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자신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최고의 방법은 무엇일까? 이에 대한 답을 묻는다면 대개 그 답은 '무장을 하는 것' 이라는 답이 돌아올 것이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옆에 있는 사람이 무기를 든다면, 그를 지켜보는 사람들은 그 무기로 선제 공격을 당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자신도 무장을 시작할 것이다. 결과적으로, 모두가 더 많은 노력을 들였음에도 아무도 그로부터 상대적인 혜택을 볼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 이것을 국가적인 규모로 확장하게 되면 안보의 딜레마라고 부르는 것이 된다¹. 국가를 지키기 위하여 군비를 증강하면, 이것이 인접한 국가들을 자극하고 원치 않았고 불필요했던 군사적 행동과 마찰을 불러온다는 것이다².
그림 1. 루이스 캐럴의 소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붉은 여왕
마치 이것과 같이, 서로가 군비에 투자하면 투자할수록 드는 돈은 많아지지만 상대적인 이득은 전혀 생기지 않는 것을 붉은 여왕 효과red queen effect 라고도 칭한다(그림 1). 이 용어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등장 인물인 붉은 여왕에서 따 온 용어인데, 붉은 여왕의 나라에서는 제 아무리 열심히 뛰어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고, 두 배 빨리 뛰어야지만 간신히 나아갈 수 있는 모습이 그려진다. 오히려 가만히 멈춰 있으면 뒤로 뒤처지는, 나를 제외한 모든 것들이 달리고 있는 그런 세상을 생각해 보면 되겠다. 이러한 용어는 경제학, 군사학, 진화생물학에서 차용되어 사용되고 있다.
이 이야기를 군사에 적용해 보자. 어느 한 나라가 새로운 군사 기술을 도입하여 이득을 얻으면, 곧 그에 대응할 수 있는 새로운 방어 기술이 도입되거나 해당 군사 기술이 즉각적으로 차용되기 때문에 끊임없이 군사 기술은 진보하고, 그에 따라 끊임없는 군비 증강을 하지 않는 국가는 퇴보하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의 군사 역사를 살펴보면 이것은 잘 들어맞는다. 예컨대 기마술은 본디 동유럽쪽에서 시작되었으나 아시아, 서유럽, 중동과 결국은 미 대륙까지 퍼져나가며 전파되는 곳마다 전투의 형태를 바꾸었고, 화약과 화기의 발달로 기존의 석재 성벽이 무효화되자 새로운 방식의 흙을 기반으로 한 낮고 더 튼튼한 성곽을 쌓게 되었고, 미사일이 등장하자 전투기는 미사일을 교란하기 위한 채프와 같은 교란장치를 싣게 되었고, 발달한 미사일 체계, 예컨대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이 정교해지자 이를 막기 위한 미사일 방어 시스템MD 가 첨예하게 발달하는 등 고전기부터 현대까지의 수많은 사례들은 이 주장을 뒷받침한다.
이러한 군비 경쟁은 비단 인간 대 인간에게서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다. 생명계 전체에서 흔히 볼 수 있는데, 예를 들어 항생제와 세균의 경쟁을 살펴볼 수 있다. 알렉산더 플레밍이(그림 2) 1929년에 세균을 특이적으로 죽일 수 있는 항생제인 페니실린을 처음 발견한 이후³, 대량 생산이 이루어지고 널리 사용되며 지금까지 2억 명 가량의 생명을 구했다고 알려져 있다⁴.
그림 2. 알렉산더 플레밍과 그의 연구실.
그러나 이러한 항생제의 남용은 항생제 내성 세균을 만들어냈다. 현재는 페니실린이 듣는 세균을 찾기가 힘들 정도로 널리 퍼졌는데, 이는 항생제 내성에 대한 개념이 희박하던 시기 지나친 남용으로 인하여 생겨난 것이다. 페니실린은 베타-락탐이라고 부르는 사각 고리 모양을 가지고 있는데(그림 3), 이것은 세균이 외부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만드는 단단한 껍질인 세포벽의 형성을 억제한다⁵.
정확히는, 이 세포벽의 주 구성 성분인 펩티도글라이칸peptidoglycan 을 연결하는 펩타이드 연결 효소에 재료로 쓰여야 하는 알라닌 대신 달라붙는다. 비유하자면, 본디 건설 시에 철근을 넣어야 하는데 이것을 철근 비슷하게 생긴 대나무로 바꿔치기하는 셈이다. 결과적으로 세균의 세포벽은 헐거워지고, 단단한 보호막을 잃어버린 세균은 번식 과정에서 터져서 사멸하게 된다.
그림 3. 상단의 알라닌과 비슷하게 생긴 베타-락탐 구조를 포함한 항생제들. 이들을 통틀어 베타 락탐계 항생제라고 총칭한다.
그러나 여기서 일방적으로 당하는 대신, 세균들은 베타 락탐 구조를 가수분해해서 파괴하는 베타락탐 분해효소를 만들게 되었다(이는 너무 널리 퍼져서 2천 개 가량의 분해 효소가 알려져 있다). 그러자 다시 제약사들은 베타락탐 분해효소에도 분해되지 않도록 크기를 키우고 구조를 변형하거나, 베타락탐 분해효소를 다시 억제하는 약물을 만들어 대응하고 있으며, 세균들은 여기에도 다시 적응하여 여러 항생제에 대하여 적응성을 획득하고 있다(다제내성균). 마치 인간의 군비 경쟁과 마찬가지로, 창과 방패의 첨예한 끝없는 대립이 이어지는 것이다.
