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0년 차 교사다.
학교를 무려 16년 동안 다녔지만 아직도 학교에 적응 중인 0년 차 초등교사다. 나는 쓴소리를 하는 데 소질이 없다. 정말이지 어렸을 때 일부러 무서운 표정을 하고 친구들을 쳐다보면 세상에서 제일 웃긴 표정이라고 놀려댔다. 그런 내가 더더욱 선생님으로서 화내는 것에 트라우마를 가진 사건이 있었다.
바로 초등학교 2학년 국어시간이었다. 아, 그때는 말듣쓰의 쓰기 시간이었겠지.
아직도 그날의 온도, 습도, 분위기가 생생하다. 2학년 정규 교육과정에 원고지 사용법이 있었고, 우리는 모두 원고지에 글을 쓰는 연습을 하고 있었다. 솔직히 어른도 헷갈리는 여러 기호와 형식들을 맞춤법도 잘 모르는 초등학교 2학년이 한다는 것 자체가 조금은 신기한 일이다. 그런데 나는 그때 조금 엉망으로 원고지에 글을 썼었나 보다. 내용도 그랬겠지만 형식이 잘못되었다. 그 글을 보신 선생님은 갑자기 내 원고지를 아이들 모두가 볼 수 있도록 들어 올리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약간은 인상을 찌푸리시고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말이다.
"자, 이렇게 OO이처럼 쓰면 안 되는 거야~
엉망으로 썼지? 이렇게 쓴 사람은 당장 다 고쳐~"
나는 그 얘기를 듣는 순간 머리를 한 대 맞은 것처럼 충격을 받았다. 나름 열심히 한다고 한 건데, 원고지를 친구들에게 보여주면서까지 수치심을 주셨고 다시 해보자고 격려해주기보다는 다그치시고 넘어가셨다.
나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엄청 신경 쓰던 학생이었기 때문에 선생님의 돌발행동이 너무 부끄러웠고, 얼굴이 따가울 정도로 붉게 익어버렸다. 그 뒤로, 선생님에 대한 불신과 초등학교에 대한 불편한 감정이 생겼다. (물론 아이러니하게도 그 사건으로 인해 원고지 논술 방과후를 다니며 글솜씨가 늘어나긴 했다. 생각해보니 그 덕분에 지금까지 글을 쓰는 것 같기도?)
지금은 여러 과정을 거쳐(?) 그렇게 발을 들이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초등학교를 평생직장으로 두게 되었다. 역시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을 불러일으키나 보다. 어쩌다 괜한 오기가 생겨 '나는 절대 그런 선생님이 되지 않을 거야. 오히려 힘들 때 도와주고, 무슨 일인지 물어봐주고 항상 아이들의 입장에서 챙겨주는 선생님이 되겠어.'라는 심정으로 초등교사가 된 것이다.
처음 6개월을 기간제로 시작해보니, 일단은 내 다짐대로 행동할 수 있었다. 정말 아이들 모두가 예쁘고 순수해 보였고, 늘 사랑스런 눈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그래서 늘 싱글벙글 웃고, 행복한 눈망울로 얘기하며 아이들과 깊이 교감하는 느낌이 들었다. 과연 이렇게 달콤한 순간이 며칠이나 이어졌을까. 2주가 지났을까. 그쯤부터 점점 내숭이랄 게 없는 날 것 그대로의 모습을 아이들은 보여주기 시작했다. 그렇게 화를 내야만 하는 순간들이 찾아왔고, 아이들 감정을 고려하지 않고 말하게 되는 나의 모습을 보기 시작했다.
선생님의 말씀이 얼마나 큰 파장을 미칠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쓴소리를 하는 것이 너무나 두려웠다. 그러다 초등학교에 대한 트라우마가 남으면 어떡하지? 그 당시 나처럼 선생님에 대한 불만과 반감이 생겨 학교 생활하는 게 힘들어지면 어떡하지? 여러 걱정과 고민들이 들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점점 이렇게 물어왔다.
"선생님은 왜 화를 안 내세요?"
그 말을 자꾸만 듣다 보니, 어? 화를 내달라는 뜻인가?
아마 몇몇 아이들은 선생님이 좀 더 화내시면 날뛰던 친구들이 온화해질 텐데.. 하는 심정으로 도움을 요청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결국 나는, 차마 화내지는 못하고 속앓이만 하다가 아이들 앞에서 울음을 터뜨리곤 했다.
그런데 너무 볼품없게 울었던 것이 흐느끼다가 말을 멈춰야 하는데, 잔소리는 해야겠고 그래서 이상하게 흐느끼면서 말을 해버린 것이다. 스스로도 얼마나 우스울지가 느껴졌다. 겨우 어깨를 진정시키고 칠판 쪽으로 뒤돌아 섰는데, 한 남자아이가 그걸 보고 크게 웃었다.
