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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윤 Apr 03. 2022

(13) 인간의 편측성, 난 왼손잡이야-(1)

하윤의 Resolution

나 같은 아이 한둘이 어지럽힌다고 모두다 똑같은 손을 들어야 한다고, 그런 눈으로 욕하지 마 난 아무것도 망치지 않아 난 왼손잡이야

-패닉의 곡, <왼손잡이> 중



이전의 글 (글 (9), 각주 2번) 에서 간략히 이야기했던 내용에 대해 이번에는 자세히 알아본다.


인간은 명백한 편측성(lateralization) 을 보인다. 문자 그대로 풀이하면 한 쪽으로 치우쳐 있다는 뜻이다. 인간은 어느 쪽으로 ‘치우쳐’ 있을까? 답은 명백하다. 대다수의 인간은 오른손잡이니까. 


지구상의 수많은 문화권을 살펴보면, 문화권마다의 편차는 있지만 10-12% 정도가 일관적으로 오른손을 이용하는 오른손잡이이다. 그뿐일까? 인간은 이미 오래 전부터 오른손잡이였다. 네안데르탈의 뼈를 연구한 학자들은 오른쪽 뼈가 더 길다는 점에서 수만 년 이전의 네안데르탈 또한 오른손잡이였다는 것을 보였으며, 40만 년 전에서 100만 년 전에 만들어진 뗀석기들의 떼어낸 구조를 살펴보면 이 때부터 93% 가량의 사람이 오른손잡이였던 것을 알 수 있다(오른손잡이들은 왼손으로 돌을 잡고, 오른손으로 돌을 쳐 내어 조각을 떼어내므로 명백하게 구분이 된다¹. 그뿐만 아니라, 이전에도 다루었던 동굴 벽화의 손 스텐실을 보면 고대의 벽화 작가들은 오른손으로 그림을 그린 것을 알 수 있으며, 이로 고기를 물고 베어 낸 자국을 보아도 오른손으로 칼을 들고 고기를 잘라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그림 1). 이미 수십 만 년 전부터 인간은 오른손잡이였던 것이다.


그림 1. 네안데르탈인의 앞니에 남은 긁힌 자국들. 이는 오른손으로 도구를 들고 이용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사실, 인간 뿐 아니라, 많은 동물은 특정한 편을 선호한다(F. Strockens, Laterality, 2013). 113 종의 비인간 척추동물들(어류부터 포유류까지)들 중 51% 는 명백하게 한 쪽 손(혹은 발) 을 선호하며, 오직 17% 만 양쪽을 가리지 않고 이용한다. 일부 물고기들도 ‘선호하는 눈’ 이 있어서 그쪽 눈을 이용해 먹이를 잡고, 문어는 척추 동물이 아니지만² 그럼에도 ‘선호하는 발’ 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그림 2).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대부분 균등하게 나뉘며 인간처럼 극단적인 한 쪽 방향을 선호하는 종은 없다. 고양이나 개는 대략 50% 가량으로 나뉘며, 침팬지나 오랑우탄 같은 인간과 제일 가까운 유인원들도 40~65% 정도만 오른손잡이일 뿐이다. 인간처럼 90% 가량을 차지하는 극단적인 편측성은 다른 동물들에게서는 보이지 않는다.


그림 2. 시클리드라는 물고기는 성장하며 한 쪽을 선호하는 특이성을 보인다. 자세한 내용은 Takeuchi, Plos one, 2016 참고.


이러한 편측성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식물에도 ‘오른손잡이’ 와 ‘왼손잡이’ 가 존재한다. 예를 들어서 덩굴식물은 주변의 물체들을 잡고 둘둘 감으며 기어 올라가는데, 이 때 왼손 방향으로 감는지, 오른손 방향으로 감는지가 다르다(여기서 나온 말이 칡과 등나무라는 뜻의 갈등이다. 칡은 오른손 방향으로 나무를 감아 타고 오르고, 등나무는 왼손 방향으로 감는다. 이것이 서로 풀리지 않고 해결되지 않는다는 의미로 확장되어 갈등이라는 단어를 만들었다-(그림 3)). 또한, 꽃잎이 겹쳐져 배열될 때에도 어느 쪽으로 휘어서 배열되는지에 따라 편측성이 나뉘게 된다. 식물 유전 연구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아기장대에서는 이러한 현상들을 조절하는 Lefty(왼손이) 유전자가 밝혀졌다. 물질 수준에서도 그렇다. 조개들의 껍질은 특정 방향으로 감겨서 자라고, 심지어 DNA는 대부분 오른손잡이 방향으로 감겨 있다(이것이 실질적으로 생리학적/행동학적 영향을 주지는 않더라도. 이는 단순한 진화 과정에서의 통일일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그림 3. 좌측은 칡나무, 우측은 등나무. 엄지손가락을 위로 세우고 휘감아 잡을 때, 어느 방향으로 감싸는가? 회전 방향을 손 방향으로 정의할 때는 이러한 방식을 이용하곤 한다.




