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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윤 Jan 30. 2022

(4) 따뜻함의 깃털 하나

하윤의 Resolution

삶이란 바람에 휘날리는 깃털과 진배없다. 한 순간은 손아귀 안에 있겠지만, 찰나 후엔 앞을 알 수 없게 높이 휘날린다.


-윌리엄 셰익스피어



인간에게 따뜻함을 더해주는 깃털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는 추운 겨울이 되면, 주변에서 도톰한 패딩을 챙겨 입는 사람들이 늘어나곤 한다. 추위를 막기 위해 각종 색상과 길이가 다양한 패딩을 옷장 속 깊이에서 꺼내는 것은 일종의 계절 변화에 대한 신호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이러한 패딩 padding, 그러니까 속을 채운pad 옷은 영하 수십 도의 살을 에는 온도에도 걸치기만 하면 우리의 몸을 따뜻하고 평온히 유지해 준다. 인간은 최근에 들어서야 이러한 따뜻한 의복을 '발명'하였으나(다운 깃털을 채워 만든 재킷은 1930년대 발명되었다고 알려져 있다(그림 1)), 인류의 많은 것들이 그러하듯 이미 자연은 체온을 지키기 위하여 정확히 같은 원리를 이용하고 있었다.


그림 1. 1938년대, 초기의 패딩. 속깃털을 퀼트 내부에 채워 만드는 구조로 제작되었다.


패딩을 입다 보면 삐져 나오는 깃은 패딩의 속 재료를 짐작케 해 준다. 사실 이름에서부터 알 수 있다. 구스다운goosedown 이니, 덕 다운duck down 이니 하는 것이 그 재료의 이름이니 말이다. 약간의 관찰을 한다면 알 수 있듯, 오리나 거위의 깃털, 그 중에서도 다운 깃털(down feather, 혹은 솜털)을 채워 만드는 것이 일반적인 패디드 재킷의 구성이다(그림 2). 그렇다면, 왜 깃털을 채운 옷은 따뜻한 것인가? 


그림 2. 깃털을 채운 베개. 많은 의복 또한 이러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이에 대해서는 열의 전달 방식을 간단히 언급하면 도움이 되는데, 학교에서 배우듯 열은 직접적으로 전달되는 전도, 유체의 이동을 따라 전달되는 대류, 그리고 전자기파의 형태로 전달되는 복사의 세 가지 방법을 통해 전달된다. ‘열’이라는 것은 통계역학적으로 보면 어떠한 물체가 가지고 있는 에너지의 합이며, 온도는 물체를 이루는 원자들의 평균 에너지라고 생각할 수 있다. 분자가 빠르게 떨린다면 그것은 ‘높은 온도를 가진’ 분자이며, 느리게 진동한다면 그것은 ‘낮은 온도를 가진’ 분자가 되는 셈이다. 이러한 분자가 촘촘히 붙어 있다면 옆의 분자를 따라 진동시킬 테고(전도), 떨리는 분자가 직접 움직여 멀리 있는 분자에게 진동을 전달할 수도 있으며(대류), 혹은 자신의 진동 에너지를 전자기파의 형태로 전환하여 쏘아 보낼 수도 있다(복사) (이전의 흑체복사를 기억하는가?).


솜털로 가득 찬 옷은 그 특성상 내부에 미세한 공기방울을 포집할 수 있고(뒤의 구조에서 알아보자), 공기는 매우 효율적인 단열재로써 열의 전도를 매우 효율적으로 차단한다. 그러므로 몸에서 방출되는 열이 차가운 주변으로 빼앗기지 않도록 단열함으로써 극한의 상황에서도 따뜻함을 유지시켜주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솜털의 밀도는 매우 낮으므로(1 세제곱 센티미터당 2.5mg가량으로, 물에 비해 400배나 가볍다), 활동하기 좋은 가벼움을 제공한다.


그렇다면 깃털은 얼마나 효율적인 단열재인가? 열을 얼마나 잘 전달하는지를 나타내는 척도로써 열 전달율을 지표로 사용하는데, 깃털의 열 전달율은 0.024 W/m*K 으로,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물체 중 최고에 달하는 단열 효율을 자랑한다. 이는 인간이 만들어 낸 효율적 단열재인 스타이로폼이나 양털보다도 낮은 수치다. 극단적 예시로, 스타이로폼 박스 내에 영하 200도에 가까운 액체 질소를 넣더라도, 박스의 외부 표면은 유의미하게 차가워지지 않는다. 즉 내-외부의 200도가 넘는 온도 차이를 유지시킬 수 있는 정도의 단열력을 가진다는 의미다.


