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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윤 Jan 16. 2022

(2) 자연의 색, 녹색

하윤의 Resolution

녹색은 자연의 으뜸가는 색이며, 모든 사랑스러움이 태어나는 색이기도 하다.

-페드로 칼데론 데 라 르카, 스페인의 극작가



자연의 색


자연의 색을 떠올려 보라. 무슨 색이 떠오르는가? 십중팔구는 녹색, 혹은 푸른색을 떠올릴 것이라고 생각한다¹. 자연이라는 단어와 개념에서 연상할 수 있는 대상들인 나뭇잎, 나무, 숲, 들판, 산과 같은 무수한 대상들은 일관적인 색을 가지고 있다. 녹색이다. 린피스와 같은 자연주의 단체들도 녹색을 이용하며(이름부터 Green 피스이지 않은가), 친환경을 상징하는 로고나 많은 단체들은 녹색을 자신의 심볼로 이용하곤 한다. 진기의 발명 이후 화가들은 단순히 외형을 재현하는 것이 아닌 추상적 본질을 꿰뚫고 표현해야 한다는 미술 사조인 추상주의로 빠져들게 되었는데, 그 중에서도 직선을 이용한 차가운 추상의 대가인 피에트 몬드리안은 식물과 자연을 연상시킨다는 연유로 녹색을 사용하는 것을 꺼렸으며, 대신 모든 색의 근원이 된다고 여긴 원색인 노랑, 빨강, 파랑만을 그림에 이용하기도 했다(그림 1). 


그림 1. 빨강, 노랑, 파랑의 구성 (1942), 피에트 몬드리안.
그림 2. 사우디아라비아의 국가. 이슬람을 상징하는 녹색 배경에 이슬람의 신앙고백문 샤하다shahada 가 새겨져 있다.

녹색은 색채심리학적으로 보았을 때, 안전과 안정감을 대표적으로 나타내며 집중을 돕는 색으로 알려져 있다. 수술을 진행할 때의 수술복, 병원을 나타내는 십자가, 도로의 표지판, 비상 안내등, 교실의 칠판이 무슨 색인지 다시 한번 떠올려 보라. 녹색은 전통적으로 희망을 뜻하는 종교적인 색채로도 여겨졌는데, 이집트의 풍요와 내세의 신 오시리스는 녹색 피부를 가지고 있었고, 이슬람의 선지자 무함마드는 녹색을 선호했으며(쿠란에서는 녹색을 낙원의 색으로 연관짓고, 전통적으로 이슬람의 황실 또는 국가의 색과 연관지어졌다-사우디아라비아와 파키스탄의 국기를 떠올려 보라(그림 2)), 로마 카톨릭에서 13세기 초반, 인노첸시오 3세가 성서에 대한 알레고리로써 흰색, 검은색, 붉은색과 녹색을 예배식 색상으로 규정한 이후 지금까지도 비절기 기간²의 색으로는 녹색이 이용되고 있다(그림 3). 마치 새로운 싹이 돋아나며 희망을 알리듯, 예수가 불러올 영생과 구원을 바라는 색이라는 것이다. 이뿐 아니라, 힌두교에서 에너지가 집중되는 점인 차크라 중 심장의 차크라인, 온전함과 안정감을 나타내는 아나하타Anahata 차크라는 녹색의 색을 가지곤 한다³. 


그림 3. 우리가 주로 보는 교황은 흰 색의 카속Cassock 을 입은 모습이지만, 특정 절기에 맞추어 로브의 색은 달라진다.

한 녹색은 많은 나라의 국기에 들어가 있으며, 자신 국가의 빼어난 자연 경관 또는 천연 자원에 연관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예시로 인도 국의 녹색은 땅이 선사하는 풍요로움을 의미한다.



녹색의 생리학


녹색은 인간의 눈이 제일 민감하게 느끼는 색이기도 하다. 그 이유는, 눈의 생리학적 구조와 기능을 고려해 보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우리가 '빛' 이라고 불리는 것을 지각하는 행위는 눈의 망막에 있는 빛 수용성 세포-간상세포와 추상세포-막에 위치하는 빛 수용성 단백질들, 대표적으로 로돕신을 통하여 이루어진다(그림 4). 로돕신은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장밋빛과 같은 분홍-자주색을 띠는데(rhodon+opsis+in = 장미+시각+단백질을 의미하는 접미사=장밋빛 시각 단백질), 그에 따라 자주-분홍빛의 보색인 녹색을 제일 잘 흡수한다. 우리가 '빛이다!' 고 지각하는 것은 로돕신이 어떠한 빛을 흡수하는 것에서 시작하므로, 인간의 시지각은 녹색에 제일 민감하게 조율되어 있다. 그 이유는? 궁금하다면 조금 더 읽어 볼 것.


