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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트라떼 May 03. 2018

2-4. 홀로서기, 핑크시티 자이푸르

내가 살아온 세상이 변하기 시작할 때

 자이푸르는 인도 라자스탄 주(州)의 주도로 건축물의 색이 담홍색으로 칠해진 곳이 많아 ‘핑크시티’라고도 불린다. 1876년, 영국 왕자의 방문을 환영하기 위해 도시의 모든 건물을 분홍색으로 칠할 것을 당시 인도 왕이 명령했다고 하는데, 그렇다고 아기자기하고 예쁜 분홍색 건물들을 상상하면 곤란하다. 실제로 가 본 자이푸르의 색깔은 분홍색이라기보다는 회죽색 혹은 벽돌색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자이푸르에서 보낸 시간은 길지 않다. 바라나시에서 우다이푸르로 넘어가는 도중, 딱 하루를 당일치기로 방문했는데 이 특별할 것 없어 보이던 회죽색 도시가 나에게 의미 깊게 남아 있는 이유는 이번 인도 여행을 통틀어 혼자 기차 이동을 하고 하루 종일 낯선 도시를 혼자서 돌아다닌 것은 자이푸르가 유일했기 때문이다.

 앞에서도 썼지만 나는 첫 번째 인도 여행은 혼자 떠난 태국에서 만난 사람들과 함께 왔고, 이번에는 혼자 왔지만 첫날 도착하자마자 밥을 먹으러 들어간 식당에서부터 우연히 만나 동행을 하게 된 사람들이 있었다. 늘 혼자 여행을 왔지만 결국 어쩌다 보니 정말로 혼자였던 적은 거의 없었으며, 특히 도시 이동을 할 때는 단 한 번도 혼자였던 적이 없었다. 물론 조금 걱정은 됐지만 사실 나는 기차를 타기 전, 바라나시에서부터 처음으로 홀로 이동을 시작한다는 생각에 들떠있었다. 바라나시에서 함께 시간을 보냈던 일행 중 한 명이 기차 안에서 먹으라며 비닐봉지에 가득 담긴 초콜릿을 건네주었고, 초콜릿 봉지에 담긴 따뜻한 마음을 들고서 나는 첫 번째 홀로서기 여행을 시작했다.  

 바라나시에서 자이푸르로 떠나는 기차에서는 명당자리인 슬리퍼칸의 맨 위층에 탑승했다. 처음으로 혼자 하는 기차 이동이지만 외국인 쿼터로 산 티켓이었기에 같은 슬리퍼칸에 나를 제외하고도 외국인이 3명이나 더 있었다. 6명 정원의 슬리퍼칸에 나를 제외한 3명이 외국인이면 원칙적으로 2명의 인도인이 더 있어야 하지만 이전에도 27명이 한 칸에 타고 온 적이 있다고 썼듯 인도 기차는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왜 나 한 명 눕기에도 좁은 한 칸에 2명씩 타고 있을까, 의자도 없는 바닥에는 왜 한 명씩 누워 있는 걸까, 그리고 기차 전체에서 풍기는 이 지린내는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반대편 아래층 자리에 앉은 한 인도 남자는 내 얼굴이 거의 뚫릴 것 같을 정도로 부담스러운 눈빛으로 몇 시간 동안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그 눈빛이 부담스러워 침낭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뒤집어쓰고 잠을 청했다. 기차는 아그라에서 정차했고 같은 칸에 한국인 두어 명이 탔는데 인도인들이 자기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다며 화를 내는 소리를 들었지만 나는 계속해서 침낭 속에서 잠을 잤다.  





 자이푸르의 관광 명소 중 가장 유명한 곳은 구시가에 있는 시티 팰리스라는 거대하고 화려한 궁전인데, 이는 1728년에 건축되어 아직도 왕의 후손들이 살고 있어 일부만 일반인에게 공개되어 있는 곳이다. 당일치기로 들른 자이푸르이기에 묵을 곳도 없고 마땅히 할 것이 없어 기차에서 내려 관광지에 먼저 들른 것인데 바라나시에서 이미 한량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고 여행하는 생활에 익숙해져 있던 나에게는 관광명소 여행은 더 이상 의미가 없어진 것 같았다. 더군다나 지난번 여행에서 타지마할을 보고 왔으니 이제는 무얼 봐도 큰 감흥이 없었다. 덕분에 꽤 비쌌던 입장료를 내고도 보는 둥 마는 둥 설렁설렁 성 내부를 둘러보다가 시티 구경을 위해 밖으로 나왔다.  


 사이클 릭샤를 타고 이동해 보려고 릭샤를 잡았다가 흥정에 실패해서 보내기를 몇 번, 드디어 흥정에 성공해서 탔지만 가는 도중 갑자기 말을 바꾸어 딴 소리를 하는 릭샤꾼 때문에 중간에 세우라고 하고 내리기를 또 한 번 반복하고 나니 그냥 걷고 싶어 져서 무작정 길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자이푸르 시티에서도 나는 특별히 할 만한 것을 찾지 못했다. 오랜만에 사람들과 떨어져 혼자 있었기 때문일까, 갠지스강 가트에 앉아 멍 때리는 것만 해도 하루가 그냥 끝나버리는 이상한 시간의 도시에 있다가 왔기 때문일까. 시티에서 마땅히 할 만한 것을 찾지 못한 나는 자이푸르 시내에 위치한 라즈 만디르(Raj Mandir) 영화관에서 인도 영화를 보기로 했다.  


