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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콜카타에서 도망치기

인도에서 무너지다.

by 오트라떼

봉사활동을 위해 간 인도 첸나이 공항에 처음 내렸을 때처럼 설렘을 가득 안고 태국 방콕에서부터 타고 온 비행기에서 내려 콜카타 땅을 밟았다. 인도 서부 벵골 주의 중심 도시인 콜카타(Kolkata)는 인도의 다른 대도시들과는 달리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고 있다는 느낌이 유독 강했는데, 아마 아직도 남아 있는 인력거들이나 번화한 대도시의 높은 건물들 사이로 존재하는 수많은 슬럼가들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콜카타의 상징, 노란 택시


나는 설렘에 가득 차 있었지만 그것들이 모두 깨어지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우리는 여행자 거리 서더 스트릿(Sudder Street)으로 가 방콕의 도미토리에서 만난 한 여행자가 추천해 준 숙소에 짐을 풀었다. 콜카타는 다른 도시들에 비해 방세가 유독 높은 편이었고 마침 그분이 추천해 준 곳은 무척 싼 가격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별다른 고민 없이 그 숙소로 향했던 것이다.

그런데 웬걸, 방값을 결제하고 방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느껴지는 꿉꿉한 공기와 보기에도 눅눅해 보이는 침대 덕에 무거운 배낭만 내려놓고 침낭을 사기 위해 다시 마켓으로 나와야 했다. 침낭을 샀어도 그날 밤의 잠자리는 편하지 않았다. 침낭 위에 몸을 누이면 자꾸 온몸이 간지러운 것 같아 밤새도록 제대로 눈을 붙일 수가 없었다. 방 밖 아래층에 있던 공용 화장실과 샤워실도 마치 귀신이 나올 것처럼 어두 컴컴하고 무서워서 화장실조차 혼자 갈 수가 없었다.


여행자 거리 서더스트릿 인근의 시장 골목


다음 날에는 콜카타 시내를 돌아다녀 보았다. 아침은 여행자 거리에 위치한 노점 샌드위치 가게에서 해결했다. 즉석에서 각종 야채와 햄 등을 넣어 토스트해 주는 곳이었는데 고수가 보이길래 빼 달라고 미리 말했지만 모든 재료들이 완벽하게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샌드위치를 한 입 베어 물자마자 진한 고수 향을 느낄 수 있었다.

태국을 여행하면서 처음으로 고수를 먹어 보았다. 여행을 준비하면서부터 다들 '마이 싸이 팍치(고수 빼 주세요)'라는 태국어는 꼭 외워가야 한다길래 도대체 어떤 맛이기에 그런지 궁금해서 견딜 수 없었다. 호기심도 잠시, 나는 고수를 정말 싫어하게 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자꾸 먹다 보면 맛있어지기도 하고 특히 쌀국수 같은 음식들은 고수가 빠지면 섭섭할 지경에 까지 이른다던데 나는 이후 오랜 기간을 여행하며 수도 없이 많은 고수를 고의로 혹은 실수로 먹었으나 끝내 적응하지 못하였다. 한 번은 억지로 먹어 보려다가 정말로 토할 뻔한 적도 있다. 그렇게 아침부터 고수향 가득한 샌드위치를 꾸역꾸역 먹으며 인도에 왔음을 다시 실감할 수 있었다.


우리는 아침을 먹고 말리끄 가트 꽃시장(Mallick Ghat Flower Market)으로 향했다. 후글리 강변 하우라 철교 아래쪽에 위치한 꽃시장의 아침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꽃시장이라기에 나는 한국의 화훼 단지처럼 다양한 종류의 꽃들을 파는 곳을 상상했는데 실제로는 조금 달랐다. 대부분 아래 사진에 보이는 노란색과 주황색 꽃들을 줄로 연결해 놓은 형태의 꽃을 팔고 있었는데, 인도를 여행하다 보면 자주 보게 될 이 꽃들은 종교의식이나 각종 축하 의식 등에 사용된다고 한다.


