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것들을 살펴보면, 평소에는 별 생각 없이 지나치던 것들에 물음표를 던져볼 수 있다.
왜 수많은 국가에선 우측통행을 하는가? 비행기는 양쪽에 문이 대칭으로 있는데도 언제나 왼쪽으로 탑승하는가? 키보드에 있는 이 키는 왜 '쉬프트shfit' 라던가, '컨트롤control' 따위의 이름으로 부르는 것인가? 신기하게도, 별 생각 없이 보고 듣고 '당연하게' 사용하던 것들인데 그런 의문을 던지기 시작하면 우리는 왜 이런 일종의 규칙을 만들게 되었는지 궁금해지곤 한다.
당연히, 이러한 일상적인 규칙들은 누군가 만들어낸 과거의 유산이다. 역사 속에서 이런 규칙이 만들어졌던 이유를 찾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과거의 유산은 현대 사회에서는 흐릿해지고 희미해지며 잊혀져 버렸을 뿐이다.
1) 통행 방향
예컨대, 위에서 제기한 몇 가지 질문들에 답해보자. 우리나라를 비롯한 지구상의 많은 국가(영국, 일본과 영국의 식민지였던 국가들을 포함한 75개국은 제외한 165개국)는 우측통행을 하고 있다(그림 1). 즉 도로의 우측을 따라 자동차가 진행한다는 의미다.
그림 1. 좌측통행을 시행하는 나라는 푸른색, 우측통행을 시행하는 나라는 붉은색으로 표시된 세계지도. 역사적으로 영국의 입김이 닿았던 국가들을 유심히 살펴보라.
이는 자동차가 과거 마차의 직계 후손격이기 때문인데, 과거 마차를 모는 마부가 왼쪽 말에 앉고 오른손으로 채찍을 들어 말을 몰았던 것에서 기원한다. 이 경우 맞은편에서 오는 마차와의 간격을 확인하기에 편리하고, 더 안전한 도로의 우측 방향을 따라 서로 진행하는 것이 합리적이었을 것이다. 이와 같은 관행이 미국 등지에서 유지되었고, 마차가 자동차로 대체되는 과정에서 이미 사람들에게 널리 퍼진 우측통행의 규칙은 그대로 계승되어 미국의 영향을 받은 수많은 국가로도 퍼져나가게 된 것¹.
그림 2. 좌측통행을 실시하는 영국을 가 보면, 건널목마다 좌측통행에 익숙치 않은 사람들을 위한 '오른쪽을 보시오' 문구를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사실, 대부분의 인간은 오른발잡이기 때문에² 탈것을 왼쪽에서 탑승하는 것을 편안하게 여긴다(자전거나 오토바이, 말을 탈 때를 생각해보라. 당신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타는가, 그 반대로 탑승하는가?). 그 영향은 스포츠에서도 이어지는데, 쇼트트랙을 비롯한 모든 트랙 경기는 트랙을 반시계방향으로, 그러니까 좌측통행의 방향으로 돈다. 아마도 우측통행이 문화적으로 퍼져나가기 이전의 문명권에서는 좌측통행이 일반적이었을지도 모른다.
2) 비행기와 선박
또한, 이 현상은 우리의 두 번째 질문도 답해준다. 자동차가 마차의 후손이었던 것처럼, 비행기는 배, 그러니까 선박의 계승자이다. 마차에 비해 많은 사람을, 더 먼 곳으로, 장기간에 걸쳐 운송하며, 출발과 도착에 특수하게 구축된 시설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둘은 상당한 유사점이 있다.하지만 그래도 잘 모르겠다면, 우리가 비행기가 착륙하는 곳을 무엇이라고 부르는지 살펴보자. 한국어로는 공항, 즉 '공중 항구' 고, 영어로도 마찬가지로 airport 다. 중국어나 일본어, 독일어나 덴마크어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림 3. 관습적으로 비행기의 진행 방향 기준 좌측은 붉은색, 우측은 녹색 등을 단다. 이는 배의 등화에서 유래했다. 그 수단은 변할지언정 규칙은 그대로이다.
