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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트라떼 Apr 27. 2018

2-1. 콜카타에 다시 돌아온 이유

나에겐 너무 무거운 도시 콜카타

 2013년 5월, 첫 여행이 끝난 뒤 그 해 11월에 다시 시작된 석 달간의 인도 여행에서 나는 한국에서 출발하는 콜카타행 비행기를 끊었고 콜카타를 몇 달만에 다시 방문했다.  

 아직 못 가 본 곳이 더 많은 넓은 인도에서 왜 하필 이미 와 본 콜카타에 다시 왔느냐고 묻는다면 아쉬워서였다고 대답하고 싶다. 첫 여행에서 콜카타에서 도망치듯 빠져나온 뒤로 다른 도시들을 여행하며 나는 인도를 점점 더 좋아하게 되었다. 그래서 노련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그렇게 어리숙하지만도 않은 새내기 인도 여행자가 되었고, 모든 것이 싫기만 했던 그 도시에 인도에 조금은 적응이 된 상태로 다시 돌아가 보고 싶었다. 정말로 그 도시가 나빴던 것인지 아니면 내가 아직 준비가 덜 되어 있었던 것인지 알고 싶었다.  


 이번에는 콜카타에서 4일을 보냈다. 마더 테레사 하우스에서 봉사활동을 할 심산으로 2주 정도를 예상하고 갔지만 어쩌다 보니 또 계획은 어그러져서 마더 테레사 하우스는 근처에도 가보지 못한 채 콜카타를 떠났고, 그래서 나는 애증의 콜카타를 다시 방문해야 할 이유 하나를 갖게 되었다.  


서더 스트릿에서 만난 강아지


 나는 봉사활동을 제외한 첫 번째와 이번 여행을 모두 혼자 떠나왔었지만 항상 현지에서 우연히 좋은 일행들을 많이 만났었다. 두 번째로 찾은 콜카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숙소에 짐을 풀자마자 밥을 먹기 위해 들른 식당에서 우연히 일행이 생겨 그들과 4일간의 콜카타 여행을 함께 했다. 확실히 인도는 여자 혼자인 것보다는 일행이 함께 있을 때 할 수 있는 것이 더 많았고 갈 수 있는 곳도 더 많았다.  


 우리는 모두 무작정 걷는 것을 좋아해서 주로 뚜벅이 여행을 했는데 한 번은 자인교 사원까지 걸어가려다 길을 잘못 들어 슬럼가에 들어가게 됐다. 살면서 그렇게 더럽고 무질서한 곳은 처음이었다. 똥밭과 쓰레기 더미 위에서 뛰놀고 있는 아이들, 길거리에서 씻고 있는 사람들, 개, 사람,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그 더럽고 무질서한 곳 위에서 구르고 생활하는 모습을 보니 마치 서더 스트릿이라는 여행자 거리 뒤에 감춰져 있던 인도의 어두운 이면을 그대로 본 것만 같았다.  


인도를 이해하는 방법이 있을까. 
여행자는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는 세상이 인도에는 너무나 많았다. 



 인도를 이해하는 방법이 있을까. 나는 인도에 세 번째로 왔고 3개월을 있을 예정이었지만, 3개월이 아니라 3년을 지내도 아마 절대로 진짜 인도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란 확신을 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여행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여행자 거리를 걷고, 갠지스강 화장터에 앉아 한국에서 쉽사리 겪어보지 못한 인생무상(人生無常)을 느끼는 것이 인도를 이해하는 길일까. 여행자는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는 세상이 인도에는 너무나 많았다.  

 이날의 길을 잘못 들어 생긴 슬럼가 방문(?)은 여행 초반부터 이후 3개월에 대한 기대치를 몽땅 깎이게 만들었고, 나는 인도 어디에 있어도 진짜 인도를 보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앞으로의 여행에 대한 약간의 무기력함을 느꼈으며, 또다시 인도지만 인도 같지 않은 북인도 다르질링으로 도망치고 싶어 졌다.  






 다시 찾은 콜카타에서의 4일 동안 때론 혼자서 때론 일행들과 함께 많은 곳을 걸어 다녔다. 이 도시에 두 번이나 왔으니 이곳이 좋은 도시로 기억되어야 할 이유를 찾고 싶었다. 그러나 내가 깨달은 것은 콜카타는 충분히 볼거리가 많고 재미있는 도시지만, 그렇다고 나에게 특별한 무언가로 기억될만한 곳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어쩌면 콜카타는 그냥 콜카타일 뿐인데 나는 있는 그대로를 보지 못하고 자꾸만 특별한 것을 찾아내려고 했던 걸지도 모른다.  


 마지막 날에는 다르질링으로 가는 야간열차를 기다리며 지난 여행에서 콜카타에서 도망치고 싶게 만들었던 1등 공신이었던 빅토리아 메모리얼에도 다시 가보았다. 지난번에 안은 어찌어찌 구경했으니 이번에는 들어가지는 않고 밖에서 일몰만 보았다. 더 이상 변태는 없었고 표를 사지 않았으니 첫 번째 여행에서 만난 양심 불량 매표소 직원도 없었다. 같은 장소도 언제 오느냐 그리고 누구와 오느냐에 따라 소감이 180도 달라지곤 한다. 이날의 빅토리아 메모리얼은 아무런 소음도 없고 나를 괴롭히는 사람도 없는 평화로운 곳일 뿐이었다. 콜카타는 여전히 어려운 도시였지만 떠나기 전, 마음을 조금은 풀고 가는 것 같아 다행이었다. 


해질녘의 빅토리아 메모리얼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부모님이 잠깐 외출을 한 것인지 예닐곱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들끼리 있던 작은 가게에서 아이스크림과 라씨를 사 먹었는데, 아이스크림 안에는 모기가 죽어 있었고, 라씨는 발효가 되다 못해 썩은 막걸리 맛이 났다. 이 아이들은 이런 음식을 우리에게 팔며 그 어린 나이에 벌써부터 우리에게 돈을 사기 치려고 들었다. 아직 부모님의 보호 아래 아무 걱정 없이 뛰놀아야 할 아이들이 어린 나이에 생업전선에 뛰어들어 일을 하고, 그것도 모자라 어른들에게 못된 것만 배워서는 능글맞은 바가지요금을 어쭙잖게 씌우는 모습을 보니 어른들에게 사기를 당했을 때와는 달리 짜증보다는 안타깝고 씁쓸한 마음이 먼저 들었다.  


 사실 인도의 어느 도시에서도 이런 모습은 흔하지만 유독 콜카타에서 나는 이런 안타까운 현실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 인도 경제는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는데  그와는 대조적으로 왜 아직도 많은 아이들이 학교에 가지 못하고 생업에 내몰려야 할까, 길거리에서 구걸하는 아이들은 왜 또 이렇게 많은 것일까, 쓰레기 더미 위를 뛰어놀던 그 아이들은 앞으로 어떤 삶을 살게 될까.  

 한국에서 나는 많은 고민이 있었고 매 순간 선택의 기로에 있었고, 남들과 마찬가지로 무엇을 먹고살아야 할 지에 대해 끝없이 생각했지만 인도에서는 나의 그런 고민들이 마치 사치처럼 느껴졌다. 콜카타가 유독 그랬다. 콜카타는 그래서 나에게 이런 도시로 기억될 것 같다. 아주 특별한 무언가가 있지는 않았지만 생각이 많아지는 도시 그리고 조금은 무거운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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