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글에서는 의복에 대하여 알아보았다. 오늘은 그 중 특별한 한 갈래인 뜨개질에 대해 알아본다.
뜨개질이란, 하나의 긴 실을 뜨개바늘을 이용하여 고리 형태로 엮어 직물을 만드는 방식을 의미한다. 언뜻 생각해 보면 굉장히 오래 되었을 것이라 생각되지만, 현대식의 두 뜨개바늘을 이용한 대바늘뜨기 방식은 기원 후 11세기에 와서야 이집트에서 도입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다양한 문화가 그렇듯이(이전 글 참조), 이 역시 오래된 전신을 가지고 있다.
Nalebinding 이라는 기술(말 그대로 못nail으로 엮는bind 것이다) 이 그것인데, 이는 뜨개질과 달리 하나의 바늘과 실패를 이용해 마치 꿰매기를 하듯 복잡한 매듭을 연달아 지음으로써 직물을 만드는 방식이다(그림 1). 하지만 실을 이용해 매듭을 만든다는 기본 원칙은 같기에, 언뜻 겉으로만 보면 뜨개질 직물과 비슷해 보이곤 한다.
그림 1. Nalebinding에 대한 안내. 언뜻 보면 뜨개질과 비슷하지만, 뭉툭한 바늘 하나를 이용해 복잡한 매듭을 만드는 점이 다르다
비록 뜨개질은 비교적 최근에 도입되었으나, Nalebinding 은 8천 년 전부터 이용되던 유서깊은 방식이다. 이전 글에서 설명한 것과 같이 실로부터 직물을 만드는 것은 초기 인류 문명의 중요한 과업 중 하나였는데, 베틀과 같은 커다란 장비 없이 그저 실과 바늘로만 직물을 짜낼 수 있도록 해 주었으므로 뜨개질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부업거리였을 뿐 아니라, 정주형 문명이 아닌 유목민이나 바이킹과 같은 이동형 생활방식을 가지는 유랑 민족들에게는 (베틀을 매일 끌고 다닐 수는 없으므로) 단순한 소일거리 수준이 아닌 중요한 일상 유지 수단이었다(Nalebinding 은 노르웨이 와 같은 스칸디나비안 계열에서 차용된 단어다). 이후 기술의 발전으로 두 개의 뜨개바늘을 이용한 대바늘뜨기가 이집트 지역과 중동을 거쳐 유럽으로 무슬림을 통하여 퍼지게 되었고, 1300년대 이후가 되면 전 유럽에 보편적으로 퍼져 이용되게 된다.
뜨개질 중에서도 대바늘뜨기는 위에서도 설명했듯, 두 개의 바늘을 이용해 털실을 엮어내는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바늘에 고리를 만들고, 그 사이로 바늘과 실을 통과시키며 마치 매듭과 같이 실을 엮게 되는데, 이 과정은 고전적으로는 손으로 한 올 한 올 엮어냈지만 이제는 산업화를 거쳐 기계를 통해 빠르게 이루어지며(그림 2)¹, 우리가 입는 옷 중 대다수는 이러한 매듭법으로 만들어진다(주변의 스타킹, 속옷, 양말, 티셔츠 등을 면밀히 들여다보라).
이것은 엄청난 수준의 진보인데, 이전 글에서 옷감 한 필을 짜기 위해 열흘이 걸린 것을 생각해 보라. 현대식 기계는 시간당 100미터의 옷감을 짜낸다. 중세 시대의 가난한 소작농들은 이러한 옷감 생산의 어려움 때문에 평생 한두 벌의 옷, 그리고 중고 옷으로 살아가는 것이 일상이었지만 현대 사회의 우리는 인당 수백, 수천 벌의 옷을 소비하며 살아가고 유행에 따라 매번 다른 옷을 소비하고, 또 버리며 살아간다. 엄청난 진보가 아닐 수 없다.
그림 2. 원형 knitting machine. 엄청난 속도로 직물을 엮어낸다. 최신 기계들은 40RPM으로 돌아가며 시간당 100미터 이상의 직물을 짠다.