 라즈 만디르 영화관은 엄청난 규모와 화려함을 자랑하는 곳으로 인도에서 가장 큰 영화관이라고 한다. 실제로 가 본 그곳은 영화관이라기보다는 오페라를 상영하는 극장 같은 느낌이었다. 무슨 영화를 봤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여느 발리우드 영화들처럼 음악과 춤이 신났고 총 쏘는 장면이 많은 액션 영화였다. 관객들은 바라나시 영화관에서와 마찬가지로 극 중 주인공의 활약에 함께 울고 분노하고 웃었다. 그때도 지금도 나는 여전히 영화 자체보다 인도 관객들의 모습이 가장 흥미롭고 즐거웠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세상을 완전히 뒤바꾸어 버리는 것도
인도의 또 다른 매력 중의 하나였다.
인도를 여행하며 나는 가끔씩 시공간을 넘어서
다른 우주를 여행하는 것 같은 느낌에 사로잡히곤 했었다.  


 뿐만 아니라 영화관 내부에는 비둘기도 자유롭게 출입이 가능한 것처럼 보였다. 푸드덕 거리며 날아다니는 비둘기 몇 마리가 스크린을 가렸을 때 나는 말 그대로 문화 충격을 받았다. 영화관에서는 정숙해야만 영화에 집중할 수 있고 다른 사람의 관람을 방해하지 않을 수 있다는 규칙은 누가 정한 것일까. 인도에 인도 만의 규칙이 있고 한국에는 한국 만의 규칙이 있으며, 오히려 이 경우, 인도의 그것이 흔하지 않은 것임을 알지만 나는 문득 이 세상에는 어떤 것에 대해서도 반드시 정해진 법칙 따위는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들과 친구들은 인도는 길 위에 똥이 있고 내가 밟은 적도 있다고 말했을 때 기겁을 했다. 그러나 차와 소가 같이 다니면 안 되고 길 위에 똥이 있으면 안 되는 이유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이와 마찬가지로 내가 반드시 진실이라고 믿었던 것들도 사실은 허상일지도 모른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세상을 완전히 뒤바꾸어 버리는 것도 인도의 또 다른 매력 중의 하나였다. 인도를 여행하며 나는 가끔씩 시공간을 넘어서 다른 우주를 여행하는 것 같은 느낌에 사로잡히곤 했었다

 

 영화를 보고 저녁을 먹고 나니 어느덧 저녁 7시가 넘어 있었다. 우다이푸르행 야간 기차를 타기 위해 다시 자이푸르 정션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처음으로 할아버지가 운행하는 사이클 릭샤를 타봤는데 릭샤를 운전하는 할아버지의 힘없어 보이는 작은 어깨를 뒤에서 바라보고 있자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물론 이들은 나 같은 관광객을 태움으로써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도저히 마음이 편해지지는 않았다.  





 처음으로 혼자 보낸 하루가 생각보다 길지 않았다. 자이푸르 기차역 플랫폼에 앉아 연착된 기차를 기다리면서  비록 불편한 것 투성이이더라도 길 위에서 보내는 시간들은 참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이미 두 번째로 인도에 여행을 온지도 3주가 지난 시점이었다. 물론 여행을 하는 동안 1분 1초도 빠짐없이 인도가 좋았던 것은 아니다. 바라나시에서 일행이었던 C가 콜카타로 돌아가기 위해 기차역으로 가는 것을 배웅하며 같이 사진을 찍고 싶어서 우리를 등지고 서 있던 서양인 아저씨를 부른 적이 있다. 주변이 시끄러운 탓인지 불러도 듣지를 못하기에 더 큰 목소리로 ‘Excuse me’하고 불렀더니 아저씨는 대뜸 'NO!!!!!!!!!!!!!!'라고 소리치며 눈을 부릅뜨고 훽 하고 뒤를 돌아보는 것이 아닌가. 너무 놀라서 미안하다는 말이 먼저 나왔는데 아저씨가 배낭을 멘 C와 누가 봐도 여행객인 우리를 보더니 눈이 둥그레져서는 소리 질러서 미안하다고 누가 뒤에서 자꾸 부르길래 호객하는 인도인인 줄 알았다고 하셨다. 아저씨가 뒤를 돌아보며 지은 진절머리가 난다는 듯한 표정이 너무 우스웠지만 웃을 수 없었다. 인도에서의 그 아저씨와 나는 결국에는 같은 표정, 같은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인도가 좋았다고 다시 가고 싶다고 말을 하고 여행기를 쓰고 있지만 사실 인도에서는 하루도 호객꾼과 반 흥정 반 싸움을 하지 않은 날이 없다. 사기를 당할 것인지 당하지 않을 것인지, 바가지를 쓸 것인지 쓰지 않을 것인지 인도에서의 하루하루는 바가지를 씌우려는 장사꾼들과의 전쟁의 연속이기도 했다.  


 인도가 좋아지다가도 싫어지고 또다시 좋아지는 날들이 반복되고 있었다. 세 번째로 찾은 인도지만 처음과 같았던 자이푸르에서의 하루처럼 다음날은 또 어떤 인도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궁금해지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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