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이면 충분하다
마운트 아부는 라자스탄 주 유일의 휴양지로 인도인들의 신혼여행지로 유명하며, 외국인보다는 인도 자국민 관광객이 많은 도시이다. 디우에서 가려면 일단 아메다바드까지 버스를 통해 나간 뒤, 아메다바드에서 아부 로드(Abu Road) 역까지 4시간 반 정도 기차를 타고 이동하고, 다시 아부 로드 버스 스탠드에서 1시간 정도 버스를 타면 된다. 아메다바드로 나갈 때는 디우에 들어올 때 탔던 엉덩이 아픈 공영버스를 타기가 겁이 나서 사설 야간 슬리핑 버스를 탔는데 공영버스에 비해 훨씬 편안했다.
해발 1,200m 산속에 위치한 마운트 아부는 무척 추웠다. 배낭여행자가 갈 만한 저렴한 숙소도 딱 한 군데밖에 없었는데 천정과 벽이 엉성하게 만들어져 있어서 밤이면 찬 바람이 새어 들어왔으며, 그마저도 크리스마스 연휴라는 이유로 방값은 이미 천정부지로 뛴 상태였다. 인도인들의 휴양지답게 외국인 여행자는 거의 없었고 그나마 있는 여행자들도 모두 우리와 같은 숙소에 묵고 있었다.
디우에 있다가 하루를 꼬박 달려오니 털모자를 쓰고 장갑을 끼고 자야 하는 도시에 도착했다. 인도 여행에 조금은 적응이 됐나 싶다가도 인도는 매일 나에게 새로운 미션을 던져 주어서 매일 다시 적응해야 하게끔 만들어 주었다. 태생이 겨울을 좋아하고 여름을 싫어하는 나지만 준비되지 않은 추위는 막을 도리가 없었다. 마운트 아부에서의 크리스마스는 정말로 추위에 떨었던 기억이 대부분이다.
내가 마운트 아부에서 좋아했던 것은 겨울 날씨답게 길거리 곳곳에서 파는 구운 옥수수와, 너끼 호수(Nakki Lake) 주변으로 펼쳐진 유원지였다. 사실 그 유원지는 경치가 좋다기보다는 아기자기하고 촌스러운 매력이 있었다. 어렸을 적 동네 문방구에서 팔았을 법한 어린이 장난감을 파는 가게들이 호수까지 내려가는 길을 따라 늘어서 있었고, 호수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오리배를 타며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멋스러운 구석이라고는 단 하나도 없는 이 소박한 호수가 그래도 나는 좋았다. 어렸을 적에는 나도 집 근처에 있던 작은 유원지를 좋아했었지만 나이가 들 수록 그곳에 놀러 가는 것은 유치한 일이 되어 버렸다. 엄마가 '너 어렸을 때는 여기 좋아했었잖아.'라고 말했을 때, 나는 새삼스럽게 언제 적 이야길 하냐고 대답했다.
마운트 아부의 작은 호수를 보고 있자니, 한 때는 좋아했었지만 이제는 유치하고 재미없는 곳이 되어 버린 공간들, 이를테면 우리 동네 유원지와 같은 공간에 대한 향수가 밀려왔다.
마운트 아부에서는 다른 문제가 하나 있었다.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였는데 방광염에 걸린 것이다. 여행기에 방광염 걸린 이야기를 쓰는 사람은 많이 없겠지만 아마 많은 여성 배낭여행자들이 남들에게 말하지 못하고 한 번쯤은 겪어 본 적이 있으리라고 생각하기에 써보도록 하겠다.
나의 경우 어디서 시작된 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마운트 아부가 아니라 디우에서부터 였던 것 같다. 아니 어쩌면 자이살메르에서 낙타 사파리가 끝난 뒤부터였던 것 같기도 하다.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겠지 했던 것이 마운트 아부에서는 낫기는커녕 점점 심해져서 인도 병원을 찾아서 항생제와 소염제를 처방받아먹었다. 참고로 이 약들은 효과가 없었고, 다음 도시인 조드푸르에서 약국에서 산 새로운 항생제를 먹고 나니 거짓말처럼 바로 나았다.
인도를 여행할 때는 우선 위생이 가장 중요하다. 나처럼 고생하지 않으려면 여행을 시작한 지가 좀 되어 인도가 익숙해졌다는 생각이 들더라도 항상 첫날처럼 손을 자주 씻고 위생에 신경을 쓰는 편이 좋다. 나는 원래부터 땅바닥에 떨어진 것도 잘 주워 먹고 다니는 사람인지라 뭘 해도 괜찮을 거라고 믿고 별 신경을 쓰지 않고 다닌 것이 문제였을 수도 있다.
그리고 방광염에 일단 걸리면 자연적으로 낫기는 어렵다고 보면 된다. 그러니 괜히 버티지 말고 병원에 가거나 약국에서 파는 항생제를 사서 먹는 게 정신건강에도 이롭고 남은 여행을 잘 마치는 데도 좋을 것이다. 가끔 몸에 맞지 않아서 들지 않는 약도 있을 수 있으니 다른 약을 시도해 보는 것도 괜찮다. 하지만 인도는 감기약부터 시작해서 대부분의 약들이 엄청 독하니 감기약의 경우 반으로 잘라먹기도 하고, 항생제의 경우 꼭 밥을 든든히 먹고 먹어야 한다.
이렇게 인도인들의 휴양지라기에 낭만을 꿈꾸며 크리스마스를 보내러 온 마운트 아부에서 나는 좋은 기억이라고는 몇 개 없고, 그저 추워했고 방광염에 시달려서 고생했던 기억만 안고 돌아가게 되었다. 어떤 도시들처럼 시공간이 뒤바뀐 것처럼 비현실적이고 매력적인 곳이 있었다면 인도에는 이토록 지극히 현실적인 곳도 있었다. 물론 나에게는 차갑기만 한 마운트 아부였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이곳이 꿈같은 곳이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마운트 아부에 다시 가보고 싶냐고 누가 묻는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 한 번이면 충분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