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영어가 내게 처음 준 의외의 선물
나는 외고를 졸업했다. 그것도 영어과. 원서를 쓰던 중학교 3학년 당시 나의 지원동기는 몹시 순수했다. '영어가 좋아서'였으니까. 영어로 읽고 쓰는 게 좋아서, 영어로 글 쓰는 작가가 되고 싶다고 썼었다.
지금 돌아보면 순진해 보일 만큼, 외고에 지원하면서 대입에 대한 계산은 없었다. 중학생쯤 되자 주변에 해외로 어학연수나 단기 유학을 다녀오는 친구들이 한두 명씩 생기고 있었다. 그땐 나도 미국에 있는 고등학교를 가고 싶었다. 그러나 그럴 형편은 아니라서 대신 외고에 가기로 결심한 것이기도 했다.
첫 글에 언급했다시피 나는 중학생 때 영어 원서로 소설들을 읽기 시작했다. 영어가 열어 준 세상이 넓어질수록 영어라는 언어 자체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고등학교에 가서 영어를 '전공'하며 하루 종일 영어만 공부할 수 있다면 행복할 것 같았다.
홍보물에 담긴 외고 생활은 낭만적으로 보였다. 외국의 다른 학교들과 국제교류도 하고, 해외 연수 프로그램에도 참가할 수 있다고 했다. 영어로 글을 쓰거나 말을 할 기회도 많고, 기숙사에서 살면서 추억도 쌓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지역 내의 한 학교를 마음에 품고 한 해 동안 자소서와 면접을 열심히 준비해서 합격했다.
그렇게 들어간 외고 생활은 기대와 비슷한 듯하면서도 달랐다. 일단 홍보물에 적혀 있던 것 중 사실이 아닌 것은 없었다. 국제교류도, 해외연수도, 영어 글쓰기나 말하기 대회의 기회도 있었다. 기숙사 생활도 마찬가지였다. 예쁘다고 생각했던 교복도, 전공어별 축제도 정말이었다.
그러나 내가 간과한 것이 있었다. 이 모든 것이 대입이라는 대전제 위에서 이루어지리라는 점이었다. 학교에서 영어로 읽고 쓸 수많은 기회는 수행평가의 일환으로 주어지고 내신 경쟁으로 수렴했다. 시험기간이면 평소보다 많은 글을 읽었고, 읽을 뿐 아니라 외우고 분석하고 주제문을 뽑고 요약하고 유의어와 반의어를 찾으며 머릿속에 박아넣었지만, 그렇게 시험 준비를 하는 동안 마음을 채운 것은 배우는 설렘과 즐거움보다는 불안과 강박이 대부분이었다.
분명 쉽지 않은 날들이었다. 그때의 기억이 잘 나지 않을 만큼 삶의 낙이라곤 없이 성과에만 몰두하는 3년이었다. 가장 예민했을 청소년기를 그토록 극심한 경쟁과 그로 인한 상처로 채웠다는 사실이 지금 생각해도 퍽 안타까울 정도다.
그럼에도 그 전까지 읽으며 채워 둔 시간들은 내게 힘이 됐다. 수능 교재라든지 기출문제로 나오는 영어 지문들은 거의 어려움 없이 쉽게 읽어낼 수 있었고 모의고사에서도 영어는 거의 틀리지 않았다. (영어가 상대평가로 지금보다 어렵던 시절이었다.) 본격적으로 수능을 준비하던 고3 시절에도 영어 공부에는 거의 시간을 쓸 필요가 없었다. 덕분에 나는 내가 약한 것들을 챙기는 데에 더 공을 들일 수 있었다.
독서 영어와 시험 영어는 다르지 않냐고 물을지 모르겠다. 분명 접근법에 차이가 있지만, 본질은 통한다고 생각한다. 국어 공부를 떠올려 보면 공감이 쉬울 것 같다. 평생 한국어로 읽고 써 온 우리도 국어 시험을 앞두고는 문법요소도 공부하고 비문학 문제풀이도 연습한다. 한국인에게도 쉽지만은 않지만, 그만큼의 한국어 읽기 쓰기 경험조차 없는 외국인이 국어 공부를 하는 경우보다는 수월할 것이다.
3년여의 자유로운 독서 경험이 내 안에 꽤 많은 인풋을 쌓아 놓았던 듯하다. 영어로 읽고 쓰는 일이 숨 쉬듯 자연스러웠기 때문에 '독해' 다음 단계에서 모든 공부를 시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외고 생활은 그것을 더 갈고닦기보다는 그 덕을 보는 시간이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외고에서 나는 영어를 배웠다기보다는, 이전까지 쌓아 두었던 영어로 경쟁을 한 것에 가깝다. 영어에 대해서만큼은, 쌓기보다는 소모하는 시간이었다고 기억한다. 말하고 쓰고 듣고 읽기보다는, '읽어내고' '문제 푸는' 데에 집중해야 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영어를 늘리지 못했으니 외고 진학은 인생의 낭비였을까? 그렇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다. 외고는 내게 영어 빼고 거의 모든 것을 줬다. 나는 내가 필요할 때 얼마나 집착적으로 꼼꼼하게 공부하고 노력할 수 있는지 안다. 또 정신을 혼미하게 하는 경쟁 상황에서 내 마음을 지키는 방법을 안다. 이것들은 영어나 입시와는 별개로 내가 지금까지도 계속해서 업데이트하며 연장처럼 품고 있는 자산이다.
더 중요하게, 나는 고등학교에서 내 가장 가까운 친구들을 얻었다. 삶의 태도와 열심의 정도가 비슷하고, 지금도 각자의 자리에서 멋지게 살아내고 있는 친구들. 그 학교에 가지 않았다면 이 친구들을 만나지도 못했을 것이다. 어쨌거나 나를 외고로 이끈 것은 영어였다. 그러니 이 친구들이야말로 영어가 내게 처음으로 준 의외의 선물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다른 수많은 선물들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