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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윤 Jan 08. 2022

(1)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윤의 Resolution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Now the earth was formless and empty, darkness was over the surface of the deep...

-기독교 경전, 창세기의 1장 2절.



인간과 땅


영어로는 지구를 earth라고 부른다. Earth 란 단어에는 행성으로의 지구를 일컫는 뜻도 있지만, 동시에 땅, 그리고 흙을 지칭하기도 한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지구의 '지' 또한 땅과 대지를 일컬으며, 흙을 의미하는 부수를 가지고 있다. 즉, 지구는 문자 그대로 흙으로 된 행성인 셈이다(비록 표면의 71% 는 물로 덮여 있지만). 공적인 도시에서 우리의 발 밑을 이루는 것은 드러난 흙이 아닌 콘크리트와 아스팔트, 보도 블록과 같은 것들이지만, 콘크리트 바닥에서도 아래로 몇십 센티미터만 내려가 보면 그 기반은 어김없이 흙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렇게 물리적으로 가까이 위치함에도 불구하고, 도시에서 볼 수 있는 흙이라고는 기껏해야 드문드문 계획적으로 파인 가로수를 위한 자그마한 흙 둔덕나, 공원 정도가 전부다.


이렇게 도시화가 진행됨에 따라 우리는 흙과 땅에서 점점 거리를 두고 있고 심지어 흙을 만져볼 일도 없이 자라지만, 인간의 역사는 흙 없이 설명할 수 없다. 인류의 문명의 시작은 결국 안정적인 식량 공급에서 기원했고, 안정적 식량 공급을 위한 수단은 1만 년 전부터 지금까지 땅과 흙을 기반으로 하는 농업이었다(비록 요즘은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많이 축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도 농, 임업을  합쳐도 GDP의 2% 가 되지 않고, 미국을 예로 들어보면 1800년대 초까지만 해도 80%가 농업에 종사하였지만, 지금은 1.8%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이전의 1/40에 불과한 사람들이 이전보다도 더 많은 양의 식량-비단 식용뿐이 아닌 사료와 수출용으로도 곡물이 사용되므로-를 생산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국력과 문화를 지지하는 식량 생산량은 땅과 농업으로부터 출발했던 것이고, 그래서 조선 시대에 사농공상이라 하여 농민들을 중요시하였던 것이다.


그림 1. 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어 (창세기 1:11)

창세기의 한 구절 '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에서 말하듯(그림 1), 흙은 식물을 길러내는 토대이고 자연의 성스러움과 생명력, 생명의 탄생을 상징하는 표상이었으며, 자연스럽게 땅과 대지를 어머니로 이미지화하는 것은 많은 문화권에서 보편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예컨대, 그리스 신화의 땅의 여신 가이아 Gaia 와 곡물과 수확의 여신 데메테르 Demeter, 로마의 땅의 여신 테라 Terra, 북유럽 신화의 땅과 곡식의 여신이자 토르의 부인 시프 Sif, 힌두교의 대지의 신(지신) 푸리티비Prithivi (그림 2) 등 많은 문화권에서 땅과 농업, 곡식과 풍요를 담당하는 여신들을 찾아볼 수 있다.


그림 2. 땅과 풍요의 여신 푸리티비. 인도의 가장 오래된 문헌인 힌두교 경전 베다 중 하나인 리그베다에 등장한다. 반대격은 하늘을 담당하는 남성 신 디아우스Dyaus.

흙의 탄생


이렇게 길을 걷다 흔히 볼 수 있는 흙을 우리는 무심한 눈길로 스쳐 지나가곤 한다. 그저 부스러진 돌 조각들의 혼합물 정도로, 기껏해야 식물들을 자라게 해주는 무생물적 요소로 생각하기 쉽지만, 실 흙은 굉장히 복잡하고, 눈부신 성과를 이룬 현대 과학도 아직 완벽히 이해하지 못한 복잡한 하나의 생태계다. 일단, 흙은 언제, 어떻게 생겨났을까 라는 질문을 던져 보자. 간의 상상을 머릿속으로 해 보자. 구가 약 45억 4천백만 년 처음 생겨났을 때에는 뜨끈뜨끈한 용암 덩어리였고, 이것이 점차 굳으며 지각과 암석들이 형성되었을 것이다. 이 암석들이 물과 바람, 온도 변화에 의해 풍화작용을 거치며 쪼개지고 갈라져 자갈과 모래, 진흙을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4억 7천만 년 전까지, 지구 탄생 이후 40억 년간 진정한 의미의 흙은 아직 태어나지 않았다. 이 때까지는 땅 위는 혼돈하고 공허하였다. 그저 갈라진 돌 조각들이 있었을 뿐이다.


