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에 이유가 있어야 할 필요는 없다.
이쯤에서 한 가지를 고백하고 넘어가려고 한다. 나는 혼자 태국-라오스 여행을 왔다가 우연히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을 따라 인도에 오게 되었다. 그리고 인도 여행을 오게 된 계기가 된 그 태국여행은 사실 도피여행이었다.
당시 나는 대학교 4학년 1학기를 마치고 휴학 중이었다. 어렸을 때는 세상이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 같았다. 많은 어린아이들이 그러하듯이 나 역시 커서 대통령이 되겠다고 말하는 아이들 중 한 명이었다. 하지만 산다는 것은 그렇게 쉽지만은 않았다. 물론 아주 나빴던 것만은 아니었다. 커가는 동안 견딜 수 있을 만큼의 적당한 불행과 적당한 행복이 반복해서 주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엔가 고개를 들어 거울을 보니 거울 속 나의 모습은 더 이상 대통령을 꿈꾸는 어린아이가 아닌 평범한 20대일 뿐이었다. 너무나 평범해서 거울로도 잘 보이지도 않는 그런 사람. 내 인생에는 극적인 무언가가 없었고 나는 내가 평범하다는 것을 깨달은 뒤로 그것이 늘 불만이었다.
줄곧 불만을 품은 채로 남들처럼 살다가, 분위기에 휩쓸려 남들이 다 하는 공무원 준비도 시작했다. 인생이 지루했다. 지금까지의 삶에서도 특별히 인상 깊은 일은 없었지만 이제는 정말 우울할 정도로 사는 게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노량진의 한 공무원 학원에서 강의를 들었는데 강사가 '지금 여기 앉아 계신 여러분들은 공무원이 꿈이잖아요!'라고 말했다. 공무원은 지금처럼 불안한 시대에 안정적이고 좋은 직업임에 틀림없지만 나의 꿈은 아니었다.
며칠 지나지 않아 늦은 밤, 혼자 방에 엎드려 책을 보고 있는데 눈 앞으로 벌레 한 마리가 기어가는 모습이 보였고, 그 벌레의 삶이 내 인생보다 낫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나는 모든 것을 때려치우고 태국행 비행기표를 끊었다.
비록 시작은 도피성이었지만 여행을 하는 동안 나는 정말로 인도라는 나라를 사랑하게 되었다. 길 위에서 여행하는 순간만큼은 도피가 아닌 낯선 나라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으로 살았다. 인도가 좋았다. 내가 인도가 좋았다고 말하면 도대체 어디가 그렇게 좋냐고 묻는 친구들이 많다. 그러나 말주변이 부족한 나에게 인도가 뭐가 그렇게 좋냐는 질문은 가장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었다.
콜카타로 들어와 한동안은 머리를 쥐어뜯으며 길거리를 걸어 다녔다. 사방에서 울려대는 자동차 경적소리를 제발 그만 듣고 싶었다. 태생이 조용한 것을 좋아하는 나에게 처음 걸었던 인도의 길거리는 귀가 괴로워 견딜 수 없었다.
또 인도 남자들은 동양 여자에 대한 호기심이 많았다. 한국에서 지극히 평범한 나는 인도에만 가면 연예인이 되었다. 인도에 가 본 한국 여성 배낭여행자들이라면 누구든 자신과 사진을 찍기 위해 인도인들이 줄을 서는 것을 겪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들은 호기심이 많을뿐더러 그 호기심을 표현하는 데 망설임이 없었다. 길거리에 나가기만 하면 질문들이 쏟아졌다. 주로 혼자 왔느냐는 질문이 많았다. 그도 그럴 것이 대도시를 제외하고서는 인도 여자들은 아직도 외출할 때는 남편 혹은 남자 가족과 동행을 해야 한단다. 결혼한 여자에는 별 관심 없는 인도 남자들 덕분에 나는 하지도 않은 결혼을 했다고 말하고 다녔다.
나는 이 모든 것들이 너무 시끄러웠다. 물론 매일 같이 흥정을 해야 하는 점이나 위생 상태 등도 어려웠지만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들은 이와 같은 소음들이었다. 나는 조용한 것이 좋았고 시끄러운 것이 싫었다.
인도에는 이유가 없었다.
