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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5년 만에 쓰는 인도 여행기

by 오트라떼

나는 서른 살이다. 그리고 25살 때까지 인도에 3번을 다녀왔다. 그렇다고 인도에서 아주 긴 시간을 보낸 것은 아니었다. 처음은 2주간의 봉사활동이었다. 2011년 대학교 3학년 시절, 한 기업에서 주최하는 대학생 해외봉사단 프로그램에 선발되어 남부 인도 최대의 도시 첸나이에 다녀왔다. 이것은 내 생애 최초의 해외 경험 이기도 했는데, 대학생이 되면 해외에 나가보고 싶다는 것이 아주 어린 시절부터의 꿈이었기 때문일까, 처음 비행기에서 내려 인도 땅을 밟았을 때 단지 설레거나 신이 난다기보다는 뭔가 뭉클함과 함께 가슴이 벅차올랐었다. 한국에 돌아온 후 인도 땅을 처음 밟던 그날의 소회를 쓴 일기가 아직 남아 있다.


인도에 처음 도착한 날 밤이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난다. 더운 날씨, 버스 터미널 같았던 열악한 시설의 첸나이 공항, 휴지 대신 물통이 놓여있던 냄새나는 공항 화장실, 컨베이어 벨트 주변을 가득 둘러싼 우리들의 연두색 조끼, 한 밤 중인데도 수없이 많았던 인도 사람들, 밤 12시가 다 되어가는 때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시장통처럼 북적이던 공항 앞 도로, 처음 만난 인도인들의 큰 눈동자, 우리를 신기하게 바라보는 시선들, ’ 여기가 인도구나' 단번에 느낄 수 있던 정신없는 도로와 경적소리, 무질서, 쓰레기, 그때의 온도, 냄새, 사람들의 눈빛, 바람의 세기 등 그 모든 것이 전부 말이다.
인도에서 봉사활동을 했던 시간들보다 내게 더 강렬하게 인도의 이미지를 심어준 건 바로 그 순간이었다. 꼭 오고 싶던 인도, 공기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아서 가슴속에 다 담아가려고 보고 또 보고, 느끼고 또 느끼고 그래서 이렇게 모두 기억이 나는가 보다. 수 백장이 넘는 카메라 속의 사진보다 내 가슴속에 남아 있는 그 잠깐의 순간이 더 선명하다. 이제는 현실로 돌아와서 다시는 돌리지 못할 그 시간, 처음으로 인도를 만난 순간이 그립다. 카레이서를 방불케 하는 기사 아저씨의 운전 실력도, 모기에 물려가며 봤던 창밖의 풍경도, 이제는 모두 추억일 뿐이지만 아마 그 순간을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언제든 인도에 다시 갈 수 있겠지만 그 순간만큼 가슴 벅차고 따뜻한 감성을 또다시 느낄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봉사활동을 하며 우리가 묵은 숙소는 첸나이의 Saveetha Engineering College에 딸린 아직 공사가 덜 끝난 기숙사였는데 시설은 열악했지만 밤이 되면 별이 잘 보이는 곳이었다. 숙소가 첸나이 시내 외곽에 위치해 있었고 봉사활동을 했던 학교들도 정확한 위치는 잘 모르지만 버스로 비포장 도로 위를 꽤 오랜 시간을 달렸으니 아마 외곽 지역이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봉사활동 중 딱 하루 첸나이 시내에서의 자유시간이 주어졌는데 우리가 주로 생활했던 변두리 지역과는 달리 끝도 없는 오토릭샤들의 행렬과 도로 위에는 사람과 소가 뒤섞인 진풍경에 그만 진이 다 빠지고 말았다. 나는 봉사활동이 끝나도 언젠가 인도에 다시 여행을 하러 오고 싶었다. 그러나 첸나이 시내를 걸으며 절대로 이렇게 혼잡하고 정신없는 인도에 다시 오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29593957150_8e6b4cb58e_o.jpg 봉사활동 당시 이동 중에 찍은 평범한 첸나이 시내 외곽의 길거리 모습
29261273893_7bd752c93a_o.jpg 봉사활동 중 우리가 묵었던 숙소 앞 풍경, 진짜 아무 것도 없는 허허벌판이었다. 오른쪽에 살짝 보이는 흰 건물이 숙소였다.





