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번째 : 자존심보다는 자존감

마흔이 넘어서야 가지게 된 자존감

by 헤일릴리

"자존심은 남을 향한 마음이고 자존감은 나를 위한 마음이야"


몇 달 전 아이와 집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자존심'과 '자존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비슷해 보이는 두 단어지만 마지막 글자 하나로 인해 완전히 다른 의미가 된다는 것이 신기하지 않냐며 아이에게 물었다. 뜬금없는 이야기에 아이는 어리둥절해했지만 이내 곧 살이 붙여진 나의 설명에 이해가 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갑자기 최근에 본인에게 '자존감'이 낮아진 일이 있었다며 주르륵 눈물을 흘려 나를 당황케 했다. 놀라 이유를 물으니 아이는 그간 자신이 앓아온 고민을 어렵게 꺼내 보였다.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는 아이는 처음 호주에 왔을 때 말은 통하지 않아도 그림 덕분에 친구들과 쉽게 친해질 수 있었다. 그게 아이에게는 꽤나 큰 의미였는 데 6학년이 되어 새롭게 전학 온 중국인 친구 '셀린'이 자신보다 그림을 더 잘 그리는 것 같아 자존감이 떨어졌다는 것이다. 제 딴에는 도서관에서 그림 그리는 방법에 관한 책도 빌려다 열심히 따라도 해보았지만 좀처럼 실력이 늘지 않았고 친구들도 셀린의 그림만을 칭찬하는 것 같아 속상하다며 연신 코를 훌쩍였다. 가만히 듣고 있다가 이야기를 마친 아이에게 물었다.


"너는 그림 그리는 동안 어땠어?"

"재밌었어요.'

"그럼 그걸로 된 거 아닐까?"

"네?"

"네가 친구들한테 칭찬받으려고 그림을 그린 게 아니잖아. 네가 그림을 그리는 동안 즐거웠고 그걸로 만족했다면 엄마 생각에는 그걸로도 충분할 것 같아. 그게 바로 좀 전에 얘기한 '자존감'인 거야.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나를 위한 마음. 그러다 다른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게 되면 그게 '자신감'이 되는 거야. 그런데 칭찬을 받지 못했다면 그건 '자존심'이 상한 거고. 자존심이 상했다고 해서 자존감까지 낮아질 필요는 없지 않아?"


위로와 공감을 바랐을 열두 살 아이에게 완벽한 대문자 T 엄마의 무미건조한 진심이 다소 난해했으리라 생각되지만 그렇게라도 나는 아이에게 위로를 전하고 싶었다. 아이가 즐거워서 시작한 일이 타인의 평가로 일희일비하는 것이 안타까웠고 제 스스로를 위해 즐겁게 그림을 그릴 수 있길 바랐다.


날 닮은 너, 그리고 그 뒤에 나


나는 소위 말해 자존심이 아주 센 사람이다. 타인과의 싸움에서 쉽게 물러서지 않고, 조금의 부당함도 수용하지 못하는 딱 봐도 기가 센 사람이다. 덕분에 언제나 내 첫인상에 관한 평가는 '자신감이 있어 보이는', 또는 '자존심이 강해 보이는'이란 말이 꼬리표처럼 달라붙어 있었다. 오히려 새롭게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된 호주에서도 동서양을 막론하고 나에 관한 평가가 크게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나이가 마흔을 넘어 조금은 유순해지지 않았을까 기대했지만 살아온 성격이 얼굴에 고스란히 묻어나는 것은 피할 도리가 없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간 자랑처럼 앞세운 '자존심'에 비해 정작 나에 대한 '자존감'이 매우 낮다는 것을 최근에서야 깨닫게 되었다. 나는 스스로의 기준보다는 타인의 의한 평가를 기준으로 나를 앞세우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나에게 '자존감'이란 꽤나 낯선 단어일 수밖에 없었다. 언젠가 어떤 책에서 이런 문구를 읽었던 적이 있었다. '어렸을 적 부모님에게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은 무엇이었나요? 그 질문에 대한 내 대답은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생일 축하해"였다.