그림 4. 망막의 신호 전달 체계. 좌측 중앙의 노란빛을 띠는 원통 집합체가 로돕신이다.

그에 따라, 어두운 곳에서의 유도등은 흔히 녹색을 띠고 있으며(비상등이 녹색을 띠는 것 또한 인간의 시각이 녹색에 민감하며, 녹색은 안전을 의미하는 색으로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이다), 시인성을 높이기 위한 녹색 레이저가 널리 활용되고, 여러 전자 장비의 디스플레이는 녹색을 띤다. 어둠 속을 비추어 보기 위한 야간 투시경의 디스플레이 또한 녹색으로 표시되는 것도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그림 5).


그림 5. 야간 투시경은 인간이 감지하기 힘든 미약한 빛을 증폭시켜 보여주는데, 대개 녹색 디스플레이를 가진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녹색에 민감한 눈을 가지고 있는가?집단유전학의 초기 개척자 중 하나인 테오도시우스 도브잔스키Theodosius Dobzhansky 가 말했듯, '진화에 비추어 보지 않고서는 생물학의 아무 것도 이해할 수 없'다. 우리가 녹색을 제일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이유 중 최소한 일부는, 우리 주변에 제일 만연한 색이 녹색이기 때문이다. 열을 가지고 있는 체는 일련의 '빛' 을-엄밀히는 전자기파를-방출한다. 흑체복사 라고 불리우는 현상으로, 우리가 적외선 카메라를 이용하여 가시광선이 없더라도 사람들을 확인할 수 있는 원리이며, 직접 온도계를 담그지 않더라도 원거리에서 온도 측정이 이루어질 수 있는 연유이기도 하다.


그림 6. 교과서적인 흑체복사 곡선. 흑체 복사에 대한 연구는 양자역학 연구의 첫 계기이기도 했다.


 흑체복사는 물체가 열에너지를 얻음에 따라 원자에 속박된 전자가 에너지를 얻고 다시 떨어짐에 따라 빛을 방출하기 때문에 생기는데, 빈의 변위 법칙Wien's displacement law 에 따라 흑체의 온도가 높아지면, 그에 반비례하여 흑체가 가장 많이 방출하는 빛의 파장이 짧아지게 된다(그림 6). 양의 표면 온도는 섭씨 5,500도(5,778 K)에 근접하는데, 이 온도를 이용하여 계산해 보면 양이 가장 많이 내뿜는 빛은 500nm의 파장을 가진, 녹색 빛이다. 우리가 빛을 인지하는 이유는 주변을 잘 인지하기 위함이므로, 우리 주변에 가장 많이 존재하는 녹색 빛을 가장 민감하게 인지하는 것은 합리적이다.



녹색의 역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드는 사람이 있을까? 이런 질문을 던져볼 수 있지 않을까?


'태양이 가장 많이 내뿜는 빛이 녹색이라면, 왜 태양 에너지를 최대한 효율적으로 흡수해야 하는 식물은 녹색을 띠고 있을까?'

 

라는 질문을 던져 볼 수 있지 않을까? 득 생각해 보면, 우린 초등학생 때 가장 빛을 잘 흡수하는 것은 검은색이라고 배웠고, 배우지 않았더라도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여름에 땡볕에 세워 둔 검은 차량에 탑승해 본 사람이라면). 그렇다면, 가장 많은 빛 에너지를 태양광에서 얻어내기 위해선 식물은 녹색이 아닌 검은 색이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대체 왜 식물은 아까운 녹색 빛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일까? 이 이야기는, 너무 길어졌으니 다음 글에서 이어서 다루도록 하자.



