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에서 '요양 보호사' 자격증 따기
노란 머리에 파란 눈을 하고 있다 한들 사람 사는 건 다 똑같으니 그리 쫄 필요가 없었다는 생각마저 들게 되었다. 그렇게 배짱이 두둑해질 때쯤 너무 잘 먹고 잘 노는 것이 그간 팔자에 없던 일이란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내 뭐라도 해야 되는 거 아닌 가 하는 초조함이 일었다. 그렇게 시작하게 된 것이 'Aged Care Worker', 한글로는 '요양 보호사' 자격증 따기였다.
자격증 과정은 이론과 실습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모든 과정은 당연히 '영어'로 진행된다. 내 영어 실력이 한참 부족하다는 것쯤은 잘 알고 있지만 쏟아져 나오는 AI번역기를 빽 삼아 과감히 등록을 신청 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온라인 강의를 들으며 방대한 양의 리포트를 제출해야 하는데 공부는 정말 나랑 안 맞다는 다며 매주 고개를 도리질 하였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수업 속 전문 용어들이 익숙해졌고 원리 원칙을 중요하게 여기는 나라인 만큼 익혀야 할 매뉴얼도 간단해 보였다. 그저 첫째도 둘째도 안전우선 이었다. 이론이 끝날 무렵 실습을 시작해야 했기에 학교와 연계된 곳에 가능 여부를 문의를 하였다. 하지만 이미 인원이 마감된 상태라 불가하다는 답변을 받게 되어 부랴부랴 검색된 지도에 표시된 요양원들에 메일을 보내고 또 보냈지만 오라는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 그러다 동네 교회에서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취업 프로그램이 있다는 것이 불현듯 생각났다. 앞뒤 잴 것도 없이 무작정 찾아가 담당자를 붙잡고 제발 나 좀 도와달라고 사정을 토로해냈다. 큰 눈을 껌벅이며 내 말을 침착하게 주던 '팀'은 그 자리에서 지인 찬스를 발휘해 단박에 내 실습처를 구해냈다. 이방인의 이메일보다 지인의 전화 한 통이 더 잘 먹히는 걸 보니 역시나 여기도 인간 세상이었다. 고맙다고 연신 감사 인사를 하는 내게 팀은 '하나님이 도와주시는 거야'라고 대답했다. 내게는 마치 그가 하나님처럼 느껴졌다.
실습할 곳은 집에서 5분 정도 거리에 떨어진 교회 재단의 요양원이었다. 4주간의 실습 중 처음으로 배정받은 곳은 '치매'병동이었다. 요양 보호사를 준비하며 가장 걱정스러웠던 것 중 하나가 '과연 내가 그분들의 기저귀를 갈아 줄 수 있을 까?'였다. 애 둘을 키우며 무수히 많은 기저귀를 갈아 냈지만 다 큰 성인의 기저귀를 갈아야 한다는 것이 선뜻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대한민국 아줌마에게 불가능이란 없는 법! 20년 만에 다시 달게 된 학생이란 이름표를 가슴에 고쳐 달며 어떻게든 하리라는 심정으로 치매 병동을 찾았다. 그곳에서 처음 만난 환자는 '제임스'였다. 아직 정적만이 흐르는 이른 아침이었지만 어쩐지 그의 방에서는 연신 경고음이 울려댔다. 그 소리에 내가 안절부절못하고 있으니 나의 사수가 된 '뎁'이 별 일 아니라는 듯 느린 걸음으로 그의 방으로 들어갔다. 뎁을 따라 들어가 본 방 안에는 앙상한 다리를 드러낸 채 기저귀를 벗어던진 제임스가 화장실 앞을 서성이고 있었다. 그는 중증 치매를 앓고 있는 데 낙상할 경우를 대비에 침대 위에 센서를 부착해 둔 것이라며 뎁은 내게 알림 스위치 끄는 법을 알려주었다. 제임스에게 기저귀를 갈아 입히고 돌아 나오는 그의 방 한편에 있던 깨진 액자 속 사진이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사진 속에는 꽤나 키가 큰 말끔한 인도 신사와 숙녀가 있었다. 새로 산 차를 뽐내듯 숙녀의 어깨 위에 손을 두른 채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띠고 있는 사진 속 인물이 제임스라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그리고 이내 궁금해졌다. 제임스에게 고향은 어디일까? 겉모습에 묻어난 인도가 그에게 고향으로 기억될까? 아니면 젊은 시절을 보낸 이곳이 고향으로 기억될까? 지금도 쉽지 않은 이민 생활이 그때는 더 녹록지 않았을 텐데 그가 겪어냈을 고생 끝에 낙이 오지는 않은 것 같아 안쓰러워 보였다.