실제로, 펭귄은 16만 개의 미세한 이중 깃털층을 이용해 영하 90도에 달하는 남극의 살을 에는 추위를 견뎌내고(그림 3), 일반적 인간은 빠지면 수 분 내로 저체온성 쇼크가 오고 이내 사망하는 극지방의 바닷속에서도 수월하게 수영을 할 수 있다(물론 이 뿐 아니라 허들링과 같은 집단적 무리짓기를 이용해 효율을 높인다).


그림 3. 펭귄의 두툼한 깃털층은 조밀하게 모여 약 24mm에 달하는 공기층을 형성하여 매우 효율적인 단열재로 작용한다.

그렇지만, 슬프게도 이러한 깃털의 효율성과 그에 따른 선호는 동물에 대한 착취로 이어지곤 한다. 호텔 등지에서 찾아볼 수 있는 푹신한 깃털 이불 하나를 채우기 위해선 거위 75마리 분량의 가슴 속깃이 필요한데, 인도적으로 안락사 후 채취하는 것보다 살아있는 채로 깃털을 뽑으면 성장 과정을 거쳐 여러 번 채취할 수 있으므로 많은 국가에서는 이러한 비인도적 깃털 채취를 실시하고 있다(폴란드, 헝가리, 중국 등지에서는 많이 행해지며, 조사에 따르면 50퍼센트에서 80퍼센트가량의 깃털이 이런 방식으로 채취되었을 것이라 추정되고 있다(그림 4)). 이렇게 강제로 깃털을 뽑힌 새들은 큰 고통을 받게 되며, 경우에 따라 폐사하거나 정신, 신체적 문제를 겪게 되기도 한다.


그림 4.살아 있는 채로 가슴 깃을 채취당한 거위의 모습. 우리의 따뜻한 이불을 채우는 깃털은, 원래는 조류의 체온 유지를 위한 것이었다.

깃털의 구조


그렇다면, 깃털은 대체 왜 이렇게 효율적인 단열재인가? 그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서 깃털을 자세히 살펴보자. 지금은 많은 새들이 털갈이를 할 때이니 ¹, 주변을 나서면 깃털을 몇 개쯤 주울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주운 깃털과, 패딩에서 뽑아낸 깃털을 비교해 보자. 그러면, 이 두 깃털의 구조가 무언가 다른 것을 눈치챌 수 있다(눈썰미 좋은 조류학자는, 깃털만으로도 종을 알아채곤 한다. 이러한 구분법은 DNA 검사와 합해 멸종 위기 새의 이주 패턴 분석이라던가, 범죄 현장 또는 사고 현장에서 발견된 깃털을 감식하는 등에 이용된다).


우리가 흔히 잘 알고 있는 형태의 깃털은, 제일 아래쪽의 깃촉(calamus)가 가운데의 빳빳한 깃대(rachis) 와 연결되어 길쭉하게 뻗고, 이 깃대에서 깃가지(barb) 가 나뭇가지처럼 뻗어 나오고, 이 깃가지에서 다시 미세깃가지(barbule)가 뻗어 나오며 미세깃가지가 갈고리 구조(hamuli, barbicel) 을 이뤄 촘촘히 엮여 날개판(혹은 깃판, vane) 을 형성하는 모양이다(그림 5).


그림 5. 깃털의 종류와 해부학적 구조에 대한 모식도.

그러나, 패딩 안의 깃털은 마지막 구조인 갈고리가 없어 하늘하늘하게 깃가지들이 휘날리는 것을 볼 수 있다(그림 6, 7). 전자의 빳빳한 깃판을 가지는 깃은 겉깃털(vane feather)², 후자의 나풀나풀한 깃가지를 가지는 깃은 속깃털(down feather) 라고 부른다. 이 각각의 분류 안에도 비행깃과 꼬리깃, 반깃털과 모상깃털(filoplume) 등의 7가지 구조로 더욱 구조적 세분화가 되지만 설명의 간략함을 위해 넘어가자.


