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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트라떼 May 12. 2018

2-7. 디우, 잠시 다른 세상에 살다.

지상낙원에 닿다. 

 디우는 인도 서부의 해안도시이자 천국이었다. 이곳에서는 호객도 소음도 매연도 없었고 오직 싱싱하고 값싼 해산물과 스쿠터를 타고 달리면 기분이 좋아지는 해안도로, 매일 오후 이어지는 서너 시간 정도의 시에스타(하루 중 더위가 가장 기승을 부리는 오후 시간 대에 상점들이 모두 영업을 중지하고 낮잠을 자며 피로를 회복하는 시간)만이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사막의 도시 자이살메르에서 천국 디우까지 가는 길은 험난했다. 자이살메르에서 아메다바드까지 슬리핑 버스로 10시간, 아메다바드에서 디우까지 다시 공영버스로 10시간이 걸렸다. 슬리핑 버스는 그나마 나았다. 오래된 공영버스를 타고 제대로 포장되어 있지 않은 도로 위를 달리는 것은 온몸이 엉망진창이 될 것만 같은 일이었다.


아메다바드에서 디우까지 타고 온 공영버스


 디우에서는 우다이푸르에서부터 함께 온 일행들과 그 일행들이 나를 만나기 전에 다른 도시에서 만났던 다른 일행들까지 모두 모여 10명 정도 되는 대인원이 함께 다녔다. 물론 하루 종일 다 같이 다닌 것은 아니지만 싱싱한 해산물을 사서 숙소에서 직접 요리해 먹는 저녁 식사의 경우 인원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았으므로 꼭 다 함께 하곤 했었다.  

 우리는 모두 같은 게스트 하우스에 묵었는데 방 상태는 제각기 달랐고 인원이 많다 보니 모두가 좋은 방에 묵을 수는 없었다. 나와 일행 중 다른 한 명이 묵은 2층 방은 3층에 비해 시설이 엄청나게 열악했다. 방 안에 아주 오래된, 마치 인도 기차에서나 볼 법한 냄새나는 재래식 화장실이 있었고 수도꼭지는 잠기지 않아서 밤새도록 물이 샜다. 물론 인도 첫 여행에서 겪은 콜카타의 숙소의 아성에는 미치지 못했으나 이 좋은 휴양지 디우에서 불편한 방에 묵고 싶지는 않았기에 2층에 묵은 나와 다른 일행은 결국 다음 날 숙소를 옮겼다. 하지만 다른 일행들이 여전히 3층에 묵고 있었고 주방 사용을 허락하는 곳이 그 숙소밖에 없었기에 우리 둘은 여전히 매일 저녁,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예전 숙소로 가곤 했었다.  


 디우는 길이 약 13km의 작은 섬으로, 우리는 모두 스쿠터를 타고 다녔는데 스쿠터로 한 시간이면 섬 전체를 돌아볼 수 있었다.  나는 스쿠터를 태국 치앙라이에서 배웠다. 치앙라이와 근교 지역들은 길이 워낙 잘 되어 있어서 나 같은 초보자도 무리 없이 운전을 할 수 있었다. 디우 역시 스쿠터를 타고 다니기에 굉장히 좋았다. 다만 한때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는 아직까지 좌측통행이기 때문에 스쿠터를 빌리자마자 아무 의식 없이 오른쪽으로 달리던 나는 하마터면 사고를 낼 뻔하기도 했다.  


