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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윤 Jan 23. 2022

(3) 녹색의 역설 - 자연은 왜 녹색인가?

하윤의 Resolution

이여, 모든 이론은 회색일세. 그리고 푸른 것은 생명의 황금 나무라네. 

-요한 볼프강 폰 괴테, <파우스트> 중.



빛의 흡수


이전 글에서 이어지는 부분이니, 이전 글의 마지막 부분을 다시 상기해 보자.


우리가 배웠던 기초 과학을 다시 생각해 보면, 눈으로 인지하는 물체의 색이란 물체가 반사한 색을 보는 것이다. 붉은 사과가 붉게 보이는 이유는¹, 사과에 비추어진 (무수한 색상들의 혼합인) 백색광 중 붉은 빛을 반사하고 나머지는 흡수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식물이 푸르르게 보이는 이유는 녹색 빛은 반사하고, 다른 빛은 흡수한다는 것이다(그림 1). 즉 식물의 광합성에는 녹색 빛보다는 빨강과 파랑 빛이 더 중요하다는 뜻이다(그래서, 실내 농원 등에서는 가장 효율적인 빛 공급을 위해 식물 성장 기간 동안 백색광이 아닌 자줏빛 빛을 비춘다. 일부 지하철 역 등에서 지나가다 보았을 지도 모른다(그림 2)). 우린 초등학생 때 가장 빛을 잘 흡수하는 것은 검은색이라고 배웠. 그렇다면, 가장 많은 빛 에너지를 태양광에서 얻어내기 위해선 식물은 녹색이 아닌 검은 색이어야 할 것이다. 럼에도 불구하고 식물은 녹색이고, 이것은 귀중하고 가장 많은 에너지를 제공하는² 녹색 파장대의 빛을 모두 버리고 있다는 뜻이 된다. 대체 식물은 왜 언뜻 보면 비효율적으로 보이는 방향으로 적응•진화한 걸까?


그림 1. 식물 색소의 흡수 스펙트럼. 녹색 파장대가 아닌 빨강과 파랑 파장대를 많이 흡수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림 2. 자줏빛 빛을 사용하는 실내 농원.



잎파랑이


그 이전에, 그럼 현재 식물들은 왜 녹색을 띠는지 살펴보자. 우선, 식물들은 엽록소(문화어: 잎파랑이)를 가짐으로써(그림 3) 광합성을 진행할 수 있다³. 또한, 이 광합성이라는 과정을 통해 태양에서 오는 막대한 에너지를 받아들여, 화학 에너지의 형태로 전환함으로써  지구 생태계의 근간을 이루는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우리 주변을 살펴보면, 육식 동물은 초식 동물을, 초식 동물은 식물을 먹고 산다. 즉, 사실상 지구의 거의 모든 생태계를 책임지며 떠받치는 것은 식물, 혹은 광합성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겠다⁴. 우리 인간은 태양광 발전 등을 근세에 들어서야(1800년대 중반) 개발했고 아직까지도 그 효율을 높이고자 수많은 연구가 진행되는 등 초기 단계에 머무르고 있지만, 남세균을 위시한 많은 생명체가 35억 년 전부터 그 기초 원리를 이용하고 있었다. 지구에 도달하는 태양 에너지의 양이 얼마나 막대한지를 고려해 보면, 무리도 아니다. 지구에서 가장 쉽게 얻을 수 있는 에너지가 태양광과 태양열의 형태였을 테니까⁵.


그림 3. 전자 현미경으로 촬영한 엽록체의 구조.

엽록소는 엽록체라는 세포 소기관에 모여 있고, 여기서 여러 단백질들과 결합하여 빛을 모으는 역할을 담당한다(색소와 단백질은 마치 안테나처럼 작용하는 빛수확복합체light harvesting complex, LHC 를 형성하고 이는 광합성의 중요한 부분을 담당하는 광계photosystem 을 만든다).


 복잡한 전공 지식은 넘어가고, 간단히 설명하자면, 엽록체의 고리 내부에 위치하는(이 구조는 포유동물의 피를 구성하는 헤모글로빈과 매우 유사하다( 4)) 마그네슘이 빛을 받아 전자를 내놓고, 이 에너지가 넘치는 들뜬 전자가 움직이며 수력 발전과 같이 이온을 퍼내며 로터를 돌려 복잡한 생화학 반응을 매개하여 포도당을 합성하게 된다(그림 5).  이러한 광합성을 담당하는 엽록소가 녹색을 띠고 있기 때문에, 또한 녹색을 띠는 엽록소가 거의 모든 식물에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식물들은 녹색을 띠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림 4. 식물이 가지는 엽록소 a와 b의 구조. 사실 이뿐 아니라 식물의 조상 격으로 생각되는 다양한 조류들은 다른 종류의 엽록소를 가진다.
그림 5. 간략히 도식화한 광합성의 초기 과정. 이렇게 생성된 NADPH 와 ATP 는 이산화탄소와 합쳐져 당을 형성한다.

