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정의, 3년 전과 지금

다른 이의 눈을 통해 나의 온전함을 알아차리는 것

by 하영

3년 전

사랑에 대해 고민하며 썼던

짧은 글의 조각을 발견했다

그때 나에게 사랑은

기쁘게 누리는 것이기보다

고된 애씀 끝에 성취되는 것이었다

즐겁기만 한 사랑은

사랑일 수 없다고 생각했고

세상의 아픔을 끌어안는 자가

진정한 사랑을 알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흐르며

사랑에 대한 생각도 바뀌었다

이제 나에게 사랑은​​

만남을 약속한 날

나를 데리러 오는 길에

미리 데워져 있는 소나타 조수석 시트의 온기

카페에서 마시고 싶은 음료가 두 종류일 때

고민 없이 둘 다 주문하게 한 뒤 내게 내미는

더 맛있는 하나

삶에 자신 없어지는 순간마다

과장 없이 담백하게 말해주는

자신있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들

나에게 중요하지 않은 것을

나에게 강요하지 않는 배려

나에게 중요한 것을

자신에게도 중요하게 받아들여주는 진지함

완전함에 대한 목마름으로

많은 세월을 낭비한 나에게​

완전함은 노력과 달성의 대상이 아니라

이미 여기에 있고

처음부터 여기에 있었고

단지 알아차리고 만끽하면 되는 것임을 알려준

모든 순간들

​​​

이제 나에게

사랑은 그런 것이다

한때 나는

내 안에

가시밭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 안에 예쁜 꽃을 품느라

험한 가시도 세울 수밖에 없는가보다고

꽃을 보러 오는 이들을

아프게 할 수밖에 없는가보다고

스스로를 위로하곤 했다

아니

오는 이가 햇빛이라면

가시는 풍경의 일부인 것을

오는 이가 햇빛이라면

나도 덤불째 그저 안기면 되는 것을

그렇게 큰 사람에게

안기는 삶도 있다는 것을

사랑은 이제 나에게 알려주고 있다

나에게 사랑은 더 이상

상대방의 바닥을 견디기로 결심하는 일도 아니고

내가 갖지 못한 온전한 무언가를

내어주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도 아니고

이리저리 구멍난 줄 알았던 내가

사실은

이미 온전했음을

다른 이의 눈을 통해 알아차리게 되는 것이다



2024/12/22



사랑이

상대방의 바닥을 견디는 일이라면

자신을 사랑해 본 사람만이

타인을 사랑할 수 있다는 것도

당연한 말이겠다

들여다볼수록 엉망진창인

스스로의 바닥을 받아들여 본 사람만이

타인 안에 있는 지옥을 끌어안을 수 있는 것도

당연한 일이겠다

다들 안간힘을 써서

그렇지 않은 체하며 살아갈 뿐

뚜껑을 열어 보였을 때

그 안에 가시밭이 없는 사람이 없다면

그래서 어차피 사랑이

오래 참는 일이라면

받을 생각보다 줄 결심으로

힘을 낼 수 있을 때를 만나야 하고

그렇다면

내가 사랑해본 적 없는 나를

오래 참아 보는 것만이

사랑을 시작하는 길일 수도 있겠다

서로의 바닥을 못본체하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

서로의 입에 재갈을 물린 채 하는

발길질밖에 될 수 없으므로

서로의 바닥이 감당할 수 없는 자리에

서로를 억지로 데려다놓지 않는 삶이기를

받아줌과 받아들여짐의 모양을

흉내내는 인생이 아니라

서로의 바닥을 알아주는

알고서도 안아주는

알려주고 안겨주는

인생이 되기를



2021/1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