. 그래도 일단 서브까지는 넣어 보자는 마음으로 수강료를 납부했다. 그런데 연속 3주 동안 결강이 되는 걸 보며 세상 모든 일에는 다 이유가 있는 거라며 수업료를 환불받았다. 그렇다고 울퉁불퉁 근육오빠, 언니들 사이에서 나약한 동양 아줌마 캐릭터로 각인되고 싶진 않았기에 헬스장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고민한 끝에 '달리기'로 결심했다.


달리기 시작한 건 올해 초부터다. 비록 '작심삼일'이 될지라도 새 해맞이에 기본 옵션인 목표 하나쯤은 세우는 게 국룰이므로 나는 달리기로 정했다. 브리즈번 1월은 여름으로 최고 기온이 평균 30 °C인데 햇빛이 강해 따갑기는 해도 공기가 한국만큼 습하지는 않다. 아무래도 곳곳에 즐비한 공원들과 그 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 아름드리나무들이 여름의 더운 열기를 식혀주는 듯하다. 6월에 잠깐 다녀온 한국이 유난히 덥게 느껴졌던 건 아무래도 '지열' 때문인 것 같았다. 빌딩 사이로 발아래 아스팔트가 모든 여름의 열기를 품고 있어 에어컨 없이는 숨쉬기가 어려웠다. 겨우 1년 6개월 호주 공기 좀 맡아봤다고 이렇게나 까탈스러워지다니. 이대로 가다가는 케냐에서 '하쿠나마타타'를 외치겠다는 나의 버킷리스트는 수정이 필요할 듯하다.


혼자가 좋을 나이


우리 집 근처에는 시냇가를 따라 만들어진 공원이 있는 데 '달리기'나 '자전거' 전용 도로가 마련되어 있어 운동화를 신고 나가기만 하면 달릴 수 있다. 혼자서 달리는 것보다 '앱'의 도움을 받는 게 좋을 것 같아 초보자용 8주, '30분 달리기 도전' 프로그램을 선택했다. 매일 할 수는 없지만 일주일에 2번은 해보리라 마음먹었다. 첫날 1분 달리기, 2분 쉬기를 4회 반복했는 데 내 생애 가장 긴 1분과 가장 짧은 2분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남들은 달리는 동안에는 생각이 없어진다고 하던데 내 머릿속에는 '이 길도 내 길이 아닌 건가?'라는 생각이 가득했다. 그런데 고통스럽기는 해도 겨우 '1분 달리기'에서 포기한다는 게 자존심 상했다. 그렇게 다음 날에는 횟수가 늘어갔고 다음 주에는 시간이 늘어갔다. 달릴수록 내 몸이 적응돼 가는 것이 느껴졌고 내가 나에게 주는 고통이라 할지라도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오히려 성취감과 동시에 '오늘도 살았다'는 안도가 느껴졌다. 그렇게 절대 할 수 없으리라 생각했던 '30분 연속 달리기'를 6개월 만에 성공했다. 나는 할 수 있었다. 다만 그 이후 '30분 연속 달리기'에 다시 도전하지는 않는다. 내 인생 최고 기록은 1번이면 족하다는 게 타당한 이유다.


초보자 프로그램을 끝낸 후 '매일 30분 달리기'를 꾸준히 이어하고 있는 데 프로그램 구성은 컨디션에 따라 나쁨 5분씩 6번, 보통 10분씩 3번, 좋음 15분 2번, 최상 30분으로 나뉘어 있다. 설정을 누르기 전, 아주 잠깐 '보통'과 '좋음' 사이를 고민하곤 하는 데 언제나 내 선택은 '보통'이다. 잘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달리려고 하는 거니 '보통'으로도 충분하다. 첫 번째 달리기가 시작되고 5분에 접어들면 '아~ 오늘은 안 되겠네'라는 생각이 든다. 겨우 5분인데 이미 500분은 뛴 것 같은 기분인 데다가 괜스레 골반도 좀 아픈 것 같다. 몸과 마음이 이러니 남은 25분을 더 뛴다는 건 무리다. 그러다 생각한다.


'터닝 포인트까지만 가야지'


나만의 터닝 포인트


산을 오르는 사람은 정상을 올려다보고 간다. 정상으로 향하는 길은 험하기도 하고 완만하기도 하다. 그래서 정상에 오른 사람 중 어떤 이는 '이 정도 껌이지' 하고, 어떤 이는 '죽다 살았네' 한다. 모두가 정상을 보고 나섰지만 길이 다르고 방법이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누구도 포기하지 않고 올랐다는 것이다. 달리기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정해둔 목표가 '5km'라면 어떤 이는 오르막을, 어떤 이는 평지를, 어떤 이는 내리막을 선택하게 된다. 그렇게 달리고 나면 누가 잘하고 못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끝까지 달렸다는 사실 하나가 중요한 것이다.


그런데 나의 목표는 '완주'가 아니다. 오늘도 달리기 전 딱 '터닝 포인트'까지만 가기로 마음먹는다. 그러고 나면 30분에 대한 부담이 사라지고 달려야 할 거리도 마치 반으로 줄어든 것 같다. 매번 같은 곳에서 달리기에 나만의 '터닝 포인트'가 정해져 있다. 2번째 달리기가 끝날 무렵이면 그곳에 도착하게 되는 데 주어진 2분의 쉬는 시간 동안 걸으며 생각한다.


