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약할 수 없어도 나는 기꺼이

by 하유월

어떤 글을 쓸지, 방향이 전혀 잡히지 않는 때에도 끄적이고 싶은 때가 있다.

오늘도 그런 날인 듯 싶다.

일기인듯, 수필인듯. 모호한 그 사이 어딘가에 있는 내 글이 좋아서 오늘도 써본다.


성수를 다녀왔다.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도 아스팔트 위를 걸으며 화려한 것들 속에 여기저기 시선을 뺏긴다.

돈이 많다면야 얼마든지 반짝이는 것들을 쓸어 담을 만한 shopper의 기질을 가졌지만,

스스로가 지성인이라고 믿고, 또 되뇌가며 빛나는 상품 앞 아쉬운 발걸음을 돌린다.

친구는 생각해 둔 것이 있냐고 묻는다.

없다.

돈이 없어도 구경하는 것의 즐거움 역시 쏠쏠하다.


마음 얕은 곳 어딘가에 남겨 둔, 해결되지 않은 그리고 해결되지 않을 어떤 책임감, 죄책감,

또 어떤 슬픔과 서러움이 때때로 걸음을 늦춘다.

상담자는 삶을 살아가며 어떤 종류로든 상실의 순간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찾아올거라 했다.

맞는 말이다.

이번에도 예상치 못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나는 그 때마다 무너지고, 또 일어날 거다.

그러나 영 맥없이, 속절없이 무너질 수는 없다.

덜 아프게 넘어지고, 덜 힘들이며 일어나는 방법은 언제나 중요하다.

상담자는 내게 과거를 생각하기에 앞서 현재와 미래를 안전하게 견뎌낼,

어떤 장치를 마련해보자고 제안한다.

이제는 성인으로서 스스로를 직접 지켜내고 싶은 나의 욕구가

그의 말에 맞닿아 동의를 일으키고 파도처럼 흩어진다.


목적 없는 화려한 구경을 마치고, 이제는 보살펴야 할, 나의 사랑하는 이를 찾아갈 시간이다.

이 여정에서 나는 나의 애인을 마주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내 욕심이 앞서 그의 상처에 생채기를 내선 안되니까.

너무도 보고싶지만, 만남을 확신할 수 없는 순간에도 나는 나아간다.

멀리서도 내 사랑이 나를 기다릴 사람에게 가닿아, 자그만 반창고가 돼주길 바라며.

작가의 이전글불공평한 하루를 성실히 나아가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