흙을 영어로 soil 또는 dirt 라는 용어로 지칭한다. 이 두 용어의 차이는, soil이 훨씬 생명력 넘치는 흙을 지칭한다는 것이다. Dirt 에는 비록 미네랄과 같은 성분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 내부에 생태계가 생성되지 않은 무기물적 흙이다. 단순한 진흙과 물이 버무려진 것은 dirt 라고 부를 수 있겠지만, 이것은 아직 soil이 아니다. 진정한 의미의 흙을 만든 것은 4억 7천만 년 전, 식물이라는 독특한 생명군이 등장하며 이루어졌다 ¹. 원래 자외선이 내리쬐는 돌과 모래 사이에서 원시적 미생물들과 지의류들이 드문드문 살아가고 있던 도중, 약 4억 5천만 년 전 실루리아기에 최초의 육상 식물들이 나타나게 되었고(그림 3), 이러한 식물들은 뿌리를 뻗고,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발길이 닿지 않았었던 표면을 덮으며 기온을 하강시켜 빙하에 의한 암석의 풍화를 촉진하며, 더 현대적인 공생을 이룬 지의류들은 산을 내뿜어 화학적으로 암석들을 녹여냈고 풍부한 미네랄을 바다에 섞어 넣었다. 원래는 물과 바람에 쉬이 씻겨 내려갔을 조각들을 식물의 뿌리와 그와 공생하는 균사가 잡아매게 되었고, 이렇게 부드러워진 암석 조각들에 식물의 사체와 무수한 박테리아들, 균류들이 스며들고 번성하고 다시 죽어 분해되면서 유기물들이 쌓이기 시작했고, 요로워진 흙에는 작은 생물들이 찾아들기 시작했다. 생태계로써의 흙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림 3. 실루리아기의 상상도. 강변이나 개울가 습한 곳에 최초의 육상 식물이 나타나고², 이들은 육지의 모습을 크게 바꾸어 놓았다.

앞으로 흙을 본다면


앞으로는 지나가다 문득 흩어진 흙을 본다면 그 속의 생태계와 역사에 대해 생각해 보자. 건강한 흙 한 스푼 안에는 10억 마리의 박테리아와 수천 마리의 원생동물들, 몇 미터의 균사를 뻗은 12만 마리의 균류, 그리고 많은 선충류를 비롯한 1800 종의 미생물들이 살고 있다. 박테리아는 공기 중의 질소를 고정하고, 균류는 균사를 통해 균근을 형성하여 식물들과 공생한다. 해하고, 흡수하고, 성장하고, 다 죽어 스러지는 생명의 순환이 흙 한 줌 내에 정교하게 조정되고 있다.


이러한 흙을 많은 사람들이 그저 무생물적 요소로 치부하곤 한다. 부족한 인과 질소를 화학 비료를 통해 채워 넣으면 언제곤 다시 영양학적으로 풍부해질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땅 속에 존재하는 특정 곰팡이의 유무가 식물 성장과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고, 모든 식물의 80% 이상이 균류와 공생하고 있으며, 심지어 특정 식물군(예컨대 난초류) 등은 아예 특정 곰팡이가 없다면 싹을 틔우지도, 살아가지도 못한다. 난초를 주어진 생태계에서 뚝 떼어다 키우면 아무리 애지중지 키우더라도 금세 시들어버리는 이유기도 하다.


이미 4천 년 전부터 인간은 흙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었다. 기원전 1500년, 베다 산스크리트 문헌에는 "이 한 줌의 흙에 우리의 생존이 달려 있다. 흙을 잘 돌본다면, 흙은 일용할 양식을 키워 주고, 연료와 집을 제공하고, 우리의 주변을 아름다움으로 가득 채워 줄 것이다. 그러나 흙을 남용한다면, 흙은 무너져 죽어갈 것이고 인류 또한 그리할 것이다"라는 말이 적혀 있다. UN에 따르면, 현재 인구 증가 속도와 경작지 유실, 식량 소비량 증가 추세에 따르면 우리의 땅이 충분한 식량을 제공할 수 있는 한계는 고작 60년이다. 조사에 따르면, 현재 식량 소비량 증가를 따라가기 위해서는 매년 6만 제곱킬로미터(남한의 크기가 10만 제곱킬로미터다. 매년 대한민국 절반만 한 크기의 농경지가 추가로 필요한 것이다!) 풍요로운 땅이 필요한데, 오히려 연간 12만 제곱킬로미터의 땅이 지력이 소진되거나, 삼림 벌채로 씻겨 내려가거나, 오염되어 이용할 수 없게 되고 있다. 대로 지속된다면, 우리의 풍요롭고 낭만적인 식생활은 오래 유지되지 못할 것이다. 수억 년 전 식물이 만들어낸 흙을 다시 혼돈하고 공허하게 만들고 싶지 않다면, 인류는 그에 대비해야 한다.



미주 Endnote


* 1. 물의 진화에 대해선 다음에 다른 글로 자세히 다루겠지만, 원시 조류나 남세균으로부터 분화하여 포자를 생성하는 육상 식물이 되었고, 관다발과 복잡한 뿌리를 발달시켰으며, 이후 씨앗을 형성하고 백악기에 이르러 드디어 속씨식물(현화식물)이 등장하며 말 그대로 '꽃 피우는' 식물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식물의 진화는 건조와의 싸움이라고 요약할 수 있겠다.


* 2. 그림 좌측의 흰 탑 같은 것은 식물이 아니다. 프로토택사이트라고 부르는 거대한 균류로, 일종의 버섯과 같은 것이라 생각할 수 있겠다(이것이 단순 균류인지, 지의류처럼 공생체인지는 아직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무려 8미터까지 자라며, 당시 육지에 존재하는 생명 중 가장 거대했다고 추측된다. 너무나 크고 마치 나무와 같은 구조를 가졌기 때문에 처음에는 늪지에 잠긴 일종의 침엽수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이름도 그렇게 붙었다(proto+taxites = 원시적인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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