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is good, I'm happy!
첫 번째 인도 여행에서 바라나시를 떠나며 머지않은 시일 내에 다시 돌아오게 될 것임을 직감했었고, 실제로 약 6개월 만에 돌아온 인도에서 다시 바라나시를 찾았다. 지난번에는 죽도록 더워서 낮 시간에는 밖에 잘 나가지도 않았는데 11월 말의 바라나시는 선선하다 못해 쌀쌀해서 하루 종일 돌아다닐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온도가 어떻다고 해도 바라나시는 결국 바라나시였다. 바라나시에는 사람을 늘어지게 만드는 묘한 힘이 있었고 나는 계절이 달라졌다고 해도 저번과 마찬가지로 오늘이 며칠인지, 무슨 요일인지, 지금이 몇 시인지 모든 것을 잊은 채 살게 만드는 이 도시를 역시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사실 이번 여행에서 다르질링에서 바라나시로 바로 내려온 것은 예정 밖의 일이었다. 원래는 다르질링에서 버스로 3~4시간 정도가 걸리는 동북부 시킴 지방으로 가려고 하였으나 아니나 다를까 다르질링에서 첫 번째 여행과 마찬가지로 또다시 지독한 감기에 걸려서 더 이상 추운 지역에 있고 싶지 않아 따뜻한 바라나시로 바로 오게 된 것이다.
동쪽으로는 부탄, 북쪽으로는 티베트와 맞닿아 있는 시킴(Sikkim)은 과거 티베트 불교를 믿는 독립 왕국이었다가 국민투표를 거쳐 1975년 인도에 합병된 지역으로, 비록 같은 인도지만 퍼밋을 따로 받아야만 들어갈 수 있는 자치구역이다.
난방 장치가 없는 춥디 추운 다르질링 숙소에서 감기에 걸려 앓아누워 있으면서 가장 그리운 것은 한국의 전기장판이었다. 큰 전기장판까지는 아니더라도 작은 전기담요라도 한국에서 가져왔거나 혹은 숙소에 빌릴 수 있는 전기장판이 있었더라면 나는 아마 감기에 걸리지 않았을 것이고 그러면 시킴 지방을 여행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 나는 갖고 있는 혹은 빌릴 수 있는 전기장판이 없었기 때문에 다시 바라나시에 오게 된 것이다.
바라나시로 내려가는 길은 험난했다. 바라나시로 돌아오는 직행 기차가 대부분 매진이었기 때문에 나와 일행은 언제 풀릴지 모르는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는 대신 파트나에서 한 번 갈아타야 하는 기차를 타기로 했다. 갈아타는 기차는 직행 기차와 달리 외국인 쿼터가 따로 없었는데, 뉴잘패구리에서 파트나까지 오는 기차에는 한 칸 전체에 여자가 나 밖에 없었고, 파트나에서 바라나시까지 오는 기차에서는 6명이 정원인 슬리퍼칸 한 칸에 어린아이들을 포함 27명이 타고 왔다.
상인들과 달리 영어가 한마디도 통하지 않는 진짜 현지인들과 부대끼며 바라나시까지 오는 시간 동안, 내가 그동안 인도 기차를 생각보다 편하게 타고 다닐 수 있었던 것은 단지 외국인 쿼터 표를 샀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외국인 쿼터는 말 그대로, 인도 정부에서 외국인 여행자들에게 따로 제공하는 티켓인데 외국인 쿼터 표를 사서 기차에 타면 같은 여행자들을 꽤 많이 만날 수 있었다.
북부에 비해 비교적 따뜻한 바라나시로 내려오고 난 뒤에도 감기는 한동안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인도 감기약이 독하기로 유명한 것을 몰랐던 나는, 약을 먹어도 떨어지지 않는 감기에 질려 어느 날 감기약 2알과 두통약 1알을 한꺼번에 먹고 숙소에 돌아와 기절하듯 잠에 빠지고 말았다. 나는 그때 다르질링의 한 빵집에서 잠시 만나 며칠간 동행하고 헤어졌다가 바라나시로 돌아와 다시 만나게 된 한 언니와 같은 숙소의 옆 방에 묵고 있었는데 감기약을 먹고 잠에 빠져 있다가 누군가 방에 들어와 이불을 덮어 주는 느낌이 들어서 언니인 줄 알고 언니를 부르려고 했었다. 그러나 눈이 떠지지 않고 몸도 전혀 움직일 수 없었으며 목소리도 나오지 않는 것이 아닌가. 언니를 부르려다 포기하고 다시 잠들었다가 깼다가를 몇 번 반복하고 나니 이번에는 내 귀에 대고 누군가가 낯선 목소리로 '영훈이'라는 이름을 계속해서 말했다. 이때 나는 내가 가위에 눌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언니는 역시 방에 들어온 적이 없었고, 당연히 누구도 나에게 이불을 덮어주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그렇게 독한 인도 약 3알을 한꺼번에 먹고 이제껏 살면서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가위에 눌려 버리고 말았다. 그나저나 영훈이는 누구였을까.
Life is good,
I'm happy!
