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서읽기에 대한 연재를 마칩니다

함께 읽을 사람들을 만났거든요

by 하영

작년 9월 말, 원서읽기를 주제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십 대 때부터 오랜 시간 동안 내 삶의 일부였던 이 취미에 대해서 한 번쯤은 어딘가에 기록을 남기고 싶었다.


사실 난 원서읽기보다는 영어 독서라는 말이 더 편안하다. '원서읽기가 취미다'라는 말은 어딘가 민망하게 느껴진다. 내가 주로 읽는 건 영어책인데, '원서'라는 단어는 곧 '영어책'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고, 엄밀히 말해 번역되지 않은 원문의 도서를 이를 뿐이므로 특정한 하나의 장르 혹은 카테고리를 유의미하게 가리키는 것도 아니다. 원서읽기가 취미라고 말하려면 영어 말고도 프랑스어라든가 중국어라든가 다른 언어로도 원문의 책을 읽고 있어야 마땅할 것 같다. 한국어 책을 한국어로 읽는 것 역시 원서읽기에 속할 것이다. 그렇게 보면 '원서읽기가 취미다'라는 말에 담긴 정보값은 '독서가 취미다, 번역본만 빼고'와 크게 다르지 않다.


또한 검색포털에 '원서읽기'를 검색했을 때 주로 뜨는 결과는 영어 원문의 맛을 즐기는 독서라기보다는 영어 학습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독서에 가깝다. 물론 독서가 외국어를 습득하고 어휘력을 확장하는 훌륭한 방법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경험상 독서는 외국어 학습의 '수단'보다는 '목적'이 될 때 삶의 풍요에 더 도움이 된다. 특히 요즘에는 AI의 통번역 성능이 발전함에 따라 오로지 기능적 목적으로 외국어를 직접 배우는 것은 수지타산이 안 맞는 투자가 되어 가고 있다. 오히려 다른 문화권의 창작물을 보다 깊이 직접적으로 향유하겠다는 사치성 목적이 외국어 학습에 적합한 동기가 되었다.


이 모든 부당함에도 불구하고 원서읽기라는 표현을 포함해 글을 썼다. 이 글쓰기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함께 영어 원서를 읽는 사람들 만나기, 라는 목적.


청소년기부터 지금까지 영어책들을 읽어 오면서 나는 특정한 종류의 외로움에 익숙해졌다. 먼저 같은 책을 읽더라도 번역본이 아닌 영어 원문으로 읽었을 때 생기는 고유한 경험들이 있는데, 이를 공유할 사람을 찾기가 어려웠다. 영어 문장의 구조나 특수한 어휘를 활용하는 언어유희, 다중의 메타포, 절묘한 뉘앙스 표현 같은 것들에 누군가와 함께 감탄하고 싶은 욕구가 있었다. 또한 영어책을 읽다보면 번역되거나 수입되지 않은 책들도 읽게 되는데, 이 경우 공통의 독자가 정말로 그 책을 영어로 읽은 사람밖에 없게 되므로 독서 경험을 나눌 사람이 더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중학생 때 영어책을 읽는다는 이유로 잘난척한다는 오해를 받았던 경험이 너무 진하게 남아있는 탓에, 영어로 뭘 읽어도 왠지 그걸 드러내면 안 될 것 같은 압박을 늘 느꼈다.


이런 이유로 해외 북클럽 웹사이트를 돌아다녀 보기도 했다. 그러나 그때 깨달은 것은, 내가 필요로 하는 건 단지 '영어 독서 경험'만의 공유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내가 원하는 건 '한국인이라는 공통점을 전제한' 영어 독서 경험의 공유였다. 같은 책을 읽었더라도 한국인으로서 거쳐 온 경험과 맥락 위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갈증이 있었던 것이다.


독서를 통한 영어 학습이 아닌, 영어 독서의 경험을 공유할 공간을 갖고 싶었다. 그 만남을 위한 시작점으로 나의 생각을 먼저 꺼내 놓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생각에 좌표가 찍히면 그때부터는 누군가와 연결될 가능성이 생기니까. 그리고 생각을 꺼내 놓기에 가장 좋은 수단은 역시 글쓰기였다. 그래서 브런치에 연재를 시작했다.


실제로 글을 쓰기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원서읽기 챌린지를 운영하게 되었다. 1월의 챌린지를 무사히 마무리하고 두 번째 챌린지도 이어 개설했다. 같은 책을 읽고 생각을 나눌 공간과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내가 소개하고 싶은 책을 고르고 고민하는 시간도 일상 속에 자리잡았다. 내가 원했던 그것이 나를 찾아왔다.


이제 이 연재는 마무리하려고 한다.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던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기 때문이다. 원서읽기챌린지는 상황이 허락하는 한 계속 열어볼 생각이고, 월초에 블로그에 공지를 올리려 한다. 관심 있는 분이 계시다면 블로그를 통해 찾아주시면 좋을 것 같다.


연재를 종료하지 않고 원서읽기와 관련된 글을 계속 올리는 것도 고민해보았지만, 지금 시점에서 쓰고 싶은 말은 이미 어느 정도 썼다는 생각이 든다. 또 할 말이 쌓이면 다시 써 보려고 한다. 함께 읽는 시간이 나에게 또 새로운 세상을 열어준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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