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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버리고 올 것들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와 검정치마의 '내 고향 서울은'

by 이윤서 Hayley

"버리고 온 만큼, 얻는 것도 있을 거야'

“와, 너다”


부모님을 이해하기 위한, ’나‘의 첫사랑을 이해하기 위한 영화.

아무것도 모른 채 그저 접어두었던 어릴 적 첫사랑을 꼬깃꼬깃. 다시 펼쳐 보는 영화.

사랑하는 남편과, 사랑했던 ’너‘가 마주한 순간 든 그 뭔가 어긋난 느낌.

마지막에 끝내 하고 싶은 말을 전하지 못하고 서로를 떠나 보낸 후 울어버리는 나영의 모습.


*

내 생각은 이상한 곳으로 튀었다. 내가 뉴욕에 가면 무엇을 버리고 올까. 뉴욕에 가면 난 아주 울지도 모르겠다. 내가 그 땅을 밟는 순간. 뉴욕을 마주한 순간 나는, 나는 울어버릴거다. 정말 이상하지, 영화를 보는데 테오가 자유의 여신상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장면에서 내가 저곳에 가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며 울 것 같은 감정이 올라왔다. 아, 드디어 왔구나. 지금이 그 순간이구나. 참, 별거 없다. 이런 느낌인 것 같기도 하고, 정말 원하던 무언가를 눈앞에 마주했을 때 드는 공허감인 것 같기도 하다. 공허함. 내가 근원적으로 느끼는 감정 중에 큰 부분인데. 그게 뉴욕이랑 어떤 관련이 있을까. 관광객이 더 많은 뉴욕 한복판에서 엉엉 울고 있는 나를 강렬하게 상상했다. 이제 돌아가면 난 뭘 꿈꾸지. 이제 난 뭘 동경해야 하지.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좀 더 큰 막막한 벽. 뉴욕이 나에게 그런 곳일까? 그곳에 내가 완전히 뿌리내릴 수 없다면, 뉴욕이라는 꿈도 내가 버리고 와야 하는 그것 중에 하나다. 꿈을 이뤘다는게, 꿈을 잃었다는 의미가 될 수 있으려나. 무언가를 동경하는 것이 원래 이렇게 위험을 수반하는 일이던가. 동경과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길다. 나는 뉴욕을 사랑하는 걸까. 이상하게도 서울이라는 도시를 사랑하지만 꿈꾼 적은 없다. 어쩌면 당연한 걸까. 최근에 그놈의 조휴일이 라디오에 나와 '내 고향 서울은'을 만들게 된 이유를 설명한 글을 보았는데 참 변태같더라. 나의 고뇌를 해소해줄 수 있을까? 혹은 더 중증으로 만들어줄까.


*

“내 여자가 부산에 내려가 있는 동안 내 고향 서울엔 눈이 내렸다. 괜히 애틋한 마음에 내 고향도 기차로 한참을 달려야 도착할 수 있는 곳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그리워할 장소가 없어도 그리워할 사람이 있으니 괜찮다. 고향을 위한 변변한 노래 하나 가져본 적 없는 서울 사람들을 위해, 서울 사람이 불러보았다.” - 조휴일

”서울. 이곳에서 태어난 사람조차 ‘고향’이라 부르기엔 채 담아낼 수 없는, 복잡 미묘한 감정이 얽힌 도시입니다. 서울서 나고 자란 사람에게도 서울은 왠지 멀기만 합니다. 우리가 ‘고향’이라 부르는 곳들은 어쩌면 도시 이름이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집 앞을 나서면 펼쳐지던 풍경, 골목 어귀의 가로등, 습관처럼 들러 군것질거리를 사들고 나오는 동네 앞 작은 슈퍼, 그 길에 서 있는 누군가일지도 모르지요.

작은 기억들이 쌓이고 또 쌓여 ‘고향’이라 이름 붙일 수 있는 두터움이 생길 때까지 우리에겐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요즘은 아이러니하게도 우리에겐 그렇게 무언가를 쌓아 올릴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고향’이라 일컫지만, 마음으로 가깝지 않은 서울. 수많은 외지 사람들의 꿈과 절망을 오가는 일상이 섞여 오묘한 기운을 뿜어내는 곳.

검정치마는 이런 서울을 ‘내 고향’이라 부르지만 눈 오는 서울을 이곳저곳 오가는 그의 발길은 환상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어쩌면 그 누구도 아닌, 검정치마가 부르는 ‘서울’ 노래이기에, 그 묘한 거리감에서 우러나오는 정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고향을 위한 변변한 노래 하나 가져본 적 없는 서울 사람들을 위해, 서울 사람이 불러보았다’는 검정치마의 말처럼 이 노래가 서울 사람, 누군가의 마음에 닿길 바랍니다.”

- 멜론 스페셜, <서울 사람 검정치마의 서울 노래, ‘내 고향 서울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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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몰래 보는 영화 흉 :

셀린 송 감독이 교포인지(어쩐지, 맞더라) 대사가 참 어색했다. 이 영화가 노미네이티드 된 이유는 심사위원들이 이 영화를 자막으로 봤기 때문이리라. 이런 영화 참 좋아하는데 대본의 어색한 느낌을 참을 수 없더라. 연기력의 문제라기엔 대사 자체가 좀 아니다 싶었다. 기대를 많이 했어도 이런 차분한 아린 감칠맛의 영화를 좋아하는데 이런, 아깝게 간을 잘못 맞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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