근접원인과 궁극원인


그렇지만, 이건 무언가 부족한 설명 같이 느껴진다. 많은 질문들은 서로 다른 층위로 답을 할 수 있는데, 녹색을 띠는 엽록소가 식물에 존재한다는 것은 일차적 근접 원인이고, 그렇다면  식물은 녹색의 엽록소를 가지게 되었을까? 도대체 빨강, 검정, 아니면 노란색이 아닌 녹색 색소를 가져야만 했을까? 이런 점이 어떠한 진화적 이득을 가졌기 때문에 식물은 녹색일까? 그 궁극 원인은 무엇일까?


이에 대한 여러 가설이 존재했었으나, 이 질문에 한 발자국 더 다가갈 수 있는 실험이 최근 발표되었다.

 


안정성 vs 효율성


생명체에게는 효율성만큼이나 안정성 또한 중요하다. 예컨대, 우리가 섭취한 식량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에너지로 전환시킬 수 있는지 또한 중요한 요소지만, 얼마나 안정적이고 일관적으로 식량을 섭취할 수 있는지 또한 중요할 것이다. 전체 365 개의 빵을 주지만, 매일 하나씩 주는 것과 하루에 몰아서 주고 나머지 날은 아무 것도 주지 않는 것을 비교해 보자. 전자가 에너지 충족 면에서 훨씬 안정적일 것은 당연하다.


물도 마찬가지다. 외부에서 들어오는 빛은 낮/밤에 따라서도 달라지고, 구름이 낀다거나, 윗 이파리가 바람에 날리며 태양을 가리게 되는 등  많은 외인적 변동을 가질 것이다. 이렇게 외부에서 들어오는 '입력' 은 많은 변동을 가질지라도, 식물은 항상 일정한 에너지를 '출력' 해야 생존할 수 있다. 최근의 연구는, 단순히 많은 에너지를 가진 녹색이 아닌, 가장 에너지가 급격하게 변화하는 빨강과 파랑 파장대를 선택해야 외부와 내부의 변동에 잘 대처하여 일관적인 에너지 생산을 가능케 할 것이라고 밝혔다. 녹색 하나만의 파장을 흡수한다면 외부 에너지가 들썩임에 따라 흡수•방출하는 에너지 또한 들썩일 것이지만, 녹색 좌우로 떨어진 두 파장을 적절한 비율로 흡수함으로써 이 변동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그림 6).


그림 6. 다른 파장대를 선택함으로써, 광합성 과정의 내/외적 에너지 변동성을 줄일 수 있다(T. Arp et al., Science, 2020).



보랏빛 지구


물론 이 뿐 아니라 다른 대안적 가설들도 존재한다. 예컨대, 원시적인 형태의 광합성은 지금처럼 엽록소가 아닌, 레티날에 의존해 일어났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과학자들이 많다. 티날은 엽록소보다 훨씬 간단한 형태를 지녔고, (지구 역사의 초기처럼)산소가 없는 환경에서 만들어 내기 더욱 간단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금도 몇몇 광합성 고세균들은 레티날을 이용한 광합성을 진행한다. 그리고, 이 레티날은 녹색 빛을 흡수한다. 가장 많은 빛이니, 진화적으로 녹색이 제일 먼저 사용되었을 법 하다. 이 레티날은 녹색을 흡수하고 나머지 빛들은 반사/투과시키므로, 보랏빛을 띤다. 그래서, 식물이 탄생하기 이전 레티날 기반 생명체들이 가득했을 24억 년에서 35억 년 이전의 지구는 녹색이 아닌, 보랏빛 행성이었을 것이라는 가설이 존재한다(purple earth hypothesis (그림 7)).


그림 7. 가상의 '보랏빛 지구' 상상도.