우리가 이전 글에서 살펴본 것처럼, 비행기의 진행 방향을 정하는 키와 같은 꼬리 보조날개를 러더라고 부르고, 비행기의 항법등(좌측에는 붉은색, 우측에는 녹색) 또한 선박의 위치 표시를 위한 항법등에서 왔다(그림 3). 또한, 오른손으로 노를 잡기 위하여 전통적으로 배는 좌현을 육지 측에 대고 좌현으로 출입해 왔는데³, 비행기도 이 관행을 그대로 따라 항상 좌현으로 타고 내린다(그림 4). 심지어 우주왕복선 또한 항공기의 관행을 따라, 좌측으로 '승선'한다⁴(그림 5).
그림 4. 공항에서 항공기로 바로 탑승하게 해 주는 보딩 브릿지가 연결되어 있다. 공항을 갔을 때를 상상해보라. 반대로 연결된 브릿지를 본 적 있는가?
그림 5. 나사의 우주왕복선 챌린저 호. 브릿지가 어느 쪽에 설치되어 있는가? 수천 년 전 노잡이가 노를 잡던 방향이 결국 우주왕복선의 출입구 위치를 결정하게 되었다.
3) 키보드
이뿐 아니라, 현대인이라면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키보드를 살펴보자. 시프트 키는 무엇을 '교대' 한다는 것일까? 컨트롤 키는 무엇을 '제어' 하는가? 이는 역시나 키보드의 전신인 타자기와 전신타자기teletypewriter 에서 유래했다⁵. 1829년 키를 입력하면 해당하는 키에 입력하는 글자를 종이에 찍어내는 타자기를 미국의 윌리엄 오스틴 버트가 선보였으며, 글을 적는 일이 많은 사람들에게 이는 빠르게 퍼져나가게 되었다. 이후 전신⁶과 타자기가 결합되어 전신타자기가 만들어지게 되었고, 이것이 1900년대 빠르게 발달한 컴퓨터의 입력 인터페이스로 이용하기 위해 그대로 차용되었다. 이 때 타자기의 백스페이스 키나 엔터 키, 시프트 키, 캐피털 록(capital lock, caps lock 이라고 되어 있다)키 등등이 모두 그대로 키보드로 딸려 넘어오게 되었다. 이런 키들은 타자기에서 어떻게 사용되었을까?
그림 6. 현대는 찾아보기 힘든 물건이 되어버린 타자기. 좌측 상단에 보이는 레버는 캐리지 리턴이라고 부른다⁷. 시프트와 백스페이스 키도 보인다.
백스페이스는 말 그대로 키를 찍는 '공간'을 다시 '뒤'로 무른다는 의미이다. 즉, 이미 무언가 찍힌 공간에 다시 문자를 찍기 위해 사용되곤 했는데, 예컨대 á 나 ü 등의 악센트 기호(다이어크리틱)을 일일히 배치할 수 없었으므로 á 를 위해 소문자 a 와 다이어크리틱을 두 번 겹쳐 찍거나(이를 오버스트라이크라고 부른다 - ₩,$,€,¥ 와 같은 기호들을 잘 살펴보면, 무엇과 무엇이 합쳐져 만들어졌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수정액 등으로 오기된 글자를 지우고 새로 찍거나, 혹은 글에 밑줄을 더하는 등의 용도로 사용되던(글자와 _ 을 겹쳐 찍음으로써)키가 백스페이스 키였고, 이것이 글자를 자유롭게 지우는 것이 가능해지고 다양한 기호를 입력하기 편해진 컴퓨터에서는 단순한 지우기 키가 된 것이다.