한 해가 마무리되는 12월이 되면 거리마다 내걸리는 크리스마스 장식에 모두들 들뜬 마음을 가지게 되지만 나는 그 보다 1주일 앞선 내 생일을 마치 이 지구상에서 혼자 기다리는 사람인 것만 같았다. 누구에게나 있는 생일인데 뭘 그렇게까지 기다리냐 하겠지만 나는 어려서 한 번도 생일 파티를 해본 적이 없었다. 거창한 생일상을 원했던 것도 아니고 그저 가족들끼리 모여 앉아 케이크에 초를 켜고 생일 축하 노래를 들을 수 있길 바랐었다. 하지만 부모님은 매번 내 생일을 잊었고 어느 순간부터는 그 기대가 사치에 가깝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렇게 생일이 다가올 때면 스스로 환대받지 못하는 존재임을 자각하며 익숙한 실망감과 동시에 혹시 모를 기대감이 마음 한 구석에서 피어올랐다. 그러다 역시 뻔한 실망으로 그 하루가 끝날 때쯤엔 나라는 존재가 있음을 이 세상에 귀하게 여겨주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 그저 슬펐다. 이런 내가 스스로를 존중하고 가치 있는 존재로 여긴다는 것은 배우지 못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덕분에 나는 여린 속을 감추려 뾰족하게 날이 선 말들로 내 자존심을 내세웠다. 그게 나에 대한 세상의 인정인 것 같았고 마치 내가 가진 특별한 능력인 것 마냥 허세를 부렸다. 그러다 아이를 키우며 아이가 세상을 살아가는 데 근본적으로 필요한 힘은 '자존감'에서 시작되고 그것은 오로지 부모만이 아이에게 심어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네가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 네가 얼마나 사랑받는 존재인지, 너를 얼마나 믿고 있는지, 그러니 너는 아무 걱정 없이 씩씩하게 세상을 살아가면 된다고 가르쳐 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부모만이 할 수 있는 대체 불가한 일인 것이다. 비록 나는 갖지 못해 세상을 살아가야 할 힘으로 '자존심'을 무기 삼았다지만 아이들만큼은 '자존감' 하나만으로도 당당하게 살아나가길 바랐다. 날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나를 세워 스스로를 귀하게 여겨 어떤 시련에도 흔들리지 않길 바랐다. 그래서 해마다 아이들의 생일이 되면 이 세상에 와 준 것에 대해 고마워하며 진심을 다해 환대해 주었다. 어쩌면 나는 아이들을 통해 어린 시절의 나를 토닥이며 감싸 안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그리고 며칠 전 나는 평생 잊을 수 없는 생일상을 받게 되었다.


12월의 크리스마스 보다는 12월의 벌스데이


잠을 잘 자지 못해 뒤척이다 새벽 다섯 시 반, 거실에서 부산이 움직이는 인기척에 놀라 눈을 떴다. 순간 문을 열고 나가볼 까 고민했지만 왠지 그러면 안 될 것 같아 가만히 누운 채 바깥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한참을 바쁘게 움직이던 소리가 사그라드는 것이 느껴져 살짝 문을 열고 나가보니 식탁 위에는 나를 위한 생일상이 차려져 있었다. 잔잔한 음악이 스피커에서 흘러나오고 의자에는 'World's best superstar mum'을 위한 예약석이라는 안내 문구가 붙어 있었다. 카스타드 위에 휘핑크림을 얹어 블루베리로 장식한 케이크 옆에는 조각난 쿠키가 접시를 채우고 있었고 아이들의 자리에는 꽃 목걸이, 리본과 함께 나팔이 준비되어 있었다. 보자마자 코 끝이 시렸다. 아침잠이 많아 잘 일어나지도 못하는 아이가 무슨 수로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이 모든 걸 다 준비했나 싶은 마음이 나를 울컥하게 만들었다. 이내 아이가 있는 방문을 조심스레 열고 보니 아이는 책을 읽다 말고 반가운 미소로 "엄마! 생일 축하해요"라며 나를 와락 안아주었다. 내 복에 어떻게 이런 딸을 낳았나 싶어 아이를 꼭 끌어안은 채 한참을 훌쩍였다. 나를 달래듯 아이는 놀랐냐고 물었고 며칠 전부터 '어떻게 하면 엄마를 놀라게 할 수 있을 까?'라는 고민에 마음이 설레었다고 말했다. 이 세상에 이렇게나 나를 온전히 사랑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그게 내 아이라는 것이 그저 감격스러웠다. 이른 새벽 고깔모자를 쓴 채 아이들이 불러주는 생일 노래에 맞춰 카스타드 위에 붙여진 초를 끄며 소원을 빌었다.


'우리 가족 모두 지금처럼만 행복하게 해 주세요'


나의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해


아이가 자라는 만큼 부모도 함께 자란다는 말이 있다. 내가 아이들에게 입버릇처럼 '사랑해'라고 말하는 것은 너희를 향한 엄마의 변치 않을 사랑이 언제나 앞길을 환하게 비춰줄 테니 등을 곧게 세운 채 씩씩하게 앞으로 나아가라는 마음이다. 그리고 아이들이 내게 들려주는 '사랑해요'라는 말은 내 마음 깊숙한 곳에서 미처 자라지 못한 어린 시절의 나를 다독이며 이제라도 성숙한 어른이 될 수 있도록 감싸주는 마음인 것 같다. 우리는 이렇게 서로를 향해 온 마음으로 사랑을 표현하며 서로를 키워내고 있다. 42번째 생일을 두고 24번째? 혹은 25번째? 아니었냐며 천연덕스럽게 농담을 건네는 딸이 있기에, 엄마 나이 그거 아니라고 가슴에 '42 years old!!'라고 써붙여주는 아들이 있기에, 나는 오늘도 내 안의 자존감과 함께 조금씩 자라고 있다. 아직은 미성숙하고 자존심과 자존감을 구분하지 못해 가끔은 자신감을 잃을 때도 있지만 나를 귀하게 여겨주는 존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매일 더 나은 어른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그리고 '안아주기!'라는 말 한마디에 너 나 할 것 없이 서로를 향해 두 팔 벌려 달려가 있는 힘껏 안아줄 존재가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렇게 앞으로도 우리는 서로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흔들리지 않도록 서로에게 힘이 되어 줄 것이다. 그러니 우리 오늘도, '안아주기!'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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