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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윤 May 15. 2022

(18) 모닥불에 둘러앉아 -(1)

하윤의 Resolution

“불은 어둠 속에서 더 밝게 빛난다”

-수잔 콜린스



인간을 인간으로


인간을 인간으로 만든 것은 무엇일까? 이에 대하여 수많은 인류학자들은 다양한 층위의 답을 제시했다. 인간만이 가진 협동하는 능력, 언어 능력을 통한 의사소통과 지식의 전달 능력, 짝을 이루고 그룹을 이루는 사회성, 이족 보행을 통한 손의 사용, 도구의 발명 등등이 그것이다.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은 결국 몸의 변화를 요구한다. 협동하고, 언어를 만들고, 의사소통하고, 복잡한 사회적 얽힘을 파악하고, 복잡한 손의 움직임을 학습하고 기억하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두뇌의 성장이 필수적이다. 실제로, 진화 과정에서 인류의 두뇌는 상당한 성장을 겪었다¹(그림 1).


그림 1. 인류 진화 과정에서의 두개골 크기.


지난 1천만 년 간의 추세를 살펴보면, 오랑우탄은 약 400cc의 크기를 가지고, 우리의 먼 조상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500cc 가량이다. 이 크기는 급속하게 성장해 이후 600만 년 동안 크기는 무려 4배나 증가하여 크로마뇽인에서는 1500cc에 이르렀다가, 현대인에서는 약간 줄어들어 1350cc 정도가 평균이 되었다². 그러나, 두뇌는 알다시피 엄청난 식탐을 가지는, 유지보수가 힘든 조직이다(뇌는 우리 몸의 다른 부위에 비해, 부피당 10배가 넘는 에너지를 소모한다. 고작 체중의 2% 를 차지하면서, 20% 의 에너지를 소모한다. 우리의 '생각' 은 상당히 에너지가 들어가는 작업이다). 이러한 고에너지 기관을 유지하려면, 당연히 그만큼의 에너지가 공급되어야 한다. 잘 먹어야 한다는 말이다(연비가 떨어지는 대형 픽업 트럭은 기름을 당연히 자주 넣어야 할 테다). 그렇다면, 인류 진화의 시작은 맛있고 영양가 넘치는 식사로부터 기원한 것이 아닌가?


그림 2. 하버드 인간진화생물학과 교수 리처드 랭엄의 저술, <요리 본능>. 아주 즐겁고 재미있는 책이니 일독을 추천한다.


위의 주장은, <요리 본능>으로 유명한 리처드 랭엄 교수의 주장을 요약한 것이다(그림 2). 그의 저술에서 랭엄은 다양한 증거를 제시하였다. 예를 들어 인간이 음식을 불로 가열하는 것은 음식의 소화 효율을 상당히 증진시키고, 식물성/동물성 식품을 불문하고 부드럽고 씹기 좋게 만듦으로써 음식을 빠르게 섭취할 수 있게 해 준다.


(이것은 우리 인간이 얼마나 식사를 쉽고 빠르게 해치우는지를 살펴보면 잘 알 수 있다. 야생의 질긴 잎사귀, 두꺼운 껍질로 둘러싸인 열매들, 질겅이는 생 고깃덩이를 씹는 데에는 현대 도시인의 상상 이상으로 큰 노력이 들어간다. 침팬지의 식이를 살펴보면, 그들은 음식을 씹는 데에만 하루 6시간 이상 시간을 들인다. 인간은 반면 10분이면 식사를 끝내기도 한다. 이는 단위 시간 당 에너지 섭취율의 막대한 차이를 보여, 유인원은 1시간 당 300킬로칼로리를 섭취하는 반면 인간은 시간당 2,500 킬로칼로리 이상을 섭취할 수 있다. 극도로 가공된 음식들이라면 그 이상일 것이다(예를 들어, 극도의 에너지 소비가 이루어지는 전쟁 상황 군인을 위해 개발된 전투식량은 순식간에 1500칼로리를 공급할 수 있다, 그림 3))


그림 3. 미군의 전투식량 MRE. 고지방, 고열량 식단으로 구성되어 1200~1500 칼로리를 빠르게 섭취할 수 있다.


