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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트라떼 May 08. 2018

2-6. 황금빛이 춤추는 도시, 자이살메르

과거 속에서 여행하다

 자이살메르는 라자스탄 주 타르 사막 남부에 위치한 사막 도시로 황금의 도시, 골든 시티라고도 불리는 곳이다. 인도 라자스탄 주에는 이처럼 분명한 색깔을 가지고 있는 도시들이 많은데 내가 이번 여행 동안 지나 온 핑크 시티 자이푸르, 화이트 시티 우다이푸르와 골든 시티 자이살메르, 그리고 앞으로 가게 될 블루시티 조드푸르가 그 예들이다. 하얀색의 도시에서 한 밤을 달리고 나면 황금빛 도시가 펼쳐졌고, 또 한 밤을 자고 나면 세상은 온통 파란색이 되었다. 도시를 에워싸는 색깔이 달라지면 음식이 달라지고, 사람들의 성향이 조금씩 달라지고, 여행자들의 모습이 달라지고 그 외에도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우다이푸르에서 자이살메르까지는 야간 슬리핑 버스로 약 11시간이 걸렸다. 우다이푸르에서 M언니가 먼저 떠나고 나서 큰 허전함을 느꼈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이번 여행을 시작하고 나서 다르질링과 바라나시에서 만났던 사람들이 우다이푸르로 오게 되어 그들과 함께 자이살메르로 이동하게 되었다. 나의 인도 여행에서 '사람'이라는 단어를 빼면 아마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이다.  


 슬리핑 버스 이동은 처음이었는데 사람 한두 명이 누울 만한 작은 공간마다 문이 달려 있어서, 기차 슬리퍼칸에서 처럼 호기심에 가득 찬 낯선 시선들과 소리 없이 싸우지 않아도 되는 점이 좋았다.  

흔들리는 버스에 누워 창 밖을 바라보면 밤하늘의 별이 잘 보였다. 이어폰을 꽂은 귀에서는 좋아하는 노래들이 흘러나왔고, 버스가 굽이진 산길을 따라 돌 때마다 내 머리 위의 하늘도 함께 회전했다. 인도에서의 첫 슬리핑 버스 이동은 낭만의 밤이었다.  





 아침 8시가 조금 넘어 자이살메르에 도착했고 버스에서 내리자 나의 낭만은 끝이 났다. 버스가 도착한 정류장은 숙소 호객꾼들로 인산인해였다. 우리는 일행 중 한 명이 예전에 인도에 왔을 때 묵었던 숙소가 괜찮았다고 해서, 버스 정류장을 가득 메운 호객꾼 들을 지나쳐 그곳으로 이동했다. 우리들이 묵은 숙소는 구석진 곳에 있었지만 옥상에서 자이살메르 성이 훤히 보였고, 또 하나 작지만 장기 여행자로서 현실적인 장점은 방값은 저렴하지만 방마다 작은 베란다가 딸려 있어 빨래를 말리기 좋았다는 것이다. 바라나시에서는 속옷 빨래처럼 작은 것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숙소 옥상에 말려야 했는데 옥상으로 원숭이가 드나들었기 때문에 가끔씩 원숭이가 웃을 찢거나 갈취해가는 일이 발생하곤 했었다.  


 자이살메르는 처음 도착했을 때 버스정류장에서의 숙소 호객이 심했을 뿐, 바라나시나 우다이푸르와는 달리 길거리에서 '안녕하세요', '어디 가요?'하고 한국어로 말을 거는 인도인들은 거의 없어서 거리를 걸으며 조용하게 여유를 즐기기에 좋았다. 또한 사막 도시여서 그런지 도시 전체에 풍기는 특유의 황량함이 있었는데 그 쓸쓸하고 황량한 느낌이 좋아서 오래 머무르고 싶은 도시였다.  

 





 자이살메르 하면 낙타 사파리를 빼놓을 수가 없다. 보통은 1박 2일 코스를 많이 선택하며, 숙소를 통해 예약할 수 있는데 숙소마다 일정이 조금씩 다르고, 인원도 그때그때 신청한 사람에 따라 달라지게 된다. 우리는 나와 원래의 일행들을 포함해 총 6명이 출발하게 되었고, 사파리 일정에 관해서는 다른 숙소에서는 오후 3시경 출발해 한두 시간 낙타를 타고 바로 사막에 짐을 풀고 저녁을 먹는다던데 우리 숙소는 오전 9시에 출발해 낙타를 더 오래 타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낙타 사파리가 이번 인도 여행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던 나는 낙타를 오래 탄다는 말에 무작정 좋아했지만 이미 인도에 와서 낙타 사파리를 해 본 적이 있는 다른 일행들은 낙타를 오래 타는 게 너무 힘들지는 않을지 걱정을 했다. 

 나는 누가 옆에서 뭐라고 말하든 뭐든지 직접 경험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지만, 사실 경험자의 말은 귀담아듣는 편이 좋다. 낙타를 오래 탄다는 것은 결코 신나는 일이 아니었다. 우선 낙타의 등은 굉장히 딱딱해서 엉덩이가 너무 아팠다. 게다가 낙타는 생각보다 너무 커서 위에 올라가 있으면 무섭기까지 했다. 혹시 이 글을 볼 누군가가 앞으로 인도든 어디에서든 낙타 사파리를 할 계획이 있다면, 낙타를 타는 것이 평생소원이었거나 엉덩이가 강철로 된 사람이 아니라면 한두 시간이면 충분하다고 꼭 말해 주고 싶다.  