 또한 디우는 섬 마을답게 수산시장으로 유명하기도 한데, 우선 시내에 작은 수산시장이 있었고 섬 끝에 있는 바낙바라(Vanakvara)라는 곳에 큰 시장이 있었다. 바낙바라 수산시장은 아침 8시 이전이 가장 활발하기 때문에 이른 새벽 일어나 스쿠터를 타고 시장으로 향했다. 부둣가에 위치한 시장에 도착하면 진풍경이 펼쳐지는데, 항구에 정박된 배들의 깃발이 저마다 다른 색깔을 뽐내며 휘날리고 있었고, 그보다 더 화려한 인도 아주머니들의 사리(Sari, 전통적인 인도 여성 복장)들의 색이 어우러져 마치 갖가지 색의 물감을 칠해 놓은 듯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색들의 향연 사이에서 수많은 상인들이 바닥에 갓 잡은 생선들을 산더미처럼 쌓아 두고 팔고 있었다. 흥정을 하는 사람들, 흥정에 넘어가지 않으려는 상인들, 외국인이 신기한 듯 쳐다보는 시선들, 바닥에서 아직도 살아 움직이고 있는 고기들로 뒤섞인 새벽 수산시장은 생동감과 활력이 넘쳤다.  


작은 수산시장.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랴. 
바낙바라 수산시장의 아침1
바낙바라 수산시장의 아침2

 

 디우는 작은 섬이었지만 아름다운 곳은 넘치도록 많았다. 수산시장에서 사 온 생선들로 직접 만든 저녁 식사를 하고 일행과 함께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는 지는 하루가 아쉬워서 디우성 근처나 선라이즈 포인트까지 다녀오곤 했다. 어디를 가도 낭만이었고 어느 곳 하나 빠짐없이 아름다웠기 때문에 디우에서는 어느 곳에서 어떤 풍경을 봤는지 모든 기억이 뒤섞여서 잘 떠오르지 않는다.  

 한 번은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일행과 밤 바닷가에 담요를 깔고 누워 밤하늘에 가득한 별을 바라보다가 깜빡 잠이 들었다. 이 일은 지금 생각하면 어쩌면 위험할 수도 있는 일이었던 것 같다. 혼자라면 시도 조차 하지 못했을 일을 누군가와 같이 있었기 때문에 할 수 있었지만, 이 글을 보는 다른 사람들은 인도의 밤 바닷가에 누워 잠시 눈을 붙일 생각은 하지 않기를 바란다.  


 십 여 명에 달하는 우리 일행들 모두가 각자 스쿠터를 끌고 바닷가에 일몰을 보러 놀러 간 적도 있었다. 디우에서 우리의 여행은 항상 목적지가 없었다. 그냥 해안도로를 따라 달리다가 마음에 드는 곳이 있으면 스쿠터를 세우고 멈춰 몇 시간이고 이제 이만하면 됐다 싶을 때까지 머물렀다.  


 또 한 번은 섬 구석구석을 계획 없이 달리다가 야자수로 뒤덮인 바닷가 절벽 앞 공터 같은 곳을 발견해서 들어가 보았다. 관광구역이 아닌 경작지로 활용하는 곳 같았는데 사유지인지 아니었는지 조차 잘 모르겠다. 야자수 사이를 헤치고 절벽 앞에 다다르자 끝없는 바다가 펼쳐졌고, 절벽 아래로는 파도가 무섭게 부서지고 있었다. 나는 그때 꿈을 꾸는 것처럼, 마치 이 세상이 아닌 세상에 온 것 같았다. 밤 바닷가에 누워 잠이 들었던 우리는 그 절벽 앞에서도 낮잠을 잤다. 인도 자체가 비현실적인 곳들로 가득했지만 이날 디우의 그 바다는 특히 더 그랬다. 다시 야자수를 헤치고 스쿠터를 세워둔 곳으로 돌아올 때, 다른 차원에 잠시 들어갔다가 현실로 돌아 나오는 것만 같았다.  


야자수 사이를 지나가면, 
이런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인도에도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있었다. 우리는 크리스마스를 어느 도시에서 보낼지 고민하기 시작했고 우리들 중 몇 명은 디우에 남기로 하고, 또 몇 명은 바라나시로 돌아가기로 했으며, 나와 여기저기 바닥에 드러누워서 낮잠을 잤던 그 일행은 또 다른 휴양지인 마운트 아부에 가기로 했다. 디우에서는 헤어짐이 많이 아쉽지 않았다. 우리 모두는 비교적 장기간 여행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었고, 어디선가 이 사람들을 다시 만나게 될 것이라는 근거 없는 확신이 마음속 어딘가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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