 랭엄은 이러한 증거를 바탕으로, 실제로 인간의 기원은 요리 덕분이고, 섭취 효율성을 높인 인간은 소화에 사용할 에너지를 뇌에 대신 사용할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요리는 에너지 공급을 늘려 더 큰 뇌의 유지를 가능케 했고 이것이 인간이 인간이게 된 이유라는 것이다.



생명과 문명의 근원, 불


랭엄 교수의 주장처럼, 불은 인간을 만들었고, 사실은 지금도 인류 문명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수십 만 년 전 모닥불에서 나무를 태우던 것이, 이제는 우리의 내연 기관 안에서 탄화수소를 태우고, 수십 킬로미터 떨어진 발전소에서 석탄을 태워 터빈을 돌리는 형식으로 바뀐 것 뿐이다. 여전히 우리는 집에서 가스를 태워 요리하고(혹은 석탄을 태워 만든 전기로 요리하고), 가스나 전기를 통해 방바닥을 덥힌다. 그 방법론이 달라졌을 뿐, 우리는 여전히 불에 의존하여 살아가는 동물이다³. 외딴 곳에 조난당한 상황에서 우리가 가장 먼저 찾아야 할 것은 불이다. 불은 열기와 빛을 주고, 위험한 동물로부터 보호를 제공하며, 음식을 가공할 수 있게 해 주고, 물을 살균하고 도구를 만드는 수단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림 4. 세포 내 '화덕' 이나 다름없는 미토콘드리아. 실이 든 주머니같이 생겼는가?(미주 5 참조)


조금 더 관점을 넓혀 보자면, 사실은 생명체의 근간 자체가 불이기도 하다. 불이라는 것은 결국 1) 물질이 2) 산소와 결합하며 3) 빛과 열을(에너지를) 내는 현상인데, 이것이 면밀하게 조정된 것이 바로 세포가 에너지를 얻는 방식이다. 생명은 필연적으로 외부 세계로부터 에너지를 추출해내야만 그 존재를 지탱할 수 있는 존재인데, 우리 몸 속의 세포들은(비단 그뿐 아니라 대부분의 생명체는-물론 산소 없이 에너지를 얻는 생명도 충분히 많다. 우리의 뱃속과 입 속에 살아가는 무수한 혐기성 세균들이 그들이다!)  우리가 섭취한 음식물 속의 탄소 분자들을 산소와 결합시키며 에너지를 얻고, 그 에너지를 이용하여 생존에 필수적인 동력을 얻는다(그림 4,5).


 만 불과의 차이점을 꼽자면, 그 시작과 끝은 같지만 거쳐 가는 경로가 다르다고 하겠다. 비유하자면, 20층 꼭대기에 있는 돌을 바로 1층으로 집어 던지는 것이 연소(불), 계단으로 한 층씩 툭 툭 떨어트리며 천천히 내려보내는 것이 세포 호흡이라고 할 수 있다(아래층으로 내려갈수록 화학 결합이 강해지며, 여분의 애너지가 방출된다. 산소는 아주 강한 전자 수용체로써, 화학 결합 속의 전자를 강력하게 잡아매며 여분의 에너지를 방출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것이 산소 호흡이 훨씬 에너지 측면에서 효율적인 이야기이지만, 지엽적인 이야기이므로 자세한 설명은 생략코자 한다).


그림 5. 어떻게 세포가 에너지를 얻는지에 대한 도식. 세포는 이 과정을 통해 40% 가량의 에너지 효율로 포도당을 에너지로 전환시킨다(Murphy, 2016)


또한, 이 과정에서 무산소 호흡을 벗어나 산소를 이용하게 됨으로써 갑자기 생겨난 여분의 에너지는 더 큰 생명체를 가능케 하였고, 이에 따라 더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는 다세포생물, 그리고 동물이 탄생할 수 있게 되었다(산소 호흡은 무산소 호흡보다 17~20배 가량의 에너지를 제공한다. 막대한 에너지의 보고이다). 결국, 생명체 내에서는 세포 호흡이라고 부르는 ‘잘 조절된 연소’ 가 일어나고 있는 셈이다. 어떤 관점에서 보면, 생명체 자체가 수많은 미세한 내연기관으로 이루어진 셈이며 우리는 연료를 씹어 삼키고, 연료를 태우기 위해 산소를 들이마시는 엔진에 비견될 수 있을 것이다.