제임스의 방을 빠져나오자 뎁은 이제 환자들을 깨워 아침 샤워를 시작할 시간이라며 따라오라는 손짓으로 길을 앞장섰다. 나는 새끼 오리가 된 것 마냥 그녀를 졸졸 따라갔다. 노크를 하고 들어간 곳에서는 '에블린'이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뎁이 암막 커튼을 젖히며 "굿모닝!"이라고 외치자 에블린은 깜짝 놀란 듯 침대에서 튕겨져 나와 곧장 화장실을 향해 걸어갔다. 거동이 불편해 보이지 않고 자연스레 아침 인사를 주고받는 그녀의 모습은 당최 치매 환자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의 샤워를 도와주고 있는 뎁이 어색해 보였다. 샤워가 끝나자 에블린은 그녀가 가진 화려한 색상의 재킷들 중 노란 것을 골라 입으며 그에 맞는 색의 머리띠와 귀걸이로 자신을 치장을 마무리했다. 그런 에블린에게 뎁은 "요즘 네 남편은 어때? 잘 지내고 있니?"라며 남편의 근황에 대해 물었다. 그러자 에블린은 밝은 목소리로 "응, 그는 잘 지내고 있어"라고 대답했다.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이 대화 속 에블린의 남편이 '제임스'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차마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녀는 방 하나를 사이에 두고 같은 공간에서 남편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한 채 생활하고 있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에블린의 언니 역시 이 요양원에 거주하고 있으며 치매 병동에 공실이 없어 대기 상태라는 것도 더불어 알게 되었다. 부부가, 자매가 나란히 치매 병동에서 노년을 맞이하고 있다는 것이 더 없이 서글프게 느껴졌다. 그런 서글픔은 이곳에서 흔한 일이라는 듯 뎁은 곧장 다음 방으로 넘어가자는 눈짓을 보냈다. 그렇게 만나게 된 다음 방의 주인 '바바라'는 백발의 작고 아담한 할머니였다. 그녀는 나를 보자마자 손을 내밀었고 내 손을 붙잡은 채 이렇게 말했다.
낯선 이에게서 처음 듣는 인사가 이토록 아름다운 말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손으로 고스란히 전해지는 그녀의 온기 덕분에 그 말의 담긴 진심이 내게 따뜻하게 와닿는 듯했다. '고마워요. 당신도 아름다워요!'라고 답하는 내게 그녀는 또다시 "Darling, I love you. You're so beautiful"이라고 말해주었다. 그녀의 치매 증상은 이토록 아름다운 말들을 끝없이 반복하는 것이었다. 그녀의 삶을 감히 짐작해 보건대 아마 사랑을 많이 받고 많이 나누는 삶이었으리라 생각됐다. 치매라는 병이 그녀의 모든 기억을 다 지워냈더라도 "넌 아름다운 사람이야, 널 사랑해"라는 말을 지워낼 수 없었던 것은 그녀의 삶에 사랑이 가득했기 때문인 것 같았다. 그녀의 이부자리를 정리하며 뎁은 바바라의 아들에 관한 이야기는 들려주었는 데 그녀의 아들 '마이클'은 매일 이곳을 찾아와 직접 엄마의 점심을 챙기는 것은 물론이고 겉옷부터 속옷까지 직접 빨래를 해서 가지고 온다고 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온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 일인데 정확히 점심시간이 되자 밝은 미소로 인사를 건네는 마이클은 마치 이 시대의 마지막 남은 진정한 효자처럼 보였다. 그런데 이후 환자들의 기본 정보가 기록된 파일 속에서 바바라의 가족들은 만일 그녀에게 응급 상황이 발생했을 경우 '심폐 소생'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표시되어 있는 것을 보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내 분명 효자라고 그리도 칭찬을 했건만 숨이 멎어가는 그녀를 우리더러 보고만 있으라는 거냐며 병동 총책임자 '윌리'에게 어이없다는 듯 묻자 윌리는 내게 그녀의 나이를 다시 살펴보라고 말했다. 