"하하하, 선생님 우신다" 그 남자아이는 내 최애 학생이었다. 장난기가 심한 건 알고 있었지만 그 당시 행동은 더욱 나를 눈물짓게 했다.
그 뒤로, 아이들은 조금 각성했고 나 역시 좀 더 무서워지기로 선포하게 되었다. 다시는 아이들 앞에서 울지 않기로 다짐했지만.
미술시간이었다. 먹을 사용해 특히나 집중하고 주의해야 하는 활동이었다. 그런데, 자주 까불거리던 남자아이가 먹을 책상 위에 쏟아버렸다. 정말 화가 나서 수행평가였음에도 아예 중단시키고 0점을 주겠다고 호통을 치며 밖으로 아이를 불러 세웠다. 다른 반 학생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복도 끝에 세워두고 혼자 반성의 시간을 가지라며 30분 정도 두었다. 정말 가~만히 멍 때리며 있었던 아이의 모습이 떠오른다. 나는 그 모습에 더 꼭지가 열려 무엇을 잘못했는지 혼자 떠들어댔고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체육 수업을 늦게 가도록 했다. 학습권 침해까지 해버린 것이다...
물론 체육 선생님께 양해를 구했었지만 그래도 다소 이상한(?) 방법으로 거의 처음 혼을 내보았다. 아이들은 내가 밖에 학생을 데려가서 상담할 수 도 있는 사람이구나 하는 신기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ㅎㅎ 그때가 아마 교사를 한 지 3개월이 되었을 때였을거다. 3개월 만에 거의 처음으로 제일 큰 소리를 내었다.
역시 한 번이 어렵지 두 번 세 번은 쉬웠다. 그래도 물론 화낼 때 우물쭈물,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으면서 이야기하지만 점점 늘어나는 것 같다. (마스크를 안 썼으면 실룩거리는 입꼬리를 들킬 뻔했다.) 괜히 뿌듯했다. 종종 독재자가 된 것 같은 자괴감도 들었지만 말이다.
그렇게 1학기는 얼렁뚱땅 넘어가고, 2학기는 발령을 받아 새로운 학교의 새로운 학급을 맡게 되었다. 똑같은 3학년이라 다행이었지만, 오히려 고통스럽기도 했다. 그 학년의 특성을 조금 느낀 터라 얼마나 분위기가 망가질 수 있는지 몸소 체감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군중심리가 너무 강했다. 예상보다 쉽게 휩쓸리고 도미노처럼 와르르 무너졌다. 겨우 하나하나 기강을 세워 놓으면 누가 툭 건드려서 전부 다 같이 쓰러지는 학년이었다. 이곳에서는 처음부터 무섭게 하라는 선생님들의 조언에 따라, 살면서 할 수 있는 가장 무서운 표정과, 최대한 험상궃은 아우라를 풍기려고 노력했다. 아침은 항상 피곤에 절어 있었기 때문에 표정도 좋지 않아 자동으로 아이들이 피하게 되었다. 아침 출근이 힘든 덕도 있구나 싶었다.
지금은 내가 생각하기에 화를 내는 수준이 좀 높아진 것 같다. 적당히 교육자다운 훈계도 하고, 목소리도 좀 깔면서 의외의 카리스마를 가진 것 같다. 물론 온전히 내 생각이다. 거울로 쳐다보면 아마 웃겨 죽을 것이다. 초반에 느낀 교사생활은, 교사의 탈을 쓰고 교사 흉내를 내는 고등학생? 느낌이 강했는데 지금은 묘한 책임감이 생겼다. 이게 바로 발령의 무게인 걸까.
아이들이 느끼기에 여전히 나는 화를 못 내는 교사일 것이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눈치가 너무 빠르다. 내가 말랑말랑한 슬라임같은 교사인걸 대번에 알았을 것이다. 내 채찍은 조금 덜 아프겠지만 그래도 언젠가 엄근진한 존재가 될 수 있을거라는 희망을 가진다. 아주 무시무시하고 존경스러운, 때로는 경외심까지 드는 사람 말이다.
가끔 그렇게 절대 권력을 가진 교사가 되는 꿈을 꾸면서 아침을 맞이하곤 한다. 꿈속에서라도 군주자가 되어 몸은 편했지만 사실 마음은 불편하고 안 맞는 옷을 입은 기분이었다. 조금 더 내 몸에 딱 맞는 강철 갑옷을 입고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를 가진 교사가 되기 위해 노력해봐야겠다. 편안하지만 방화벽을 뚫을 수 없는 그런 교사 말이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