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번째 : Just graduated!

김아옹 인생의 첫 번째 졸업식

by 헤일릴리

큰 아이는 13년생으로 올해 만으로 12살, 초등학교 6학년이다.


어제 아이 인생의 첫 졸업식이 있었다. 물론 유치원을 다녔고 졸업을 하긴 했지만 하필이면 그때 코로나가 창궐해 '졸업식'을 하지 못했다. 덕분에 아이에게는 어제가 첫 졸업식이 되었다. 몇 주 전, 아이가 졸업식 초대장을 가지고 왔다. 전체 6학년 아이들이 다 함께 나와 있는 사진을 표지로 그 안에는 몇 명이 참석할 예정인 지 알려달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뭐든지 대충이고 신발도 신기 귀찮아 맨발로 다니는 호주사람들이지만 이럴 때 보면 세심함이 넘쳐나는 것 같다. 초대장 내용에는 졸업식이 열리는 시간이 오후 5시 30분이라고 적혀있었다. 이게 대체 무슨 말인 건가 싶어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졸업식이 가까워져서야 아이를 통해 정확하게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호주에서는 한국과 달리 학교가 끝난 저녁 시간에 졸업식과 파티를 진행하는 형식이었고 덕분에 부모님들도 퇴근 후에 편하게 참석할 수 있었다. 그리고 졸업식이 끝난 뒤 진행될 ‘디스코 파티'를 위해 정해진 드레스 코드에 맞는 옷을 입어야 했다. 컨셉이 ’Smart'라 마음 같아서는 대한의 아이답게 똑똑해 보이도록 빨간 저고리에 노란 치마 한복을 입혀 보내고 싶었지만 아이가 내 말을 전혀 들을 것 같지 않아 애초에 말도 꺼내지 않았다. 우리는 드레스를 사기 위해 쇼핑몰로 향했고 제 사이즈에 맞는 드레스를 찾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고심 끝에 아이 마음에 쏙 드는 드레스와 구두를 살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드레스에 어울릴 만한 머리핀을 직접 만들어 주기로 했다.



마음에 드신다니 다행입니다, 고객님


졸업식장으로 향하기 전 아이는 드레스를 입었다는 것만으로도 신이 나 보였다. 나는 그런 아이를 진정시키며 앉혀다 고데기로 곱슬머리를 쫙쫙 편 뒤 스프레이까지 뿌려가며 아이를 꾸며주었다. 거기다 내가 만든 거대한 리본까지 머리에 달아주니 아이는 더없이 만족해하며 함박웃음을 띠고서는 행복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정작 나는 시간에 쫓겨 5분 만에 치마 다림질을 하고 입술에 틴트를 바른 뒤 옷차림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거대한 카메라 가방을 짊어진 채 두 아이의 손을 이끌어 졸업식장으로 향했다. 평소 꼬질꼬질 해보이는 학교 교복만 입던 아이들이 한껏 멋을 부리고 온 모습을 보고 있자니 과연 이게 초등학생 졸업식이 맞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순간 나도 어쩔 수 없는 꼰대가 되었구나 싶어 세차게 고개를 저으며 식장 한편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졸업식이 시작되고 다소 지루한(?) 선생님들과 교장 선생님의 훈화 말씀이 끝나자 이름이 호명된 아이들이 차례대로 단상 위에 올라가 졸업장을 받기 시작했다. 이때 나는 마치 준비된 무기를 꺼내듯 커다란 카메라를 손에 들고 최대한 허리를 숙여가며 단상 가까이 있는 의자로 가 앉았다. 우리 동네는 동양인이 많지 않은 곳이라 아마 주변에서는 '저 동양 아줌마 참 별나네'라고 흉볼 것 같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엄마이자, 사진가로서의 임무를 다해야 했다. 그런데 곧 내 옆에 와서 자리를 잡고 앉는 엄마가 있었는 데 아이의 중국인 친구 '셀린' 엄마였다. 영어를 잘하지 못하는 셀린의 엄마는 휴대전화 화면을 내게 들이댔는 데 거기엔 '네가 내 딸 사진을 찍어주면, 나는 네 딸 비디오를 찍어줄게'라고 적혀 있었다. 나는 흐뭇한 미소로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같은 동양인에게는 '협상'과도 같은 '정'이 느껴졌다.



내 인생 업보만큼의 무게



이내 딸아이의 이름이 불리고 아이의 어릴 적 사진과 마지막 학생 사진이 나란히 커다란 화면에 떠올랐다. 아이가 단상을 향하는 동안 아이가 낭송하는 졸업에 대한 소감이 흘러나왔는 데, 순간 나는 누가 대신 읽어준 게 아닌가 라는 착각이 들었다. 평소에 내가 알던 징징이 목소리와는 달리 또렷한 음성과 유창한 영어 발음이 마치 내게는 아나운서의 음성처럼 들렸다. 물론 여기에는 고슴도치 엄마의 필터가 장착되어있어 그렇게 들린 건지도 모른다. 2년의 시간 동안 아이가 자신의 의사 표현을 다할 수 있을 정도로 애썼을 모습이 떠올라 당당하게 졸업장을 들고 서 있는 모습이 그저 내게는 감동 그 자체였다. 그렇게 모든 아이들 마다 졸업에 대한 소감을 전한 뒤 한 해 동안 지내온 아이들의 학교 생활이 슬라이드로 재생되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본 딸아이의 해맑은 미소는 아이에게 학교가 행복한 추억이 되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디스코 파티를 포함한 모든 졸업식 행사가 끝난 뒤 돌아온 집에서 우리는 졸업장과 같이 들어 있던 편지를 읽게 되었다. 그 편지는 담임 선생님이 졸업식 전에 아이가 부모님에게, 부모님이 아이에게 보내는 편지로 미리 계획된 것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의 편지를 보며 눈물을 흘렸다.