바바라는 1927년도 생으로 올해 나이 '98세'였다. 완벽한 동안이지만 이미 백 살이 다 되어가는 그녀에게 심폐 소생술은 의미 없는 또 다른 고통일 뿐이라는 윌리의 말에 나는 침묵으로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아들인 마이클 역시 일흔이 넘은 나이라고 하니 머지않은 이별을 앞두고 있는 그들에게 서로를 바라보며 끝없이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지금이 더없이 소중하리라고 생각되었다. 떠나려는 어머니를 붙잡아 두지 않고 마음 편하게 떠날 수 있도록 놓아주는 것이 어쩌면 그가 가진 어머니에게 표하는 마지막 존경일 것이라고 생각하니 마음 한편이 아려왔다.
첫 주간의 실습이 어떻게 끝난 건지도 모를 만큼 정신없이 시간이 흘렀고 마지막 주가 되어 찾게 된 또 다른 병동에서는 '캐서린'을 만났다. 그녀는 팔은 어느 정도 움직일 수 있었지만 하반신은 전혀 사용하지 못하는 환자였다. 점심시간, 식당까지 그녀의 휠체어를 밀어줄 수 있냐는 '강가'의 말에 나는 흔쾌히 그러겠노라 답하며 그녀의 휠체어를 밀었다. 식당으로 들어서자 캐서린은 곧 내게 멈추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냉장고에서 물통을 꺼내어 정확하게 본인이 표시하는 만큼의 물만 채우라고 했다. 가뜩이나 영어가 들리지 않아 어리바리하고 있는 내게 그녀의 말은 또 다른 미지 세계의 언어처럼 느껴졌고 몇 번을 되묻고 나서야 그녀의 지시 사항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는 모든 생활에 대해 규율을 정해놓은 듯했다. 휠체어의 발받침은 반드시 옆 의자 방석 위에 두어야만 했고 휠체어와 식탁의 간격 또한 그녀가 정해둔 거리만큼을 유지되어야 했다. 자신뿐만 아니라 같은 식탁에 앉아 있는 환자들에게도 그들만의 규율이 지켜질 수 있도록 모든 것들을 지시했다. 나도 강박에 가까울 만큼 내가 정해둔 생활 습관들을 고집하는 경향이 있지만 여든 넘은 나이에 남의 손을 빌려 자로 재듯이 꼭 맞아야 하는 그녀를 보자니 여간 깐깐한 노인네가 아니구나 싶었다. 그래도 사흘, 나흘이 지나자 그녀의 규율들이 내게도 익숙한 습관처럼 느껴졌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물병의 물을 채우는 나를 바라보며 캐서린은 내심 뿌듯해하는 것 같았다. 실습 마무리까지 이틀을 남겨두고 있던 날, 우연히 들린 캐서린의 방에서 그녀는 내게 어디서 왔냐며 한국에서는 어떤 일을 했냐고 물었다. 나는 사진관을 했었고 그전에는 학교와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했었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녀는 자신도 40년 가까이 '선생님'을 했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나니 그녀 주변에 쌓여있는 책들과 안경, 색색의 볼펜들이 존재하는 이유를 납득할 수 있었다. 그녀는 우리 아이들이 다니고 있는 학교에서도 몇 년간 교직 생활을 했다며 주변 지리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괜스레 그녀와 나의 집합점을 찾은 것 같아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그녀는 어느 날부터 몸이 굳어가는 병을 얻게 되어 이곳에 오게 되었는 데 그 세월이 벌써 13년에 달한다고 말했다. 13년을 한정된 공간 안에서 매일을 힘겹게 살아내고 있는 그녀를 두고 나는 오만하게도 나의 관점으로만 그녀를 판단했다. 그녀가 만들어 둔 규율들은 그녀의 삶에 대한 스스로의 존중과 같은 것이었다. 밀려오는 낯 부끄러움에 숨을 곳을 찾는 만든 것처럼 짧은 인사를 한 채 서둘러 그녀의 방을 빠져 나왔다.
