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EBS를 말하는 줄 알았다
영화 <듄>은 영어로 <EBS>이다. 그래서 엄마가 보러가자고 말했을 때, EBS에서 나온 영화인 줄 알고 살짝 웃었었다. 요즘 영화계에 너무 관심을 두지 않았던 탓에 대작을 두고 비웃은 꼴이 됐다. 살짝 발만 담구는 수준으로 예고편을 본 뒤, 인물도 내용도 거의 모른 채로 영화관에 따라갔다. ㅎㅎ
영화 <듄>은 1965년 프랭크 허버트의 동명소설을 바탕으로,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SF 소설 중 하나라고 한다. <컨택트>, <시카리오:암살자의 도시> 등을 연출한 드니 빌뇌브 감독과 티모시 샬라메, 레베카 퍼거슨, 오스카 아이삭, 조슈 브롤린 등 유명배우가 합을 이룬 대스케일 영화이다. 일단 주인공이 매우 흡족스러워서 몰입하는 데 어렵지 않았다. 이 영화를 보고 느낀 한줄평은 "영화를 봤다기 보다는 사막을 온몸으로 체험하고 온 느낌"이다. 얼마 전 반 아이들과 사막에서의 의식주와 사막 생물들의 생존방법을 공부했는데, 이 클립을 활용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폭력성은 적었고, 스토리와 영상미가 뛰어났다.
예고편조차 제대로 보지 않았지만 영화 속 인물들과 행성, 가문들의 이름만 잘 따라가면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만큼 복집한 스토리는 아니라는 뜻이다. 한 가지 알고 가면 좋을 것이 '듄=dune'은 모래언덕을 뜻한다. 그래서 영화 쿨타임 155분 내내 모래언덕이 주구장창 나온다. 모래언덕이 펼쳐진 곳은 아라키스 행성으로, 물 한방울 없는 사막이지만 우주에서 가장 비싼 물질인 스파이스의 유일한 생산지이다. 그에 따라 여러 가문들이 아라키스를 두고 싸우며, 전쟁 아닌 전쟁이 벌어진다. 대략 이 정도의 정보만 알고가도 영화 자체가 살짝 늘어지기 때문에 궁금증을 가지고 영화를 감상하는게 더 재밌을 듯 하다.
<듄>의 시대적 배경은 10191년으로, 여러 행성과 그 행성을 통치하는 가문 그리고 우주의 모든 행성들을 관리하는 황제로 이루어진다. 황제가 얼마나 초인적인 힘을 가지고 있는지는 전혀 나오지 않지만, 아마 이 영화가 part 1 쉽게 말해 프롤로그 수준만 보여줬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아트레이데스 가문의 후계자인 폴과 그의 엄마 레이디 제시카, 그리고 아라키스 행성의 프레멘 족이다. 폴은 시공을 초월한 존재로, '목소리'라는 능력을 이용해 사람들을 제압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비주얼적으로 아직 왜소한 청소년 느낌이 강하고, 가문의 후계자인지라 어느정도 전투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전형적인 외유내강의 인물이다. 폴이 꿈을 통해 미래의 한 단면을 볼 수 있어 굉장히 흥미진진하고, 미래를 알더라도 어떻게 현재를 헤쳐나갈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영화에 더욱 집중하게 된다.
여느 SF영화처럼 화려하고 뛰어난 액션느낌은 덜하지만, 필요한 순간에 심심치않게 등장한다. 제법 분위기가 진지하고 엄숙하여 그 와중에 관객들을 놀랄만한 액션과, 스타워즈를 방불케하는 초거대한 우주선들의 등장으로 감각적인 연출을 선보인다. 그에 따라 영상미는 마치 내가 광활한 사막에 뚝 떨어져있는 느낌이 들 정도로 선명하고, 음악은 귀가 아플 정도로 웅장하다. 이 영화를 보고 난 직후, 단순한 오토바이 소리나 화장실 물 내리는 소리도 교향곡처럼 들릴 정도였다.
영화 내용을 전반적으로 스포할 순 없지만, 특별히 기억에 남는 명대사가 있다. 바로 폴의 어머니인 제니카가 했던 말이다.
"두려워하지 말라. 두려움은 정신을 죽이고, 세계를 소멸시키는 작은 죽음이다."
두려워하는 것만으로도 세계를 소멸시키고 나 자신을 죽일 수 있다니. 세상 겁쟁이인 나에게 큰 격려가 된다. 조그만 소리에도 쉽게 움츠려드는 나는, 아무래도 두려움을 내 일부처럼 몸에 지니고 살았던 것 같다. 하지만 도전하는 것을 좋아해 또 쉽게 두려움에 무너지진 않지만, 항상 시작 전 초조함과 불안감이 친구처럼 찾아오는 편이다. 영화 속 폴도 매 순간이 위협과 두려움의 연속이다. 그럼에도 물리적으로 대치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력으로 싸워 이겨내는 모습이 감명스러웠고, 진정한 승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시공을 초월할 정도의 멘탈유지는 못하겠지만, 바로 내일 월요일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모두가 이 영화를 보고 자기 앞에 놓인 어둠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있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