구조적으로 살펴보았을 때, 그림에서 보이는 미세한 깃가지들의 얽힘 사이에 공기방울들이 갇히게 되어, 훌륭한 단열 성능을 보이게 되는 것이다.


그림 6. 그림 좌측 상단의 속깃털과 우측의 비행깃의 미세구조 차이. 이러한 차이는 우낭의 발달적 차이에 의해, 그 차이는 Wnt 유전자에 의해 결정된다.
그림 7. 속깃털은 좌측의 겉깃털과 달리 사이를 엮어 주는 갈고리 구조hooklet 이 없어, 판판한 판을 만들지 못한다.



깃털의 진화


깃털이 왜 이런 구조를 가졌을지에 대한 의문을 품어 보면, 역시나 진화 과정에서 우리는 만족스런 답을 찾을 수 있다. 깃털은 파충류 등에서 보이는 비늘에서 진화한 것으로 생각되고 있으며(그림 8)³, 초기의 깃털은 비행이 아닌 보온의 역할로 처음 나타났을 것이라고 추측되고 있다. 케라틴으로 만들어진 비늘이 길쭉하게 변형되고 갈라져 공기를 품으며 따뜻함을 더해주었고, 어떤 동물은 이 공기층을 부력을 얻는 데 사용했으며, 어떤 동물은 여기에 색소를 입혀 위장과 구애를 하는 데 이용했고, 어떤 종은 갈고리로 튼튼하게 짜낸 후 왁스를 바르거나 케라틴 파우더를 만들어 내어 기름기를 흡수하여 방수 기능을 더했으며, 어떤 종은 이 튼튼한 깃을 활강, 또는 이동 시에 아래쪽으로의 공기역학적 힘을 가하는 데 사용했다⁴. 결국, 깃털은 비행에 사용되었고, 이내 막대한 수와 다양성, 활동 범위를 자랑하는 조류의 특징 중 하나로 자리잡게 되었다. 최근의 연구는 실제 깃털의 진화가 이렇게 털과 같은 모양에서 나풀거리는 모양을 지나, 튼튼한 깃대와 갈고리 구조를 이루는 방향으로 이루어졌을 것이라고 제안한다. 진화가 으레 그러하듯, 너무나 효율적인 비행 수단처럼 보이는 깃털은 처음에는 비행을 위한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림 8. 최근의 계통분류학적, 고고학적 연구들은 깃털이 새 고유의 것이 아닌 공룡을 비롯한 파충류에게서도 널리 발견되는 구조임을 보였다.


이렇게 깃털은 보온을 위해 만들어졌지만, 치명적인 단점이 하나 있다. 깃털이 물에 젖으면 사이사이의 미세한 틈을 물이 채워버리므로 훌륭한 보온 효과가 사라지고, 물을 먹은 솜처럼 무거워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특히 물 위나 주변에서 긴 시간을 보내는 물새들에게 큰 골칫거리일 뿐 아니라 일반적인 새에게도 비가 내린다면 깃이 젖어 저체온증과 무거워진 몸무게 때문에 날기 어렵게 만들 것이므로 큰 문제인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새들의 겉깃털은 방수 효과를 가지고 있다. 정확히는 방수 효과를 얻기 위해 기름샘(uropygeal gland) 에서 분비되는 왁스를 깃에 치덕치덕 발라 방수 기능을 더한다. 수영 전후로 물새들이 부리로 깃털을 고르는 것은 이 왁스를 꼼꼼히 다시 바르는 목적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기본적인 깃털 단열의 구조는 방수성 막으로 보호한 속깃털의 형태인데, 인간은 발수성 합성 섬유 속에 채운 새의 속깃털을 이용해 이를 모방한 셈이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뛰어난 보온성을 가지는 깃털이지만 이 단열성이 방해가 되는 경우도 있다. 격렬한 운동을 통해 온도가 올라갈 경우 빠르게 열을 방출해야 하는데 단열성 깃털층이 이를 방해하므로, 열사병에 걸릴 가능성이 있다. 새는 이를 방지하기 위해 깃털의 각도를 조절하여, 열을 방출할 필요가 있을 때는 이러한 단열층의 구조가 풀어지도록 한다. 또한, 알을 따뜻하게 품어주어야 하는 경우 모체의 열이 알로 전달되어야 하므로 단열층이 없어야 한다. 그래서, 알을 품는 시기가 되면 새들의 배 쪽에서는 깃털이 사라지고 맨 살이 드러나게 된다(brooding patch 라고 부른다 (그림 9)).


