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톱만한 오늘의 일기

by 하유월

우리가 알고 있는 타인의 삶은 정말 손톱만한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호르몬의 영향인지, 먹는 약이 달라져선지, 아니면 상황이 상태를 악화시키는 것인지 원인을 명확히 알 수 없음 속에서 나는 나오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먼저 한 전화에서 부모님의 얼굴을 보니 며칠 전 본 가족 드라마가 생각나 다분히 애틋해진 마음에 흐를 뻔한 강물은 이성의 끈에 붙잡혀 간신히 눌러졌는데, 이제는 조금 편안해진 남자친구와의 두 번째 통화에선 그런 방식이 통하질 않았다.

한바탕 시원하게 비를 내렸다. 남자친구는 눈물 닦은 휴지와 콧물 닦은 휴지가 같다며 내가 쓰는 휴지의 갯수를 셌고, 나는 같은 휴지라도 사용한 면이 다름을 강력히 주장하며 주먹을 들어 위협해 보였다. 화면에 비친 주먹을 든 여장부의 모습이 꽤나 웃겼다. 내일 아침이면 양쪽 눈이 어김없이 퉁퉁 부을 것임은 너무도 명확해진 사실이다.


통화를 끊고 나서 다 돌아간 건조기 속 낙낙한 온기의 빨래를 찾아와 다이소에서 받아온 대형 쇼핑백에 몰아넣고 샤워를 했다. 어디서 자율신경실조증 개선에 좋다는 글을 보곤 찬물에 몸을 적셔볼까 했지만 한겨울의 냉기에 져서 미온수로 타협을 봤다. 씻고 나와선 냉동실에 몇 개월간 묵혀둔 신상 아이스크림이 생각났다. 얼음이 들러 붙어 아삭거리는 아이스크림을 시린 이빨로 잔뜩 아작냈다. 식감이 아주 맘에 들었다. 먹은 흔적을 정리하고 나니 열두시, 자리에 누우니 열두시 반.


문득,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은 작가의 글이 떠올랐다. 하늘에 구멍 뚫리듯 잔뜩 물을 게워 내고, 갑자기 떠오른 당의 부름에 홀리듯 꺼낸 아이스크림을 만족스럽게 먹어치운 나란 애가 웃겼던 것 같다. 지나친 자기연민은 위험하다는 얘기를 어디선가 들어서, 나 자신을 너무 어여삐 여기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이렇게나마 찾아드는 어설픈 연민들이 잠시나마 작은 실소를 머금게 해준다는 것 또한 내게 너무나 사실이다.

떡볶이가 먹고 싶다던 작가님의 글도 이런 식이었을까? 그가 자유롭기를, 더없이 평온하기를 바란다. 작가의 삶도, 그 와중에 무슨 떡볶이냐며 냉소로 바라봤을 누군가의 삶도, 내게는 손톱만큼도 알지 못하는 타인의 삶일테지.


의식의 흐름을 이렇게 따라가다가도 완결을 멋대로 지어갈 수 있게 되는 나만의 글쓰기, 그것이 가진 매력을 느낀다. 호르몬이 요동을 치고, 마음에 모아둔 물들이 저수지에서 방류되듯 쏟아져 나올때면 바닥에 숨어있던 활자들도 제 모양을 만들어 비로소 세상 밖에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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