이러한 매듭을 엮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knit(겉뜨기) 와 purl (안뜨기) 이라고 불리는 방식이며(그림 3) 이 때문에 외국에서는 k 와 p 라는 약어를 이용해 해당 뜨개법을 지칭한다. 이에 관련하여 재미있는 일화가 있는데, 유명한 이론물리학자 폴 디랙이²물리학자의 아내가 이야기를 하며 뜨개질을 하는 것을 유심히 살펴보다가, “뜨개질을 위상기하학적으로 생각해 보면 두 가지 매듭법이 있어. 하나는 지금 네가 뜨는 방법이고, 다른 방법은 이것이지” 라면서 직접 매듭을 지었는데, 이에 뜨개질을 하던 아내는 “그걸 바로 안뜨기라고 부른다” 고 웃으며 대답했다는 일화가 있다.
그림 3. 안뜨기와 겉뜨기의 기본 매듭. 엄밀히는 얽힘tangle을 매듭화한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뜨개질에서와 같이, 이렇게 실을 엮게 되면 그것은 매듭knot³이 되는데, 위의 디랙 일화에서처럼 정말로 이러한 실의 엮임을 다루는 위상기하학적 수학이 있다. 바로 매듭이론knot theory이다. 매듭이론은 수학적인 관점으로 매듭을 바라보는데, 그 기원은 1800년대 후반의 화학에서 기원한다.
당시의 이론가였던 윌리엄 톰슨 켈빈⁴은 세상을 이루는 물질들이 본질적으로는 에테르라는 물질이 이루는 매듭의 형태라고 주장했었고, 이에 그렇다면 어떤 종류의 매듭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는지를 찾고자 여러 사람들이 매듭을 체계적으로 분류하면서 매듭이론이 시작되었다(그림 4). 그러나, 이런 ‘에테르 매듭’ 이론이 틀린 것으로 밝혀지면서 사람들의 관심에서 잊혔지만, 거의 100여 년이 지난 후 위상수학자들에게 재발견되어 현대의 엄밀한 이론이 정립되게 되었다.
그림 4. 분류된 매듭의 일부. 엇갈림수가 9인 매듭의 일부까지 보여지고 있다. 이 각각의 매듭은 다른 매듭이다.
이들은 세상에 무슨 매듭이 존재하는지⁵, 매듭을 어떻게 기술하는지, 매듭이 서로 같은지 다른지를 어떻게 구분하는지와 같은 질문들에 대해 고민한다. 매듭이 서로 같은지, 다른지는 너무나 간단한 문제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많은 천재적인 수학자들이 고군분투해 왔고, 하고 있다⁶.
매듭 이론은 다분히 순수한 수학의 관점에서 접근하지만, 순수 학문이 으레 그러하듯 이렇게 닦인 기초는 현생 세계를 설명하는 데 유용한 도구가 되곤 한다. 예컨대, 생명체들은 모두 유전 물질을 가진다. 그 형태는 대개 이중 나선 DNA인데, 이런 DNA 는 ‘나선’ 형태이므로 꼬여 있다. 이 꼬여 있는 DNA 가닥은 복제하기 위해서는 잘 풀어주어야 하는데, 풀어주기 위해 당기게 되면 오히려 반대쪽의 꼬임은 증가한다(간단히, 잘 꼬인 끈을 단순히 잡아당기면 오히려 더 엉키는 것을 상상해 보자). 이것을 초꼬임supercoil이라고 부르는데⁷, 이것은 리본의 꼬임에 대해 연구한 UCLA의 제임스 화이트의 이름을 딴 화이트 공식으로 설명할 수 있다(그림 5, 6).
그림 5. 꼬임에 대한 화이트 방정식으로 기술된 DNA의 초꼬임.
그림 6. DNA 의 위상학적 구조를 바꾸는 효소의 작동 원리에 대한 설명(A. Valdes et al., 2019, Nucleic acid res.). 각주 7참조.
