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은 우리에게서 신비를 빼앗아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신비를 개혁하고 되살리기 위해 있다.
-로버트 새폴스키
커버: 전자 현미경을 이용한 몰리브데넘 원자 격자의 사진¹(Yi et al., nature, 2018).
아는 만큼 보인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문구 중 하나는, '아는 만큼 보인다'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일상생활에서도 이 문장을 쉽게 느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예컨대, 혼자서 별 배경 지식 없이 본다면 너무나 방대하여, 자칫 지루함으로 이어질지도 모르는 유명 미술관에 들어섰다고 생각해 보자. 기껏해 봐야 정말 유명한 작품들을 몇 점 보고, 와, 이걸 눈으로 봤네, 정도의 감탄이 전부가 되겠지만, 전문적인 가이드와 동행한다면 관심도 두지 않고 지나쳤던 작은 디테일과 그 속에 숨은 역사들을 배울 수 있게 되고, 그에 따라 그 순간은 더욱 의미 있는 순간이 되며 그 지식은 일생에 남아 기억될 추억이 되는 것이다.
그처럼, 단순히 수동적으로 눈의 망막에 비추어지는 것을 보는 것seeing 이 아니라² 능동적으로 해석하고 자신의 기억을 회상하며 체계적으로 지식을 구축해나가는 주의 깊은 관찰observation 은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관찰을 위해서는 이미 갖추어진 기본 지식이 필요하다. 상술하였듯이, 관찰은 이미 이전에 갖고 있던 지식에 입각하여 새로움을 그곳에 채워 넣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단순히 보기 위한 요구 조건은 눈이지만, 그것에서 의미를 관찰하기 위해서는 사전 지식이 필요한 것이다.
그림 1. 독일 UAS Jena 에 위치하는 아베의 법칙이 새겨진 기념상.
이것은 마치 현미경을 이용하여 물체를 관찰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같은 물체를 본다면 그곳에서는 (이론적으로는) 같은 빛이 반사•산란될 것이고, 결국은 같은 상으로 나타나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같은 상을 보더라도, 현미경이 가지는 해상도resolution-가까이 위치한 두 점을 구분할 수 있는 최소 거리, 간단히 설명하면 '얼마나 선명한지'-에 따라 관찰할 수 있는 형태는 달라지게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해상도는 19세기 후반 광학을 연구하며 독일의 자이쯔 zeiss 사와 함께 현대적 광학 현미경의 기초를 닦은 에른스트 아베Ernst Abbe 에 의해 1873년 처음 수학적으로 정의되었는데, '아베의 법칙 Abbe's law'이라고 불리는 이 공식은 d(해상도)=λ(파장)/2 NA(개구수)로 정의되는데, 이 법칙은 아베를 기리며 이름을 딴 독일의 UAS Jena 대학에 있는 석상에 크게 새겨져 있다(그림 1). 이 공식은 회절 간섭 과정을 이해해 보면 쉽게 유도 과정을 이해할 수 있지만, 편의를 위해 간단히 설명하면 '작고 섬세한 부분까지 볼 수 있는 능력은 빛을 많이 모을수록, 세밀한 빛을 이용할수록 향상된다' 고 설명할 수 있다.