시프트 키는 그렇다면 어디에서 유래했는가? 영어의 대문자와 소문자는 똑같이 쌍을 이루고 있는데, 대문자와 소문자의 표기를 위하여 26개의 키를 더 만드는 것은 매우 수고로운 일이며 비효율적일 것이다⁸. 타자기의 크기나 무게가 늘어나, 두 손에 들어오는 크기로 만들기도 어려워질 것도 당연하다. 그렇다면, 평상시에는 소문자로 입력하다가 어떤 버튼을 눌러 대문자로 전환할 수 있다면 편리할 것이고, 이렇게 도입된 것이 시프트 키이다. 시프트 키를 누르고 있으면, 종이에 물리적으로 찍히는 활자 집합이 '교대' 된다. b 활자 대신 B 활자가 위치하게 되는 식(그림 7).
그림 7. 상기 영상을 보면, 시프트 키를 누르면 활자 뭉치가 아래로 내려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때 찍히는 위치가 내려가며, 소문자가 대문자로 전환된다.
이 때 연속적으로 대문자를 적어야 할 경우(제목 등), 무거운 키를 계속 누르고 있는 것은 번거로운 일이므로 시프트 키 아래에 물리적으로 키를 잠가주는 작은 키가 따로 존재했다. 이것은 '대문자로 잠금' 해 주는 기능을 가지므로 캐피털 록 키라고 불렀고, 원래는 물리적으로 시프트 키 옆에 위치해야만 했던 것이지만 그럴 필요가 없어진 지금도 그때의 관례를 따라 시프트 키 근처에 자리를 잡고 있다(그림 8).
그림 8. 시프트 키를 물리적으로 잠가주는 lock 키가 보인다.
마지막으로 컨트롤 키는 무슨 역할을 할까? 우리의 현대 컴퓨터에서는 각종 효율적인 작업을 위한 키로 응용되고 있지만(컨트롤+c 와 v 가 무엇을 의미하는가는 누구라도 알고 있을 것이다), 본디 초기의 역할은 '제어' 의 기능이었다. 아래의 미주 5번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예전에는 모든 제어 사항을 타이핑해서 컴퓨터를 조작하였는데, 텍스트의 시작이 어디인지, 끝은 어디인지, 줄바꿈을 어디서 하는지, 탭은 어디서 띄는지, 외부에 연결된 기기를 제어하거나 정보를 주고받을 때 이용하던 제어 기호들을 쉽게 입력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이 컨트롤 키라고 할 수 있다. 초기의 키보드에서는 컨트롤 키를 누르면 키보드가 송신하는 7비트의 아스키 코드 중 제일 왼쪽의 두 비트가 물리적으로 접지되어 0 으로 변화함으로써, 아스키 코드에 할당된 32개의 제어 문자를 입력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⁹.
이처럼 우리의 주변에 숨어 있는 자그마한 것들은 우리를 수백 년 전의 과거로 이끌어 간다. 우리는 시간의 흐름 속에 살아가지만, 시간의 흐름에 쓸려가다 보면 연속된 시간축 위에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잊곤 한다. 이러한 과거의 유산들을 가끔은 살펴보며, 시간에 따라 쌓인 문화가 빚어낸 미묘한 세상을 지켜보는 건 어떨까.
미주 Endnote
1. 통행 방향의 기원에 대해 여러 가지 가설이 있으며 이는 한 가설 중 하나이지만, 가장 유명하고 대표적인 설명이기에 차용한다.
2. 왜 인간은 다수가 편측성을 가질까? 그 이유와 원인은 무엇일까? 인간만 그럴까? 이 흥미로운 현상에 대해서는 다른 글에서 알아본다.
3. 현재도 비행기의 좌측을 포트, 우측을 스타보드starboard라고 부른다. 이는 고대의 선박 언어에서 유래했는데, 항구(port)에 붙이는 우현을 포트사이드, 방향 조절을 위한 노(steering oar, steering board)가 있는 쪽을 단어가 변형되어 스타보드사이드라고 불렀다. 해당 용어가 그대로 항공기에도 차용되었다.