마무리


이번 글은 '불' 이 인에게 미친 영향들에 대해 살펴보고자 하는 것이 그 목표이다. 이번 글에서는 불이 인간의 진화에 있어 미친 영향과, 세포가 산소-물질의 결합을 통해 만든 '불' 이 생물학적으로 어떤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지에 대하여 알아보았다. 다음 글에서는, 1) 불이 종교를 비롯한 인간 문화에서 어떠한 역할을 하였는지, 2) 불과 학습의 진화가 어떠한 관계가 있는지, 3) 산업 혁명을 불이 어떻게 추동하였는지에 대하여 알아봄으로써 불에 대한 짧은 단편을 마무리하도록 하자.



미주 Endnote


1.   이는 두개골의 크기를 통해 간접적으로 추측할 수 있다. 뇌는 두개골에 딱 들어맞는 크기이기 때문이다(안 그래도 출산에 어려움을 겪는데, 굳이 여분의 공간을 두어 머리 크기를 늘릴 필요는 없을 테다). 사실, 고대 인류의 수십만 년 된 두개골에서는 뇌의 크기 뿐 아니라 그 해부학적 구조까지 알 수 있다. 경화되기 이전의 두개골에는 뇌의 주름들까지 새겨질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인류학자들은 이러한 방법을 통해, 특정한 뇌 영역의 진화사를 밝히고 있다.


2. 오히려 현대인의 뇌가 더 작아진 이유는 무엇일까? 이것은 인류가 집단 지성과 기록 등을 통하여 지식을 외부에 저장하게 되었고, 그에 따라 개인이 직접 기억해야 하는 정보의 양을 줄임으로써 에너지를 절약하기 위한 방법이라는 이론이 제시되었다(Desilva et al., 2021, Frontiers in ecology and evolution). 우리가 핸드폰이라는 외부 저장 매체가 생겨남에 따라 더 이상 남의 번호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못 한다’ 보다는 ‘안 한다’ 인 셈.


3. 직, 간접적으로 불에 의존하지 않는 에너지 수단은 핵분열 발전이나 지열 발전, 조력 발전 정도일 테다. 더 넓게 생각하면 태양열과 태양광 발전, 수력 발전, 풍력 발전을 꼽을 수도 있겠는데, 이것은 태양의 '불' 이 만들어 낸 거대한 에너지를 간접적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물론 이 불은 연소로 인한 불은 아니지만.


4. 왜 하필 탄소와 산소인가? 진화 과정의 지난한 여정을 잠깐 다시 살펴보면, 35억 년 정도 전부터 등장한 남세균이 산소를 발생시키자 대기 중 산소 농도가 증가하기 시작했다. 산소는 굉장한 반응성을 가지고 있어서 매우 위험한 독가스나 다름없는데, 이 때문에 수많은 생명 종들이 죽었을 것이다. 그러나 진화는 답을 찾아내었고, 이 엄청난 반응성을 가진 물질을 탄소와 결합시켜 쏟아지는 에너지를 사용할 방법을 개발했다. 그것이 산소 호흡이다. 탄소와 산소의 결합은, 그 화학적 특성상 쉽게 결합할 뿐 아니라 많은 에너지를 방출하게 된다. 여러 우주생물학자들은 외계의 생명체 또한 이와 같은 이유로 탄소와 산소를 기본적인 에너지 대사에 이용할 것이라 추측한다.


5. 이 과정을 세포 호흡이라고 부르며, 생존에 필수불가결한 과정이다. 정확히는, 세포 안에 위치한 미토콘드리아(mitochondria, 그리스어로 끈이 담긴mito+알갱이khondros의 합성어다. 이는 세포 호흡을 위한 구조물들이 옹기종기 접혀 마치 끈과 같은 모양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에서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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