이는 고작해야 백여 년 된 사례이지만, 사실 생명체와 생명체의 경쟁은 첫 생명이 지구에 태어난 순간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의식이 없는 것이 분명할 박테리아들도 먹이가 풍부한 상황에서는 최대한 빨리 자신의 개체수를 늘리기 위하여 안간힘을 다하여 스스로를 복제하며, 누가 더 빠르게 복제하는지가 결국 다수를 차지하는지를 결정하므로 필요없는 모든 것을 떨어내며 복제 속도 올리기에 전념한다⁶.
그림 4. 캄브리아기에 생겨난 다양한 생명체들에 대한 상상도.
생명체들의 복잡성과 다양성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캄브리아기의 초기 시기-캄브리아기 대폭발이라고도 부르는-에는 (으레 그러하듯 이견이 있지만) 산소 농도가 증가하며 에너지 대사가 증가했고, 그에 따라 운동성이 빨라지고 턱과 시각이 생겨나 육식성 포식자가 생겼으며⁷, 여기서 빨리 도망가기 위해 피식동물들 또한 복잡한 행동 양태를 발달시키며 서로 간의 상승작용을 일으켰을 것이라는 가설이 있다(그림 4). 그때부터 포식자와 피식자는 서로를 의식하며 균형을 맞추기 위해 같이 달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러한 끊임없는 경쟁은 어디서든 일어난다. 블루 오션처럼 보이는 사업장에는 수많은 기업이 뛰어들어 이내 북적거리고, 한때의 챔피언은 이내 도전자에 의해 장막 뒤로 물러나게 된다. 그러나 35억 년의 진화사는 조용히 말한다. 이런 끝없는 경쟁 속에 우리는 다 앞으로 달려나가고 있다고.
미주 Endnote
1. 여기에서 한 가지 문제가 생긴다. 예를 들어, 내가 먼저 기습해서 상대방을 완전히 몰살해야지만 공격받지 않는 상황을 생각해 보자. 이 경우, 합리적인 최선의 선택지는 당하기 전 먼저 기습하는 것이다. 다행히도, 인간의 '불합리성' 은 이것을 억지하고 있다. 행동경제학 등에서 알아볼 수 있듯 인간은 완벽한 합리적 존재들이 아닌데, 때로는 우리가 합리적 존재가 아님이 다행스러울지 모른다. 예컨대, 150번 이상 일어날 뻔 했던 우발적 핵전쟁은 오히려 '설마 그럴 리 없다' 고 판단했던 수많은 인간적인 사람들 덕분에 스쳐 지나갈 수 있었다.
2. 이것과 반대로, 압도적인 군사 능력 혹은 비대칭전력을 통하여 상대방이 공격하더라도 큰 피해를 주어 상대적 이득을 없애 버리는 억지 전략이 있다. 이것이 극단적으로 치닫은 것이 핵무기를 이용한 핵우산과 상호확증파괴MAD, mutual assured destruction 이다. 간단히 말하면, 날 죽이면 너도 온전치 못할 것이라는 일종의 압박이다. 그렇다면 최고의 수는 무엇일까? 이론적으로는, 모두 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불안 심리는 우리를 그렇게 놔두지 않는다.
3. 그러나 이것이 최초의 항생제는 아니다. 이전에도 매독과 같은 세균성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숱한 물질들을 이용해 치료하려 시도했으며, 대표적으로 수은이나 살바르산 등을 이용했다. 그러나 페니실린은 미생물이 만들어 세균 특이적인 독성을 보이고, 그에 따라 부작용이 훨씬 적다는 의의를 가진다.
4. 지금은 너무나 간단히 치료할 수 있는 간단한 상처나 세균 감염도 세균의 존재를 명확히 알지 못했던, 그리고 현대적인 살균법이 부재했던 시기에는 치명적인, 때로는 죽음을 불러오는 경우가 잦았다. 대표적으로, 단순한 피하 세균 감염으로 생기는 종기와 같은 질환 때문에 조선시대의 왕 27명 중 12명이 큰 고통을 받았고, 그 중 3명은 이 감염이 심하게 번져 사망에 이르기까지 했다. 세계 1, 2차 세계대전 때 팔다리가 절단되어 돌아오는 상이군인들이 많았던 까닭도 항생제와 같은 마땅한 치료법이 없어 사소한 감염으로 시작된 봉와직염이 커지면 감염 부위를 썰어 잘라버리는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5. 이것이 페니실린이 인체에는 별 부작용이 없는 이유이다. 인간을 비롯한 동물들은 세포벽을 만들지 않기 때문이다.
6. 이 경쟁이 어느 정도인가 하면, 인간과 같은 진핵생물의 세포는 대략 24시간에 한 번 분열하는 반면 대장균은 20분마다 한번씩 분열한다. 70여 배가 빠른 셈이고, 이론적로는 인간 세포가 1개에서 2개가 되는 사이 대장균은 2^70 개가 된다(대략 지구 위의 모래알 개수와 같다). 아주 재미있는 것은, 대장균은 자신의 유전자를 복제하는 데 40분이 걸린다는 것이다. 그럼 어떻게 20분마다 분열한다는 것인가? 이들은 자신의 아들이 해야 할 복제분까지 미리 반쯤 복제해서 넘겨준다!
7. 별 것 아닌 것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턱과 이의 발달은 동물의 진화에 있어 매우 중요한 전환점 중 하나였다. 자신의 기존 입보다 훨씬 큰 것들도 씹어 부수어 먹이로 삼을 수 있었고, 섭취의 효율성을 높였으며, 강력한 턱관절과 근육, 날카롭고 단단한 이는 치명적인 공격을 가하게 해 주는 이를테면 당시로써는 첨단 무기였다. 나중의 얼굴에 관한 글에서 다루겠지만, 얼굴의 표정을 짓는 표정근은 척추동물 중에서도 오로지 포유류에서만 나타나는 반면 씹는 데에 관여하는 턱 관절과 근육은 모든 척추동물 내에서 공통적인 구조와 발달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