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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트라떼 Apr 29. 2018

2-2. 몸은 춥지만 마음은 따뜻한, 다르질링

걷고 또 걷다 보면 만나게 되는

 첫 번째 인도 여행에서 다르질링에 4일을 머물렀지만 감기 몸살에 걸려 아무것도 하지 못한 나는 그때의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이번에도 다르질링을 찾았다. 콜카타에서 다르질링으로 올라가는 길은 이미 한 번 와봤기 때문에 익숙할 법도 했지만, 여전히 낯선 곳으로 가는 것만 같았는데 아마 계절이 달라서였을지도 모르겠다. 뉴잘패구리에서 다르질링까지 올라가는 지프 안에서 본 티베트 사람들의 옷은 5월보다 훨씬 더 두꺼워져 있었다. 


 5월의 다르질링은 날씨가 내내 흐려 칸첸중가를 4일 중 단 하루, 그것도 약 10분 정도밖에 볼 수 없었다면 11월은 쾌청했고 칸첸중가는 마치 동네 뒷산처럼 당연한 풍경이 되어 있었다. 산자락을 따라 옹기종기 모인 집들 뒤로 세계에서 세 번째로 높은 산이 흰 눈에 뒤덮인 채 서 있었고, 하늘은 마치 물감으로 그려놓은 듯 새파랬다. 꼭 그림 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았다. 


11월의 다르질링은 대부분 이렇게 맑았다. 칸첸중가가 당연한 풍경이 되어버린 다르질링의 전경.


 숙소는 고민할 것도 없이 지난번 여행에서 머물렀던 곳으로 다시 찾아갔다. 주인아주머니와 아저씨가 나를 여전히 기억하고 있었다. 몇 달 지나지 않아 돌아온 탓이기도 했지만 머나먼 인도에서 나를 기억해주고 알아봐 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도착하자마자 마음이 따뜻해졌다.  

 새로운 사람들도 많이 만났다. 다르질링 시내에서 유일하게 와이파이가 가능했던 한 빵집에서 만난 한국인 언니 둘과 오빠가 그 주인공인데, 처음에는 스쳐 지나가는 여행자들 중 하나라고 생각했지만 나는 이후에도 3개월 간의 이번 여행이 거의 끝날 무렵까지 이들과 이 도시 저 도시에서 만나 여행을 함께 하게 된다.  

 여행지에서 만나는 대부분의 인연들이 그러했다. 만나자마자 동행을 하기로 하는 경우보다는, 처음엔 우연히 만나 인사만 하고 헤어졌다가 다음번에 만났을 땐 밥 한 끼를 같이 먹고, 그다음에는 며칠간 혹은 한 달여간 함께 하게 되는 경우가 훨씬 많았다. 여행을 하며 만났던 수많은 사람들 중 오랜 기간을 같이 여행해서 유독 기억에 남는 인연들을 떠올려 보면 대부분은 우연히 만나 인사만 하고 헤어지는 정도에서 시작된 인연들이었다. 이래서 사람 일은 정말 모른다고들 하는가 보다.  


 나는 저번 다르질링 여행에서 감기 몸살로 앓아눕는 바람에 침대에 누워만 있었던 것이 아쉬워 이번에는 차 농장, 동물원, 등산 학교, 티베탄 난민센터 등 가이드북에 소개된 관광지들을 부지런히 찾아다녔다.  

 바라나시에서는 비좁은 골목길 사이를 걷다 보면 결국엔 모든 길이 가트를 향해 있었던 것과 달리, 다르질링 일대는 비교적 넓었기 때문에 한 번 길을 잃으면 다시 원래 있던 곳까지 돌아오기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렸다. 그래도 길을 잃으면 잃는 대로, 돌아오기까지 오래 걸리면 오래 걸리는 대로 다르질링을 걷는 것은 좋았다.  


 많은 관광지들에 다녀왔지만, 결국 기억에 남는 것은 관광지 그 자체가 아니라 그곳까지 가기 위해 걸었던 길들 뿐이었다. 나는 여행을 할 때 도보 이동이 아예 불가능한 거리가 아니라면 늘 걷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다. 또 새로운 도시에 도착한 첫날에는 항상 걸어서 동네를 한 바퀴 돌아보는 것이 먼저였다. 이를테면 그 도시에는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는지, 어떤 개들이 살고 있는지, 집들은 어떤 모양이고 무슨 색 벽을 갖고 있는지, 식당들은 어디에 있는지와 같은 것들은 나에게는 느리게 걸어야지만 알 수 있는 것들이었다.  

 

초우라스타 광장으로 올라가는 길
숙소 창문에서 바라 본 다르질링 풍경


 하루는 다르질링 근교에 있는 타이거힐이라는 해발 2,200m의 전망대에 일출을 보러 다녀왔다. 새벽 네시 경 출발해 지프를 타고 가면 되는데, 원래는 지프 정류장에 가면 언제나 일출을 보러 가기 위해 모인 여행자들이 많기 때문에 합승을 할 수 있다고 들었지만 우리가 갔을 때는 사람이 없어서 일행과 둘이서 급하게 택시를 대절해서 갔다. 그 날 새벽, 다르질링 지프 정류장에는 여행자는 우리 둘 뿐이었고 택시 기사는 한 열 명쯤은 있었던 것 같다. 