그림 9. 붉은어깨검정새 암컷의 brooding patch.


겨울철마다 맞이할 수 있는 깃털이 찬 옷을 볼 때, 삐져나온 깃털 한 올이 거슬린다면 뽑아 버리지 말고 한번 잘 살펴보자. 앞서 설명한 유전자가 빚어낸 깃털의 구조를, 그리고 그 안에 새겨진 진화의 역사를, 새들이 어떻게 현명하게 깃털을 활용하고 있는지를. 다음에는 이 깃털을 이용한 새의 비행에 대해 알아보자.



미주 Endnote


1. 새는 연간 한두 번 정도 헤지거나 손상받은 깃털을 새 깃으로 갈곤 하는데, 이 때 아무렇게나 빠지는 것이 아니라 체계적인 순서를 가지고 빠진다고 알려져 있다. 예컨대, 한 번에 깃이 모두 빠져버린다면 비행과 사냥에 큰 지장이 생길 것이다. 이러한 지장이 생기지 않도록, 한 번에 한 군데씩, 사냥에 중요한 깃은 맨 마지막에 빠르게 털갈이를 진행한다. 또한 이런 털갈이는 짝짓기에도 중요한데, 평소에는 칙칙한 위장색을 띠던 새들은 짝짓기 철이 되면 자신을 돋보이게 만들고 눈에 띄게 만드는 밝고 아름다운 색의 깃을 새로이 만들며 털갈이를 하곤 한다. 항상 밝은 털을 가지면 생존에 불리할 것이므로.


2. 이런 류의 깃축을 가진 깃털은 Penneceous feather 라고도 부른다. 여기서 익숙한 단어가 하나 보이지 않는가? Pen 이다. 역사적으로 가장 널리, 그리고 필경사들에게 사랑받았던 깃털 펜의 후손인 볼펜, 만년필 등은 깃털에서 내려온 pen 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펜촉 모양 파스타인 펜네 penne 도 결국은 깃털에서 왔다.


3. 포유류의 털 또한 같은 진화적 기원을 가진다고 생각되어지나, 가지고 있는 구성 케라틴의 구조가 다르다. 털이 모낭에서 자라듯, 깃털은 우낭에서 자라며, 털과 같이 모세 혈관이 성장했다 퇴화했다 하며 깃털의 성장을 진행시킨다.


4. 날개의 도움을 받은 경사 달리기(Wing-assisted incline running, WAIR) 가설에 의하면, 초기의 날개 퍼덕이며 래쪽으로 힘을 가해주어, 일반적으로는 올라가기 힘든 높은 경사를 올라가는 데 도움을 주는 식으로 진화했을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실제로 일부 새는 105도 가량의(수직을 넘어서는!) 경사를 날갯짓의 도움을 받아 발로 기어 올라가는 모습을 보여주곤 한다.


5. 해당 진화는 중요한 발생생물학적 신호 단백질 중 하나인 wnt 연관 유전자가 관여한다고 밝혀졌다.


6. 표현을 빌리자면, 진화는 '탐욕스런 기회주의자' 이다. 이전의 구조를 가능한 한 아끼며 변용시켜 새로운 목적에 맞게 개조하는 땜질은 수많은 생명체의 구조에서 살펴볼 수 있는데, 앞서 언급한 깃털은 물론이고 우리의 폐는 어류의 부레에서, 턱과 얼굴 구조는 아가미 받침에서, 젖샘은 땀샘에서 차용되어 만들어진 구조다. 이것은 분자적 관점에서도 적용되는데, 예컨대 신경 세포가 신호 전달을 위해 사용하는 신호 물질이 담긴 작은 주머니들은 원래 세포막이 찢어지는 것을 수리하기 위한 지질 주머니였다고 생각되고 있다.


* 참고문헌 - 소어 핸슨, <깃털> 에 큰 내용적 도움을 받았다. 이 글에서 미처 다루지 못한 흥미로운 이야기들, 예컨대 부리를 통한 체온 조절이나 깃털을 통해 현악기와 같이 소리를 내는 새의 이야기, 공룡에서의 깃털 발견, 인간의 문화와 깃털과 같은 많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으니 흥미가 동한다면 일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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