가설을 지지하는 몇몇 과학자들에 의하면, 최초의 엽록소를 이용하는 생명체들은 이미 우위를 점하고 있던 레티날 기반 생명체들이 '먹고 남긴' 빛을 이용하였을 것이라고 생되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보라색 박테리아들이 가장 우세한 녹색 빛들을 집어삼킨 후 남은 빨강과 파랑 파장을 이용해 진화하게 되었고, 이들은 일정 기간 동안 공존하다가 엽록소의 높은 효율성과 안정성으로 인하여 녹색 생명체들이 번성하며 보라색 생물들은 도태되고 생태학적 입지가 축소되었을 것이라고 생각되고 있다. 만일 고생물학적 사건이 약간이라도 다른 방향으로 일어났다면, 우리는 여름마다 푸르른 산이 아니라 보랏빛 산과 들판을 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주 Endnote


* 1. 물론, 이 "붉음" 은 우리의 뇌가 만들어낸 실체일 뿐이다. 조지 버클리가 던진 철학적 질문처럼, "아무도 없는 숲 속에서 나무가 넘어졌다면 소리가 났다고 할 수 있을"까?


* 2. 이전 글 참조.


* 3. 과학이 늘 그러하듯, 그리고 생물학에선 더 흔히 그러하듯이 연속적인 자연을 인위적인 관점과 기준을 통해 이산적으로 분리한 인류의 학문에서는 예외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광합성을 하지 않는 식물도 존재하는데, 새삼과 같은 기생식물이나 으름난초와 같이 곰팡이에게 의존하여 영양분을 얻는 식물들이 그 예시이다.


* 4. 이 또한, 거의 모든 생태계이지만 모든 생태계는 아니다. 심해 깊은 곳, 지구의 지열(태양열이 아닌 지구 내부의 방사성 원소 붕괴로 인해 생성되는 열)이 물을 덥히는 심해 열수공에서는 독자적인 생태계가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그렇지만, 사실 이 중에서도 몇몇 생명체는 광합성의 산물인 marine snow를 먹고 살며, 광합성을 통해 만들어진 산소를 이용한다). 최초의 생명은 이 열수공에서 기원했을 것이란 가설도 있다.


* 5. 태양은 지구 표면에 17만 테라와트의 에너지를 쏟아붓는다. 굉장히 효율적인 에너지원인 우라늄을 이용하는 원자력 발전소 1 기의 발전용량이 1기가와트이고, 서울시 전체의 전력소비량은 4.7만 기가와트시, 일반적인 가정집의 한 달 사용량이 수백 킬로와트시에 불과하다는 걸 고려해 보면 어마어마한 양이다. 인류 문명 전체가 사용하는 에너지가 고작 18 테라와트 가량이니 태양 에너지의 1만 분의 1로도 인류 문명을 지탱할 수 있는 수준인데, 사실 이 에너지조차 태양이 내뿜는 전체 에너지의 0.000000045 퍼센트 정도에 불과하다. 련: 카르다쇼프 척도.


* 6. 헤모글로빈이 철 이온으로 인해 붉은 빛을 띠고, 헤모시아닌이 구리 이온으로 인해 푸른빛을 내는 것처럼 마그네슘은 녹색 빛을 내는 데 주된 역할을 한다(비록 이온 자체가 색을 띠지는 않지만). 피린 고리 구조에 끼어든 마그네슘은 녹색 빛을 내게 만드는데, 식물을 조리할 경우 탈마그네슘 반응이 일어나며 녹색이 사라지게 된다. 이 과정은 산성 조건 하에서 잘 일어나므로, 식물의 녹색을 선명히 유지하려면 약한 알칼리성 조건에서 조리하는 것이 좋다. 참고로, 이것은 단풍에 있어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가을이 오면 엽록소가 이 탈마그네슘 효소(SGR)를 통해 분해되며 다른 색소의 색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 7. 이 점에 착안하여, 타크루즈 대학의 연구진은 온실 천장에 녹색 빛을 선택적으로 흡수하는 태양광 패널을 달아, 태양광 발전을 진행함과 동시에 투과한 청색/붉은색 투과광으로 아래쪽에서는 식물을 키우는 태양광 온실을 개발했다. 보라색과 녹색 식물의 공생을 본따 인간과 녹색 식물의 공생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 8. 현재 남아 있는 보라색 박테리아들은 호염성 고세균halophile 의 일종으로, 이들은 일반적인 생명체들은 살 수 없는 엄청난 고농도의 염이 존재하는 환경에서 살아간다. 보통 생명체들의 소금 농도가 0.9% 정도인데-생리식염수의 농도-, 이 박테리아들은 염 농도가 10% 를 훌쩍 넘는 곳에서 살아간다. 아마도 생태적 경쟁을 통해 이런 극단 환경으로 밀려났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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