비록 지프 정류장에는 아무도 없었지만 타이거힐에는 사람이 엄청나게 많았고, 대부분은 인도 현지인들이었다. 사람이 너무 많아 아슬아슬 난간에 매달려 까치발로 서서 어스름하게 밝아 오는 칸첸중가와 아주 작게 보이기는 했지만 선명했던 에베레스트를 볼 수 있었다. 나는 그 날, 에베레스트를 보면서 언젠가 저 산에 오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지난 여행에서 네팔의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 다녀왔고 산이 좋다고 말하기는 했지만, 사실은 동네 뒷산도 잘 올라가지 않는 나에게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번 생에 이루어질 확률이 복권 당첨될 확률보다 훨씬 낮을 것 같은 그 일은 그렇게 나의 버킷리스트 목록 중 하나가 되었다.  


타이거힐에서 바라 본 칸첸중가의 일출


  다르질링에서 행복했던 일상 중의 하나는 숙소 공용공간에 앉아 창밖으로 보이는 겨울 풍경을 보며 차를 마시고 엽서를 쓰는 것이었다. 나는 그곳에 앉아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그리고 몇 년 뒤의 나 자신에게 엽서를 썼다. 몇 년 뒤의 나에게 엽서를 쓰는 것은 처음 배낭여행을 시작했을 때부터 생긴 일종의 습관 같은 것이었다. 유독 마음에 드는 도시에서는 항상 나 자신에게 엽서를 썼다. 내용은 거의 나 자신에게 보내는 응원글이 대부분이었는데, 실제로 몇 년 뒤에 꺼내어 보면 손발이 오그라드는 민망함이 느껴지기도 했지만 몇 년 전의 내가 어떤 생각을 했는지 알 수 있어 좋았고, 또 현재의 나는 과연 과거의 내가 되고자 했던 모습대로 살고 있는지 스스로를 되돌아볼 수 있는 일종의 이정표 역할도 하기도 했다.






 그러나 다르질링은 역시 쉽지만은 않았다. 나는 이번에도 감기에 걸리고 배탈이 나서 다르질링에서 보낸 며칠 중 마지막 하루를 거의 침대에 누워서 보냈다. 우선 숙소가 무척 추웠다. 난방시설이 전혀 없었던 데다가 온수기조차 없어서 따뜻한 물을 쓰려면 숙소 주인에게 말해 돈을 지불하고 30분쯤 뒤에 방으로 직접 가져다주는 뜨거운 물 양동이와 샤워기에서 나오는 찬물을 섞어서 써야만 했다. 우리가 묵었던 숙소뿐 아니라 다르질링 자체가 전기공급이 잘 되지 않아서 온수가 제대로 공급되지 않고 난방도 제대로 되지 않는 곳이 많단다.   

 

 아픈 바람에 한 가지 아쉬웠던 것은 토이 트레인을 타지 못했다는 것이다. 토이 트레인은 일종의 작은 증기 기관차로, 영국 식민지 시절 화물용 기차로 이용되었다가 현재는 교통수단으로 이용되고 있으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도 등재되어 있다. 인도의 다르질링, 우띠, 쉼라 세 곳에서 타 볼 수 있다. 

 나는 지난번 여행에서 아픈 바람에 토이 트레인을 타지 못했기 때문에 이번에는 꼭 타보고 싶은 마음에 다르질링에 도착하던 날부터 미리 인근 역인 굼(Ghoom)까지 가는 표를 예약했었다. 그런데 하필 이번 여행에서 딱 하루 앓아누운 날이 그날이라 결국 역 근처까지 가보지도 못하고 티켓을 버리고 말았다. 마더 테레사 하우스에 봉사활동을 하러 가는 것이 콜카타에 다시 가야 할 이유라면 두 번이나 가고도 타지 못한 토이 트레인은 다르질링에 다시 가야만 하는 이유였다.  

 

 다르질링은 추웠고 나는 결국 또 아팠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곳은 마음이 따뜻해지는 도시였다.  다르질링에는 한 티베트 아주머니가 운영하는 양곱창국 가게가 있다. 몸이 아프니 따뜻한 국물이 너무 생각나 아픈 몸을 끌고 그곳을 찾았는데, 문이 닫혀 있었고 알고 보니 영업이 끝난 상태였다. 하지만 주인아주머니는 내가 아프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를 가게 안으로 불러들여 영업이 끝난 가게에서 따뜻한 양곱창국을 끓여 주셨다. 계산을 하고 나가려는데 끝내 돈도 받지 않으셨다. 내가 방문한 인도의 모든 도시가 그러했지만 다르질링 역시 마찬가지로 정말 이상한 도시였다. 정말 추웠지만 따뜻한, 그런 이상한 도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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