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계절이 나를 세워 두는 곳
철부지라는 말의 뜻은
철을 모르는 사람, 이라고 한다.
해석이 여러 가지라는데
난 농경사회를 전제한 해석이 마음에 든다.
절기를 몰라 농사를 망치는 사람,
그러니 철 가는 걸 모르는 사람.
자연의 일부인 인간은
자연의 흐름을 타고 살아갈 때 가장 충만해진다.
철이 바뀌면 그에 맞는 옷을 입고,
그 계절이 내는 색과 맛을 누리고,
하늘이 높은 계절엔 단풍을, 꽃이 피는 계절엔 소풍을,
뜨거운 계절엔 푸른 생명력을, 차가운 계절엔 차분한 고요를,
충분히 음미하는 것.
그걸 할 줄 모르고
철이 바뀌는데 고집스럽게 이전의 삶을 붙들고 있는 이를
철부지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서른이 되는 날을 딱 보름 앞두고 있다.
불안에 눈이 멀어
꽃이 핀 것도, 단풍이 든 것도 모르고 살던
스물넷, 스물다섯의 나를 떠올려 본다.
그땐 모든 게 그렇게 무서웠다.
실망시킬까 봐,
납득시키지 못할까 봐,
나중에 지금을 후회할까 봐 두려웠고,
특별할 것 없는 인생이 될까 두려운 동시에
남들과 다른 인생이 될까 두려웠다.
신기하지,
불과 몇 년 지났을 뿐인데
이젠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남과 다른 것,
남과 같은 것,
이젠 그런 말이 나를 겁주지 못한다.
이제 나는 나를 찾아오는 철을 따라 산다.
날이 좋으면 하늘을 보러 나가고
궂은 날은 따뜻한 곳에서 맛있는 것을 먹고
밤에는 약 없이 잠을 자고
아침에는 차갑지 않은 물로 얼굴을 씻는다.
힘을 빼야 하는 계절도 있었다.
어떤 소리를 들으려면 숨을 죽여야 하는 날도 있었고
너무 빽빽한 하루 사이로는 햇빛이 들 수 없으니
일부러 틈을 내 두어야 하는 날들도 있었다.
지금은 힘을 쓸 철이니
한껏 촘촘해진 하루하루를 즐거워한다.
다 지나와서 다행이다.
돌아가고 싶은 순간이 없다.
앞으로만 가고 싶다.
그게 이 계절이 나를 세워 두는 방향이다.
충만한 마음과
가벼워지는 몸.
철 따라 살기를 배워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