두 번째 인도는 어쩌다 보니 가게 되었다. 첸나이에서 인도에 다시 오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었지만 사실 한국으로 돌아온 후 나는 인도가 줄곧 그리웠다. 그러던 중 2013년 봄, 한 달 여 간의 나 홀로 태국-라오스 배낭여행을 떠났고 라오스로 넘어가기 전, 태국 빠이에서 만난 일행들의 꾐(?)에 넘어가 그들과 함께 인도에 가기 위해 라오스를 포기하고 방콕으로 돌아와 인도행 비행기 티켓을 끊고 비자를 신청해버리고 말았다.


태국을 여행하고 있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콜카타였다. 맙소사, 내가 인도에 또 오다니. 그런데 그렇게 얼떨결에 태국에서 만난 두 명의 일행들과 두 번째 인도에 입성하던 날, 나는 예상과는 달리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다. 콜카타는 그야말로 혼란 그 자체였다. 더군다나 우리가 묵었던 콜카타의 값싼 숙소는 끔찍하게 어두침침하고 더러웠다. 우리 셋은 도망치듯 콜카타를 빠져나와 북쪽 다르질링으로 올라갔다.


인도는 이상한 나라였다. 콜카타에서의 끔찍했던 첫날과 달리 하루하루 날이 갈수록 나는 인도가 점점 좋아져서 태국으로 돌아오는 날에는 출발도 전부터 벌써 인도가 그리워 눈물이 다 날 지경이었다.

인도가 다시 좋아진 것이 정확히 어느 언제부터였다고는 말하기 힘들지만 그래도 돌이켜 보면 딱 한 순간이 떠오른다. 네팔에서 국경을 넘어 바라나시로 오던 날, 하루 동안의 긴 여정을 끝내고 (아마도) 새벽 6시 반쯤 바라나시의 메인 가트인 다샤스와메드 가트에 도착했는데, 그날 아침 다샤스와메드 가트에서 본 바라나시의 일출이 바로 그것이다. 분명히 나의 기억 속에서 그 아침의 일출은 선명하게 남아있지만 사실 정말 선명한 것은 일출 그 자체가 아니라 그 날 그 순간의 나의 감정이었다. 나는 그 날 가트에 선 그 순간 그냥 그렇게 인도가 좋아졌다. 정말 아무런 이유 없이 그냥.


29267356003_b1dc5b5df2_o.jpg 갠지스강의 흔한 아침


두 번째 여행에서의 인도가 너무 좋았기 때문에 여름, 한국으로 돌아오자마자 그해 11월에 다시 출발하는 3개월짜리 인도행 티켓을 끊었다. 그렇게 나의 세 번째 인도이자 이제는 벌써 꽤 오랜 시간이 지난, 5년 전의 기억이 된 여행이 시작되었다. 이 여행에서 나는 다시 콜카타에서 시작해 다르질링에 갔다가 북인도와 라지스탄 일대를 3개월 간 돌았는데 인도를 여행하는 데 있어서 계획은 아무 필요도 없는 종이짝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달았다. 다르질링에서 시킴 지방으로 가려고 했으나 감기 몸살이 나서 시킴 여행을 포기하고 따뜻한 바라나시로 내려왔으며, 이후로도 나는 처음 계획을 세울 때는 갈 생각도 없었고 잘 알지도 못했던 디우나 마운트 아부 같은 도시들을 여행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인도에서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설령 정해진 것이 있었다 하더라도 언제든 변할 수 있고
변해도 되는 가능성이 존재했다.


인도는 그런 점이 좋았다. 인도에서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설령 정해진 것이 있었다 하더라도 언제든 변할 수 있고 변해도 되는 가능성이 존재했다. 여행 계획표는 쓰레기통으로 직행하기 위해 만든 것 같았고, 기차 시간표도 바뀌기 위해 있는 것 같았으며, 오토릭샤 값을 비롯해 모든 가격들도 고무줄처럼 왔다 갔다 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보였다.

또한 인도는 모든 것이 불편한 곳이었다. 매일매일이 흥정과 싸움의 연속이었고, 주의력이 부족한 나에게 길가다가 소똥을 밟는 일은 흔한 일이었고, 숙소에서는 원숭이가 창문으로 들어와 방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기도 했다. 화장실에는 비치된 화장지가 없고, 정전은 일상이었고, 6명이 정원인 슬리퍼 기차 한 칸에 갓난아기들을 포함 27명이 타고 온 적도 있다. 그런데 정말로 이상한 것은 모든 것이 불편했기 때문에 모든 순간이 좋았다는 것이다.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힘들지만 여행을 하며 매일 어떻게 흥정을 해야 하고, 얼마까지 가격을 깎아야 하고, 무엇을 먹어야 향이 강한 음식을 잘 못 먹는 내가 배를 채울 수 있을 것이고, 다음엔 어느 도시로 가야 할지와 같은 불편하고 원초적인 고민들을 해야 했던 것이 역설적으로 좁았던 내 마음에 여유를 주고 어떤 상황에든 초연할 수 있는 안정감을 주었다.