말리끄 가트 꽃시장의 아침 모습


콜카타에는 다른 인도 도시들과는 달리 유럽풍의 건물들이 많았다. 보기에 예쁜 건물들이 많아서 사진을 찍기에는 좋았지만 사실 식민 지배 시절의 산물인 유럽풍 건물들과 노란 택시, 트램 그리고 그와 대비되는 인력거들이 한데 뒤섞여 있는 모습에는 설명하기 힘든 이질감이 있었다. 또한 아직도 명예살인이라는 이름의 여성 인권 침해가 존재하는 인도의 시골 마을과 달리 콜카타에서는 공원 나무 밑에서 양산을 쓰고 얼굴을 가린 채 애정행각을 벌이는 젊은 인도인 커플들을 숱하게 볼 수 있었다. 그때의 콜카타는 나에게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아이러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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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893272955_d9c18e6937_o.jpg 콜카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유럽풍 건물들과(위) 알록달록한 우체통(아래)




콜카타에는 빅토리아 메모리얼(Victoria Memorial)이라는 유명한 관광지가 있다. 대영제국 시절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을 추모하기 위해 만들어진 곳이며, 또한 그 정교하고 아름다운 외관으로 콜카타를 대표하는 상징과도 같은 건축물이기도 하다. 그러나 나는 이곳을 다녀온 후 콜카타에서 더욱 빨리 떠나고 싶어 졌다.


빅토리아 메모리얼의 외관


먼저 매표소 직원은 내 거스름돈을 떼먹으려고 했었다. 처음에는 실수로 잘못 계산한 줄 알았지만 내가 계산이 잘못되었음을 말했을 때 모자란 잔돈을 건네주던 그 직원의 표정에서 그것은 실수가 아니었음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아무리 길거리 장사꾼들이 여행객들에게 바가지를 씌우고, 릭샤꾼들이 생각나는 대로 값을 불러도 그래도 유명 관광지의 공식적인 매표소 직원은 다를 거라고 생각했는데 모든 것은 항상 내 상상 그 이상이었다.

첫 도시였던 콜카타에서만 해도 나는 인도에 적응하지 못한 상태였다. 여행 후반이었더라면 그냥 이런 일도 있었지 하고 넘겼을 일에 그날 나는 무척 기분이 나쁘고 실망스러웠다. 사람 똥인지 소똥인지 모를 똥들이 길거리에 널브러져 있는 광경도 싫었다. 우습게도 그 똥마저 그리워하게 될 줄은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빅토리아 메모리얼 내부에서는 함께 간 일행들과 서로 구경하는 속도가 달라 각자 관람한 후 나중에 만나기로 했는데 메모리얼 내부를 혼자 돌아다니다 낯선 인도 남자가 나에게 말을 걸었고 그때만 해도 경계심이 부족했던 나는 그와 스스럼없이 대화를 하게 되었다. 나는 한국에서 왔고 학생이며 그 남자는 인도에서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이고 같은 지극히 평범하고 정상적인 대화가 이어지다가 그 남자가 나에게 같이 사진을 찍기를 제안했고 이곳은 사람이 너무 많으니 계단 위로 올라가자고 했다. 이상한 느낌이 살짝 들기는 했어도 메모리얼 내부는 계단 위이든 아래이든 사람이 무척 많았으며 그 남자가 나쁜 사람 같지는 않아 그를 따라갔지만 그는 사람들이 시야에서 사라지자마자 가까이서 사진을 찍자며 내 어깨를 안으려고 했다. 나는 겁이 나서 그 자리를 박차고 도망을 나왔고, 구경도 하지 않고 메인 홀에서 일행들만 찾아다녔다. 이 역시 여행 후반이었다면 그 남자를 따라 계단을 올라가는 일은 애초에 없었을 것이다. 처음 콜카타에서의 나는 모든 것이 서투르고 겁이 많은 여행자였다. 그때 나에게 콜카타는 비위생적인 곳이었고, 매표소 직원도 믿을 수 없는 도시였고, 사람 많은 유명 관광지에도 변태가 출몰하는 위험한 도시였다.


그래서 우리는 콜카타에서 도망쳤다. 아니, 나는 도망쳤다. 봉사활동을 했던 첸나이에서의 좋았던 추억들이 모두 부서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나마 남아 있는 좋은 기억들까지 다 부서져 버리기 전에 이 도시를 떠나고 싶었다. 나는 나의 추억을 가차 없이 깨뜨린 콜카타가 싫었다, 그때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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