바라나시에 다시 가서 했던 일 중 하나는 첫 번째 여행에서 시타르를 배웠던 선생님에게 인사를 드리러 가는 것이었는데 선생님은 몇 달 만에 나를 보자마자 ‘Life is good? Are you happy?’라는 질문을 던졌다. 한국에서 대학교 4학년 휴학생이었던 나는 학교는 잘 다니고 있는지, 언제 복학할 것인지, 졸업은 언제 할 것인지, 취직은 어디로 하고 싶은지와 같은 질문들에 익숙해져 있다가 대뜸 행복하냐는 말을 들으니 어쩐지 낯설었지만 한편으로는 행복하냐는 질문 자체에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힘이 숨어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바라나시에서 지낸지도 벌써 며칠이 지났을 때의 일이었다. 이번 여행을 시작한 후로 만나게 된 사람들 중 바라나시까지 함께 오게 된 사람들이 모두 나보다 일찍 다른 도시로 떠나고 처음으로 혼자 다니던 중 새로운 일행 C를 만났다. C를 만난 것은 재미있는 일 중의 하나였다. 나는 지난번 여행에서와 같은 숙소에서 묵고 있었는데 숙소 1층 공용 공간에 앉아 쉬고 있을 때 다른 숙소에서 묵고 있던 C가 갑자기 나를 찾아왔다. 뱅갈리 토라 골목길에서 몇 번 마주쳤던 것 같기도 한데 기억이 잘 나지 않았을뿐더러 우리는 분명히 눈인사조차 나눠 본 사이가 아니었다. C는 길거리에서 마주친 내가 심심해 보여서 골든 템플에 같이 가자고 나를 찾아 내가 묵고 있던 숙소까지 오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누군가와 함께 하는 여행도 좋지만 혼자 하는 여행도 똑같이 좋았기에 오랜만에 혼자가 된 여유를 즐기는 중이었는데, 내 딴엔 즐긴다고 즐긴 것이 길 가다 마주친 C의 눈에는 심심한 사람처럼 보였나 보다.
그렇게 가만히 있었는데 굴러 들어온 재미있는 일행 동갑내기 C와 함께 길지 않은 3일을 여행했고, 여행 막바지였던 C는 한국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콜카타로 떠났다.
C가 함께 가자고 했던 골든 템플은 뱅갈리 토라 골목길 중간에 위치해 있으며, 늘 지나갈 때마다 총을 든 군인들의 삼엄한 경계와 사원에 들어가기 위해 길게 줄을 서 있는 인도인들의 행렬 때문에 인상 깊었던 힌두사원인데 알고 보니 외국인은 출입 불가능한 곳이라 결국 들어가 보지는 못했다.
누군가와 동행을 한다는 것이 인도에서는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길 가다 마주쳐서, 우연히 같은 기차에 타서, 밥을 먹으러 들어간 식당에서 옆 테이블에 앉아 있어서, 기차 예약 사무소에서 우연히 만나서, 같은 숙소에 묵어서 등 이유는 다양했지만 공통점은 그 우연의 순간이 발생하기 1초 전까지만 해도 생판 남이었던 사람과 짧게는 몇 시간 길게는 한 달 이상의 시간을 공유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인도에서는 모든 것이 쉬웠다. 식당 옆 테이블에 앉은 사람이나 섬으로 들어가는 배 뒷자리에 앉은 사람에게 말을 거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한국에 돌아와서 생각해 보니 매 순간이 신기하기만 했다. 나는 누가 먼저 말을 걸어오면 친절하게 대답해 주는 사람이었지만 그렇다고 먼저 붙임성 있게 스스럼없이 누군가에게 다가가는 성격은 못되었다. 마음 맞는 친구들도 있지만 여행을 가도, 밥을 먹어도, 영화를 보러 가도 혼밥이니 혼영이니 하는 말들이 유행하기 전부터 무엇이든 혼자서 하는 게 편한 사람이기도 했다. 그런 내가 혼자 떠난 여행에서 태국에서 우연히 만난 언니를 따라 인도에 오고, 좋은 일행들을 만나 동행을 하고, 때로는 그들 덕분에 일정을 변경하기도 하고, 그들이 나 때문에 그렇게 하기도 했다. 20년이 넘는 세월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살아오다가 낯선 땅에서 만나 함께 여행을 한다는 것은 인도에서는 너무나 당연하고 흔한 일이었지만 한국에 돌아와 돌이켜 보면 그것은 절대 흔한 일이 아니라 오히려 기적에 가까웠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인도를 여행하면서 이방인이자 여행자로서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단순히 소비만 하고 가는 여행자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
나는 인도를 여행 함에 있어 운이 좋은 편이었음을 스스로 인정한다. 한국에 돌아와 잊을만하면 터지는 인도의 사건 사고 뉴스를 보면서 내가 좋은 일행들을 만났음과, 스스로 주의를 많이 하기는 했지만 어찌 됐든 혼자 있었을 때에도 대부분 안전하게 여행할 수 있었음에 감사했다. 그래서 비록 나는 인도를 너무나 좋아하고 언젠가 또다시 인도를 여행하고 싶지만 여행했던 다른 나라들과 달리 친구들에게 인도는 좋은 곳이니 너도 다녀와보라고 말할 수가 없다. 오히려 인도에 다녀와볼까 하고 말하는 친구들이 있으면 잘 생각해보라고 말리는 편이다.
처음에는 도로 위를 차와 소들이 뒤섞여 횡단하고, 소똥이 길거리 위에 굴러 다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을 끌어당기는 이상한 매력이 있는 인도가 낯선 여행지로서 그저 좋았다. 그러나 인도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지는 못했지만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마음이 점점 무거워졌다. 인도는 빈부격차가 극심한 나라 중 하나다. 차를 타고 달리면서 왼쪽에는 판잣집들이 모여 있는 빈민가가, 오른쪽으로는 고층 빌딩과 새로 지은 건물들이 즐비한 풍경을 볼 때 나는 결코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이번 여행의 시작점 콜카타에서 우연히 들어서게 된 슬럼가의 모습은 여행 내내 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인도를 여행하면서 이방인이자 여행자로서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단순히 소비만 하고 가는 여행자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나 나는 해답을 찾지 못했고 여행이 끝날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인도를 다시 찾아야 하는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