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나와 조응하는 새로운 언어 만나기
나는 청소년 때는 '영어덜트(Young Adult)'로 분류되는 영어책들을 좋아했다. 영어덜트란 말 그대로 어린 성인, 즉 십 대 후반에서 이십 대 초반까지의 연령을 이른다.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책들이 영어덜트 책이었다. 영상매체로 치면 우리가 흔히 '하이틴'이라고 부르는 감성의 작품들이 되겠다.
물론 국내에도 훌륭한 청소년소설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십여 년 전 십대였던 내가 느끼기에는 '십 대들을 위해 쓰인' 책은 많아도 정작 '십 대인 나의 취향에 맞는' 책은 찾기가 어려웠다. 그러니까, 한창 그 나이에 관심있을 연애, 친구관계, 자존감, 진로고민 같은 이야기들을 어른의 시선에서 교훈적으로 풀어낸 이야기들은 많았지만, 그저 그 시기에 느끼는 흥미와 다양한 감정들, 그 안의 혼란까지 온전히 긍정하면서도 다양한 가능성을 자유롭게 상상해보도록 해 주는 재밌는 책들은 쉽게 찾아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영어로 쓰인 것 중에는 그런 책을 찾기가 쉬웠다. 영어덜트 소설에 적힌 십 대들의 연애는 여러 면에서 뜨겁고 솔직했다. 그리고 그 시기의 감정과 상태를 묘사하는 다양한 표현들을 담고 있었다. 이전에 설명하기 힘들었던 내 마음의 어떤 부분을 정확히 짚어내는 듯한 표현을 만나면, 그만큼 나는 나 자신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고 편안해질 수 있었다. 예를 들면, insecurity라는 단어가 그랬다.
십 대의 어느 날 "I'm really insecure about my height."라는 문장을 봤다. (어디서였는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이 insecure를 번역하자면 '불안한', '불안정한', '자신감 없는' 정도가 된다. 그런데 이 맥락에서 이 단어가 전하는 느낌은 '자존감 낮은'에 가깝다. 단지 어떤 특정한 이유 때문에 불안한 것이 아니라, 나 자체가 부족하고 불충분하다고 느껴서 마음 안쪽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해결되기 힘든, 외로운 불안감이랄까.
그런데 또 이 insecurity를 정확히 '자존감'에 대한 얘기라고만 보기엔 어딘가 아쉽다. 우리말로 자존감이라고 하면 말 그대로 자기 자신 전체에 대한 존중감을 지칭하게 된다. 그러나 자존감을 총체적인 하나의 척도로 보아 높고 낮음으로만 이해하면, 상황이나 주제에 따라서 좋아졌다 나빠졌다 하는 마음을 설명하기 어렵다.
십 대의 내게는 이게 참 어려웠다. 자존감이라는 키워드가 한창 대두되던 시절이었다. 나는 내가 자존감이 높은 건지 낮은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어느 날은 나 자신이라든가 내 앞에 놓인 미래 같은 것들이 그리 나쁘지 않게 느껴졌다. 심지어 내가 꽤 잘났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도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은 나야말로 뭘 시작하기에도 이미 늦었고 별 희망이 없고 세상에 필요하지도 않은 사람으로 느껴졌다. 이럴 때면 혼자 세상에게 버림이라도 받은마냥 한없이 우울에 젖어들었다. 매일 등락을 반복하는 자존감이라면 그런 불안정성 자체가 자존감 낮음을 뜻하는 것 같았고 그런 내가 더 미워지기도 했다.
그러던 와중에 저 문장을 본 것이다. "I'm really insecure about my height." Insecure가 자존감이 낮다는 뜻이라면 "나는 키 때문에 자존감이 낮아"라는 말이 되어야 했다. 그러나 맥락상 저 말은 키라는 단일 요소가 내 자존감 전체를 낮춘다는 말 같지가 않았다. 오히려 평소에는 별문제가 없지만, '키에 대해 얘기할 때는', '키가 중요한 요소가 되는 순간에는', '키라는 주제에 한해서는' 자존감이 낮아지는 것처럼 느낀다는 말로 보였다.
이 말은 마치 상황에 따라 이리저리 휘청거리는 것 같은 내 '자존감'이 그렇게 잘못된 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그렇다면 더는 내가 자존감이 높은지 낮은지 지나치게 연연하지 않아도 될 것이었다.이렇게 insecurity라는 단어는, 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몰라 정말로 힘들어하고 있었던 십 대의 내 마음을 깊이 어루만졌다. 자유를 줬다.
다른 문화권에서 태어난 다른 언어로 청소년 책을 읽는 일에는 이런 선물이 따라왔다. 나의 어딘가를 설명할 더 많은 언어를 만날 수 있다는 것. 어쩌면 나의 특정한 부분은 다른 나라 사람들의 말로 더 잘 설명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리고 그 말을 만나고서야, 내가 그 만남을 내심 얼마나 간절하게 고대하고 있었는지 알게 될 것이다.
돌아보면 내가 한창 청소년책을 읽던 10~15년 전 당시는 트와일라잇, 헝거게임 같은 히트작들이 이끄는 영어덜트의 황금기였다. 초자연적 존재와의 판타지 로맨스, 디스토피아 같은 특수한 설정들로 관심을 끄는 작품이 쏟아져 나왔다.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진 것도 다수였다.
사실 황금기가 지나간 뒤 최근 10년여 간 영어덜트 장르는 그리 활발하게 업데이트되지 않았다. 요즘도 아마존에서 영어덜트 카테고리에 들어가 보면 그 시기에 출간된 책들 다수를 아직도 리스트 상단에서 볼 수 있다.
대신 그 독자층이 그대로 성장한 것인지, 뉴어덜트(New Adult)라는 명칭의 새로운 분류가 사용되고 있다. 뉴어덜트란 영어덜트 다음 시기, 그러니까 이십 대에서 삼십 대 초반까지의 연령층을 독자로 하는 책들을 말한다. 요즘 활발하게 책들이 나오고 있다.
유행뿐 아니라 나 자신도 바뀌었다. 예전에 읽었던 영어덜트 책들을 최근 다시 뒤적여 보았지만 예전만큼 빠져들게 되지는 않았다. 내가 오래 품어 온 세계가 나를 떠난 것 같아 내심 조금 서운한 마음도 들었다. 나 자체가 나이를 먹어 더 이상 영어덜트는 아니게 되었으니 자연스러운 일일 텐데도 말이다. 요즘은 나이에 맞게 뉴어덜트 책들에 더 관심이 간다.
나뿐 아니라 독자라면 누구나 자신의 삶이 진행됨에 따라 관심사가 바뀌어가는 것을 경험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그때그때의 자신과 잘 조응하는 이야기를 만나는 것은 독서가 주는 또 다른 굉장한 기쁨일 것이다. 지금의 나와 가장 잘 조응하는 이야기는 다른 언어로 적혀 있을지도 모른다. 영어원서 읽기를 더 미룰 필요가 없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