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주에 있을 시험을 준비하려 노트북을 켰지만, 몇 시간 째 멍하니 생각에 잠긴 스스로를 발각한 시점.
늘 해야 하는 것보다 하고 싶은 일이 아른거리는 조막만한 내 심성이 오랜만에 블로그로 날 이끌었다.
언제나 아무 일 없기만을, 몰려오는 파도가 나를 덮치지 않기 만을 조마조마 빌었던 내가
정말로 아무 일도 없는 어떤 시기를 우연히 마주하게 됐을 때, 그게 어떤 신비로움도 행운도 아닌, 그저 찰나의 우연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기까지 참 많은 시간이 걸렸다.
평안에 대한 소망을 띄엄띄엄 생각하고, 까먹고, 급기야 아예 잊었을 때,
다시 찾아온 이유 모를 갈증이 다시 나를 자극해왔다.
제대로 된 시험을 보기 시작했던 중학생 시절부터 시작된 내 손의 축축함은 아주 잠시 손에 쥔 마우스가 흥건히 젖어들 정도로
발전해왔다. 어김없이 땀으로 빛나는 손을 줬다 폈다 하며 은은히 웃던 나를 보고 상담자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너무 꽉 쥐고 있어서 그런 것 같다고. 그 다음 나도 생각했다. 그러게, 크지도 않은 손 한 자락 속에 난 무얼 그렇게 놓고 싶지 않을까.
늘 어려웠다. 무엇이 어렵냐면 인간 관계가.
사실 처음부터 알고 있었을지 모른다. 난 그가 싫다는 것을. 정확히는, 그의 모습에 가득 비친 스스로에 대한 혐오를.
자꾸만 거슬리는 그의 모습이 정녕 나는 아니라고 부정하길 소원했다.
아주 어릴 때부터 무수히 마주한 이유 없는 혐오들은 존재하지 않는 어떤 거름망을 지나 정면으로 내게 꽂혔다.
그래서 난 놓고 싶지 않았다. 아주 작은 호의도, 아주 작은 사랑도, 그저 누군가의 천성일 뿐 이었던, 아주 작은 미소들도.
다 갖고 싶었다. 하나라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간절했으니까. 너무나 필요했으니까.
그다지 나를 연민하고 싶진 않다. 그냥, 그 땐 그랬던 거고. 이젠 안 그럴 수도 있는 거 아닌가.
어렵긴 하겠지만야... 이보다 더 나빠지기보단 나아지는 게 한결 쉬운 방법 아니겠어? 하고 생각한다.
파도는 거스르는 게 아니고, 애초에 거스를 수도 없단다.
다만, 물을 먹을지언정 파도를 타볼 수는 있다. 처음엔 자꾸 무너지고 짠 맛을 보겠지만,
익숙해지면 제법 자유로운 서퍼surfer가 될 수 있을지도...? (아마)
어제는 천 일이었다. 사랑하는 내 남자친구와의 천 일.
많이 가벼워졌다 생각했지만 천성인 진지함은 색이 잘 바라지 않아서, 다분히 웃긴 편지를 써보겠다고 책상 앞에 앉았지만
꽤나 어려움을 겪었다.
글 역시도 그런 것 같다. 쉬이 가벼워지는 건 아닐지라도, 오늘도. 그래도 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