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욱 없음
라자스탄 주에 위치한 조드푸르(Jodhpur)는 상당수의 집 외벽이 파란색으로 칠해져 있어 블루 시티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그러나 한국인들 사이에서는 영화 <김종욱 찾기>의 배경이 된 도시로 더욱 유명하다.
내가 인도에 간다고 말했을 때 친구들은 김종욱을 찾아오라고 했다. 여행 중에 만난 한국인 여자 여행자들 중에서도 김종욱을 찾아서 가겠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더 이상 그 영화를 봤는지 안 봤는지와는 상관없이, 그리고 정말 여행지에서 연인을 찾아가겠다는 생각으로 온 건지 아닌지와 상관없이 김종욱을 찾겠다는 문장 자체가 인도의 한국인들 사이에서 이제는 일종의 관용구가 된 것 같았다.
나 역시 그런 표현을 써 본 적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사실 내가 조드푸르에 가고 싶었던 이유는 김종욱보다는 파란색 때문이었다. 파란색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색이다. 라피스 라줄리(Lapis-lazuli)라는 보석이 있다. 짙은 파란색 보석으로 청금석(靑金石)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파란색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이 라피스 라줄리를 모으는 취미가 있다.
태국 방콕의 한 미술관에서 캔버스가 온통 짙은 파란색으로 뒤덮여 있던 이름 모를 작품을 30분이 넘게 앞에 서서 멍하니 바라보았던 적이 있다. 파란색, 특히 검을 정도로 짙은 파란색을 보면 나는 마치 헤어 나올 수 없는 깊은 바다를 마주한 것처럼,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가슴속에서 올라오곤 했다.
파란색이 좋으니까, 그래서 조드푸르에 갔다. 시작은 언제나 그렇게 단순하고 쉬웠다. 그동안 함께 여행했던 사람들은 대부분 당일치기를 하고 델리 등 다른 도시로 이동하거나 1박 정도만을 머문 이곳에서 나와 일행은 3일을 보냈다. 여느 도시와 마찬가지로 딱히 했던 것은 없었다. 해가 뜨면 숙소에서 밥을 먹고 밖으로 나가서 온통 파란색인 골목길을 걷고 또 걷는 것이 전부였다.
이곳은 유독 아이들이 많은 도시이기도 해서, 골목길을 지나 또 다른 골목길로 들어서면 어디에나 길거리에서 뛰노는 아이들이 있었다. 그 아이들은 우리에게 할로, 꼬레아?, 원 루피, 포토 포토라고 말을 걸며 짓궂게 쫓아오곤 했다. 나는 세상 물정 모르고 순수하기만 할 것 같은 아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원 루피라는 단어를 싫어했다. 마음이 무거워서 아이들을 피해 다녔지만 어디에도 그런 아이들이 없는 곳은 없었다.
조드푸르에 있는 인도에서 가장 큰 요새인 메헤랑가르 요새(Meherangarh Fort) 맞은편에는 선셋 포인트가 있는데 이곳에서 보는 일몰이 장관이다. 말이 선셋 포인트지 제대로 된 전망대는 아니고 거대한 바위 덩어리 위에 올라가는 거라고 생각하면 되는데 이미 조드푸르에 다녀갔던 사람들이 말해주어 알게 된 곳이다. 가는 길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골목길을 따라 걷다가 계단을 한참 올라갔던 것 같다. 바위 위에서 본 해 질 녘 조드푸르는 정말 아름다웠다. 사실 상당수 집들이 파란색으로 외벽을 칠한 것은 맞지만, 그렇지 않은 집들도 많았기 때문에 온 세상이 전부 파란색인 풍경을 기대하면 실망할지도 모른다. 듬성듬성하지만 어디를 보아도 파란색이 있었고, 우리가 올라갔을 때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마치 이 도시에는 파란 집들과 파랗지 않은 집들과 여행자인 우리만이 존재하는 것 같았다. 붉은 저녁노을에 파란색이 점점 꺼져가는 모습은 마치 한 폭의 그림과도 같았다. 파란색을 좋아하는 나에게 조드푸르는 도시 전체가 하나의 선물 같은 곳이었다.
많은 인도 숙소들은 식당을 겸해서 운영하고 있어 숙박객과 외부인들에게 음식을 판다. 우리 숙소에도 식당이 있었고, 숙소에서 음식을 팔면 어느 정도는 그곳에서 사 먹는 것이 암묵적인 관습이었기 때문에 매 끼는 아니지만 가끔 숙소에서 밥을 사 먹곤 했었다.
그런데 문제는 소 눈망울을 가진 우리 숙소의 요리사는 너무나 착했지만 요리를 정말로 못한다는 것이었다. 웬만하면 아무 거나 잘 먹는 나조차도 그의 음식은 견디기 힘들었다. 한 술 더 떠 그 착한 요리사는 맛없는 음식을 내놓고서는 밥을 먹는 우리에게 5분이 멀다 하고 와서 맛이 어떤지 물었다. 어쩔 수 없이 맛있다고 대답하면 그제야 만족하고 맛있게 먹어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주방으로 사라졌다가 다시 5분이 지나면 나타나 같은 질문을 반복하는 것이었다.
한 번은 다른 숙소에서 운영하는 식당에 점심을 먹으러 간 적이 있는데 음식이 아주 저렴하고 맛있었다. 하지만 맛없는 음식을 만들어 놓고서는 5분마다 찾아와 맛있냐고 물어보는 뻔뻔한 요리사가 나는 금방 그리워졌다.
조드푸르에서 보낸 3일은 무척 편안해서 걱정거리라곤 원 루피를 외치며 쫓아오는 아이들을 어떻게 피할지와 오늘은 우리 착한 요리사의 밥을 또 어떻게 먹어야 할지 하는 것 밖에 없었다. 이곳에서 좀 더 오래 머물고 싶었지만 12월 31일 전에 바라나시에 도착해 1월 1일을 갠지스강에서 맞이하고 싶었던 나는 며칠 만에 정이 많이 들어버린 조드푸르를 떠나기로 했다.
숙소 주인은 떠나는 날 인도 답지 않게 숙소비 영수증을 봉투에 담아서 주었는데 꽃이 그려진 노란 편지 봉투 겉면에는 'Wish you happy journey, Thanks.'라는 짧은 인사말이 손글씨로 쓰여 있었다. 김종욱이 없어도 조드푸르는 충분히 따뜻한 도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