이렇게 뚜렷하게 나타나는 인간의 오른쪽 사랑은 문화로도 이어진다. 대다수를 차지하는 것은 결국 옳은 것’이라는 사실은 현대의 정치 체제와 문화뿐 아니라, 과거에서도 변하지 않는 인간 사회의 특성이다³. 대다수가 오른손잡이이니, 인간의 모든 보편 문화권에서는 왼손잡이는 나쁜 사람, 잘 쳐 봐야 튀거나 이상한 사람으로 인식되었고, 오른쪽은 높고 좋은 것, 왼쪽은 낮고 하찮은 것에 흔히 연관되어 왔다. 그리스 고전기의 위대한 철학가 플라톤은 왼쪽을 불결하고, 불순하고, 사악한 것으로 생각하며 “아이들이 왼손을 사용하는 것은 잘못된 양육의 결과이다” 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인도에서는 오른손으로 식사를 하고 왼손은 화장실에서 사용하는 불결한 손으로 간주하며, 우리 말에서도 제일 중요한 2인자, 혹은 심복을 ‘오른팔’ 로 칭하지, 아무도 이 사람이 내 왼팔이라고 선언하지는 않는다. 베드로전서 3:22 에서는 ‘그리스도께서는 하늘에 올라가셔서 지금 하나님의 오른편에 계시며 권세와 능력을 가진 모든 천사들을 지배하고 계시다’ 고 명백한 방향성을 드러낸다. 그뿐이랴, 예수 그리스도가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형으로 사망할 때 예수의 왼쪽에 있던 죄수는 예수를 모독한 반면, ‘오른쪽’ 에 있던 죄수는 회개하고 뉘우쳐 성인으로 추앙받는다(그림 4). 심지어 꽤나 최근까지도 이어져서, 2000년대만 해도 왼손 교정은 흔히 행해져 왔고, 불과 몇십 년 전까지는 왼손잡이들은 일종의 발달 과정의 문제가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림 4. 예수의 처형. 예수 오른쪽의 죄수는 뉘우쳤고, 성인으로 추앙받는 반면(Saint. Dismas) 우측의 죄수는 그렇지 않다. 예수의 십자가에는 INRI 가 적혀 있다⁵.


단어에서도 이 차별은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말의 오른편은 ‘옳은 편’ 에서 왔고, 왼편은 ‘외다’, 즉 잘못되었다는 옛말에서 왔다. 연세 지긋한 어르신들, 혹은 일부 지방에서는 오른손을 바른손이라고도 부르니 더 볼 것도 없다. 영어의 Right 는 옳다는 뜻과 같고, left 는 앵글로색슨어로 약한, 엉뚱한이라는 뜻의 lyft 에서 유래한다. 라틴어로 오른쪽을 뜻하는 dexter 는 똑똑하고, 손재주가 좋다는 뜻도 가지고 있지만, 왼편을 뜻하는 Sinister 는 그 단어에서도 볼 수 있듯 죄악, 잘못된 행실과 연관지어진다. Left-handed marriage 는 간통이라는 뜻이며(신부를 오른쪽이 아닌 왼편 손으로 잡는다는 의미에서 왔다), 러시아어 levja 는 왼손잡이라는 뜻뿐 아니라 욕설로도 쓰인다. 프랑스어 gauche는 왼쪽이라는 뜻과 함께 어색한, 사회적 덕망이 부족하다는 뜻으로도 쓰인다. 이는 극히 일부 예시일 뿐, 보편 문화권에서 이와 같은 왼쪽에 대한 차별은 너무나 일상적이다.




다행히 현대에서는 명백한, 외현적인 차별은 존재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왼손잡이들은 일상 생활에서 큰 불편함을 겪곤 한다. 내가 들고 있는 스마트폰에서 제일 자주 사용하는 뒤로 가기 버튼은 오른쪽 하단에 있어서 왼손으로 누르기는 힘이 든다. 강의실 의자에 붙은 작은 책상은 오른쪽에서 나오며(그림 5), 엘리베이터 버튼은 오른쪽에 있고, 지하철 카드 단말기도 오른쪽에 있으며, 단추, 칼과 가위, 시계, 지퍼, 악기, 필기구를 비롯한 대부분의 손으로 사용하는 도구들은 오른손잡이의 관점에서 설계되어 있다. 


키보드와 마우스 배열은 말할 것도 없다. 다 같이 빼곡하게 앉아 식사할 때에는 왼손잡이들은 어깨를 움츠리고 팔이 맞닿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고, 대부분 우측통행을 하기 때문에 자동차 기어를 비롯한 조작은 오른손으로 하게 된다. 총기를 사용할 때에도, 대부분 오른쪽 어깨로 견착하고 사격할 것을 상정하여 뜨거운 탄피는 우측으로 배출된다(왼쪽 어깨에 견착하면 탄피가 바로 얼굴로 쏟아진다!). 글쓰기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적어 가는 표준적 글쓰기는 왼손잡이에게 너무나 불편한 구조이다(왼손으로 마르지 않은 잉크를 쓸며 지나가 번지기 쉽고, 이미 작성한 글을 다시 보는 것이 어려워 자간이나 높이를 맞추기도 힘들다).