한국으로 돌아와 더 이상 교통수단을 이용하며 바가지를 쓸 일이 없어졌고, 길가다 소똥을 밟을 일도 없었고, 정전도 1년에 한두 번 있을까 말까 한 드문 일이 되어 버렸지만 인도에서의 그 불편했던 날들이 그립다고 말하면 인도에 가 본 적 없는 사람들은 이해할 수 있을까.



조금씩 빛바랠 법도 한데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점점 더 선명해지는
오래전 여행의 기억들이 여전히 나를 인도로부터 헤어 나올 수 없게 만든다



두 번째 여행에서 태국 빠이에서 우연히 만나 인도까지 함께 동행하게 된 H언니는 바라나시의 미로 같은 골목길을 걸으며 이렇게 말했다. 5년 만에 다시 오는 바라나시인데 그때와 달라진 게 하나 없다고. 그때 나는 5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여행을 돌이켜보기에는 긴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정확히 5년이 지난 지금, 나는 지금으로부터 5년 전의 인도가 너무나 그립다. 조금씩 빛바랠 법도 한데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점점 더 선명해지는 오래전 여행의 기억들이 여전히 나를 인도로부터 헤어 나올 수 없게 만든다. 아마 그때의 언니도 그런 마음이었겠지. 그래서 5년 전에도 쓰지 않았던 여행기를 5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쓰게 됐다. 날이 갈수록 선명하게 떠오르는 그날들의 기억을 기록하기 위해.





인도를 여행하면서 여행의 달인 같은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몇 달째 혹은 몇 년째 인도를 여행하고 있는 사람들, 한국말을 하지 않으면 한국인인지 모를 정도로 까맣게 타서는 현지인들과 동화되어 지내는 사람들, 어린아이와 함께 여행하는 부부, 서양의 노부부, 인도에서 처음 만나 결혼하고 다시 인도로 돌아왔다는 커플, 인도가 좋아 아예 게스트 하우스를 차려 버린 나와 동갑인 여자, 인도가 처음이라고는 하는데 겁도 하나도 없고 못 먹는 것도 없는 여행자 등등 인도는 여행 n년차, 여행이 곧 생활이고 생활이 곧 여행인 고수들의 집합소 같았다.


그러나 나는 그런 베테랑 여행자가 아니고 오히려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었다. 어쩌다 보니 용기 있게 인도행 티켓을 끊었지만 막상 혼자 해보겠다고 와서는 제대로 혼자 다녀본 적도 없는, 모험심은 많지만 겁도 그만큼 많아서 하고 싶은 것들을 전부 다 실천에 옮기지 못하는, 또한 현지 음식을 먹고 싶어도 강한 향이 입에 맞지 않아 한국 음식을 찾고 마는 평범한 여행자 말이다. 어떤 사람들처럼 오랜 기간을 여행하지도 않았고 많은 도시를 가보지도 못했고, 현지인의 집에 가 본 적도 없고, 현지 음식은 입에 맞지 않았고, 인도인들과 많은 대화를 나눈 것도 아니었다.


이 글은 나처럼 평범한 여행자가 평범하지 않은 인도에 가서 겪은, 평범하지만 전혀 평범하지 않은 일들을 쓴 글이며, 또한 낯선 시선들로 가득 찬 인도 공항을 빠져나와 여행자 거리의 숙소까지 이동하는 첫걸음 그 자체가 이미 큰 모험이자 도전이었던 사람의 글이다. 마지막으로, 지극히 평범하기 때문에 아무런 제목도 붙일 수 없었지만, 언젠가는 근사한 제목이 생길지도 모르기에 한 자리를 비워 둔 나의 지난 인도 여행의 기록이기도 하다.




1. 이 글에서는 봉사활동에 관해서는 따로 쓰지 않고 이후 떠난 두 번의 인도 여행에서 겪은 일들과 길 위에서 했던 생각들을 쓰고자 한다. 각 글의 제목은 편의상 첫 번째 인도 여행의 첫 번째 도시는 1-1, 두 번째 도시는 1-2, 두 번째 여행의 첫 도시는 2-1과 같이 표기하려고 한다.

2. 나는 사진에 취미가 없을뿐더러 못 찍기로 유명하다. 그래서 이 여행기는 글을 위주로 쓰되, 여행 중에 단지 기록을 위해 찍어 둔 사진 몇 장씩만을 첨부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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