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목적인 믿음이 낳는 폭력이 너무 꼴 보기 싫어서였다
성실한 지식에 근간을 두지 못한, 맹목적이고 자기만족적인 '믿음'은, 추하고, 공격적이고, 자멸을 향해 간다.
불행하게도 이것을 알게 된 건 목격을 통해서였다. 그 얘기를 자세하게 하고 싶지는 않다. 중요한 건 거기서 얻은 결론이다.
지식이란 성실한 것이다. 성실함에 의해서만 취해질 수 있다. 게으름은 무지를 낳고, 무지는 무례와 폭력을 낳는다. 그리고 무지한 사람은 그 자신의 무지함으로 인해 스스로가 무례하고 폭력적이라는 것조차 깨닫지 못하는 악순환에 갇힌다.
무지가 폭력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내가 느낀 것은 확신이었다. 향후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확신. 나는 그 반대쪽으로 가야 할 것이었다. 무지의 반대, 폭력의 반대, 즉 치열한 배움과 고민이 낳는 섬세한 선택과 행위들로, 내 삶과 내 주변의 세상을 채워 가겠다고 결심했었다.
스물두 살 당시의 내가 그 방향으로 가기 위해 가장 먼저 실천한 것은 성경을 읽는 일이었다. 인간과 세상을 향해 무례하거나 폭력적이지 않은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인간의 본질과 세상의 비밀을 알아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성경에는 그것들이 담겨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어쨌거나 역사상 가장 많이 팔렸고 가장 오래 살아남았다는, 권위 있는 텍스트니까.
그리고 (역사적으로도 현재적으로도) 내가 본 무례와 폭력의 다수가, 그 '성경'의 권위에 기대면서도 그 내용은 자의적으로 해석해 휘두르는 방식으로 이루어졌었기에, 그 내용을 성실하고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무례와 폭력을 예방하는 데에 필수적일 거라고도 생각했었다.
한동안 자기 직전까지 성경을 읽다 머리맡에 두고 잠들고, 눈을 뜨면 곧바로 다시 성경을 읽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었다. 성경은 쉬우면서도 어려운 책이었다. 어떤 날은 깨달음 같은 것이 금방금방 찾아오는 듯도 하지만, 어떤 날은 교훈을 얻어내려고 애쓰다 결국 내가 읽어내고자 하는 내용을 자의적으로 텍스트에 덮어 씌웠음을 깨닫기도 했다. 그걸 걸러내는 건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
성경을 잘 읽어보려고 성경에 대해 설명하는 책들도 잔뜩 읽었다. 이제 와 돌아보면, 아직도 지나치게 남성중심적인 구조와 문화를 가진 특정 종교사회에서, 살면서 남성중심적인 시각을 벗어나 볼 필요가 한 번도 없었던 남성들에 의해 서술된 남성중심적 해석과 설명이 다수인 글들이었다. 그 맥락을 인식하고 그걸 걸러 가며 읽는 것도 몹시 어려운 일이었다.
그럼에도 얻은 것은 있었다. 전지하고 전능하다는 신은 어째서 악의 존재를 방치하는가, 어째서 인간은 선의를 갖고도 부지중에 악을 저지르는가, 어째서 위대한 인간들조차 때로 혹은 자주 세상을 실망시키는가, 인간의 존엄성은 어째서 이토록 자주 의심되고 모독당하는가, 자유의지란 무엇이고 정말 존재하는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은 여전히 존재 자체로 가치로운가, 신은 과연 남자인가(아니었다), 신은 과연 남성을 인류의 원형으로 만들고 여성을 남성의 보조적 존재로 만들었는가(아니었다), 신은 정말로 여성이 닥치고 있기를 바라는가(아니었다) 등, 오랜 시간 나를 괴롭혔던 근본적 의문들에 대한 나름의 힌트들을 이 시기에 얻어냈다.
그 답변들은 내가 목격한 수많은 (정당화되는 듯했던) 무례와 폭력들의 정당성을 허물어뜨렸다. 다행히도 신은, 무례를 싫어했다. 덕분에 나는 십 대 중반부터 이십 대 초반까지 나의 내면을 요동치게 했던 혼란으로부터 간신히 탈출해 얼마간의 평화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또한 열심히 성경을 읽고 나서 마주했던 명백한 사실은, 이론으로 인생이나 세상을 공략할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삶은 인류를 관통하는 시대초월적이고 일반화된 이야기 너머에 존재했다. 인생은 구체적인 경험과 사실들로 만들어지는 것이었다. 나라는 존재의 고유한 결핍과 욕망, 나의 선택들과 그에 따른 결과와 책임들, 나를 구성하는 사회적 맥락들과 내가 놓인 역사적 흐름, 그런 것들이 나의 인생을 만들었다. '나는 원래 무엇이었으며 무엇이 되었어야 하는가'의 족쇄에서 풀려나 '나는 어떻게 살아가기 원하는가'의 물음에 집중하는 날들이 시작되었다. 그 답은 직접 살면서 찾아야 했다.
그래서 배움은 계속된다. 내가 무엇을 믿고 있는지 의심하며, 의심의 칼끝을 날카롭게 벼리며, '적당히 미끈한 곳에 뿌리내리'지 않으며. 무수히 많은 개별적이고 독특한 증언들을 듣고 읽으며. 선택하고 살아내고 그 이후에 찾아오는 것들에 성실하게 반응하며. 안주하지 않고 늙어갈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