실습 마지막 날, 나는 4장의 카드를 썼다. 첫 카드는 나의 첫 사수였던 '뎁'에게 썼다. 뎁은 나와 같은 싱글맘으로써 힘겹게 혼자서 아이들을 키워내고 있는, 그래서 항상 피곤해 보이는 것이 안쓰러웠다. 그녀에게 당 충전에 도움이 되라며 초콜릿과 함께 같은 여자로서, 같은 엄마로서 그녀를 열렬히 응원하고 있다는 내용을 카드에 담았다. 두 번째 카드는 치매 병동의 총책임자 '윌리'였다. 윌리는 내가 실습한 지 이틀째 되던 날, 내게 일전에 어디서 일을 했었냐고 물었다. 나는 처음 해보는 일이라고 했더니 믿을 수 없다며 곧장 요양원 원장에게 달려가 나를 당장 채용하라고 말했다. 그는 나보다 더한 진정한 행동파였다. 그가 그렇게 강력 추천한다는 것에 놀란 요양원 원장은 내게 일을 하고 싶으면 언제든 이력서를 가지고 오라고 말했다. 그리고 남은 카드 두 장은 '바바라'와 '캐서린'에게 썼다. 바바라가 들려주는 '사랑'이 얼마나 따뜻했는지 그리고 그 덕분에 이곳에서의 시간이 즐거웠고 감사했음을 전했다. 캐서린에게는 긴 시간을 버텨내고 있는 그녀의 삶에 대한 존경심을 표하며 비록 그녀와 나눈 대화는 짧았지만 그로 인해 내가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렇게 나의 카드를 받게 된 이들은 하나같이 고맙다는 말과 함께 나를 꼭 끌어안아주었다.
나는 '할머니', '할아버지' 들을 만날 때면 유난히 곰살맞게 대하려고 한다. 대학 시절 포트폴리오를 위해 장난감 카메라를 들고 시골 마을을 찾아다닐 때 만났던 어르신들은 내게 시원한 물을 내주었고 밥도 차려주었다. 뉘 집 자식인지도 모를 낯선 이에게 그리도 큰 호의를 베푼다는 것이 오히려 낯설게 느껴질 요즘이지만 그때는 그게 '정'이었다. 한국이 아닌 이곳에서 '정'은 이해할 수도, 이해받을 수도 없는 문화일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다. 바바라 대신 카드를 받아 든 아들 '마이클'은 필요하면 언제든 추천서를 써주겠다고 말해주었고 '캐서린'이 나와 내 아이들의 앞날에 안녕을 기도 해주겠다고 말해준 것 처럼 여기서도 분명 '정'은 존재하고 있었다.
오며 가며 들리게 되는 환자들의 방을 장식하고 있는 사진들을 보노라면 그들의 삶이 어떠했는지 얕게나마 그려볼 수 있었다. 흑백의 결혼사진 속에서 그들은 눈부신 추억으로 빛나고 있었으며 컬러 사진 속 그들의 가족들은 아름다운 색으로 존재를 뽐내고 있는 듯 했다. 그렇게 생애 끝을 향하며 소중했던 기억들을 잃어가고 있는 그들이지만 여전히 누군가에게는 기억되고 싶은 '할머니', '할어버지'로 존재하고 있었다. 어쩌면 그들에게 나는 기억에 남지 않을 존재가 될 것이다. 하지만 내 기억 속에서 그들은 낯선 곳에서의 나에게 익숙한 정을 느끼게 해준 존재로 남을 것 이다. 오늘 밤 잠들기 전 밤하늘의 별들을 바라보며 그들의 안녕을 기원하려고 한다. 오늘도 그곳의 밤, 모두의 밤이 평안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