4. 이와 같이 다소 비합리적이지만 이미 그렇게 해왔기 때문에 쭉 그렇게 행동하는 것을 경로의존성이라고 부른다. 일종의 관성이라고도 볼 수 있다. 양쪽 모두로 탑승할 수 있다면 더 빠른 탑승이 가능할 수도 있겠고, 필요에 맞추어 좌우로 탑승할 수 있는데도 이미 모든 업계 표준이 좌측으로 맞추어져 있으므로 새롭게 개척해야 하는 비용 때문에 변화가 일어날 수 없는 것. 대표적 예시로는 본디 타자기의 기계적인 문제 때문에 생겨난 qwerty(쿼티) 자판이, 시간이 지나 더 효율적인 자판 배치가 등장했음에도 아직까지도 쓰이는 것을 들 수 있다.
5. 현대 우리에게 키보드와 마우스 없는 PC는 상상할 수 없지만, 사실 이들은 컴퓨터의 부속에 꽤 늦게 합류했다. 키보드를 이용한 명령 시스템은 1960년대 중반에, 최초의 마우스는 1960년대 초반 SRI 연구소의 더글러스 엥겔바트가 개발하여 1980년대에 와서야 상용화되었다. 마우스를 이용한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의 등장 이전까지는 흔히 도스창이라고 부르는 커맨드 라인 인터페이스를 통해 파일과 프로그램 실행을 제어해야 했으며, 키보드가 사용되기 전까지는 이걸 천공카드나 자기 테이프를 이용해 한땀한땀 적어 넣어야 했다.
6. 전신은 전선을 통해 장거리의 정보를 주고받는 시스템으로, 1843년 모스가(우리가 알고 있는 모스 부호가 바로 전신용 부호다) 미국의 워싱턴 D.C. 와 발티모어 사이의 실용적 전신을 설치하고, 1844년 최초의 현대적 전신 시스템을 통한 장거리 메시지를 전달했다. 해당 메시지는 민수기 23장 23절의 "신이 무엇을 이룩했는가what hath god wroght" 였다. 사실 다른 문장이었다는 주장도 있다.
7. 캐리지 리턴 레버는, 매 타이핑 시마다 자동으로 밀려나는 캐리지(종이를 잡아 옮기는carry 구조물) 를 다시 원 위치로 돌려놓으며 아래로 한 줄 내리는 기능을 수행한다. 컴퓨터에서 상응하는 키는 무엇인가? 엔터enter 키다. 이 엔터 키는 일부 기기에서는 리턴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본디 캐리지 리턴을 나타내는 화살표(ㄴ 자로 꺾인) 아이콘으로 표시된다.
8. 시프트 기호는 이와 같이 동일한 부호로 다른 의미를 전달하게 해 주므로, 사실상 정보의 전송을 두 배로 효율적으로 바꾸어준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 곳에서 이런 시프트 방법을 도입하는데, 대표적으로 맹인이었던 프랑스의 루이 브라유가 만들어 낸 점자에서는 1부터 0 까지의 숫자 표기가 A부터 J 까지의 표기와 동일하다. 구분하는 법은 수표라는 기호(3,4,5,6에 점이 있다)를 이용하는데, 이것이 일종의 시프트로 작용하여 수표 이후의 점자들은 수로 취급한다는 의미이다.
9. 아스키 코드와 유니코드에 대해서는 다음에 알아보자. 편의를 위해 간단히 설명하자면, 컴퓨터는 0과 1의 비트 신호만을 이용하므로 인간이 이해하는 특정한 문자나 기호를 0과 1로 변환하는 변환표가 필요하다. 회사마다 다르던 변환표를 미국 국립 표준 협회에서 하나의 표준으로 정한 것이 아스키 코드다(ASCII, American Standard Code for Information Interchan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