 저녁식사는 사막 한가운데에 모닥불을 피워 놓고 사파리 요금에 포함되어 있었던 닭과 감자로 해결했다. 그런데 하루 종일 체력을 소모했더니 다들 그 정도로는 배가 차지 않았고 우리의 가이드는 3천 루피를 내면 염소 한 마리를 먹게 해 주겠다는 제안을 했다. 마침 배도 고팠고, 3천 루피는 배낭여행자에게는 거금이었지만 6명이서 나눠 내면 나름 재미있는 경험이 될 것 같다는 생각에 염소를 먹어 보기로 했다. 그러나 이곳은 인도였고 나는 그 사실을 잠시 까먹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잠시 후 가이드는 살아 있는 염소를 우리에게 데리고 와서는 혹시 랜턴이 있는지 물었다. 일행 중 한 명의 헤드랜턴을 빌린 가이드는 그 염소를 우리가 있는 모닥불 쪽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곳에 데리고 가서는 죽여버렸으며 그것이 바로 우리의 3천 루피짜리 저녁 식사였다. 나는 채식주의자가 아니다. 그렇지만 눈 앞에서 방금 전까지 살아 있는 모습을 똑똑히 봤는데 이제는 모닥불 위의 바베큐가 된 염소를 차마 먹을 수는 없었다. 누구는 우리가 먹지 않아도 어차피 누군가에게 잡혀먹었을 염소라며 미안해하지 말라고 했지만 내 마음은 그렇지 못했다  


 어찌어찌 저녁 식사를 끝낸 후의 사막의 밤에 대해서 자세히 쓰고 싶지만 쓸 만한 것이 별로 없다. 왜냐하면 좋아하는 양주라며 술을 가져온 일행이 있었는데 맛있어서 자꾸 마시다 눈을 떠보니 이미 새벽 5시였기 때문이다. 가물가물한 기억 속에서 나무 밑에서 자겠다고 버티는 나와, 거기서 자면 얼어 죽는다고 불 근처로 오라고 하는 일행 언니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창피했다. 그러나 내가 쪽팔리거나 말거나 사막의 이른 새벽은 여전히 깜깜했고,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처럼 무수한 별들로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침낭에 누운 상태 그대로 넋을 놓고 바라보는데 갑자기 별똥별 하나가 떨어졌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별똥별이었다. 소원을 빌어야 하는데 순식간에 지나간 일이라 소원은커녕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자이살메르로 돌아오는 길에 또 낙타를 두 시간 가량 탔다. 전날의 과음으로 술병이 난 데다 사막의 아침 바람은 매섭게 차가워서 나는 낙타의 등 위에서 덜덜 떨었다. 낙타몰이꾼은 이런 내 마음을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무엇이 그리 신나서 자꾸 우리의 낙타를 빨리 가라고 몰아 댔고, 낙타가 뛰는 것에 가까울 정도로 빨리 걸으면 걸을수록 나는 점점 온몸이 아파왔다. 특히 아랫배가 엄청 아팠는데 낙타가 빠르게 움직이면서 생기는 충격이 그대로 배에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 그래도 나만 아팠던 건 아닌 것 같다. 우리 6명 중 다른 한 명도 더 이상 낙타를 타고 싶지 않아해서 나와 그 친구는 낙타에서 내려걸어왔다. 5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 보면 이것도 다 추억이지만 그때 나는 버킷리스트를 실행하러 간다며 방방 뛰며 사파리를 시작했고, 돌아올 때는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자이살메르로 돌아와 하루는 숙소 사장님이 삼 듄(Sam sand dunes)이라는 곳에 일몰을 보러 같이 가자고 해서 일행과 셋이서 차를 타고 다녀왔다. 삼 듄은 자이살메르 시내에서 약 40km 떨어져 있는데 약 2km에 걸쳐 거래한 모래 언덕들이 늘어서 있는 곳으로, 많은 낙타 사파리 프로그램의 목적지이기도 하고(우리가 했던 사파리는 아니었지만) 그 밖에도 짧게 할 수 있는 낙타 라이딩과 일몰로도 유명한 관광지였다. 아무래도 유명한 관광지다 보니 여행객들이며 인도인이며 너 나 할 것 없이 인파가 많아서 낙타 사파리에 갔을 때처럼 황량한 사막은 아니었다. 나는 그나마 사람이 적은 작은 모래 언덕 하나에 앉아 저녁노을을 바라보았다.  


삼 듄에서의 일몰. 어디를 둘러보아도 사람과 낙타가 없는 곳은 없었다.


 두 번째 여행을 시작한 지도 벌써 한 달이 넘었다. 아직 남은 날들이 많았지만 그래도 점점 돌아가야 할 시간이 다가오는 것 같아 빠르게 지나가는 하루하루가 아쉽기만 했다. 


 자이살메르에서 보내는 마지막 밤에는 일행과 함께 자이살메르 성에 갔다. 성을 한 바퀴 돌고 성 내부에 있는 뷰포인트에 한참을 앉아 야경을 바라보았다. 뷰포인트에서 내려다본 자이살메르는 비현실적인 황금색 도시였다. 콜카타나 바라나시에서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면 자이살메르에서는 마치 과거를 여행하는 것 같았다. 이 무렵 인도는 나에게 우주였다. 내가 현재 서 있는 곳의 시공간이 매일 달라졌다. 특히 바라나시가 그랬고 자이살메르가 그랬다. 인도는 여전히 이상한 나라였다.  


 원래 나는 라자스탄을 여행한 후 다시 델리로 올라가 북인도 맥그로드 간즈로 가려고 했었다. 북인도 여행을 계획하다가 또 정신을 차려 보니 디우로 떠난다는 일행들의 꾐에 넘어가 디우에 같이 가게 되었다. 인도 여행에서 계획을 짤 시간이 있다면 밖에 나가 한 걸음이라도 더 걷는 편이 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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