그림 5. 오른손잡이의 필기 방식을 상정하여 설치한 접이식 테이블.


이는 수많은 사례들 중 극히 일부이며, 무심코 지나쳐 왔던 수많은 것들은 대부분 ‘표준’ 적인 오른손잡이들을 기준으로 만들어져 왔다.


이번 글은 여기서 마무리하고, 다음 글에서는 그렇다면 정말 궁금한 점 중 하나인 ‘왜’, ‘어떻게’ 인간에게서 이러한 편측성이 나타나는지에 대해 알아보며 주제를 마무리하도록 하자.



미주 Endnote


1. 어떻게 그냥 깨진 돌과 석기를 구분할까? 얼마 전 뗀석기 박물관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언뜻 보면 뗀석기는 그냥 깨져서 널브러진 돌처럼 보이지만 일관적인 복잡한 패턴을 가지고 있다. 몸돌에서 격지flake 를 일정하게 떼어내기 위해 같은 부분에 반복적인 자극을 가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특징적인 패턴들, 다른 도구들과 같이 발견되는 점이나 주변에 떨어져 나간 격지들을 같이 발굴하는 방식으로 석기를 구분지을 수 있다. 무엇보다 뗀석기는 사용 목적에 따라 일관적인 제작의 형태를 보인다.


2. 잘 알려져 있듯, 문어는 비척추동물임에도 뛰어난 수준의 지능을 가지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동물학자들에 의하면 대략 개 정도의 지능을 가진다고 하며, 실제로도 그에 대한 많은 보고들이 있다(예컨대, 문어는 도구를 이용하고, 사회적 지능을 가지며, 타 개체를 긴 시간(몇 달 이상) 기억하며 장/단기 기억을 통해 이전에 접하지 못한 문제를 해결하고 기억하여 다른 문제에 적용할 수 있다).


3. 인간의 옳음에 대한 기준, 그러니까 윤리 규범을 보면 우리는 ‘옳은 것’을 따르는 것일까? 혹은, ‘우리가 따르는 것’을 옳은 것으로 간주하는 것일까? 인간의 너무나 보편적이라고 생각했던 윤리 규범도 시대에 따라 닳고 퇴색하며, 낡아 가고 대체되는 것을 보면, 후자가 맞는 것처럼 보인다.


 4. 사실 경전 자체에는 방향성이 명백히 드러나 있지 않은데, 수많은 성화에서는 이와 같이 그리고 묘사한다. 경전 자체에서 사실은 아닐지라도, ‘왼쪽은 악함, 오른쪽은 선함’ 의 패러다임을 충실히 지켜 후대의 인간들이 그림으로 옮겼다는 사실은 논점을 흐트러뜨리지 않는다.


5. 유대인의 왕 나자렛 예수(라틴어: Iēsus Nazarēnus, Rēx Iūdaeōrum) 의 앞글자를 땄다. 이는 십자가형 중 죄수의 '죄목' 을 적어 붙인 것을 묘사하는데, 예수는 일종의 '국가에 대한 반란죄'로 책임을 물어 사형당했다. 이는 가톨릭에서 주로 사용하는 십자고상에서 늘 보이는 심볼리즘 중 하나다.


6. 그렇다면, 동아시아 국가들은 과거 왜 불편하게도 세로쓰기(위에서 아래로, 우측에서 좌측으로 써 내려가는)를 하였는가? 그 이유는 몇 가지로 설명되는데, 첫 번째로 파피루스나 양피지를 주로 이용한 서양 국가와 달리 동양의 대표적인 기록수단은 초기에는 대나무를 쪼개 만든 죽간이었다. 죽간은 길게 쪼개 길이로 엮었으니 세로로 적게 되었고, 두루마리처럼 둘둘 말았다가 (오른손잡이들이) 오른 손으로 잡고 펼쳐 읽었으므로 우측 > 좌측의 순서가 적합하였으며, 또한 한자라는 복잡한 상형 문자는 필기법 상 하단에서 획이 끝나므로 다음 글자를 이어 적기에는 가로쓰기보다는 세로쓰기가 적합하였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7. 인간 사회에서 수많은 사례들이 증명하듯,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사람들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이권을 미처 고려하고 생각하지 못한다. 그들이 겪을 수 없고, 상상하기 힘든 것들이기 때문이다. 이미 세상은 보편적 절대 다수에게 맞추어 ‘설계되어’ 있으므로. 어에서도, '일반적인' 이라는 뜻의 normal은 규범, 규칙이라는 뜻의 norm과 연관성이 있고, 이것은 또한 '올바른' 각도라는 뜻의 right angle, 즉 수직의 뜻도 가진다. 법선 벡터를 normal vector로 말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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