그뿐 아니라, 1800년대 켈빈은 세상의 기본 요소가 매듭으로 이루어졌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현대 물리학의 최전방은 그와 비슷하게 세상의 기본 요소는 진동하는 끈이라고 간주한다(끈 이론, string theory). 끈 이론에 따르면 진동하는 끈들이 상호작용하게 되면 서로 얽히게 되는데, 매듭 이론의 여러 방정식들은 이 상호작용을 잘 설명해 준다. 어쩌면, 백 년 전 켈빈이 남긴 말은 엄청난 통찰을 지닌 예언이었을지 모른다.
옆으로 조금 많이 새 나왔는데, 그래서 결국 하고 싶었던 말은 뜨개질에서 나타나는 뜨개 패턴을 매듭 이론을 통하여 분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버드 대학의 마츠모토 교수는 실제로 취미로 즐기던 뜨개질을 매듭 이론을 통하여 분석하고자 시도했고, 해당 결과를 발표한 적 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뜨개질을 구성하는 두 가지 매듭(안뜨기와 겉뜨기) 는 본질적으로 가장 기초적인 두 매듭으로 환원되는데, 가장 간단한 두 매듭인 자명한 매듭과 세잎매듭이다. 이렇게 실을 통해 엮어낸 직물은 매우 흥미로운 특성을 띠게 되는데, 바로 마츠모토 교수가 '창발적 탄력성⁸' 이라고 언급한 ‘실 자체는 전혀 신축성이 없더라도, 엮어낸 직물은 매우 탄력성이 좋다’ 는 것이다. 이는 실을 엮어서 매듭 구조를 짓는 특성 때문인데, 어떻게 실을 엮는지에 따라 정확히 동일한 재료로도 다른 탄력성과 같이, 다른 물성을 가지는 직물을 얻을 수 있다(그림 7). 이러한 관점에서 마츠모토 교수는 '실은 프로그래밍 가능한 재료' 라고 말했는데, 이러한 독특한 성질을 이용해 마츠모토 교수진은 응용 섬유등에 대한 가능성을 제시할 뿐 아니라, 웨어러블 섬유나 조직 공학에 이러한 뜨개질의 특성이 어떻게 적용되는지에 관심을 두고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그림 7. 다른 종류의 엮임이 어떻게 기본적인 매듭의 병치로 이루어지는지에 대한 설명. 마츠모토 교수의 강의에서 발췌(상단 링크 참조).
뜨개질은 의복을 만드는 필수적인 생활 업무로 시작되었지만, 기계화와 산업화로 인하여 그 중요성이 줄어들며 일부 사람들을 제외하면 거의 사라지게 되었다.
그러나, 2000년대 초반부터 취미삼아, 소일거리 삼아 시작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이제는 꽤나 익숙해진 취미 생활이 되었다. 우리 주변의 옷들을 살펴볼 때, 뜨개질로 만들어진 제품들이 있다면 매듭 이론에 대해서도 한 번 생각해 보자.
미주 Endnote
1. 뜨개질뿐 아니라, 이전 글에서 다루어진 베틀 또한 요즘은 자동화되어서 형형색색의 무늬와 색을 가진 옷감들을 쉽게 만나볼 수 있지만, 이전에는 형형색색의 무늬를 가진 옷감을 짜기 위해서는 매번 다른 날실과 씨실을 정확한 순서와 조합대로 엮어 넣는 등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했으므로 이는 상당한 기술이 필요한 것들이었다.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고자, 1801년 프랑스의 조셉 자카드는 직조기에 들어가는 실의 패턴을 자동으로 선택해 주는 자카드 직조기를 개발했다. 이것은 종이 카드에 구멍을 내어 어떤 실을, 어떤 순서로 넣을지 미리 정해 둘 수 있었다. 이것을 보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천공 카드 프로그래밍이다. 현대 우리가 쓰는 컴퓨터의 기초는 직조기에서 유래했다(실제로, 차분 기관이라는 초기의 기계식 컴퓨터를 만든 찰스 배비지는 여기서 영감을 얻었다).