미주 Endnote


* 1. 푸른색은 파랑 또는 녹색을 폭 넓게 포함하는 색이다. '푸른 하늘'에서는 파랑색을, '푸르른 자연'에서는 녹색에 가까운 색을 의미할 것이다. '푸른 자기' 라는 뜻의 청자가 파라스름한 녹색과 같은 어중간한 색을 띠는 것도 같은 연유에서일 것이고, 우리가 신호등의 녹색 등을 파란불이라고 부르는 이유기도 하다. 즉 전통적으로 두 색을 크게 구분하지 않았었는데, 사실 이는 전 세계적으로 보이는 현상이기도 하다. 예컨대, 호메로스의 작품에서는 바다를 파랑으로 묘사하지 않으며(짙은 와인색으로 묘사한다), 한국의 전통화에서도 하늘을 회색에 가까운 색으로 채색하곤 한다. 이와 관련하여, 스톤과 가이거의 연구는 지구 전체 고대 문명에서 파란색을 지칭하는 단어가 존재하지 않았음을 밝혔다(푸른 안료를 생산하고 이용한 이집트 문명만이 예외). 검은색, 흰색, 붉은색과 같은 색은 가장 빠르게 등장하고 이후 노랑과 녹색이 등장하는 반면, 파랑에 해당하는 어휘는 제일 늦게 등장하는 경향이 있다. 연에 널리 존재하지 않는 색이므로, 색을 구분하는 의의가 크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되고 있다. 훔바족 실험에 대한 내용을 참고할 것.


* 2. 기독교의 교회력에는 매 년 돌아오는 두 번의 큰 주기가 있다. 부활주기와 성탄주기가 그것인데, 부활주기는 사순절Lent-부활절Easter-오순절Pentecost 로, 성탄주기는 강림절Advent-성탄절Christmas-주현절Epiphany 의 세 절로 이루어져 있다. 각각은 그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기독교 경전에 기록된 예수의 부활 그리고 탄생을 축하하고 기념하는 절기이다.

부활절과 성탄절은 익숙하겠지만 나머지는 비-그리스도교 신자에게는 익숙치 않은 이름일 텐데, 이 중 강림절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해볼 수 있는 문화에 이용된다. 본디 성탄절 이전 4주간 매 주 촛불을 키며 성탄절을 기다리던 강림절의 문화는 자본주의와 결합되어 28일 간 매일 열어볼 수 있는 작은 선물들-초콜릿이나 캔디, 화장품 등-이 담긴 어드벤트 캘린더Advent calendar 라는 문화를 낳았다. 독일 등지에서 크리스마스에 많이 즐겨 먹는 빵인 슈톨렌stollen 또한 설탕으로 덮고 술에 절여 보존성을 높인 후, 강림절 기간 동안 조금씩 잘라 먹던 것에서 시작되었다.


* 3. 대조적으로, 녹색은 독약을 의미하는 색이기도 하다. 많은 비디오 게임 등에서 독은 녹색으로 그려지는데, 이것은 우연이 아니다. 18세기, 비소와 산화 구리를 재료로 하여 패리스 그린, 셸레 그린 그리고 에메랄드 그린이라고 하는 아름다운 녹색 염료들이 개발되었는데, 이 염료는 그 아름다운 빛깔로 엄청난 인기를 타며 페인트, 종이, 커튼, 옷 등에 사용되었다. 이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끔찍한 비소 중독을 일으켰고(비소는 사약에 널리 쓰이는 비상의 주재료다), 이 사건은 녹색을 독극물의 색으로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여담으로, 나폴레옹이 이 녹색 염료를 좋아했고, 세인트헬레나에서 비소 염료로 칠해진 방에서 유배 기간을 보냈으며, 사후 높은 농도의 비소가 검출되었다는 점에서 사인으로 추측하기도 한다.


* 4. 맥스웰의 연구를 통해 밝혀진 바에 따르면, 빛은 그저 전자기파의 좁은 범위일 뿐이다. 이에 대하여 다른 글로 다룰 예정인데, 엑스선과 감마선과 같은 방사선부터 우리가 무선 통신을 위해 사용하는 전파는 모두 같은 전자기파에 속한다. 우리는 단순히 좁은 파장대의 빛의 세기와 파장을 인지하지만, 타 생명체들은 자신들의 생존에 필요한 훨씬 복잡한 광학적 특성-예컨대 편광과 같은-을 인식하곤 한다.

 

* 5. 흑체는 영어로는 black body 로, 말 그대로 이론적으로 완벽한 검은 물체를 의미한다. 완벽히 검기 위해선 어떠한 빛도 반사하지 않고 모든 빛을 흡수해야 하는데, 현실 세계에서는 존재할 수 없지만, 온도가 높아질수록 반사나 흡수가 아닌, 흑체 복사가 차지하는 상대적 비율이 높아짐으로써 이상적 흑체복사 패턴에 가까워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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