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익숙해질 수 없는 이별
라자스탄주 남부에 위치한 우다이푸르는 가장 유명한 피촐라 호수(Lake Pichola)를 비롯해 인공호가 많아 호반의 도시로 알려진 곳이다. 피촐라 호수 한복판에 떠 있는 옛 궁전을 개조하여 만든 레이크 팰리스 호텔의 풍경 또한 워낙 유명해 우다이푸르에 가 보지 않은 사람이더라도 사진을 통해 이미 접해 본 사람이 많을 것이다.
나는 우다이푸르에서 일주일을 머물렀고, 나에게 이 도시는 아름다운 호수를 제외하고서는 특별한 맛집도 없고 별로 할 것도 없는 생각보다 혼잡하고 시끄러운 곳이었지만 호수 하나로 모든 게 다 용서가 되는 곳이기도 했다. 우다이푸르는 바라나시처럼 할 일이 없어도 생각보다 시간이 잘 가는 곳이었고, 그래서 일주일 이상 머물러 있는 여행자들도 많다고 오기 전부터 듣기는 했지만 그게 내가 될 줄은 몰랐다.
길 위에서의 하루하루는 만남과 이별의 반복이었고,
잠시 헤어짐에도 익숙해질 수 있다는 생각을 했지만
그것은 착각이고 오만이었다.
많은 사람들을 새로 만나고 떠나보냈다. 길 위에서의 하루하루는 만남과 이별의 반복이었고, 바라나시에서 잠시 헤어짐에도 익숙해질 수 있다는 생각을 했지만 그것은 착각이고 오만이었다.
우다이푸르에서는 우연히 만난 M언니와 며칠간 같은 방을 썼다. M언니는 독특한 말투에 개성 있는 패션감각을 자랑하는 재미있는 사람이었다. 언니와는 하루 종일 붙어 다니기는 했어도 특별히 기억에 남을 만한 무언가를 함께 하지는 않았고, 다른 일행들과 달리 한국에 돌아와서도 만나지 않았다. 하지만 설명하기는 힘들어도 나는 어쩐지 며칠 함께 보내지도 못한 이 언니가 친언니처럼 편하고 좋았다.
M언니가 먼저 떠나고 나는 며칠을 더 우다이푸르에서 보냈다. 언니가 떠나던 날, 함께 쓸 땐 좁았다가 이제는 커져 버린 텅 빈 방에 혼자 앉아 있는데 갑자기 너무 쓸쓸해졌다. 혼자 하는 여행이 좋다고 먼 인도까지 떠나왔고, 자이푸르에서도 혼자서 나름 괜찮은 시간을 보내고 왔지만 나는 여전히 혼자임이 낯설었다.
첫 번째 인도 여행에서 바라나시에서 머무는 동안 매일같이 옥상에서 망고와 맥주 파티를 벌였었고, 매번 누군가가 새로 오면 누군가는 떠나기 마련이었다. 다음날 떠나는 사람을 위해 다 함께 015B의 '이젠 안녕'을 틀어 놓고 따라 불렀던 적이 있다. 여럿이 함께 있을 때는 송별의 노래를 부르는 것도 나름 운치 있었는데, 둘이 있다가 한 명이 떠나고 나니 빈 방에 울려 퍼지는 음악마저 쓸쓸하게 들렸다. 아마 나는 이 여행이 끝날 때까지, 그리고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 영원히 헤어짐에 무던해질 수 없을 것이다.
할 일 없는 우다이푸르에서 시도했던 것 중 하나는 '힌디어 하루 한 단어 외우기'였다. 그 당시 일기장에 써 둔 시슈, 딜, 도스트, 껠라, 아차라는 단어들이 아직도 남아 있지만 무슨 뜻인지는 적어 놓질 않아서 알 수가 없다. 아마 인터넷을 뒤져보면 쉽게 찾아낼 수 있겠지만, 왜인지 알아보지 않고 한때는 그 뜻을 알았고 사용하기도 했었지만 지금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 단어들로 기억 속에 남겨두고 싶다.
나는 가끔씩 이렇게 이상한 고집이 있었다. 예를 하나 들면 나는 사람들에게 길을 물어보는 것을 싫어한다. 요즘에야 스마트폰이 발달하고 해외에 나가서도 유심카드를 사용해서 항상 인터넷에 연결해 지도를 사용하는 게 일상화되어 있어서 그럴 일이 적지만, 나는 길을 잃었을 때 사람들에게 길을 물어보지 않고 혼자서 이리저리 헤매다가 한참만에 목적지를 발견하는 것을 좋아했다.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 서울로 이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영어 학원을 등록해 놓고 개강날 학원을 찾지 못해 헤매다가 결국 첫 수업에 가지 못하게 되어서 그냥 수강 등록을 취소해버리고 5시간을 걸어 기숙사로 돌아온 적이 있다. 누구는 이런 나를 미련스럽다고 했지만 길 물어보기를 잘 하는 사람들에게도 다른 미련한 구석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시대 자체가 빠르고 편리하고 효율적으로 변하고 있지만 나는 가끔씩은 느리고 미련하고 돌아가는 비효율적인 것들을 좋아하고, 또 여행지에서 또한 그런 것들이 변두리로 밀려나지 않게 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