이 정도면 캘리그래피 아니냐며?






미첼턴 주립학교에서 보낸 2년은 행복한 추억들로 가득한 시간이었습니다.

그 모든 것은 가족, 친구들, 그리고 선생님들 덕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오늘 이 자리에서는 그중에서도 특히 우리 엄마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제가 한국에서 5학년을 막 시작하던 때, 엄마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저와 동생을 호주로 데려오셨습니다. 처음에는 영어 실력이 부족해서 친구들을 쉽게 사귀기 어려웠고, 선생님과 친구들이 하는 말도 대부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늘 제 곁에서 저를 격려해 주고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도와주셨습니다.

지금 제가 이렇게 반 친구들과 어울리며 자랑스러운 교실의 일원이 될 수 있었던 건 모두 엄마의 노력 덕분입니다. 이 아름다운 나라에서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게 된 것도 엄마가 저를 이끌어주신 덕분입니다.


고등학교에 올라가서도 제가 의지할 사람이 누구인지 잘 알고 있어요.

세상에 단 한 사람만 남더라도 저를 끝까지 지지해 줄 사람이 바로 엄마라는 것 말이에요.

그래서 저는 오늘 이 자리에서 엄마께 큰 목소리로 말하고 싶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작가인 엄마,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샬롯이 항상 말하듯이, 엄마는 정말 세상 최고의 요리사예요.

6년 동안의 초등학교 여정을 마무리하면서 저는 확신합니다.

어디에 있든, 언제든, 엄마는 늘 저를 웃게 해 줄 거라는 것을요.


세상에서 가장 좋은 엄마, 사랑합니다.


엄마의 딸, 아옹 드림.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 아옹






사랑하는 나의 하나뿐인 딸, 아옹아.


네가 처음으로 나를 “엄마”라고 불러주던 날, 네가 처음으로 발을 내딛던 날, 그리고 처음으로 “사랑해”라고 말해주던 그날까지. 그 모든 순간들은 네가 얼마나 아름답게 자라고 있는지를 보여주었고, 매번 나를 벅차도록 행복하게 만들었어. 그리고 오늘, 새로운 나라에서, 새로운 언어와 낯선 사람들 속에서 네가 처음으로 졸업을 맞이하는 이 순간, 엄마는 다시 한번 너를 무척이나 자랑스럽게 생각해.


너는 무엇이든 해낼 수 있는 사람이야.
너는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사람이야.
너는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는 사람이야.
너는 다른 사람에게 너그러운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야.
너는 모두에게 존중받는 사람으로 자라날 거고,
앞으로도 지금처럼 모든 사람을 따뜻하게 대하는 사람이 될 거야.
네가 가진 힘과 마음은 언제나 너를 올바른 길로 이끌어 줄 거야. 지금도 그렇듯이.

그러니 아옹아, 스스로를 믿고 네 마음이 향하는 모든 꿈을 향해 가렴.

너는 그 모든 것을 충분히 해낼 수 있어.


엄마는 네 삶의 매일이 밝게 빛나길, 그리고 그 하루하루 속에서 더 큰 행복을 찾길 바래.

하지만 혹시 지치거나 힘들어지는 날이 오면, 언제든 엄마에게 와.
엄마는 언제나 세상에서 가장 따뜻하고 안전한 품으로 너를 안아줄 거야.
엄마는 매 순간 너를 사랑하고, 항상 너를 자랑스러워하고, 언제나 네 곁에서 응원할게.


아옹아, 졸업을 진심으로 축하해.
엄마는 이 새로운 시작을 온 마음으로 기뻐하고 있어. 엄마는 너를 진심으로 존경해.

그리고 내 딸로 태어나줘서 고마워. 오늘 더 사랑해.


사랑을 가득 담아, 엄마가.






머리맡에 붙여두고 자는 센스


평소에도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하는 우리지만 또박또박 예쁜 글씨로 정성스레 눌러쓴 아이의 마음이 내게 깊이 와닿았다. 모든 걸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사이가 있고 모든 걸 꺼내 보여도 알 수 없는 사이가 있다. 자식과 부모 사이에도 예외는 없는 것 같다. 나와 아이는 어떤 날은 전자의 관계이기도 하고 어떤 날은 후자의 관계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서로를 진심을 다해 사랑하고 응원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번 아이의 졸업을 통해 내 생각을 훌쩍 뛰어넘을만큼 아이가 많이 자라있음을 알게 되었다. 어쩌면 이제 겨우 초등학교 졸업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이에게는 2번의 전학과 호주에서의 졸업이라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커다란 아빠 손을 잡고도 아장아장 걷던 아이가 어느새 이만큼이나 자라 낯선 나라에서 당당하게 졸업장을 받으러 걸어 나가는 모습에서 충분히 제 몫을 다 해내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앞으로도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지금처럼만 아이가 잘해나갈 수 있기를 응원한다. 그리고 언제나 그 뒤에서 빽이 되어줄 엄마가 있음을 기억하길 바란다. 수고했어, 오늘도!

금요일 연재
이전 08화여덟 번째 : 사춘기 아니라 사십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