그냥 늦었으니 늦는 것이고 기다려야 하니 기다리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내가 인도를 좋아하게 된 이유도 도저히 설명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머리를 쥐어뜯으며 거리를 걷다 보니 어느샌가 나도 모르게 인도가 좋아졌다. 인도는 모든 것이 설명되고 딱딱 떨어지는 이유가 존재하는 곳이 아니었다. 멀리 볼 것 없이 매번 연착하는 기차와 그런데도 불구하고 당황하지 않는 인도인들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은가. 인도에는 이유가 없었다. 그냥 늦었으니 늦는 것이고 기다려야 하니 기다리는 것이다. 기차가 연착되는 이유를 반드시 알 필요는 없었고, 내가 기차를 기다리는 데도 분명한 이유가 있을 필요는 없었다. 마찬가지로 나는 내가 인도를 좋아하게 된 이유를 도저히 설명할 수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세상에는 가끔 이렇게 원인을 알 수 없는 일들이 존재한다.
태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바라나시에서 아그라를 거쳐 인도의 수도 델리에 도착했다. 인도가 점점 좋아질수록 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날짜도 점점 가까워져 갔고, 도피생활도 끝이나 가고 있었다. 귀국 티켓을 찢어버리고 여행을 연장하는 건 인도에서 보기 어려운 광경은 아니었지만(내가 태국에서 그랬듯이), 이미 한 번을 연장한 터라 돈도 없었고 더는 있고 싶어도 있을 수가 없었다. 아그라를 거쳐 함께 델리까지 온 일행은 내가 떠난 뒤 북인도 맥그로드 간즈와 마날리를 거쳐 레(Leh)로 올라갈 것이라고 했다.
나는 이제 막 좋아지기 시작한 인도에서 지금 떠나는 것이 너무 아쉬웠고, 여행을 충분히 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까지 드니 이제는 도피가 아니라 순수하게 질릴 만큼 충분히 인도를 여행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겨났다. 그리고 나는 이럴 때는 꼭 실행력이 좋았다. 델리를 떠나 태국을 일주일 정도마저 여행하고 한국으로 돌아온 이후 망설임 없이 11월에 다시 인도로 돌아오는 티켓을 사버렸다.
첫 여행에서 길지 않은 시간인 3주를 인도에서 보냈고, 돌아온 뒤에는 친구들에게 뭔가 마음이 여유로워 보인다는 말을 들었다. 콜카타에서 에서 시작해 네팔을 거쳐 인도의 다른 도시들로 이동하면서 인도에 대한 나의 마음이 변해갔듯, 여행을 하며 나 자신도 조금씩 변했던 것이다. 나는 자아를 발견하기 위해 여행을 간다던가, 여행을 다녀오면 성장하게 된다던가 하는 말들을 조금도 믿지 않는다. 떠나고 싶어서 떠났고, 떠나 보니 좋아서 한 번 더 떠났을 뿐 나의 여행에 자아라는 단어는 애초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매일 다른 세계가 펼쳐지는 인도에서 중요한 것은
순간의 감정과 나 자신일 뿐이었다.
다만 할 일이 별로 없는 인도에서는 모든 것들에 대한 생각을 할 시간이 많이 주어졌다. 나 자신과 내가 느끼는 순간순간의 감정들에 좀 더 집중할 수 있었다고 말하는 편이 좋을 것 같다. 예를 들어맞지 않는 사람과 동행을 하게 되었을 때 한국 같았으면 다른 일을 하면서 잊을 수도 있었겠지만 인도에서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부딪히며 미워하거나 그 사람을 미워하는 나를 미워하는 수밖에 없었다.
여행을 떠나오기 전 한국에서는 나의 마음을 잠시 잊고 살았었다. 대학교 4학년이 되었으니 일단 먹고사는 문제가 중요했고 그 이외의 것들은 부차적인 문제일 뿐이었다. 여행을 할 때는 우선순위가 바뀌었다. 한국에서 먹고사는 문제는 일단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매일 다른 세계가 펼쳐지는 인도에서 중요한 것은 순간의 감정과 나 자신일 뿐이었다. 자아가 어쩌고 하는 말은 나에게 너무 거창했다. 그러나 나는 그런 말이 어떤 맥락에서 나왔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인도가 좋았다. 인도에 있으면 나에게 좀 더 집중할 수 있었고, 나를 사랑할 수 있는 힘을 조금씩 키워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이것이 내가 인도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이기는 했지만 전부는 아니었다. 전부에 관해서는 나는 앞서 썼듯 여전히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유가 없는 것이 바로 그 이유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