그림 2. 현대 현미경의 아버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에른스트 아베 (1840 - 1905)
현미경을 이용한 비유처럼, 나는 우리의 세상에 대한 이해 또한 같은 과정이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같은 것을 바라볼지라도, 내가 많은 것을 알수록, 세밀한 부분까지 알수록 많은 지식과 깨달음을 틔워 낼 수 있는 것이다. 일상의 나날에서 만나는 '그저 그런 나무 한 그루'를 '생태학적으로 중요한 의의를 지닌 생명체'로, '별 특이할 것 없는 흙 한 줌' 이 아닌 '인간을 비롯한 생명체와 생태 순환을 매개하는, 아직도 이해할 수 없는 복잡계'로, '배워 봤자 인생에 쓸 곳도 없는 난해한 수학 공식' 이 아닌 '인류의 문명을 만들어 내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위대한 자연의 언어'로 이해할 수 있게 하는 그 힘은 아는 것에서 온다. 우리의 지식이 모노톤의 세상을 아름답게 채색하고, 미처 아름다운지 보지 못했던 자그마한 것들을 우리에게 확대하여 보여주는 것이다. 결국, 현대 사회에서 지식과 배움의 의의는 그곳에 있다고 생각한다. 복잡미묘한 세상을 분해하여 이해하고, 그 이해를 바탕으로 더 잘 살아가기 위하여 우리는 공부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세상의 기저에 깔린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그림 3. Gael McGill 의 작품, Celluar landscape. 인간의 첨단 기술을 총동원해 생명의 내부를 가장 정밀하게 들여다본 이미지이다. 아름답지 않은가?
그런 의미에서, 일상생활에서 마주할 일도 없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우리 주변에서 쉽게 마주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적으려 한다. 우리 주변에서 무심코 지나쳤던 것들에 어떠한 역사가 담겨 있는지, 다른 관점을 가지고 보면 이 일상적인 물체가 어떤 즐거운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줄 수 있을지, 학교와 교과서에서 그저 암기 식으로 배웠던 생동감 없는 지식이 아닌 인간의 문명 속에, 우주 속에 녹아 있는 이야기들에 대해 쉽고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해 보려 한다. 비록 내가 전하는 이야기가 '하늘 아래 새로운' 이야기는 아닐지라도,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말한 '꽃을 직접 만들지는 않았지만, 그 꽃들을 보기 좋게 엮어내는 플로리스트'처럼 여러 산개된 지식들을 엮어 재미있게, 그렇지만 때로는 깊이 있게 꽃다발을 만들어 내려한다 ³. 그를 통하여 우리 주변의 세계를 한 번이라도 더 뒤돌아보게 될 수있고, 하나의 궁금증을 더 가지게 되어 세상을 더 이해하고 싶게 된다면 나에겐 과분한 일일 것이다.
미주 Endnote
* 1. 커버 사진은 전자 현미경을 이용하여 찍은 사진이다. 광학 현미경은 위에 기술한 아베의 법칙에 의하여 아무리 고해상도로 찍기를 원하더라도 200nm 정도의 해상도가 최선이게 되는데(물론 예외는 있지만), 훨씬 자그마한 전자 빔을 이용하게 되면 아주 고해상도로, 백만 배 이상 확대하여 물체를 찍을 수 있게 된다. 커버 사진의 점은 몰리브데넘 원자 알갱이 하나하나로, 약 0.039nm (머리카락 두께의 188만 분의 1, DNA 굵기의 59분의 1이다)의 해상도를 가지는 전자현미경으로 찍어 낸 이미지이다. 참고로, 수소 원자 하나의 지름이 약 0.12nm 정도 된다.
* 2. 이에 대하여 차후 글을 쓰겠지만, 이 말 또한 엄밀히는 진실이 아니다. 우리의 망막과 대뇌는 단순히 눈 앞에 보이는 것을 일차원적으로 가져다 표상하는 카메라처럼 작동하지 않는다. 대표적인 예시는 착시 현상이 있다. 그뿐 아니라, 우리의 인지•지각 또한 우리의 정신 상태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 잘 알려져 있다.
* 3. 과거 지식이 입에서 입으로만 전승되던 시기에서, 문자와 기록의 탄생을 지나 우리는 이젠 전 지구 어디에서든 최신의 지식도 몇 초만에 찾아볼 수 있는 바야흐로 정보화 시대에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시대에 '단순히 무언가를 아는 것' 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단순한 검색을 통해 누구나, 언제든 찾아볼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그러한 지식과 앎을 어떻게 체계화하여 엮어 내고 구조화시키는지에 대한 능력이 더욱 중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