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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트라떼 May 20. 2018

2-10. 바라나시가 또다시 나를 불렀다.

갠지스강 위에서 스물여섯 살이 되다. 

 크리스마스를 마운트 아부에서 보냈으니 이제 다음 할 일은 1월 1일을 어디에서 맞이할지 정하는 일이었다. 나는 맥그로드 간즈나 암리차르와 같은 북쪽으로 올라가려고 했다. 그렇지만 다르질링에 두 번을 갔다가 두 번 모두 감기에 걸려서 내려왔고, 마운트 아부마저 추웠던 기억밖에 없는데 더 북쪽 지방으로 올라가게 된다면 보나 마나 또 어딘가 골골거리면서 따뜻한 곳을 찾아 내려오게 될 것이 불 보듯 뻔했다.  


 12월 30일 새벽, 나의 머리는 북인도에 가 있었지만, 몸은 조드푸르를 지나 델리에서 바라나시로 향하는 기차 안에 있었다. 바라나시에는 사람을 끌어 당시는 묘한 인력 같은 것이 있어서, 바라나시에 있을 때는 땅바닥이 나를 끌어당겼고, 다른 도시에 있을 때는 바라나시 그 자체가 나를 끌어당겼다. 그렇게 나는 도시가 사람을 부르는 힘에 이끌려 이동했다.  시타르 선생님은 나를 보자마자 또다시 ‘Life is good?’이라고 물었다. 암요. 좋고 말고요, 여행하는 데 안 좋을 리가 있겠어요. 

 

 그동안 여행하면서 만났던 사람들도 대부분 다 바라나시에 있었다. 조드푸르 숙소에서 한국인 언니들을 만났는데 그 언니들도 함께 바라나시로 왔다. 사람이 너무 많아져서 점심은 언니들과 먹고 저녁은 이전에 만났던 일행들과 먹는 일상이 반복되었다.  


 연말의 바라나시는 수많은 여행객들과 인도인들로 북적거렸다. 특히 한국인 여행객들이 엄청나게 많아졌는데 아마 한국의 방학철이어서 그런 것 같았다. 바라나시에 딱히 비수기라고 할 만한 시기는 없지만 그래도 내가 왔었던 5월과 11월에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지니 비좁은 뱅갈리 토라 골목길을 걸을 때도 가끔 줄을 서서 지나가야 했고(원래도 종종 그랬지만) 가트에 앉아 멍 때리기에는 더욱 좋지 않아졌다. 우선 내가 앉고 싶은 곳에는 이미 다른 사람이 앉아 있는 경우가 많았고, 어쩌다 괜찮은 자리를 차지해서 앉아 있어도 아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지나가다 보고 말을 거는 사람들이 늘었다.  


가트의 밤


 세 번째로 다시 찾은 바라나시는 사람도 공간도 모든 것이 익숙했다. 익숙하다는 것은 더는 새로이 적응을 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었고 그것은 여행 중인 나에게는 지금이 곧 떠나야 할 시간이라는 것을 의미했다.  

다음 도시로 여전히 미련을 버리지 못한 맥그로드 간즈에 올라갈까 하다가 더는 버스를 타기 싫어서 요가의 성지로 널리 알려진 리시케시에 가기로 했다. 내가 리시케시에 간다는 말을 듣고 디우에서 함께 다녔던 일행 중 한 명이 함께 가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리시케시는 종교적인 이유로 금주(禁酒)와 채식의 도시였는데, 술을 무척 좋아하는 그 친구는 리시케시에 가면 술을 마실 수 없다는 사실을 알자마자 행선지를 바꿔서 카주라호에 가기로 했다. 

그런 고로 리시케시는 자이푸르 이후로 오랜만에 혼자 이동해서 가는가 싶었더니 이번에는 디우에서 만난 또 다른 일행이자, 처음 리시케시에 같이 가려고 했던 친구의 친구인 D가 함께 가고 싶다고 해서 또다시 새로운 도시로의 동행을 시작하게 되었다. 우리는 며칠 뒤 리시케시에서 버스로 1시간 거리인 하리드와르 역까지 가는 기차를 예매해두고 바라나시에서의 남은 날들을 보냈다. 