'계속 달릴 것인가? 멈출 것인가?'


이미 목표한 바를 이루었으니 멈춰도 괜찮다. 기록이 중요한 것도 아니고 속도가 중요한 것도 아니었으니 더 바랄 것도 없다. 하지만 중요한 건 달려온 거리만큼 되돌아가야 집에 도착할 수 있다. 어차피 완주는 하기 싫어도 하게 되어있다. 그럼 이제 어떻게 가느냐를 선택해야 한다. 지금처럼 뛰어도 되고 걸어도 되고 무릎만 따라준다면 기어도 된다. 그게 어떤 방법이든 얼마가 걸리든. 그럼 나는 가는 김에 다시 달리기 시작한다. '터닝포인트'까지만 가겠다는 건 스스로에게 거는 일종의 최면 같은 것이다. '꼭 끝까지 안 해도 돼~', '오늘은 걸어도 돼' 이런 생각들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지만, 그까지 갔는 데 걸어갈 리 없다는 걸 이미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러니 얕은 수로 나를 속이고 그 보다 더한 것을 해냈다며 스스로를 추켜세우는 것이다. 그럼 어때! 누가 보는 것도 아닌데!


막판 스퍼트가 날리 없는 오.르.막


그런데 하필 마지막 달리기 구간은 오르막이다. 가파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현저히 걸음이 무거워진다. 게다가 날파리들이 구름처럼 몰려있는 곳도 지나야 하는 데 그 녀석들이 콧구멍 안으로 들어올까 봐 최대한 콧바람을 일으키며 달려야 한다. 간혹 땀으로 범벅이 된 얼굴에 무임승차한 녀석들이 있는 데 하수구에서 최후를 맞이하는 것으로 대가를 치르게 한다. 그러다 세 분의 호주 할아버지가 앉아 계시는 곳을 지날 때면 나는 항상 '굿모닝'하고 먼저 인사를 건넨다. 그러면 할아버지들은 더없이 밝은 미소로 합창하듯 '모닝!' 하며 화답을 해주시는 데 마치 '내가 제일 잘 나가'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마지막 달리기의 절반이 지나면 곧 내리막으로 접어든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내리막이라는 현실을 마주하게 되면 오르막에서 늦어졌던 속도를 만회라도 하듯 걸음이 가벼워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내리막 끝에 닿아있는 횡단보도가 마치 화려한 결승선처럼 보이는 데 ‘앱’에서 들려오는 ‘띠, 띠, 띠, 띠, 띠’라는 전자음과 함께 오늘의 달리기가 종료된다. 양팔을 벌려 최대한 많은 공기를 들이켜고 양팔을 모으며 숨을 내뱉을 때 생각한다. 오늘도 해내버렸다.


오운완 인증샷


'왜 그렇게 힘들게 사노?'


누군가 나에게 말했다. 쉽지 않은 길만 골라가는 내가 마음 씌어 애정을 담아 건넨 말이다. 달리고 있을 때면 이 말이 떠오른다. 그러면 나는 스스로에게 답을 한다. '여기서 포기할 내가 아니지!' 내 인생 어느 것 하나 쉽게 얻은 것은 없었다. '경력'이든 '돈'이든 심지어 아이들을 얻는 것 또한 젖 먹던 힘까지 끌어다 써야 했기 때문이다. 힘들지 않은 삶이란 없다. 사는 건 원래 힘들 수 밖에 없다. 그러니 '최고'가 되기 위해 사는 게 아니라 '최선'을 다하는 게 내가 사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스스로 '최선'이라 여길 수 있다면, 나는 나를 위해 '최선'을 다한 것이다. ‘최선’은 남을 위해 하는 게 아니라 나를 위해 하는 것이니 그것이 절반의 목표라도 괜찮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을 떠올려보면 시작한 것만으로도 이미 50%는 이룬 셈이고 터닝 포인트까지 갔으니 100%를 꽉 채운 셈이다. 그러다 목표치를 뛰어넘는 '완주'까지 해버렸다면 그것은 200%의 결과를 이루어낸 것이나 다름없다. 모두가 '완벽주의'를 향해 달려갈 필요는 없다. 우리에게 중요한 건 완벽한 숫자가 아니고 온 힘을 다해 마주한 지금의 결과가 '최선'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인생이 '완주'라는 목표를 이루어 낼 수 있을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특히나 그 '완주'가 나이라면 더욱더 알 수 없다. 그러니 완주에 대한 부담감을 내려놓고 절반이라는 목표를 향해 최선을 다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혹여 돌아서는 발걸음에 아직 뛸 힘이 남아 있다면 그때는 지금처럼 다시 한번 더 달려가면 된다. 같은 길 위에서 미처 보지 못했던 다른 풍경들을 만끽하며 나만의 속도로 가면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하루하루를 쌓아가다 보면 화려하게 빛나진 않더라도 나만의 빛을 낼 수 있는 날이 오리라. 그리고 그 빛이 최선을 다해 빛을 뿜어내고 있음을 알 수 있으리라.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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