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번째 : 사춘기 아니라 사십춘기

불혹이라기엔 너무나 불 타오르는 지금

by 헤일릴리

'지랄 총량의 법칙'


요즘 육아 중인 부모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말이다. 누구나 인생에서 한 번은 '지랄'같은 때가 있다는 뜻으로 미운 네 살이었던 아이가 크면서 순해진다거나 혹은 순했던 아이가 크면서 꼴통이 된다는 그런 의미의 말이다. 누가 만들어 낸 말인 지 몰라도 가히 천재가 아닐 수 없다. 나의 부모님은 엄한신 분들이었다. 나의 '지랄'을 받아줄 분들이 아니었다. 좀 더 정확하게 짚고 넘어가자면 무자비한 폭력을 가정교육의 구실로 앞세워 부모의 권위와 자식의 도리를 몸이 기억하도록 만들었다. 어떤 날에는 팬티 바람으로 쫓겨나 대문 밖에 서있어야 했고, 어떤 날에는 공사장의 파이프가 허벅지에 피멍을 가득 남기기도 했다. 이러니 중2병은 고사하고 그 흔한 말대꾸 한 번 하지 못한 채 사춘기를 지나 보냈다. 그리고 덕분에 나는 지금 '지랄 총량의 법칙'에 따라 '사춘기'가 아닌 '사십춘기'를 겪고 있다. 마흔을 세상에 흔들리지 않고 미혹되지 않는 나이, '불혹'이라고 한다던데 나는 살랑이는 바람에 가슴이 설레고 흘러나오는 노래에 마음이 울컥한다. 누군가는 '갱년기' 아니냐 묻겠지만 여전히 나의 여성 호르몬들이 제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는 걸로 봐서 아직 갱년기는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나는 어쩌자고 이토록 '지랄' 맞아진 걸까?



꽃이 좋을 나이, 마흔


첫 아이 아옹이는 눈물이 많다. 어떤 날은 눈물로 시작해 눈물로 끝난다. '아이니깐 그렇지'라고 단정 지어 말할 수 있는 수준을 넘었고 내 딴에는 어떻게든 맞춰주려 했지만 마르지 않는 눈물에 걱정과 한숨이 늘어갔다. 이런 우리를 아는 지인이 유아 심리상담을 권했다. 엄마인 내가 알지 못하는 원인이 있는 게 아닐까 하는 마음에 아이와 함께 상담을 받았다. 그리고 아이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없으나 엄마인 나는 약물 치료가 시급한 우울증으로 보인다는 소견을 듣게 되었다. 육아도 일도 참 열심인 내가, 뭐든지 해보겠다는 의욕이 넘쳐나는 내가 우울증이라니, 그것도 치료가 필요할 만큼 심각하다니, 도통 이해 되지 않았다. 일단 병이라니 치료가 필요하다니 병원을 알아봤고 약을 처방받았다. 그러다 문득 내가 살고 있는 삶에 대한 반항이 하고 싶어졌다. 나에게 주어진 역할들에서 마냥 벗어나고 싶어졌다. 마치 그것들이 나를 병들게 한 것 같았고 벗어나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인 것처럼 느껴졌다. 그 길로 나는 모든 걸 내려둔 채 짐을 싸 서울로 향했다. 한 달간 지인 집 근처의 고시원에 머물며 먹고 싶을 때 먹고 자고 싶을 때 자는 나만의 자유를 만끽했다. 낮에는 원하는 만큼 전시를 보러 다녔고, 밤이면 친구들을 만나 그간에 나누지 못한 수다를 풀어냈다. 그렇게 나는 '돈지랄'을 하며 잠시나마 모든 것들로부터 벗어났다는 사실을 만끽했다. 하지만 그건 딱 그때뿐이었다. 돌아온 일상에서 더한 답답함을 느끼게 되었고 또 다른 일탈의 선택은 '술'이었다. 원래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고 술을 즐겼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사람을 만나기 위해 술을 마셨고 기억을 잃을 만큼 만취하기 시작했다. 어떤 날에는 어떻게 집에 돌아왔는지 기억나지 않았고, 어떤 날에는 어쩌다 현관 앞에서 자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이런 나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가족들의 시선과 충고는 듣지도 보지도 않았다. 그저 나는 지금 우울하니깐 그래도 된다는 듯 스스로를 감싸 안았다.