뱅갈리 토라의 어느 식당에서, 개인지 사람인지

 

 12월 31일에서 1월 1일로 넘어가는 밤에는 같은 숙소에 묵었던 사람들과 함께 배를 빌려 디아를 띄우기로 했다. 디아(Dia)는 꽃으로 장식해 놓은 일종의 향초인데 불을 붙여 강물에 띄우면서 소원을 빌 때 쓴다. 바라나시에서는 가트에 앉아 있으면 디아나 엽서를 파는 어린아이들을 수도 없이 볼 수 있으니 디아를 구하는 일은 전혀 어렵지 않고, 오히려 원치 않아도 아이들의  간절한 눈빛에 이끌려 사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디아 띄우기에는 실패했다. 그냥 불만 붙여서 강물에 띄우면 되는 줄 알았는데 물에 띄우자 불이 금세 꺼지고 말았다.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래도 소원은 빌었다. 그렇게 나는 인도 바라나시 갠지스강 위에서 스물여섯 살이 되었다.  

 

 리시케시로 떠나기 전 마지막 날에는 같은 숙소에 묵고 있던 한국인 두 명과 꽤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고작 한두 살 차이인 우리 셋은 다들 비슷한 고민을 하고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어서 대화가 잘 통했는데, 인간관계, 진로, 성격, 여행자로서의 삶 등에 대해 내가 하는 고민은 나만의 고민이 아니라는 것, 나만 특별나게 괴로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많은 위로를 받았다.  





 바라나시의 가트에는 떠돌이 개들이 많다. 인도 여행을 준비하는 여행자들이라면 길거리를 떠도는 개들은 어떤 세균을 가지고 있을지 모르니 만지지 말라는 말을 익히 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개를 정말 좋아하는 나는 그런 말들을 무시하고 가트에 앉아 있을 때 항상 내 옆에 따라 누운 개들을 쓰다듬어 주곤 했었다. 그중 유독 내가 좋아했던 개가 있었는데 누런색 털에 호리호리한 몸통을 가진 개였다. 그런 생김새의 개는 바라나시에 숱하게 많지만 나는 그 비슷하게 생긴 개들 중에서 어느 개가 그 개인지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이런 글을 쓰면 나를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는 그 개와 뭔가 통하는 것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가트에 앉아 있을 때 항상 나와 털끝이 겨우 닿을 법한 거리를 두고 누운 채로, 자는 것도 깨어있는 것도 아닌 상태로 눈만 꿈뻑꿈뻑 거리고 있든 그 녀석은 내가 바라나시를 떠나기 전날 마지막으로 가트에 앉아 있었을 때 처음으로 막무가내로 나의 무릎 위로 올라와 내 품에 파고들었다. 마치 오늘이 마지막임을 아는 것처럼.  



 나는 이 개를 첫 번째 인도 여행에서도 만났고, 두 번째 인도 여행에서 처음 바라나시에서 왔을 때도 만났고, 이번에도 역시 만났지만 내 무릎 위로 올라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다음날 아침, 리시케시로 출발하기 전 그 개가 무언가 자꾸 마음에 걸려 잠시 가트에 나갔지만 찾아볼 수 없었다. 그 개가 내 무릎 위에 누워있던 시간, 우리가 처음으로 적당한 거리 없이 아주 가까이 붙어 있던 그 길지 않은 시간이 정말 마지막이었던 것이다.  나는 언젠가 다시 바라나시에 가게 될지도 모르지만 그 개를 다시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냥 그런 느낌이 자꾸만 든다.  


 그렇게 나는 그동안 함께 지냈던 사람들에게, 좋아했던 라씨 가게에, 뱅갈리 토라에, 갠지스강에 작별 인사를 하고 바라나시를 떠났다. 그 개만은 한 번 더 보지 못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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