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칸 채우기

미래의 내 아이가 나에게 자기를 왜 낳았냐고 물어본다면

by 하영

늘 언젠가 결혼할 거라고 생각했었고, 당연히 애도 가질 거라고 생각했었다.


근데 어쩌다 출산에 대한 깊은 고심에 빠져들었다.

한 사람이 태어나서 살아가야 할 이유가 뭘까?


나야 태어났으니까 사는 거라고 쳐도, 나 말고 다른 어떤 존재에게 태어나고 살아가고 어른이 되어갈 의무를 부여하는 게 과연 합당한 일일까?


살아가면서 책임져야 할 것들을 책임지는 게 힘이 든다. 나를 소소히 행복하게 만드는 것들이 있긴 하지만 그것들을 <위해서> 삶의 모든 부정적인 것들을 감당할 가치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그러니까 내 말은,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들이 있긴 하지만,

애초에 출생과 인생에 대한 선택권이 >나에게< 있었다면

인생을 거지같게 만드는 것들'에도 불구하고' 태어나기를 선택할 만큼

삶이라는 것이 매력적인 선택지인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나는 이미 태어났으니까 그런 소소한 행복들에서 살아갈 이유를 찾는 거라고 치고..


미래에 태어날 내 애한테

'삶에는 이러이러한 좋은 것들이 있으니 거기에 따라오는 거지같은 것들을 감당하는 방법도 배우렴,

그럴 가치가 있단다'

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 하는 것.


그래서 음.. 어쩌면 미래의 내 출산 계획(?)을 대하는 내 태도는

삶의 기쁨을 찾는 것,

이 될지도 모르겠다.


삶은 기본적으로 거지같지만

그래도 나는 너를 꼭 낳아야 했어,

왜냐하면 내가 경험한 인생에는

그 모든 거지같음을 상쇄할 만큼 엄청난 기쁨이 있었거든,

그건 바로 _______야.

그 기쁨을 너에게도 꼭 알려주고 싶었어.

너도 언젠가 반드시 알게 될 거야.


이 말의 빈칸을 채울 수 있게 되고 나서야

아이를 가질 결심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