2. 디랙의 바다로 유명한 그 디랙 맞다.폴 디랙은 양자역학, 양자전기역학에서 무수한 발견을 이루었으며, 대표적으로는 디랙 방정식을 통한 반물질의 예측과 양자전기역학의 창시, 디랙 델타 함수, 양자장론과 자기홀극 예측, 페르미-디랙 통계 등 하나하나가 물리학에 지대한 영향을 준 것들이다. 천재적이었던 만큼 괴짜였던 걸로도 유명한데, 관련된 재미있는 사례들을 직접 찾아보길 추천한다.
3. 뜨개질을 뜻하는 영단어 knitting 은 여기서 유래했다. ‘매듭을 짓는’ 작업이니까.
4. 켈빈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다른 것을 떠올릴 수도 있겠으나, 나는 온도의 단위인 절대온도 켈빈(K) 가 제일 먼저 떠오른다. 이는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단위계인 SI 단위계의 7가지 기초 단위량 중 하나이기도 하다(이에 관련해서도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참 많은데, 다음 기회가 되면 다루어 보자). 이 켈빈의 이름이 바로 그의 연구 업적을 기려 윌리엄 톰슨 경에게서 따 왔다. 0K 은 절대영도로써, 더 이상 낮아질 수 없는 최소의 온도를 가지며 이는 약 섭씨 -273.15 도이다.
5. 이와 같은 질문은 슈퍼컴퓨터의 적용이 가능해지면서 최근 더 해결되고 있다. 매듭은 몇 개의 엇갈림crossing 이 있는지에 따라 구분할 수 있는데, 1998년 호스티와 다른 연구진은 엇갈림수가 16개 이하인 모든 종류의 매듭을 분류했다. 해당 논문에 따르면, 엇갈림수가 3~16 까지 되는 매듭의 수는 차례대로 다음과 같다(엇갈림수가 1이나 2인 경우는 풀린 것이나 다름없으므로, 매듭이 되지 않는다. 양손으로 고무줄을 잡고, 180도 돌린 것을 생각해 보아라. 그것은 단지 꼬인 것이지, 풀리지 않는 매듭이 아니다): 1,1,2,3,7,21,49,165,552,2176,9988,46972,253293,1388705 개. 이 중 몇 개를 그림 4에 첨부했다. 여기에 어떤 규칙성이 있을까? 이것은 아주 어려운 문제이며 아직 증명되지 않았다. 이것을 증명할 놀라운 방법이 생각났다면 논문을 작성해 보길 추천한다!
6. 매듭이 같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간단히 말해,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방법으로 실을 끊지 않고 당기고 밀어서 변형해서 두 가지를 같게 만들 수 있다면, 그것은 같은 매듭이다. 예를 들자면, 어린아이들이 즐겨 하는 실뜨기 놀이를 생각해 보면, 아무리 복잡한 뜨개 과정이 있더라도 그것은 결국 잡아당기면 하나의 원형 고리(매듭 이론의 단어로는 자명한 매듭, 혹은 영매듭)이 되므로 복잡해 보이는 수십 가지 실뜨기 패턴은 같은 매듭이다. 이러한 매듭의 동일성을 증명하는 가장 기초적인 방법은 라이덴마이스터 변환Reidemeister transformation을 취해 변형해 보는 것이다.
7. 이런 DNA의 꼬임을 풀어주기 위해서는 인위적으로 살짝 자른 후 돌려서 다시 붙이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이것을 담당하는 효소가 DNA이성질화효소(DNA topoisomerase)이다. 이 효소가 작동하지 않으면 DNA 가 배배 꼬여서 복제되지 않으므로 세포가 사멸하게 된다. 이 원리를 이용해, DNA이성질화효소를 억제해 세균을 죽이는 항생제들이 있다. 퀴놀론계 항생제들이 그것이다.
8. 창발성은 매우 매우 흥미로운 주제 중 하나이다. 간단히 설명하면, 그 구성 요소에서는 보이지 않던 특징이 상위 집합에서는 나타나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른 긴 글로 다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