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명랑하고 꿈이 큰 초등학생이었다.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에서는 해마다 ‘나의 진로를 설계하는 대회’가 열렸다.
저학년 시절, 나는 3층짜리 단독주택과 커다란 마당이 있는 집을 그려 내며 선생님의 칭찬을 받았다.
조금 나이가 들어서는 천체물리학자, 소아과 의사 같은 제법 구체적이고 뚜렷한 직업을 내세워
당차게 포부를 밝혔다.
그때 내가 그린 미래는 단지 직업이나 물질적인 목표만이 아니었다.
그 속에는 언제나 서로를 존중하고, 친절이 당연한 세상에 살고 싶은 마음이 함께 담겨 있었다.
집을 얘기할 땐 '따뜻하고 화목한, 대화가 꽃피고 서로에게 다정한 가정'을 상상했다.
내 꿈은 그냥 소아과 의사가 아니었다. 내 꿈은 '아이들을 사랑하고, 아이들에게 사랑받는 사람'이었다.
크고 작은 다툼과 따돌림이 있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세상은 본질적으로 아름답고,
사람은 사람에게 언제나 친절해야 하며, 결말은 결국 밝고 희망차야 한다고 믿었다.
그것이 내가 아는 세상이고, 내가 설계한 삶이었다.
그러나 머리가 크고, 친구들이 직장인이 된 지 한참 지난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다.
나는 친절이 기본값이라고 믿었지만, 살아 보니 그렇지 않았다. 사람들은 각자의 기질과 성격,
그리고 저마다의 사정에 치여 애꿎은 타인에게 화풀이를 한다. 늘 웃는 사람은 종종 만만한 대접을 받는다.
편의점에서 환하게 웃던 직원의 얼굴은, 술에 취해 소리를 지르는 손님의 삿대질에 서서히 굳어 간다.
바보같이 착한 사람은 이 세상에서 온전히 버티며 살아가기 어렵다.
그럼에도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 매일 타는 버스에서 반갑게 인사해 주는 기사님이 있고,
“한국에서나 봉사하지, 왜 아프리카까지 가서 남의 나라 물을 길어주느냐”는 말에도
허허 웃으며 평생을 헌신하는 사람이 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 역시 아직 완전히 변하지는 못했다.
여전히 내게 있어 친절은 디폴트고, 밝고 명랑한 세상을 꿈꾼다.
어쩌면 세상은 끝까지 친절을 지키는 사람들 덕분에 조금씩 나아지는지도 모른다.
내가 그 ‘아닌 사람’들 중 하나라는 것에 만족한다.
원래 변화는 한 끝 차이에서 시작되는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