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이 하지 말라고 하는 것엔 다- 이유가 있더라. 하는 뻔한 말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좋은 대학에 가야 한다'는 말부터 시작해, 대기업 취직, 결혼, 출산에 이르기까지
간간히 만나는 어른들은 우리의 양 어깨에 한 마디씩 올리시기에 바빴다.
잔소리는 결국 잔소리로 남고, 서로를 위해 지켜야 할 선이 있다는 것에도 동의하지만,
그들이 내린 정답들이 왜 존재하는지, 그 이유에 대해서도 나이를 들어갈수록 이해하게 된다.
태어난 이래로 수많은 선택을 하며 살아온 이들이, 후속 세대가 그만한 헤맴을 하지 않고 그저
평탄한 길을 가길 바라는 오지랖들이 모여 어떤 '정답지'를 만들게 된 것 아닐까.
대학에 오기 전까지는 나도 어떨 땐 원해서, 어떨 땐 강제로 부모님의 울타리 속에 남아 아늑해왔다.
덕분에 더 이상 떠나지 않으면 안 될 어느 시점에 와서야 울며 불며, 한꺼번에 밀려오는 바깥 세상을
맞이했다. 직접 선택하고 스스로 견뎌온 경험이 부족하다 보니 밀려오는 새로운 것들이 벅차고 아득해졌다.
정답지가 없는 세상은 막막함과 혼란의 연속이었다.
서울의 꼬일 때로 꼬인 노선도를 제대로 읽지 못해 번번히 거꾸로 가는 지하철 안에서,
나는 조금 더 독립적으로 살아오지 못함을 후회하곤 했다.
더 이상 헤맬 수 없을 때까지 헤매는 건 필요한 일인 것 같다.
시행착오는 앞으로 나아가는 길을 평탄하게 해주는 거름이 되고, 수많은 길 속 방향을 알려주는 나침반이
된다. 직접 밟아가며 고생해 만든 길은 새 종이에 빳빳히 인쇄되어 나온 지도에 비할 바가 못 된다.
결국 무엇이든지, 해봐야 아는 것이다.
수많은 소년소녀들이 어른의 말을 지지리도 안듣고 제멋대로 좌충우돌 각자의 사춘기를 경험하는 것은,
이 시행착오들의 '맛'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신의 뜻이 아니었을까.
상담자가 되기 위한 과정 속에서, 누군가의 마음 속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 내가 가진 가장 큰 자산은
경험이고 기억이라는 사실을 조금 배워간다.
멀고 높이 앉은 '상담사 선생님'이 아니라, 같이 걷는 '동료 상담자'로서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