서울에서만 누릴 수 있는 호사


그러다 나를 무너뜨린 일이 생기고 말았다. 내게 소중했던 그 아이가 스스로 세상을 떠난 것이다. 그 아이가 떠나기 한 달 전 나는 십여 년 만에 그 아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실컷 떠들어댔다. 내게 우울증이란 병이 생겼다고. 오랜만의 전화에서 고작 한다는 말이 이런 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아이는 누나처럼 밝은 사람이 어쩌다 그런 병을 얻게 됐냐고 진심 어린 걱정을 전했다. 그에 답이라도 하듯 나는 그동안 들어내지 못했던 상처들을 꺼내보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이겨내리라는 의지를 피력했다. 그러면서 마치 내가 정답을 알고 있는 것 마냥, 마치 내가 인생 선배인 것 마냥 이래라저래라 어줍지 않게 그 아이의 앞 날에 대한 충고와 조언을 쏟아냈다. 묵묵히 내 얘기를 들어주던 그 아이는 웃으며 내 충고와 조언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겠노라 답했다. 그렇게 우리는 한 시간 동안 울고 웃으며 서로를 다독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그 아이가 떠난 지 일주일 만에 그 소식을 듣게 되었다.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아 소리를 지르며 가슴을 내리쳤다. 나라는 사람이 얼마나 아둔하고 이기적이었기에 그 아이가 가진 상처는 들여다볼 생각조차 없었던 건지 그 아이를 잡아주지 못한 게, 그 아이의 슬픔을 알아차려 주지 못한 게 내 탓인 것만 같았다. 하지만 아무도 그 아이의 선택에 대한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 아이는 마치 오랜 시간 준비한 것처럼 그 어떤 글자 하나 남기지 않은 채 모든 것들을 정리하고 떠나 버렸다. 그렇게 장례조차 치르지 않고 떠나보낸 그 아이를 나는 마음에서는 떠나보낼 수가 없었다. 떠난 사람을 보내줘야 마음 편히 갈 거라는 그 말이 마치 그 아이를 잊어야 한다는 말처럼 잔인하게 들려왔다. 나만큼은 그 아이를 기억해주고 싶었다. 내가 사랑했던 모습으로, 우리만 알고 있는 의미로 그 아이를 기억하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그 아이의 마지막 나이와 함께 그곳에 아프지 않게 도착했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내 왼쪽 팔 높은 곳에 그 아이를 새겨 두었다. 그렇게 나 만의 방식으로 그 아이를 추모하며 모든 것을 함께 한다는 것으로 슬픔에서 벗어나 애썼다.


거긴 어때? 잘 있지?


그 무렵 나의 일탈은 정점을 향했고 급기야 나는 가족들로부터 독립을 선언했다. 말이 좋아 독립이지 사실상 가출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그 안에는 뻔뻔한 핑계도 있었다. 사진관을 하나 더 열게 되었는 데 그것이 도시의 끝과 끝이라 출퇴근이 힘들 것 같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렇게 나는 엄청난 '돈지랄'을 하며 나만의 아지트로 떠났다. 처음에는 나만의 공간에 생겼다는 것에 신이 났었다. 마치 내 능력으로 쟁취해 낸 자유인 것 마냥 신나게 자랑을 일삼았다. 그러면 그런 걸 이해해 줄 남편은 없을 거라고, 그렇게 아이들을 봐줄 시부모님은 없을 거라는 대답들이 나를 향한 부러움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나는 혼자가 된 그 시간을 즐겼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며 마냥 행복할 줄 알았던 새로운 일상이었지만 결국 반복되는 문제점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나는 마치 잠에 취한 것 마냥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소파에서 잠들었고 숙면을 기대하며 누운 침대 위에서는 새벽녘까지 잠들지 못하는 밤들이 늘어갔다. 처방받은 수면제는 제 역할을 다하지 못했고 그렇게 마시던 술도 더 이상 즐기지 못했다. 혼자인 게 편하지 않았다. 스스로가 만들어둔 닭장에 갇힌 것 마냥 외로움이 더욱더 나를 공허하게 만들었다. 결국 나의 가출은 1년도 채 되지 않아 끝을 맞이했다.



아직은 위태로운 나를 향한 경고


나 스스로 답을 찾아야 했다. 하지만 답은 그리 쉽게 찾아지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조금 더 멀리 벗어나기를 선택해 보았다. 하지만 혼자가 아닌 금쪽같은 내 새끼들과 함께였다. 덕분에 나는 오로지 육아를 혼자 감당하게 되었고 그 와중에 지랄 같은 성미를 참지 못해 이혼까지 하게 되었다. 어차피 떨어져 사는 데 굳이 이혼까지 할 필요 있냐는 말들도 있었지만 나는 고집을 꺾고 싶지 않었고 기어이 해야만 직성이 풀릴 것 같았다. 허나 이렇게까지 많은 것들을 시도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대체 나는 사람이 누구인지, 나는 어떤 존재인지. 그러면서 마치 그동안 하지 못했던 반항들을 몰아서 하듯 유치하게도 세상을 향해 가운데 손가락을 추켜올리는 못난 어른이 된 것 같기로 하다. 이러니 불혹은 나를 위한 말이 아니다. 그저 마흔이 되어서도 미성숙하고 여전히 혼란스러운 '사춘기'라고 하기엔 나이가 너무 많은 '사십춘기'가 적당한 표현인 것 같다. 하지만 분명한 건 다소 늦었고 다소 느리게 나는 어제보다는 오늘 조금 더 성장하려고 노력한다. 비록 완전한 어른이 언제쯤 될는지 알 수 없지만 언젠가는 나도 모든 것에 관대해지고 모든 것을 여유롭게 바라볼 수 있는 어른이 되기를 꿈꾸고 있다. 오늘따라 무늬만 어른인 엄마를 둔 아이들에게 유난히 미안해진다. 엄마가 미리 사춘기를 겪었더라면 조금은 덜 지랄 맞았을 텐데. 어제도 소리 질러서 미안. 밥 안 준다고 밥그릇 가져가서 미안. 너희도 곧 사춘기가 올 텐데 이제는 엄마가 좀 너그러워져 볼게. 그 대신 취침 시간은 좀 지켜줄래? 그래야 엄마가 소리를 좀 덜 지를 수 있을 것 같아. 부탁해. 사랑해. 잘 자!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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